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신정식 비위의혹 감사 뒷감당 못하는 감사원

구동본 기자 dbkooi@ekn.kr 2020.08.27 17: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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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본 에너지환경부장/국장


감사원이 요즘처럼 동네북 신세였던 적이 있었을까?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정당성을 확인하는 감사원 감사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 얘기다. 여권 주류는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놓고 "물러나라"며 전방위 압박하고 있다. 감사원이 최 원장 주도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부당 쪽으로 감사 결론을 내려한다는 관측 때문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여권 주류의 ‘흔들기’에 꿈쩍 않고 버티고 있다. 이게 최 원장 말처럼 감사원의 처절한 홀로서기라면 안쓰럽다. 헌법상 보장된 정치 중립을 지켜내기 위해 거대 권력에 맞서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이런 야단법석에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감사원의 또 다른 감사 건이 한 가지 있다. 신정식 한국남부발전 사장의 비위의혹에 대한 감사 뜸들이기다. 이걸 보면 최 원장의 ‘소신’ 지키기나 감사원의 중립성·독립성 추구 노력에 사람들이 왜 박수와 지지를 보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감사원은 남부발전 감독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체 감사 중이던 신정식 사장 비위의혹 건을 이첩(移牒), 쉽게 말해 넘겨받고 두 달 째 감사 착수는커녕 감사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그것도 감사원이 해당 감사 건을 요청해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 감사원이 아직도 감사를 하지 않고 있으니 ‘뭉개고 있다’는 표현도 어색할 게 없다.

산업부 자체 감사를 가만 내버려뒀더라면 3개월째 진행됐을테니 벌써 감사가 끝났거나 막바지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감사원이 산업부 자체 감사를 가로챘건 좀 더 면밀하고 효율적인 감사를 계획했건 뒷감당을 못한 건 분명하다.

신 사장 비위의혹은 지난 5월 초 산업부에 제보됐다. 그 전후 국회·감사원·언론 등 사방으로 같은 정보가 들어왔다. 이에 산업부가 이 제보를 성윤모 장관에게 보고한 뒤 계획을 세워 6월 말 자체 감사를 벌였다. 산업부 자체 감사는 개시 닷새 만에 돌연 중단되고 해당 감사 건은 감사원으로 넘겨졌다.

감사원과 산업부가 밝힌 그 과정을 보면 실로 어처구니없다. 우선 해당 감사 건을 산업부가 감사원에 이첩한 것과 관련 두 기관의 말이 서로 다르다. 산업부는 감사원의 ‘요청’을 받고 감사 건을 이첩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감사원은 산업부와 ‘협의·조정’을 거쳐 넘겨받았다고 한다. ‘요청’과 ‘협의·조정’이 그게 그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 구분과 차이를 따지는 게 공연히 트집 잡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감사원은 산업부 주장과 달리 ‘이첩 요구’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일 처리 모습을 보면 더 가관이다. 두 기관은 유선 요청 또는 협의·조정을 거쳐 이첩이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감사원은 산업부와의 감사계획 협의·조정과 관련한 내부 결재 문서도 없다고 한다.

두 기관은 법과 규정, 절차 등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중앙 행정기관이다. 특히 감사원은 국가 사정(司正)의 대표 기관이다. 헌법 제97조와 감사원법 제20조의 규정이 정한 대로 국가 세입·세출 예산 집행의 적정을 기하고 행정 운영을 개선ㆍ 향상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다. 그 구체적인 기능으로 △ 국가의 세입ㆍ 세출 결산 검사 △ 국가기관과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 상시 검사ㆍ 감독 △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 감찰 등이 열거됐다. 간단히 말해 다른 행정기관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감찰하는 곳이다. 일 처리에서 모든 행정기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해당 감사 건을 감사원에 넘겨준 주체도 산업부 감사실이니 이곳도 마찬가지다.

사정 업무가 아무런 문서 없이 이뤄졌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사정의 경우 책임 소재가 가려지고 수사당국의 수사 의뢰 등 행정 처분도 뒤따를 수 있어서다. 검찰과 경찰의 사례를 보자. 검경 간은 물론 각 기관의 지방 청(廳) 사이에서도 ‘관할’, ‘배당’을 놓고 신경전과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다. 어디서 수사 하느냐에 따라 수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사정 기관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민간 기업 내 부서 간 일 처리도 이렇게 서툴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두 기관은 사정의 핵심인 감사 건을 유선으로만 주고받았다고 실토한 것이다. 행정 행위는 문서로써 효력이 발생한다. 이건 행정의 기본 중 기본이다. 두 기관이 이걸 모를 리 없다.

두 기관이 이첩 한 달 여만인 지난달 30일과 31일 이첩 공문서를 수신한 것만 봐도 그렇다. 신 사장 비위의혹에 대한 산업부 자체 감사의 돌연 중단이 지난달 26일 본지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직후였다. 본지 보도로 문제될까 봐서 뒤늦게 부랴부랴 공문서를 챙긴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감사원은 해당 감사 건을 넘겨받은 배경으로 중복 감사에 따른 비효율, 기관장 비리 관련 엄정 감사 필요 등을 설명했다. 해당 감사 건이 중복 감사의 문제가 있다면 감사원은 당초 발전공기업들을 3분기 감사 대상에 왜 포함시켰나?

국무조정실과 산업부는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을 구성, 지난해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10개월간 한국중부발전 등 공공 및 민간 화력발전소 건설·운영실태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대상이 사업비 1조원 이상 화력발전소라지만 점검 결과를 보면 감사나 다름없다.

정부 합동 점검에 뒤이어 곧바로 감사원이 올해 3분기 발전공기업 감사를 계획했다면 이런 게 전형적인 중복감사다. 이를 두고 정부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탈(脫)석탄 정책의 명분을 확보하고 혹여 있을 수 있는 발전회사 저항의지를 꺾으려는 시도라고 보면 터무니 없는 관측인가. 공공기관장 등과 관련 사정은 감사원은 물론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이 정기적으로 일제히 나서서 한다. 점검·감사 기관의 다양화, 이들 기관 간 견제를 통해 정보 정확성·신뢰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이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중복감사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백 번 맞는 말이다. 중복감사 여부의 판단 기준이 제멋대로인 게 문제다. 또 기왕 중복 감사 방지의 필요성, 기관장이 관련된 사안 자체의 중대성에 따른 결정이라면 감사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감사원은 ‘코로나19’, 월성1호기 감사 등을 신 사장 비위의혹 감사의 지연 사유로 제시했다. 납득할 수 없다. 황당하다. 오리발 내미는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는 연초부터 시작돼 그간 내내 엄중했다. 월성1호기 감사는 이미 시한을 1년 가까이 넘겼다. 이런 사유라면 처음부터 산업부가 자체 감사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뒀어야 한다.

이러니까 감사원, 산업부의 조치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한무경 미래통합당 의원이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에 대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감찰무마 의혹 복사판 아니냐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떳떳하다면 이런 불필요한 의혹을 받으면서 해당 감사를 미적댈 이유가 없다. 감사 늑장을 부리고서야 대표 사정기관으로서의 영(令)이 서겠는가. 독립성을 강조하는 감사원이 이 문제에선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여권 주류도 최 원장 퇴진에 핏대를 세우더니 이런 문제엔 꽁무니를 빼는 것 아닌가.

감사 지연은 직무유기다. 감사 대상의 증거인멸 시간을 줄 수도 있다. 감사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문제 없다면 조속한 감사를 통해 의혹이 빨리 풀리기를 바랄 것이다. 감사원은 특별히 까다로울 것도 없는 이 비위의혹 감사를 무슨 영문으로 꾸물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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