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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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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그 곳은 보석보다 더 빛났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2.10.10 10:41

르포/현장을 가다-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입구는 시원했다. 좀 더 내려가니 습했다. 땀방울이 하나둘씩 송이송이 맺혔다. 케이지(갱내 엘리베이터)을 타고 900m를 더 내려갔다. 맺혔던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려내려 범벅이 돼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광부는 묵묵히 하루 8시간을 일했다. 광부와 연탄은 공통점이 많다. 자신의 열정을 다 태우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닮았다. 겉은 새까맣지만 속은 백옥 같다는 것도 닮았다.

 


지난달 말 석탄공사(사장 김현태) 유승철 홍보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현태 사장이 김순경 사업본부장과 지난 5일 안전결의대회를 한다며 현장취재 동행을 제안하는 내용의 전화였다. 이날 김 사장은 지난 2월 장성광업소 금천생산부 -375ML에서 총 8명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안전 선언문’을 채택·공표할 계획이었다. 추석연휴 다음날인 4일에 출발한다 했다.

에너지 기자생활을 하면서 평소 탄광촌 안을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가득했기 때문에 만족감은 두 말할 나위 없었다.  4일 아침 짐을 꾸리고 의정부로 향했다. 같은 에너지업계 전문지 기자와 동행했다. 태백에 도착한 4일 밤부터 이틀간 기자의 머릿속에 각인된 탄광촌 풍경과 매일 8시간 동안 어두컴컴한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삶을 취재해봤다.


▶ 어둡게 조명되고 있는 탄광
처음 기자를 반긴 이는 장성광업소 박영화 서무과장 이었다. 한우는 태백한우가 최고라며 태백 자랑이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서무과장은 태백 토박이다. 술이 한잔 들어가다 보니 각자의 속 깊은 얘기가 나왔다. 그 중 유 실장의 취중진담은 의미심장했다.  유 실장은 “최근 모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연예인 갱생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촬영을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음주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 뺑소니 사고를 내고 자숙하고 있는 연예인 등을 모아놓고 탄광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이들을 연예계로 복귀하자는 그런 취지의 내용이었다”며 “솔직히 탄광촌이 그런 식으로 조명 받는 게 싫다. 탄광촌은 일터이기 전에 일종의 성지에 가깝다. 비록 석탄자원의 가치가 예전에 비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광부들이 평소 흘리는 땀의 가치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사회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단 몇 시간 탄광을 체험해, 지난 과오를 씻어내려는 것으로 치부하기엔(탄광은) 그 숭고함이 크다. 또 이런 식의 취지라면 매스컴에서 비춰지는 갱은 열악하고 힘든 곳으로 잘 못 오인돼 비춰질 수 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기자는 유 실장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때까진 단 한 번도 탄광 안을 가본 적이 없어서 피부로 와 닿지 않았기 때문. 오히려 비록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 일지라도 그들이 광부들과 분진가루 마셔가며 갱에서 일 하는 것이 비춰지면 그만큼 광업소의 홍보효과가 클 것이라 기자는 생각했다. 갱에 들어가기 전까진 말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석탄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광산체험에 들어갔다. 처음 간 곳은 제 2 수갱이었다. 눈에 띈 것은 수갱철탑. 보기보다 꽤 높았다. 수갱부 조재석 과장에 따르면 지상에 보이는 철탑의 높이는 60m가 넘는다고 했다. 번지점프대를 설치해도 손색없을 만큼 높은 위상을 뽐내는 철탑이었다. 제 2 수갱은 1985년 준공됐다. 444억 원을 투입해 제1수갱을 310m 연장하고, 970m의 제2수갱을 신규로 건설한 것. 장성광업소는 0ML 하부 개발이 가능해졌으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광업소의 위용을 갖추게 됐다. 1985년은 석탄 생산의 전성기였다. 그만큼 석탄 수요자들은 많았다. 1988년 장성광업소는 석탄 최대생산을 기록했다. 잘나가던 석탄사업이 하향세로 접어들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석유가스와 도시가스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석탄수요가 현격이 줄어들었기 때문. 현재 2수갱은 하루 약 2000톤 이상의 석탄을 생산하고 있다.


▶ 安全第一 生産第二(안전제일 생산제이)
조 과장의 설명 덕택에 수갱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이 잡힐 무렵, 김현태 사장이 장성광업소에 도착했다. 김 사장은 광업소 내 몇몇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근무여건의 불가피한 열악함을 지적하며 공사 방침대로 ‘안전제일, 생산제이’의 구호를 강조했다. 점심식사를 마치자 드디어 갱 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왔다. 유 실장은 광업소 탈의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바구니 안에는 작업복과 분진마스크, 안전등 달린 안전모, 양말, 심지어 속옷까지 있었다.  “속옷까지 싹 벗어야 해요” 유 실장은 말했다. 이유는 분진가루 등 먼지 등이 날리는 바람에 속옷까지 버릴 수 있어서다. 평소 광부들은 속옷까지 모두 벗은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아침식사를 한 뒤 작업장으로 향한다.

이채로웠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규칙에 따라야했다. 이런 규칙이 만들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 공사 측에서 마련한 안전관련 홍보영상을 보고 드디어 제 1수갱부에 입갱했다. 입구는 선선했다. 동굴 같았다. 여름에 여기서 살면 좋겠단 생각을 할 만큼 청량한 시원함이 있었다.  바닥은 미끄러웠다. 이 때문에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 3km 정도 걸었다. 다행히 심순희 안전외주팀장의 갱 내 관련한 친절한 설명덕택에 적적하진 않았다. 심 팀장은 1수갱은 해발고도가 600m인 태백지역에서 300m를 더 내려 가야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1000m 막장은 기본인 샘이다.  장성광업소에는 지하 900m까지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케이지(일종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39명의 인원을 태울 수 있다. 케이지는 빨랐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말이다. 단 2분 30초만에 900m를 내려왔다.

심 팀장은 “1수갱은 초당 7m, 2수갱은 초당 13.5m 속도로 내려간다”고 했다. 1수갱이 간담이 서늘할 정도면 2수갱은 사람이 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  심 팀장은 기자 마음을 읽었는지 “2수갱은 석탄을 끌어올리는 데만 사용한다”고 했다. 또 한참을 걸었다. 경사가 꽤 있어 보이는 곳까지 왔다. 그리고 수송용 축전차 일명 ‘밧데리카’라 불리는 차를 타고 더 내려갔다. 내려올수록 더워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습도 차이겠거니 생각 했는데 이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 있었다. 심 팀장은 작업장 안 온도가 28도라 했다. 기자가 느낀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공사는 1~2년 전 쯤 차가운 공기를 작업장에 공급하기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독일에서 에어쿨링(Air-cooling)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기계를 통해 낮출 수 있는 온도는 고작 4~5도 정도. 광산보안법상 탄광 내 기온은 섭씨 35도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래서 그런지 덥고 습하긴 했어도 섭씨 평균 35~40도인 건식사우나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한참을 내려간 결과 드디어 작업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탄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비록 담배를 하루에 한 갑 피우지만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는(?) 기자는 탄가루가 날리자마자 바로 분진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광부들은 탄가루가 날려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더운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그들은 마스크를 벗고 일하는 게 습관이 된 듯 말없이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장성광업소 광부들은 2교대로 일한다. 오전에 투입되는 갑방이 8시간 동안 일을 하고 나오는 5시쯤 을방이 다시 투입되는 방식이다. 그들이 생산하는 석탄 량은 한 사람 당 8~9톤 정도. 한 해 약 50~60만톤의 석탄을 캐고 있다.  그 곳에서 공사는 김 사장 주도하에 안전결의대회를 했다. 그 때 기자는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덥고 답답해 한 순간 멍한 상태가 돼버렸다.

▶1kg당 500원짜리 보석
기자는 내려온 시간을 제외하면 이 현장에서 약 20~30분 정도 있었다. 그런데도 숨이 막힐 정도면 하루 8시간 일하는 광부들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기진맥진해 별 표현이 생각나지 않던 당시 현장에서도 광부들을 보며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다. 왜 유 실장이 광부들의 땀의 가치와, 숭고함을 태백한우식당에서 언급했는지, 사고 친 연예인들을 왜 이곳에 데려오길 꺼려했는지 광산에 들어 가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장체험과 안전결의대회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 밧데리카를 탔을 때, 유 실장은 기자에게 약 1㎏ 무게의 석탄을 건넸다. 안전등에 비추니 반짝반짝 빛났다. 이 석탄을 정성껏 가다듬으면 크리스털 같은 보석도 될 수 있어 보였다. 석탄의 가치는 그런 것 같다. 기자는 알고 있다. 아니 깨달았다.

비록 지금은 헐값에 팔리고 있지만 먼 훗날 광부들의 땀과 노력이 수십억, 아니 그 이상의 천문학적인 액수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것을. 사실이라기 보단 그랬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광부들의 연봉은 일반 공사 직원들 연봉의 평균 80%수준이다.  내려간 길을 따라 한참을 다시 올라오자 드디어 햇빛이 보였다. 선물 받은 석탄을 번쩍 들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유 실장은 이런 말을 했다. “10월부터 연탄을 배달해요. 힘들지만 뜻 깊어요. 장당 약 500원 하는 연탄 300장이면 올 겨울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이웃들이 많아요. 연탄이라는 게 그래요. 500원짜리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거지요. 최 기자가 말한 보석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요.”

강원도 태백=최형호 기자 rhyma0580@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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