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시각] 단원 김홍도, 공정을 말하다

에너지경제 ekn@ekn.kr 2020.10.13 15: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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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미래커뮤니케이션 대표


얼마 전 조선시대 최고의 풍속화가인 김홍도의 작품이 새로 공개되었다.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서울옥션이 구입 환수해 경매에 내놓으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작품 제목은 ‘공원춘효도’다. 공원(貢院)은 과거장, 춘효(春曉)는 봄날 새벽, 즉 봄날 새벽의 과거장 그림이란 뜻이다. 단원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은 그림 위쪽에 ‘공원춘효(貢院春曉) 만의전(萬蟻戰)’이라 썼다. 봄날 새벽 과거장에서 만 마리 개미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의미다.

68년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온 이 작품은 경매를 통해 단원의 고향인 안산시가 4억9000만 원에 낙찰 받아 소장하게 되었다. 안산시에는 ‘사슴과 동자’ ‘화조도’ ‘임수간운도’ ‘대관령’ ‘신광사 가는 길’ ‘여동빈도’ ‘공원춘효도’, 이렇게 모두 7점의 단원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다. 단원의 아들 김양기와 강세황 심사정 최북 허필 작품 등 단원시가 소장한 23점의 고미술 진품을 시민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원춘효도’는 단원이 풍속화가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30대 작품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세로 71.5cm, 가로 37.5cm의 비단에 채색한 그림으로, 과거장의 모습이 대기원근법으로 성대하고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대기원근법(大氣遠近法)은 선(線)이 아닌 공기층이나 빛의 변화로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완성한 서양화 기법이다.

단원의 풍속화는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모습이 잘 포착되어, 보면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이 그림도 조선 후기 19세기 과거시험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만 마리의 개미가 전쟁을 벌인다는 표현대로, 시험 부정이 공공연하게 저질러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수험생 하나에 다섯 명의 보좌들이 들러붙어 대놓고 부정시험을 치른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감독하는 사람도 없다.

과거시험장에 먼저 들어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종들이 수험생으로 위장하고 아귀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정약용은 ‘경세유표’에 ‘어깨에 대나무창을 메고, 손에 쇠몽둥이와 짚자리.평상을 들고 있다. 노한 눈깔이 겉으로 불거지고 주먹을 어지럽게 옆으로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면서...’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이 그림에도 우산과 말뚝, 쇠몽둥이, 평상, 짚자리, 책가방을 들고 들어온 종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여도 집안이나 학벌, 문벌이 없으면 과거 합격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중앙의 고관 자제들에게는 으레 벼슬을 주었고, 자신의 파벌에 속한 자식들을 합격시켰다. 시골 선비가 산 넘고 물 건너 서울에 와서 과거시험장에 들어서면, 서울의 양반 자제들이 좋은 자리 다 차지하고 앉아 있다. 시험지 바꿔치기, 시험관 매수하기, 대리 시험 등 입이 떡 벌어지는 부정행위가 벌어진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적과(賊科)라 부르며 한탄했지만 소용없었다.

홍경래는 1798년 과거에 낙방하자 자신이 평안도 출신이라 차별을 받았다고 여겼다. 분을 삼키며 풍수가 되어 전국을 떠돌며 병서(兵書)와 술서(術書)를 익혔고, 정감록을 탐독했다. 서자 출신으로 병서와 경서에 밝은 풍수 출신 우군칙을 만나 마침내 봉기를 도모하게 되었다. 오랜 준비 끝에 순조 11년, 1811년 12월 항쟁에 나섰다. 정주성 싸움에서 홍경래가 관군의 총에 맞아 죽고, 2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참수되면서 난이 막을 내렸다. 홍경래가 죽고 나서도 10년이 지나도록 아직 홍경래가 살아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민중들 분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경래의 분노가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서, 공정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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