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근로계약서 작성 없어도 계약 효력 발생 유념해야

에너지경제 ekn@ekn.kr 2020.05.21 1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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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원 재원 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


한창 때는 아시아 전체를 뜨겁게 달궜고 요즘도 마니아층에게는 계속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문학 장르가 바로 ‘무협소설’이다. 어른들의 동화라고 할 수 있는 무협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지켜지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일단 주인공은 처음부터 무술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인물이다. 하지만 집안에 큰 재난이 발생해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만 겨우 살아남는다. 여기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기연’이다. 기연이란 기묘한 인연을 말하는데, 수련시간에 따라 실력이 늘어나는 무협의 세계관에서 평범한 주인공이 일반적인 수련을 통해서 기존의 무림고수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특별한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악당에게서 도망치던 주인공이 벼랑에서 떨어지거나 동굴 속으로 도망가면 그곳에는 반드시 먹는 즉시 무림고수가 되는 ‘영약’이 있거나, 한번만 읽어도 절대고수가 되는 ‘무공비법서’가 있거나 또는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무공을 전수할 제자를 기다리는 ‘절대고수’가 있다. 기연은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서양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요즘 유행하는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도 과학실험이나 방사능 노출, 우주물질과 접촉 등으로 갑자기 초능력자가 된다. 이런 기연 중에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종교적으로 인간 본성과도 관계되는 것이 ‘악마와의 계약’이다.

신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악마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해준다는 설정은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가 60년 동안 집필한 ‘파우스트’를 비롯해 많은 문학 작품이나 전설 등에서 등장한다. 주인공이 받는 대가는 젊음, 권력, 부, 지식 등 매우 다양하나, 악마는 오직 주인공의 영혼만을 요구한다. 영혼을 잃은 주인공은 뒤늦게 후회하고 그 계약을 되돌리기 위해서 노력하나, 이미 한번 맺은 계약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일반적인 무협소설의 기연과 다르게 악마와 계약은 그 자체가 절대적 타락이므로, 대부분 주인공의 파멸로 마무리가 된다.

굳이 상대방이 악마가 아니더라도 한번 맺은 계약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계약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해서 비난을 받거나 손해를 보는 일은 흔하다. 계약은 법률행위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유효한 계약이 체결된 경우에 계약 당사자는 그에 구속되며, 일방이 함부로 변경하거나 그 효력을 부인 할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와 어떤 계약을 맺는 것이 흔치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계약을 맺으며 살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하지만 가볍게 생각하거나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회사에 입사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합의를 하는 근로‘계약’이다. 근로계약도 다른 계약들과 마찬가지로 상호간의 합의 내용을 일방이 함부로 변경하거나 효력을 부인 할 수 없다.

최근 헤드헌터 업체를 통해서 경력직을 사전 채용하고 최종 합격을 통보한 화장품회사가 해당 근로자가 이직을 위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자 돌변해 계약된 연봉의 삭감을 요구했고, 이에 항의하자 채용을 취소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처럼 아직 정식으로 입사하기 전 상태에서 근로계약의 효력을 부인 할 수 있을까? 우선 법원은 근로계약을 ‘낙성·불요식의 계약’으로 본다. 즉 상호 합의만 있으면 되고, 근로계약서 작성과 같은 특별한 요식행위가 없어도 된다는 뜻이다. 합의는 ‘청약’과 ‘승낙’으로 이뤄지는데 사용자가 낸 채용공고를 보고 근로자가 입사 지원하는 것이 ‘청약’이며,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합격 통보를 하는 것이 ‘승낙’이다.

따라서 근로계약서의 작성이 없더라도 사용자가 합격 통보를 한 시점에서 근로계약은 효력이 발생한다. 물론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구두계약의 경우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효력 발생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 사건도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일치해 근로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채용취소를 부당해고라고 인정하였다.

계약의 효력은 당사자 쌍방 모두에게 동일하게 효력을 미치므로, 근로계약 체결 시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내용을 잘 확인하고 항상 신중하게 결정하여야 한다. 특히 정형화된 근로계약을 집단적,획일적으로 체결하거나 특수한 근로관계의 경우에는 노동전문 변호사나 공인노무사와 같은 노동법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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