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하반기 공채가 한창이다. 이맘때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매년 되풀이 되는 모습이지만 특히 올해는 활기 넘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기업의 어려움이 채용시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탓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국내 500대 기업의 하반기 신규채용계획을 조사했더니 4곳중 3곳은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1명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채용 계획이 있는 곳도 작년보다 줄이거나 비슷하다는 기업이 대부분(77.4%)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취준생들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늘구멍이 아니라 나노구멍이라는 푸념이 과장되게 들리지 않는다.
취업문을 두드리며 실패만 거듭하다 자포자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8월 구직 단념자는 68만2000명으로 지난 6년사이 가장 많았는데 절반이 넘는 숫자가 20~30대였다. 30대만 헤아려도 11만명에 달했다. 한 취업정보업체가 신입 구직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5명중 4명이 "취업을 영영 못하는거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드러냈다고 했다. 취업문을 숱하게 두드리다 지쳐 아예 취업 의지를 꺾는 젊은이가 허다하다는 뜻이니 가슴이 먹먹하다.
공황이 닥쳐도 일자리만 있으면 두려울게 없다고 했다. 일자리는 생계를 유지하기위한 소득 창출의 원천이라는 의미만 갖는게 아니다. 자아 실현과 자긍심,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확인시켜주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신선한 사고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꿈을 펼쳐볼 변변한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계절을 넘긴 꽃처럼 시들어 버리지 않게 하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최우선적으로 풀어내야할 중요하고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통해 5년동안 19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이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기존 사업을 재포장한 ‘올드딜’이라고 무조건 폄하할 일이 아니다. 겉치레 단기 일자리만 늘려 성과를 부풀리고 허황된 사업에 아까운 국민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국민경제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중추는 다름 아닌 기업이다. 정부가 없는 일자리도 만들겠다며 한국판 뉴딜사업까지 벌이는 판에 정작 일자리의 보고를 무력화시킨다면 말이 안된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마음 놓고 활개치며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기업하기 좋은 경영환경을 만드는 일에 지혜를 짜내야 한다. 얼마전 국회로 넘어간 ‘공정경제 3법’ 개정안을 놓고 독소조항이 가득하다며 걱정하는 기업인이 많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입법과정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신중하고 진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채용시장에서 대기업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기업수에서 99%를 차지하며 일자리의 88%를 감당하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벤처기업의 역할이 더욱 주목되고 있다. 그렇다고 창업만 늘리는게 능사가 아니다. 새로 탄생한 기업이 중견 및 대기업으로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리 창업이 늘어난들 헛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건강한 산업생태계 조성을 통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활력이 넘친다면 대기업과 공공부문 일자리에 대한 과도한 쏠림도 달라질게 분명하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딛고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들의 노력은 가상하다. 명망 있는 기업일수록 채용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게 마련이다. 이런 지위를 남용하여 전형과정에서 과도한 서류와 과제물을 요구하는 행태는 야비한 갑질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번의 공채 전형이지만 취준생들은 숱하게 많은 지원서를 내고 쓰라림을 맛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불어 초조하게 전형결과를 기다리며 기약없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는 지원자들의 입장을 헤아려 불합격 사실도 통보해주는 작은 친절도 당부하고 싶다.
취준생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회적 관심과 따뜻한 배려가 절실한 때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