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자발적으로 조건 없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최고수준의 목표를 설정했다"며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세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한 달 뒤인 2010년 1월 13일 국회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서는 ‘저탄소’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청정에너지의 사용 및 보급을 확대하며 녹색기술 연구개발, 탄소 흡수원 확충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적정수준 이하로 줄이는 것", 그리고 ‘녹색성장’이란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기후변화와 환경훼손을 줄이고 청정에너지와 녹색기술의 연구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등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성장"이라고 정의했다.
이 기본법의 제정으로 대통령 직속으로 녹색성장위원회가 설치되고 ‘에너지기본법’은 에너지법으로 격하되어 기본법 산하로 들어왔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2015년 6월 30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의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추세 대비 37%를 감축하는 자발적 감축 기여방안(INDC)을 확정하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난 6월 29일 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위원장은 국회 간담회에 참석해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꼬집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로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배출 목표치 5억3587만t보다 1억t을 더 배출하고 있다. 반면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인 재생에너지의 보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돌아온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곧바로 아부다비로 날아가 아랍에미리트와 한국전력컨소시엄 사이의 원전 2기 건설 계약에 참석, "이제 우리는 미국과 프랑스, 일본, 러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나란히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국내 원전업계는 ‘원전 르네상스’를 부르짖으며 장미빛 미래를 그려 보였다. 그러나 컨소시엄에 참여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일본 도시바의 지원으로 프랑스를 이긴 아부다비의 행운은 뒤따르지 않았다. 베트남은 물론 우선협상대상국이었던 터키에서도 일본에게 밀리던 중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세계의 원전 시장에 결정타를 날렸다. 독일과 스위스 등 원전 퇴출을 결정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시장은 완연하게 축소의 길로 들어섰다. 독일은 2년 후면 원전이 모두 멈춰 선다.
핵무기 보유국의 전유물인 원전 산업에 발을 걸친 것은 캐나다와 일본, 한국뿐이다. 원천 기술 보유국인 미국은 일찍이 경쟁력을 잃고 1999년 웨스팅하우스를 영국에 팔았다. 전력산업 민영화에 나선 영국도 웨스팅하우스를 2006년 일본의 도시바에게 팔았고, 미국은 같은 해 제너럴 일렉트릭 원전사업부마저 일본의 히타치에게 넘겼다. 그러나 일본의 도시바는 그룹 전체가 흔들리자 2017년 3월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대해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짓고 있던 원전 2기에 대해 40%의 공정 진행에도 불구하고 발주자인 공공서비스위원회가 경제성이 없어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계획된 원전이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영국도 마찬가지다. 두산중공업의 원전사업이 위기에 빠진 건 시장 축소의 당연한 귀결이다.
두산중공업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해상풍력에 투자하기로 했듯이 우리의 미래는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달려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든 ‘그린 뉴딜’이든 우리에게서 ‘기후악당’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무역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보급이라는 핵심 정책수단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