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가 개발 착수 10년 7개월 만에 체계개발을 마쳤다. KF-21은 총 6대의 시제기로 1600여 회의 고난도 개발 비행 시험을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마쳤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전투기 개발 성과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자국산 4.5세대 이상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국가가 됐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 'KF-21/IF-X 체계 개발 종결 기념식'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국방부와 공군 등 주요 정부 부처와 개발 참여 기관·기업, 공동 개발국인 인도네시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양산 1호기는 오는 9월 공군에 처음으로 인도될 예정이고 연말까지 8대를 순차적으로 전력화 할 계획이다. KF-21은 노후 전투기 F-4와 F-5 를 계열 전투기를 대체하고 공군의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진된 한국형 전투기다. 엔진 두 개를 단 4.5세대급 쌍발 전투기이고 최고 속도는 마하 1.81, 항속거리는 약 2900㎞이다. 기체에는 능동전자주사식 위상 배열(AESA, 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Radar) 레이더가 들어간다. AESA 레이더는 '전투기의 눈' 역할을 한다. 적외선 탐색·추적장비인 IRST와 통합 전자전 체계 등의 장비도 갖췄다. KF-21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15년 12월 체계 개발에 착수한 뒤 2021년 4월 시제 1호기가 처음 공개됐다. 2022년 7월에는 첫 비행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초음속 비행에 들어갔다. 이후 각종 비행 성능과 안전성 시험을 차례로 진행했다. 특히, KF-21은 국내 개발 전투기로는 처음으로 공중 급유 시험이 도입됐다. 공중급유는 비행 중인 급유기로부터 연료를 공급받는 방식으로 체공 시간과 작전 범위를 늘리는 기반이 된다. 시험에는 총 6대의 시제기가 투입됐고 42개월 동안 1600여회 비행 시험을 사고 없이 마쳤다. 레이더와 임무 컴퓨터, 미사일이 제대로 연동되는지를 검증하는 공대공 무장 시험도 통과했다. 군이 요구한 기본 성능과 공대공 능력도 모두 충족했다. 방사청은 국방 규격을 제정하며 최종 전투용 적합 판정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KF-21 개발 성공의 가장 큰 의미는 공중전력 운용의 주도권을 넓혔다는 데 있다.한국 공군은 그동안 해외에서 도입한 전투기를 주력으로 운용해왔다. 외국산 전투기의 경우 새로운 무장이나 장비를 붙이려면 제작국과 협의해야 한다. 이에 따른 추가 비용과 시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설계와 체계통합을 주도한 KF-21은 국내 작전 환경과 공군의 요구를 성능 개량에 반영할 수 있다. 노후 기종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공중 전력의 발전 방향에 대한 한국의 선택권을 넓혔다. 기술적으로도 기체 설계·제작, 지상·비행 시험 뿐 아니라 정비·부품 공급을 위한 군수 지원 체계, 조종사·정비사를 양성하는 훈련 체계도 함께 개발했다. KAI는 이를 통해 개발부터 생산·운용·정비·교육·훈련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역량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확보한 기술은 앞으로 공대지· 공대함 무장을 추가하고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를 개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KF-21과 무인기가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유·무인 복합 체계(MUM-T, Manned-Unmanned Teaming)와 인공 지능(AI) 기반 차세대 전투체계 개발에도 밑바탕이 된다. 산업적 파급 효과도 적지 않다. 전투기는 통상 도입한 뒤 수십 년간 운용된다. KAI에 따르면 KF-21 개발에는 국내 500여 개 협력사가 참여했다. 이들 업체는 기체 구조물·복합 소재, 레이더·항공전자, 엔진 부품·정비 장비 등을 공급한다. 전투기 한 대 생산에 여러 분야의 기업이 연결돼 있는 셈이다. 전투기는 통상 30년 이상 운용되므로 대규모 양산과 실전 배치는 막대한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창출로 이어져 중소 협력 업체들에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전망이다. 앞으로 남은 핵심 과제는 안정적인 양산과 공군 전력화, 공대지·공대함 능력 확대, 해외 수출이다. 우선 방위사업청과 KAI는 2028년까지 공대공 임무 중심의 초기 양산형인 블록(Block)-I 40대를 공군에 인도할 계획이다. 다만 기체 인도가 곧바로 실전 투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조종사 전환 교육과 정비 인력 양성, 예비 부품과 무장 확보, 부대 운용 시험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후 블록-II에서는 지상과 해상의 표적을 공격하는 능력을 추가해 완전한 다목적 전투기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나아가 KAI는 장기적으로는 기체 내부에 무장을 탑재하는 완전 스텔스화와 AI 연계 공중전투체계와 유·무인 복합체계 등으로 차세대 공중전투체계로 진화해 나간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글로벌 수출 시장 개척도 본격화된다. 공동 개발국인 인도네시아는 장기간 분담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했다. 이후 양국은 당초 약 1조6000억원으로 책정됐던 인도네시아 측 분담금을 6000억원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합의를 조정하며 불확실성을 털어냈다. 인도네시아 외에도 현재 필리핀·말레이시아·아랍에미리트(UAE) 등도 유력한 잠재 수출 대상국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진정한 '수출 대박'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바로 미국의 국제 무기 거래 규정(ITAR, International Traffic in Arms Regulations)이다. KF-21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엔진을 탑재하고 있어 제3국 수출 시 미 국무부의 엄격한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허락 없이는 온전한 수출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에 정부는 이러한 규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향후 14년간 총 3조3500억 원을 투입해 첨단 터보팬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규모 수출을 뒷받칠할 금융 지원도 중요하다. 전투기 수십 대를 구매하려면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대규모 방산 수출은 수입국에 장기 저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한국수출입은행은 관련 법에 따라 단일 국가에 대한 신용 공여 한도가 '자기 자본의 40%'로 제한돼 있다. 이를 우회하기 위해 국책 은행 외부에 10조 원 이상의 '전략수출금융기금'을 별도로 조성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논의 중이다. KAI는 한국이 KF-21을 통해 세계 여덟 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이자 독자 양산체제를 갖춘 국가로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같은 품질의 양산기를 제때 생산하고 공군이 높은 가동률로 운용하며, 공대지·공대함 능력과 국산 무장을 통합해 해외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KF-21 사업은 개발 성공을 넘어설 수 있다. KF-21은 체계 개발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도전에는 새로운 문장이 시작됐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배한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