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서유기의 백마는 용(龍)이다

에너지경제 ekn@ekn.kr 2020.01.14 11: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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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


삼장법사(三藏法師)로 유명한 현장(玄, 602~ 664)은 당나라 초기의 고승이었다. 10세 부터 불교를 공부해 13세 때 승려가 되어 현장이라는 법명을 얻고, 이후 최고의 영예인 삼장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는 원전으로 불경을 연구하려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익숙한 반야심경(般若心經)이 바로 그의 번역이다. 그는 여행을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로 정리해 태종황제에게 진상했다. 이 여행을 주제로 명나라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판타지가 서유기다.

서유기는 불경을 구하는 여정을 도교와 불교, 중국 한인과 외국 오랑캐까지 버무린 크로스오버 판타지소설이다. 인종으로 보자면, 삼장법사라는 당나라 한인과 백마(白馬)라는 동물을 제외하고 모두 불교식 이름을 지닌 서역 오랑캐다. 사실 백마가 지니는 의미도 알고 보면 중국 것이 아니었다.

서유기에서 백마는 서해용왕의 셋째 아들인 옥룡삼태자였다. 그는 조상의 사당에 불을 질렀고, 잡혀서 벌을 받으려고 포박당해 있던 것을 관음보살이 발견한다. 관음은 그에게 경을 가지러 가는 사람을 받들어 모시라고 당부하고 강에 풀어준다. 백마는 삼장법사를 도와 불경을 운반한 공을 인정받아 용이 되어 팔부천룡(八部天龍)이라는 직책을 받게 된다.

고대의 말 중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긴 것은 목천자(穆天子)가 탔던 팔준마(八駿馬)라는 신비한 말이다. 준(駿)이란 한어로는 순수 혈통의 훌륭한 말을 의미한다. 종종 신비한 탄생, 또는 서역의 말을 가리키기도 하고, 영웅에 비유하기도 한다. 곤륜(崑崙)의 황량한 땅을 위대한 목천자와 함께 여행했던 말, 이 범상치 않은 말은 동양화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천마총에도 백마는 날아다닌다. 용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찌하여 백마는 용인가? 신화에서는 말을 용의 친척으로 여기고, 물의 신비로운 힘을 갖는다고 여겼다. 고대의 한인은 높이가 가장 높은 말은 그냥 ‘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시인 이백도 ‘멀리 서쪽 땅에는 준골용매(駿骨龍媒)라 불리는 훌륭한 천마가 있다’며 시를 남겼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서역에서 수입한 말을 용마로 신봉하기 시작했다.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는 방사가 조제한 신비한 약을 먹고, 태산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치렀다. 불로장생을 얻고 천상계로 데려가줄 신비한 용마를 기대하였다.

다리가 길고 덩치가 작은 대식(大食)국의 말 역시 용과 암말이 ‘서쪽 나라의 바닷가’에서 교접하여 태어난 것으로 여겼다. 한무제 시대까지 천마는 야크사르테스강에 면한 파가나(大宛)에 산다고 전해졌다. 페르시아의 왕들을 위해 메디아에서 키운 니소스말과 동종이라 여겼다. 이 말이 바로 삼국지에 관운장의 적토마, 즉 한혈마(汗血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물에서 태어난 말에 관한 전설은 이미 투르키스탄에 있었다. 예를 들면 7세기에 현장(玄?)이 쿠차(龜玆)를 찾아갔을 때 어떤 절 앞에 용이 산다는 호수가 있었다. 그곳에 사는 용은 모습을 바꿔 암말과 교접하는데 태어난 야생 용마는 성질이 매우 거칠어 길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용마의 자손들은 성질이 온순하다고 한다.

당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었다. 우리가 보통 개판인 막장 군대를 일컬을 때 당나라 부대라 하지만 당나라는 중화 역사 전체를 통틀어 최강이었다. 오늘날 미군과도 유사했다. 기마병 체제로 평균 군마 70만 필을 유지했으며, 북방 유목민의 장점을 받아들여 경기병이나 보병도 운영했다. 따라서 말은 황제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동물인 용이었다.

모든 길은 당나라 장안으로 향하던 시대, 말은 당나라를 떠받치는 힘이었다. 세계로 당나라를 대표하는 삼장법사를 실어 보내고, 불경이라는 ‘세계’를 당으로 운반하였기에 백마는 말이자 용이었다. 하지만 용마조차 원래 중국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는 당나라와 함께 말을 제국의 간성으로 만들어냈다. 지금도 서안(西安)에는 불경 번역가 구마라지바를 서역에서 싣고 온 백마를 기리는 백마사(白馬寺)가 있다.

시인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노래했다. 그렇다. 지금 여기, 중국이나 중국인이 아닌 우리가 바로 백마 탄 초인이다. 그렇기에 우리와 세계를 싣고 우뚝 설 용마를 상상해 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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