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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부터 부동산 PF 규제까지...'규제당국'에 금융권 속앓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12.08 14:58

사모펀드 판매액 급감, 주수익원 '리테일' 수익성 둔화 계속

채무보증 한도 100% 제한 칼날에 新먹거리 부동산PF '깜깜'

▲(사진=연합)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에 대해 고강도의 규제안을 발표한데 이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금융권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그간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부동산PF에 대해 명확하게 기준을 세운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공감하면서도 부동산 채무보증 한도를 100%로 설정한 것은 너무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했다. 이번 결정은 증권가의 사업성과 리스크 등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당장 내년 경영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리테일시장 위축에 부동산PF도 '깜깜'...증권株 '휘청' 

당국이 부동산PF에 대한 건전성 관리방안을 발표하면서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증권주에 투자한 투자자들이었다. 지난 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메리츠종금증권은 전일 대비 11.07% 하락한 3695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국금융지주(-3.15%), NH투자증권(-1.61%), 삼성증권(-0.96%), 미래에셋대우(-0.55%) 등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이는 이날 코스피가 21.11포인트(1.02%) 오른 2081.85에 마감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렇듯 증권주가 증시 상황과 반대로 움직인 것은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PF 규제안으로 증권사들의 실적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등은 100조원에 이르는 부동산PF 익스포저(대출·보증 등 위험노출액)를 관리하기 위해 내년 2분기부터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PF 채무보증 한도를 100%로 설정했다. 부동산PF 채무보증에 대한 신용위험액을 산정할 때 위험값은 기존 12%에서 18%로 상향 조정했다.

기존에는 부동산PF 채무보증에 대해 제한이 없었지만, 이번 규제로 증권사들은 자기자본 한도 내에서만 채무보증을 제공해야 한다. 당국은 규제 적응기간을 부여해 채무보증 반영비율을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지만, 100%를 초과할 경우 추가 부동산 채무보증이 제한되는 만큼 당장 부동산PF에 대한 영업 여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 부동산PF 채무보증 규모 및 채무보증 추이.(자료=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결정으로 그간 증권가 기업금융(IB)의 주 수입원이었던 부동산PF 관련 활동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과거부터 부동산PF를 신규 먹거리로 삼아 수익원을 확대했던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당장 경영에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 펀드 시장 축소로 기존 주요 수익원이었던 ‘리테일’ 부문이 위축된 가운데 부동산PF 등 기업금융(IB) 부문에서도 규제가 강화된 셈이다. 실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주식형펀드에는 1238억원이 유출됐고, 해외 펀드에서도 35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이탈했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글로벌 증시에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펀드시장을 외면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운용사 뿐만 아니라 금융상품 판매 창구인 ‘증권사’ 역시 리테일 부문에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난도 사모펀드는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한 점도 증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일각에서는 은행에서 판매가 금지되면서 증권사가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등 각종 금융사고로 펀드 시장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진 만큼 시간이 갈수록 펀드 시장이 위축되면서 은행, 증권 등 국내 금융권의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된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10월 말 기준 24조7175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9969억원 감소했다. 이는 2007년 12월(-1조976억원) 이후 약 12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한 수치다.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올해 1~6월 매달 5000억원씩 꾸준히 증가하며 6월 말에는 27조258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DLF 사태 등 각종 금융사고가 터지면서 10월 말 펀드 잔액은 올해 2월 말(23조7085억원)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증시에 변동성이 커지고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되면서 증권사들의 전통 수익원이었던 리테일부문은 실적이 계속해서 둔화되고 있다"며 "리테일시장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증권사들의 새로운 먹거리였던 부동산PF마저 규제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증권사들이 부동산PF를 영위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자기자본 규모가 어느정도 갖춰진 대형 금융사들은 부동산PF로 인한 금융사고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우량한 건물에만 PF를 제공해왔다"며 "주변 상권 등을 분석해 시행사들이 고분양가를 책정하는 것을 방지하는 등 나름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기여했는데, 그런 점을 하나도 봐주지 않고 건전하지 않다는 시각으로 보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 "부동산PF 가이드라인 신설 취지 공감" vs "왜 하필 이 시기에..."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물론 부정적인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간 부동산PF에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만큼 리스크가 전이되지 않도록 당국이 선제적으로 규제안을 발표한 것은 바람직하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부동산PF에 진출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명확한 규제안이 만들어지지 않아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며 "이번 규제안은 대형사들의 PF를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금력이 약한 소형사들에게 위험관리에 대한 분명한 시그널을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국내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일부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부동산 금융에 대해 과열 조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며 "부동산금융이 언제 금융사고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우려가 많았는데, 이번 대책으로 시장의 건전성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국이 부동산PF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목적이 무엇인지 의구심을 표하는 의견도 있다. 현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강력한 부동산 억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이번 PF 관리방안 역시 부동산으로 들어가는 자금을 막기 위해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는 창구 중 하나로 부동산PF가 활용되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며 "그간 정부 정책을 보면 이번 PF 역시 금융의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부동산 대책에 따른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방지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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