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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칼럼] 유럽 주둔 미군 동북아 지역 재배치 의미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7.05 08:39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건국 이래 미국이 정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지역은 유럽이다. 미국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많은 피를 흘렸고,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결성을 주도하여 유럽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종식되기까지 약 46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미국은 이 기간 유럽 안보를 보증하는 핵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이후 미국의 관심은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을 치르며 유럽에서 중동 지역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 유럽 주둔 미군도 점차 축소되었다. 지금은 6만3361명의 미군이 나토 회원국 여러 나라에 배치되어 있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중심주의를 실천하면서 그동안 혈맹으로 여기던 나토의 유럽 동맹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유럽과 동아시아에 대규모 미군 병력을 주둔시키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더 부합하지 않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분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 납세자들의 부담을 가중하는 나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과 주장은 유럽에서 많은 논란을 초래했고 특히 미군의 상당수가 주둔해 있는 독일의 메르켈 행정부로부터 반감을 샀다. 한국과 일본에게는 미군 주둔 분담금을 5배까지 인상하라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주독미군을 3만4674명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미국은 미국과 갈등을 겪는 독일보다는 미국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방위비 분담에 전향적인 폴란드로 주독미군 병력의 일부를 재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판단은 오히려 폴란드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러시아의 위협을 견제하기에 지정학적·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말을 안 듣는 독일을 무시하고, 여타 나토 회원국을 조련하며, 러시아 견제라는 다양한 전략적 실익을 챙기는 효과를 거양하는 것이다.

반면, 비록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방위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면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연막을 피우지만, 미국은 오히려 이 지역에서 미군의 병력과 전력을 증강·강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급증하는 중국의 군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지역의 전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미국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분담금 문제를 운운하며 유럽에서의 병력 감축을 추진한다지만 사실 미국은 전략의 필요성에 따라 병력을 재배치하는 것이고, 이를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추진하려는 의도이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이 동북아 지역 전력 증강이 미국의 필요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판단하여 미국과 방위비 문제 논의를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의 이념과 정체성 때문에 주한미군의 미래를 포함한 미국과의 관계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존재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방해하는 것으로 오판할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이 주한미군 문제로 미국과 충돌하게 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대폭 감축이나 철수를 감행할 수 있는 충분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주한미군은 6·25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안보를 지켜온 핵심 억제력이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안정과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가 평화롭게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한국에서 친북·친중 분위기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미군의 동북아지역 전력 강화가 가져올 파급력에 대해 잘 판단해야 할 시기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단호한 각오가 없다면 결국 미국의 동맹국으로 대중국 견제 최전선에 함께 서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북아에서 언젠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 거대 세력 사이에서 한국의 어설픈 중립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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