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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꼬리자르기' 결론에 반성·사과는 없이 책임회피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10.21 18:28

구동본(에너지환경부장 / 부국장)


문재인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의 결과는 실망스럽다. 간단히 말하면 정치적 판단에 ‘꼬리 자르기’ 처분이다. 감사원은 감사결과 발표를 통해 월성1호기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저평가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폐쇄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감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관련자 처분을 보면 ‘솜방망이’에 그쳤다. 이 조차 힘 있는 기관과 현직 인사는 대부분 빠져나갔다. 그나마 전직 인사와 실무 공무원 만 책임지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공무원은 감사원의 관련 감사가 시작되자 관련 문서 444건을 삭제한 것도 확인됐다. 명백한 ‘감사 방해’이자 ‘공문서 폐기’다. 형사법적 책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이번 감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이렇게 심한 감사 저항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감사 결과를 아무리 보수적으로 봐도 감사원의 이런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다. 한수원이 월성 1호기 폐쇄의 근거로 경제성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뚜렷한 근거 없이 생산 전력 가격, 발전 이용률 등을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월성1호기 조기폐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성을 의도적으로 낮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변수 조작을 통한 수치 왜곡 혐의다. 감사원은 그걸 ‘불합리한 저평가’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과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게만 지웠다. 백 당시 장관의 경우 공직 진출을 제한할 수 있는 인사자료 활용 통보로 책임을 물었다. 정 사장엔 주의 조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끝났다. 백 당시 장관은 이미 공직에서 물러나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정 사장은 내년 4월이면 임기를 마친다. 백 당시 장관과 정 사장이 문책을 요구받은 것은 월성 1호기 경제성 저평가 과정에 직·간접으로 개입했다는 감사원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이 두 사람은 왜 그리 했는가. 감사 결과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의 당시 관련 움직임은 청와대로부터 "월성 1호기 언제 영구 정지되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 마디가 단초가 됐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의문은 청와대 참모와 산업부에 조기 영구 정지 왜 늦어지느냐는 대통령의 질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청와대 행정관에게 지시한 내용으로 뒷받침된다. 채 당시 비서관은 해당 행정관에게 "산업부로부터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확정 보고서를 받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산업부 과장은 백 당시 장관에게 보고한 뒤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수정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그런 기류라면 산업부, 한수원으로선 월성1 호기 조기 폐쇄의 근거를 만들어야 하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 당시 장관조차 대통령 의문 한 마디를 전달받고 행동에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채 당시 비서관을 포함 청와대가 월성 1호기 경제성 분석에 직접적으로 간여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언제 영구 정지되냐"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는 채 당시 비서관, 산업부, 백 당시 장관, 정재훈 사장으로 이어지며 눈덩이 굴리기가 돼 경제성 저평가의 나비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감사 결과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또 월성 1호기 폐쇄는 경제성 외에 안전성, 주민 수용성 등을 종합 고려해 결정했다는 정부측 주장을 인용해 폐쇄의 타당성 여부 판단을 유보했다.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폐쇄 당시 경제성을 폐쇄 결정의 핵심근거로 삼은 것과 달랐다. 특히 문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산업부 그 어느 곳도 반성이나 사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는 "따로 언급할 게 없다"고 했다. 산업부도 감사발표 당일 발표한 5쪽 분량의 관련 입장문 및 참고자료 어디에도 ‘사과’나 ‘반성’의 말은 없었다. 오히려 감사과정에서 적극행정 면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감사 재심청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유감" 표현은 단지 문서 삭제 관련 뿐이다.

산업부는 이 입장문 및 참고자료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공약과 국정과제로 채택된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산업부가 한수원 등의 요청으로 경제성 분석 과정에 참여 또는 의견교환한 게 전부라고 밝혔다.

이번 감사는 감사원이 스스로 나선 직권 감사가 아니다. 국회가 감사를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그것도 무려 1년 넘게 질질 끌었다. 감사시한도 무려 8개월 가량 넘겼다. 감사 결론을 내기 위해 무려 9차례 감사위원회를 열었다. 이런 진통 끝에 나온 감사 결과 치고는 너무 미흡하고 아쉽다. 감사 보고서 곳곳에서 정권의 개입 흔적이 엿보이는데도 변명만 무성하고 반성이나 사과 관련해선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다. 경제성 저평가, 문서 삭제 등의 책임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문서 삭제는 조직적 감사방해 혐의가 짙다. 정권의 대응이 ‘눈가리고 아웅’, ‘희생양 삼기’로 가는 모양새다. 정권이 진정 원내 절대 다수 의석을 믿고 오만과 독재로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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