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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시각] 키오스크와 '실버' 소비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9.15 14:00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


오래된 얘기지만 필자가 결혼 초기에 요리를 할 때면, 친정 어머니께 요리법을 여쭤보느라 늘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요리 초보들이 요리할 때 핸드폰부터 뒤진다. 그리고 요리하는 내내 핸드폰을 붙들고 한다. 요리 뿐만이 아니다. 의식주 등 생활의 모든 것에서 자녀 출산과 양육에 이르기까지 집안 어른들께 여쭤보기 보다는 핸드폰부터 뒤진다. 과거에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수 있는 존재였다. 자녀 세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이 자녀에게 존경과 권위의 대상이 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핸드폰 안에 모든 게 있기 때문에, 자식 세대에게 부모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론 잔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부모 세대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안좋은 것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인터넷과 각종 앱, 비대면 무인기기 등이 일상 생활 속에 도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세대인 실버 소비자들은 이런 것들의 사용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다. 모바일 뱅킹을 하거나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또는 배달앱을 비롯한 각종 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 이런 걸 역소비자사회화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화가 ‘한 개인이 속한 사회의 언어, 규범, 가치관 등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듯이 소비자사회화란 시장에서 소비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소비와 관련된 기술, 지식, 태도를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소비자사회화란 자녀 세대로부터 부모 세대가 소비자역할 수행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무인주문기 또는 무인단말기라고도 하는 키오스크는 코로나 19로 대면접촉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과 맞물려 급속하게 도입되고 있다. 주로 교통시설, 대형마트, 은행, 극장,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한 외식업체들에 설치되고 있는데 공급자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줄이는 이점이 있기도 하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전자상거래나 키오스크를 통한 거래 경험이 있는 65세 이상 고령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경험 있는 고령소비자는 조사대상자의 59.7%인 반면 키오스크 경험 있는 고령소비자는 81.7%로 나타났다. 그리고 난이도는 전자상거래는 65.3점 키오스크는 75.5점으로, 전자상거래보다는 키오스크가 경험도 더 많고 더 수월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자상거래가 이용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반면, 키오스크는 향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난이도가 90점대 이상이 되어야 이용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키오스크 이용시 불편한 점으로는(중복 응답) ‘복잡한 단계’가 51.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려움’이 51.0%, ‘뒷사람 눈치가 보임’이 49.0%, ‘그림이나 글씨가 잘 안보임’이 44.1%의 순서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키오스크 이용경험이 없는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 10명을 대상으로 버스터미널, 패스트푸드점, 은행의 키오스크를 이용해 보게 한 결과, 조사 대상 중 70세 이상 소비자들 5명은 주문을 끝마치지 못했다. 특히 용어나 조작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으며 영문 이름의 메뉴명 분류를 이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시간지연, 주문실패 등에 심리적 부담감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도와주는 전담 직원이나 직원 호출 버튼이 대형마트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았다.

백세 시대를 살고 있는 실버 소비자들에게는 그동안에 쌓아왔던 지식과 경험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반면 빠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큰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 사용법을 잘 모르게 되면 발권이나 주문 등의 서비스 이용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으며 온라인 쇼핑, 온라인 뱅킹, 각종 앱 등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것은 서비스 이용으로 인한 유리함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에서는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상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로 오프라인 매장들이 철수하고 있다.

따라서 실버 소비자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장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실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기업들은 소비자복지적 관점에서 그리고 실버소비자의 구매력을 소비로 활성화시킨다는 차원에서 소비자교육 시행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실버 소비자들이 새로운 기기나 시스템에 익숙해질 때까지 도움을 주는 전담 직원이나 직원 호출 버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버 소비자들도 친숙하지 않은 것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해 마음의 문을 크게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거지도 QR 코드를 들고 다닌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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