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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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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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지하 975m의 장성탄광에 들어가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0.07.28 13:49

- 송창범 기자의 탄광 체험기


적어도 하루 광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3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하루는 된 듯 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3시간이 채 안됐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탄가루에 뜨거운 열기, 어둠,
그리고...
급속한 체력 저하가
기자를 밖으로 밖으로 내몰았다.

 

 

지금도 기자의 수첩과 카메라에는 검은 흔적이 남아있다. 그 수첩과 카메라를 다시 사용할 때면 아직도 손이 까매진다. 그리고 기자의 귀와 입에선 한동안 검은가루가 나왔다. 딱 하루, 아니 겨우 세시간 정도 머물렀을 뿐이었다.

‘쾅!쾅!’ 비좁은 막장에서 나와 주 갱도인 해발 -375m 지점을 걸어갈 때다. 갑자기 지하 975m 지점에서 때 아닌 천둥소리와 함께 갱도가 약간 흔들린다. 그리곤 석탄가루가 머리위로 쏟아졌다. 깜짝 놀란 기자에게 안내를 맡은 금천생산부 전상국 부장이 다가와 설명을 한다. 방금 보고 내려온 -300 ~ -375m 지점에서 화약을 장약하고 발파를 한 것이란다. “아까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기자가 와서 좀 늦게 발파를 한 것뿐입니다” 작업 중인 광부들에게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미안해진다.

하루는 있었던 것 같은 시간, 그러나 시계를 보니 이곳에 들어온지 세시간이 채 안됐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탄가루에 뜨거운 열기, 어둠, 그리고 체력이 기자를 밖으로 내몰았다.

세시간 만에 해를 볼 수 있었다. 욕탕에 들어가 검은 얼굴을 보니, ‘황재형 화백’이 머리를 스친다. 붓 대신 삽을 들어 광부를 체험한 그. 그래서 그는 광부화가, 탄광촌화가로도 불린다. 황재형 화백이 왜 유명한지도 직접 체험으로 알게해 줬다.

세시간의 체험. 아니 체험을 하고 싶었지만 견학처럼 되어버린 세시간. 이들 광부 앞에선 이같은 체험기사를 쓴다는 자체도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황’‘재’‘형’‘화’‘백’을 글에 한자씩 담아 펜을 들어본다.

지천이 관류하는 그곳. 바로 국내 최대 광업소,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장성탄광)다.

지난 16일 오전 아홉시 ‘갑’반 광부들과 함께 갱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하루 전인 15일 이미 태백에 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8시부터 움직였던 것. 기자와 함께한 장성광업소 안상광 과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매일 매일 하는 일이 배정됩니다. 즉 갱내에 들어가기 전인 아침에 작업할 지역을 각 과장들이 정해 주는 것이지요”

이곳 광부는 약 1000명. 2교대로 오전 아홉시에서 오후 네시가 ‘갑’반, 오후 네시에서 새벽 한시가 ‘을’반이다. 개개인 생산량에 따라 월급봉투가 달라진다고 한다. 여덟시간에 한명의 광부가 캐는 최고 생산량은 8~8.5톤. 이렇게 해서 올해 57만톤을 캐내게 된다고 한다.

한발 늦은 것이다. 결국 금천생산부 전상국 부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갱하기로 했다. “금천지역이 그나마 다른 지역에 비해 좀 괜찮을 것입니다” 이때만 해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장성탄광은 문곡, 장성, 철암, 금천 등 총 4개의 생산부로 구분해 작업을 진행 중인데 그중 기자는 200여명이 일하고 있는 금천생산 지역으로 입갱을 하게 된 것이다.

가 날릴 것이란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의 탄가루가 날릴 것이라곤 전혀 생각을 못했다.

“팬티까지 모두 벗어야 됩니다” 탈의실로 들어가는 기자에게 전상국 부장이 말을 던지며 장성광업소에서 준비한 작업복과 속옥까지 내민다. 옷을 입고 나니 광부가 된 기분이다. 이제 탄광에서 기자를 지켜줄 장비를 챙겨준다. 분진마스크를 목에 걸고, 안전모를 쓰고, 안전등을 달았다.

장성탄광 입구다. 해발 600m에서 시작이다. 머리위 안전등을 켜고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갱도(터널)를 따라 680m 지점에 가자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등장했다. “제1수갱입니다. 이걸 타고 해발 -300m까지 내려갈 겁니다. 어지러울 수 있으니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전상국 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착했다. 수직으로 900m를 무려 2분30초 만에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진짜다. 주 작업장이 -375m에서 -425m 지점이다. 여기서부턴 일명 ‘밧데리카’로 불리는 ‘인차’를 타고 가야한다. 2km를 달려 인차가 선 곳은 암흑천지, 안전등의 불빛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불빛에는 엄천난 양의 탄가루만 보인다. 벌써부터 덥다. 숨이막힌다. 카메라에 습기도 찼다. 38도의 내리막 경사를 가리키며 “이제 걸어서 갑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한사람이 겨우 내려갈 비좁은 갱도. 분진마스크를 쓰니 몸이 파르르 떨렸다.

님뻘 같은 광부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 같은 분들이 시커먼 탄가루를 마시며 우리의 자원을 캐고 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광부들의 평균연령은 48세였다.

38도의 비좁은 경사를 내려가는데 너무 긴장해서 일까. 다리근육이 뭉치는 느낌이다. ‘올라갈땐 어떡하지’라는 걱정부터 든다. “막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상부 Cross 갱도와 하부 Cross 갱도 사이는 75m. 이 사이 15m 마다 탄을 캐는 막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75m 사이엔 총 5개의 막장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안전등에만 의존해 내려가는 기자에겐 이미 어떠한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침내 5개 막장 중 한곳을 선택, 평지에 들어섰다. 숨도 돌릴새 없이 이번엔 뜨거운 열기가 기자를 지치게 만들더니, 이어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만들 정도의 굉음과 함께 한치 앞도 보기 힘든 탄가루가 시야까지 어둡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자는 벌써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광부들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고 있는 기자에게 전상국 부장이 주머니에서 온도계를 꺼내 보여준다.

29도다. “현재 막장의 온도입니다. 냉풍기(Air Cooling)를 갱내로 넣어 그나마 온도가 떨어진 것이지요. 냉풍기가 없던 시절엔 34도의 뜨거운 환경에서 작업을 해왔답니다” ‘숨 쉬는 것도 일’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막장에서 시커먼 땀방울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광부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이곳은 갱구로부터 3350m 떨어진 곳이며, 수직으로 -360m 지점이다.

가 났다. 일반광산의 현대화에 비해 석탄광은 너무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왔다갔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기자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제 위로 올라갈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38도의 비좁은 경사 갱도를 따라 내려간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갱도는 더더욱 좁아진다. 마침내 하부 Cross 갱도가 나타났다. 해발 -375m 지점이다. 그곳엔 철로가 놓여 있고 -300m 지점에서 봤던 ‘밧데리카’도 보인다. “여기는 75m 사이 5개 막장에서 캐낸 석탄들을 모아 제2수갱으로 운반하는 곳입니다” 인차가 아닌 석탄운반차였다. “제1수갱은 광부들과 작업에 필요한 물품들을 실어주는 것이지만 2수갱은 석탄만 지상으로 옮기는 엘리베이터입니다” 그래서 제2수갱의 속도는 더욱 빠르다고 한다. 1초에 13.5m를 올라간다고 하니 1수갱에 비해 약 2배는 빠른 것이다. 1번에 34톤을 실어올리는 2수갱은 이렇게 하루 90회를 운행, 총 2300톤을 지상으로 올린다고 한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기자를 본 전상국 부장이 이제 올라갈 차비를 하는 것 같다. “조금만 가면 밧데리카가 나옵니다” 다행이다.

그런데 ‘쾅!쾅!’ 갑자기 지하 975m 지점에서 때 아닌 천둥소리와 함께 갱도가 약간 흔들린다. 그리곤 석탄가루가 머리위로 쏟아졌다. 깜짝 놀란 기자에게 전상국 부장이 다가와 설명을 한다. 방금 보고 내려온 -360m 지점에서 화약을 장약하고 발파를 한 것이란다. “아까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기자가 와서 좀 늦게 발파를 한 것뿐 입니다” 작업 중인 광부들에게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미안해진다.

점 만점이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그들이 진정한 일꾼이며, 산업전사란 표현을 왜 쓰는지 알았다. 광부의 ‘검정’땀방울이 ‘녹색’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약 30도나 되는 경사에서 밧데리카에 몸을 실은 기자는 이제야 긴장이 풀렸다. -300m 지점에서 제1수갱을 타고 올라가는데, 광부들이 땀을 흘리며 함께 탔다. 함께 있는 2분간 그들의 모습에 반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멋있게 느껴진 것이다.

이제 해발 600m에 도착, 갱구로 향한다. 빛이 보인다. 그런데 시원하다 못해 춥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7월 중순 가장 더운 날씨다. 탄광 안이 얼마나 더운지를 알 수 있었다.

한 번 들어가면 여덟시간 동안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지 못한 채 석탄을 캐는 멋있는 광부, 그들의 모습이 대한민국 자원에 한 줄기 빛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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