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 지능(AI) 기술의 급진전과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항공우주 산업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하지만 눈부신 기술의 발전 속도를 기존의 낡은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이른바 '규제 지체' 현상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규범적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8일 오후 1시 30분, 법무법인 율촌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파르나스 타워 39층 렉처 홀에서 항공우주정책·법학회 2026 춘계 학술대회를 공동 주최했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AI 시대, 항공우주 법적 현안과 정책 과제'였다. 현장에는 학계와 법조계, 산업계 및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치열한 연구 끝에 도출된 정책적 대안을 나누며 다가올 미래를 논의했다. ◇“AI 시대일수록 방향 제시하는 법학·인문학 통찰 절실해" 이근영 한국항공우주정책·법학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1988년 창립 이래 대한민국의 항공우주 정책 개발과 법적 문제 연구를 통해 관련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해 온 우리 학회가 앞으로도 든든한 연구 플랫폼이 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단상에 오른 손금주 율촌 방산우주항공전략센터장(변호사)은 “우리는 지금 AI가 항공과 우주라는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환기에 서 있으며, 피지컬 AI(Physical AI)가 곧 우리 곁에 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기술의 진보가 법의 공백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제도적인 개혁을 이끄는 시발점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부연했다. 황창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부원장 역시 축사에서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항공기와 위성 발사체 설계·제작·운영 등 전 과정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현재의 기술이 됐다"며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합리적인 법과 정책의 뒷받침 없이는 산업으로 꽃피울 수 없으며, 반대로 현장의 기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는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기술과 제도의 동반 성장을 역설했다. 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전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정책대학원장·교수)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학문의 역할을 강하게 주문했다. 황 원장은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은 과거의 방식이 아닌 창의성 있게 함께 지혜를 모아 소통하며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AI 시대가 도래하고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때 법이 질서를 부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므로,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한 학문은 인문학과 법학"이라며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법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철학적 통찰을 남겼다. ◇복잡해지는 AI 항공기 사고…피해자 증명 부담의 거대한 벽을 깨라 '항공 교통 체계의 법적 안정성과 안전 관리 거버넌스'를 주제로 진행된 제1 세션의 서막이자 이번 행사의 서두는 서인원 한국항공대 항공우주정책대학원 교수가 장식했다. 서 교수는 '제조물 책임법상 증명 부담의 완화 가능성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를 주제로 고도화된 항공기와 AI 소프트웨어 결함 시 피해자가 겪는 입증의 한계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서 교수는 조종사의 과실·기체 결함·부적절한 구조물 등 여러 사고 차단 방벽들의 틈새가 일렬로 겹칠 때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는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 시각 자료를 띄우며, 지난 2024년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를 거론했다. 해당 사고의 일부 유족들은 기체 제조사인 보잉을 상대로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지적한 그는 “소송 대리인은 실체적 측면뿐만 아니라 소송 진행이라는 절차적 측면에서도 미국 내 제소가 유가족들에게 훨씬 유리하다고 언급했다"며 사법학자로서 피해자들의 증명 부담을 합리적으로 완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서 교수는 통상적인 제조물 소송에서 피해자인 원고가 직면하는 거대한 장벽으로 세 가지를 꼽으며 심층 분석을 이어갔다. 첫째는 핵심 증거와 기술이 제조사에 집중된 '증거 편재' 현상이다. 그는 “현대형 소송의 증거는 물리·법률적으로 제조사에 편제돼 있다"며 “백신 관련 증거가 제약사의 영업 비밀인 것처럼 항공기 제조물 또한 완성품·부품·원재료 제조자 등 다수가 복잡하게 개입돼 있어 증거 편재 문제가 배가된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이를 규명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의 문제다. 서 교수는 “증명을 위한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다면 원고 승소 판결은 요원하다"며 승강기를 해체하고 분석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홍콩의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 판례를 방증으로 제시했다. 셋째는 물리적·내용적 접근성의 한계다. 흉부에 이식된 심장박동기 사례처럼 생명 유지와 직결된 제조물은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며 한 분야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다른 분야에는 일반인에 불과해 내용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AI가 항공기에 본격 탑재되는 'AX(AI Transformation)' 시대에는 이 증명 부담의 벽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AI 소프트웨어가 단독으로 확대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증거 편재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대용량의 변경·훼손이 쉬운 전자 문서를 다루는 '디지털 포렌식' 과정이 큰 시간과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AI의 자율성, 예측 불가능성, 설명 불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본질 때문에 개발자조차 결함과 오작동에 대한 규명이 훨씬 어려워져 내용적 접근성이 극도로 심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서 교수는 양 당사자가 소송 전 자료를 상호 의무적으로 생성·제출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 도입을 제안하면서도 “비례성과 비용 부담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가장 핵심적인 해법으로 그는 미국 판례법의 '기능 이상 이론(Malfunction Theory)' 취지를 살려 우리 제조물 책임법을 해석·개정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서 교수는 “우리 제조물 책임법 제3조의 2가 미국의 기능 이상 이론을 계수했기 때문에 이 취지를 그대로 살리면 된다"며 “비정상적 사용이 부재한 사실과 합리적 2차 요인이 부재한 사실이 증명되면 확대 손해를 발생시킬 결함을 내재한 제조물로 법률 판단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법관이 요구하는 증명도 역시 “영미법계(커먼로)처럼 '과반의 개연성(balance of probability)'을 취해 현실 세계에서 피해자의 땀과 노력으로 직접 할 수 있는 최선의 증명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서 교수는 유럽항공안전청(EASA)이 마련한 조력형-조화형-자유형 등 항공 AI 3단계 로드맵 시각 자료를 띄우며 정책적 제언을 던졌다. 그는 “사람인 조종사의 권한이 인공지능으로 양도되는 것에 비례해 조종사의 과실 책임이 항공 인공지능의 '제조물 책임'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법률적 함의에 주목해야 한다"며 국토교통부가 준비 중인 한국형 AI 로드맵에도 이러한 민사 책임의 전환 논의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지훈 공군 항공안전단 전문관은 '도심항공교통(UAM) 운영에 따른 공군 영향 분석 및 안전 확보 방안'을 다뤘다. 박 전문관은 성남 비행장(제15특수임무비행단) 인근에 설정된 잠실-수서 UAM 실증 노선을 지도로 보여주며 군 공역 침범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UAM 실증 및 초기 비행은 회전익 항공기의 시계 비행(VFR)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성남 비행장은 VIP들이 이용하는 공항이자 기지 남북으로 육군 회전익 항공기 다수가 비행하고, 상공으로 항공로가 통과해 항공기 운항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V자 형태인 활주로와 UAM 실증 노선이 수평 거리 480~800m, 수직 300~600m 수준으로 인접하게 된다. 통상 회전익 항공기는 불규칙한 비행을 하므로 기상이나 장비에 따라 상하좌우로 이동 시 수송기 등 기존 항공기와 서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우려된다는 게 그의 평가다. 박 전문관은 “우리나라 공역은 굉장히 협소한데 밀도가 높고, 분단 국가라 민간이 쓸 수 있는 공역이 적다"며 “국내 공역 상황을 반영해 UAM 기체에 자동 종속 감시 시설(ADS-B) 등 장비를 의무화해 관제 시설에서 식별 가능하도록 조화로운 비행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석대 한국공항공사 변호사는 'UAM 운용 체계상 신규 사업의 국내법적 구현 한계'를 조목조목 짚었다. 강 변호사는 도심 항공교통법은 UAM 산업 진흥·운영 체계 도입 정리를 위한 과도기적 성격이 아주 강하다며 두 가지 구체적인 입법적 불비를 꼬집었다. 그는 정부의 'K-UAM 운용개념서 1.5'에 비도심 공공 관광형 모델이 있는데, 정작 현재 도심 항공교통법에는 '관광 비행' 모델이 적용 규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현행 법령은 버티포트(이착륙장)를 지정할 때 도심항공교통회랑을 동반적으로 같이 지정하도록 돼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운영 개념 1.0을 아예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지금의 1.5 모델의 유연성을 소화할 수 없는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강 변호사는 “본격 상용화 시점인 1.5 모델은 국가 공역 시스템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을 선명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국내 항공 4법 중심으로 통합적 UAM 규범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심우주 탐사·상업 위성 폭증…낡은 우주법·조달 체계 뜯어고쳐야 제2 세션에서는 '민간 우주 비즈니스의 걸림돌과 해법'을 주제로 우주 산업 생태계 전반의 정책적 한계와 개선 방안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주 활동 영역의 확장과 국가의 관리 감독'을 주제로 강단에 올랐다. 이 연구원은 다누리호의 성공과 향후 화성 착륙선 추진 등 우주 활동의 영역이 지구 궤도를 넘어 심우주로 뻗어나가는 현실과 민간 상업용 위성의 폭발적인 증가로 지구 궤도가 유례없는 혼잡 상태에 이르렀음을 데이터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외기권 조약에 따라 우주 활동이 국가 활동이 됐건 정부 활동이 됐건 민간 활동이 됐건, 일어나는 책임은 국가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고 전제했다. 이 연구원은 “지구 궤도상에 있는 우주 물체의 개수가 엄청나게 급증하고 있으며, 통제 불가한 상태가 돼 '지구 궤도는 이미 실패했다'는 이야기마저 듣고 있다"며 “이제는 무분별한 활동으로 달이나 다른 천체가 오염될 것을 미리 막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달 표면 기지 건설 등 심우주 활동 시 타국 활동 방해 금지나 우주 환경 오염 회피 등 복합적인 요소를 국가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요컨대 우리 민간 기업이 달에 기지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국가는 관리 감독 책임이 있으니 그냥 하라고 할 수 없어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서 허가를 해줘야 한다"며 “여태까지 우주 물체가 어디에 있다는 단순한 정보만을 '등록' 받던 개념을 넘어 이제는 '허가'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김권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안보·상업 융합 우주 비즈니스의 법·정책적 과제'를 심층 분석하며 산업계의 체증을 풀어냈다. 김 연구위원은 막대한 상업적 가치를 지닌 민간 우주 자산이 국가 안보 역량과 직결되는 융합 시대를 맞았지만 한국의 경직된 국방 조달 체계가 그 시너지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방위사업법은 획득 체계가 진짜 '물품'을 사다가 쓰는 것으로 표현이 돼 있다"며 “예를 들어 우리가 민간 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국방에서 쓴다고 했을 때, 이 '서비스'를 국방에서 계약으로 취득할 수 있느냐 하면 현재 법문상으로는 어려워 보인다"고 꼬집었다. 물리적 무기체계 확보를 중심으로 설계된 현행법으로는 민간의 발사 '서비스'나 데이터 '이용'을 계약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국가가 물건을 직접 소유했을 때는 절차가 엄청 복잡해진다. 그럴 바에는 일정한 서비스를 외부 민간 기업에 맡겨서 쓰고, 국가는 원하는 효과만 얻으면 될 수 있도록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달 개념의 확장을 주문했다. 나아가 그는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한 인허가의 복잡성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위원은 “발사체 한 번 쏘려고 할 때 우주개발진흥법 제11조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개별 부처를 일일이 다 찾아가 서류를 각각 제출하는 것은 민간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에 맞지 않으므로, 규제 해소보다는 '합리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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