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분

에너지경제 ekn@ekn.kr 2020.05.18 11: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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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장준호


'삶이 멈춘 것 같아. 우울해. 나의 자유는 어디로 갔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분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생활감정을 느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여전히 자유로운 활동과 다양한 욕구 충족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방역과 생명의 논리에 따라 강력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되어가고, 그러한 국가에 몸을 맡긴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조치에 따라야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는 개인을 약화시키고 국가를 강화시키고 있다. 감시와 통제가 자연스럽게 관철된다. 사회 전체가 획일적으로 생명 우위의 논리를 따르면서 감시·통제사회를 받아드린다. 이는 새로운 사회계약인가? 그렇다면 개인은 계속해서 우울할 수밖에 없다.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강력해진 국가도 개인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울할 수밖에 없다. 유한함(현실)과 무한함(이상)의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1514년 작품 [멜랑콜리아 I]는 예술가의 우울함을 표현하고 있지만, 국가의 우울함을 상징하는 알레고리(allegory)로도 해석될 수 있다. [멜랑콜리아 I]에서는 날개 달린 천사가 우울한 표정으로 왼 손으로 턱을 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오른 손에 컴퍼스를 쥐고, 주머니와 열쇠꾸러미를 차고 있다. 바닥에 대패, 망치, 톱, 못 등 기술적 도구가 놓여있고, 뒤에 천칭, 모래시계, 마방진 등 과학적 도구가 걸려있다. 깡마른 개 한 마리가 누워있고, 저 멀리 광휘 속으로 날아가는 박쥐의 날개에 멜랑콜리아 I이라고 쓰여 있다.

천사의 주머니는 돈을, 열쇠꾸러미는 권력을, 망치, 천칭, 마방진 등은 과학기술을 상징한다. 천사는 무엇인가 창조할 수 있는 힘과 도구를 가지고 있지만 얼굴에는 우울함이 역력하다. 힘과 도구가 있어도 세계의 비밀을 알아내고 새로움을 창조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박쥐의 날개에 새겨진 멜랑콜리아 I이라는 표지는 천사가 맞닥뜨린 존재의 한계를 비웃는 것 같다. 천사를 국가로, 박쥐를 코로나19로 치환해보자. 전 세계의 공기 중에 퍼지고 있는 코로나19가 국가가 지닌 경제력, 정치권력, 과학기술의 힘을 비웃는 것 같지 않은가? 국가는 모든 힘을 동원하여 재난지원, 방역과 감시, 백신과 치료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지만 한계와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무기력 앞에서 국가도 우울할 수밖에 없다.

뒤러는 멜랑콜리아를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창조하기 전에 자기한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밀려오는 성찰적 감정으로 이해했다. 자기의 한계, 실수, 결핍에 대한 자각은 사려와 성찰로 이어진다. 국가의 우울함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국가는 개념이기에 사람처럼 우울함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개념의 매개를 통해 국가를 실재적 인격체로 상상한다. 국가도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성찰할 거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가 아니라, 실제로는 국가의 구성원이 상황을 인식하고 우울해 하며 성찰한다. 특히, 국가를 이끄는 국정의 책임자가 우울함을 느끼고 사려와 성찰을 시도한다. 방역을 잘한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지닌 한계, 실수, 결핍을 성찰하면서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최근 맑아진 공기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을 보며 "지구에 대해 인간이 바이러스이고, 코로나19가 백신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19가 던져준 우울함에 담겨야 하는 성찰은 생태적 전환이다. 과학기술과 경제가 발전한다 해도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코로나19에 이어 새로운 바이러스와 재난이 계속 생길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부는 기후변화를 정지시킬 수 있는 그린 뉴딜 정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 연대도 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준 교훈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은 경제, 디지털, 기술 등이 아니라 생명이고, 그 생명은 깨끗한 지구에서 유지된다.’라는 사실이 아닐까? 우리나라에 주어진 지구적 공간을 생태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우울함은 의미가 없고, 개인도 욕구충족과 자유를 되찾지 못해 계속해서 우울해 할 수밖에 없으며, 감시와 통제로 인해 개인은 약해지고 국가는 강해지지만 그 국가는 다시 우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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