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자동차 기업은 물론 배터리 기업들까지 로봇 산업으로의 사업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로봇 시장은 뚜렷한 승자가 없는 만큼,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자동차 기업을 비롯한 주요 제조 기업들이 잇따라 로봇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26에서 피지컬 AI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하고,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전격 공개하며 로봇 사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아틀라스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피지컬 AI 기반 로봇으로, 사람처럼 보행하고 관절을 활용해 생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기존 공장 설비와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를 미국 사업장에 우선 투입한 뒤,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사업장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피지컬 AI 시대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아틀라스 공개 당시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최고경영자(CEO)는 '아틀라스의 상용화 시점이 경쟁사보다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시장에서 후발주자라는 평가는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플레이터 CEO는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미 고객에게 수천 대의 로봇을 판매하며 매출과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며 “후발주자가 아니라 오히려 상용화 단계의 애플리케이션 관점에서는 앞서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전기차 캐즘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 힘을 싣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1분기 중 3세대 '옵티머스'를 공개할 예정이다. 옵티머스는 테슬라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3세대 모델은 대규모 양산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첫 양산형 모델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옵티머스가 공장 내 작업은 물론 가정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지능형 이족 보행 로봇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 기업들이 로봇 산업으로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와 함께 로봇 시장의 높은 성장성이 꼽힌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지난해 29억2000만달러(약 4조2300억원)에서 연평균 39.2% 성장해 2030년에는 152억6000만달러(약 22조1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캐즘 장기화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 또한 성장 동력을 재정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로봇용 배터리 사업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로봇용 배터리는 일반 전기차 배터리보다 높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요구된다. 로봇은 제한된 공간에서 장시간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만큼 에너지 밀도뿐 아니라 순간 출력, 반복 충·방전 내구성, 안전성, 경량화 성능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배터리 기업들은 이러한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기술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미래 시장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하이니켈 니켈·코발트·망간(NCM) 기반 원통형 배터리가 유력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하이니켈 NCM 원통형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기업으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가 꼽힌다. CATL, 비야디(BYD) 등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은 리튬·인산·철(LFP)을 주력 제품으로 생산해 온 만큼, 원통형 배터리에서의 하이니켈 구현에는 기술적 부담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비롯해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 '스팟2'에도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SDI는 지난해 현대차·기아와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해 인터배터리 전시에서는 삼성SDI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한 현대차·기아의 서비스 로봇 '달이(DAL-e)'를 선보이기도 했다. SK온 역시 물류·산업용 로봇 등 기업간거래(B2B) 영역을 중심으로 배터리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SK온은 현대위아 물류 로봇과 주차 로봇 등에 삼원계 배터리를 공급 중이다. 이처럼 업계에서는 로봇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기술력 확보와 조기 레퍼런스 구축을 통한 시장 선점 여부가 향후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전기차 캐즘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로봇 산업이 실질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로봇 시장은 아직 표준과 지배적 사업자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기술 경쟁력이 향후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며 “로봇은 가격대가 높은 고부가 산업으로, 상용화가 본격화될 경우 기업 수익성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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