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 최고가격제로 정유사 공급가 상한선이 4주 넘게 유지됐는데도 휘발유에 이어 경유도 평균 판매가격이 리터(ℓ)당 2000원선을 넘어섰다. 정부의 고유가 억제 정책에 따라 이전 정유사 공급가 인상분이 시차를 두고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이지만 갈수록 유가 상방 압력이 더해지면서 정유사와 주유소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경유 ℓ당 판매 가격 2000원선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작용하고 있지만, 주유소 운영과 유통 비용을 고려하면 영세 주유소일수록 ℓ당 100원 정도의 이익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유사들도 손실 보전 기준부터 갈수록 불어날 규모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지 같은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26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4일 전국 평균 경유 판매가격은 ℓ당 2000원선을 돌파한 뒤 이날 오전 10시 기준 2001.65원으로 집계됐다. 2000원선을 상회하 건 2022년 5월 말~7월 말 이후 약 4년 만이다. 휘발유 가격은 지난 18일 이미 2000원선을 넘어선 뒤 이날 2007.71원으로 상승세를 유지 중이다. 1차 시행 전후로 낮아지던 판매가는 2차 시행일 직전인 25~26일부터 상승세를 유지했다. 보통휘발유는 지난달 24일 1818.92원, 차량 경유는 지난달 25일 1815.24원으로 바닥을 친 뒤 꾸준히 올랐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2차 기간 정유사 공급가 상한선을 올린 영향이 주유소 판매 가격에 점진적으로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9일까지인 2차 최고가격제의 정유사 공급가 상한선은 △보통 휘발유 ℓ당 1934원 △자동차 경유 1923원 △실내등유 1530원 등으로 첫 시행 기간(3월 13~26일)보다 각각 210원씩 올랐다. 휘발유와 경유 유류세는 인하율을 7%에서 15%, 10%에서 25%로 확대 적용했다. 현재로서는 최고가격제가 미-이란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을 방어하는 효과가 더 주목받고 있다. KDI가 지난 22일 낸 자료에 따르면, 1차 최고가격제가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4~0.8%포인트(p) 낮추는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3월 4주차를 기준으로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휘발유와 자동차용 경유 평균 가격이 각각 2279원과 2732원으로 실제보다 460원, 916원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4월부터 본격 반영될 유류세 인하의 효과는 대략 0.2%p로 예측됐다. 그러나 기름값이 슬금슬금 오르는 추세가 지속되면서 물가 안정 효과를 희석시킬 수 있는 지적이 나온다. 3차 최고가격제가 종료된 지난 23일 보통휘발유와 자동차용 경유의 전국 평균 가격은 1차 최고가격제 종료일인 지난달 26일보다 각각 ℓ당 186.41원(10.2%), 184.04원(10.1%) 올랐다. 두 제품 모두 2000원선을 넘은 만큼 물가에 미칠 영향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미-이란 종전에 대한 기대감도 오락가락하는 만큼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지난 22일(현지 시간) 파키스탄에서 예정됐던 미국과 이란 간 2차 협상이 무산된 데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공격하거나 나포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석유 수급 불안감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여서다. 이 같은 불안은 국제 석유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싱가포르 석유 시장 기준 휘발유(92RON)는 지난달 23일 157.22달러, 경유(황 0.001%)는 이달 2일 292.8달러로 고점을 찍은 뒤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 기준 국제유가도 지난 17일 배럴당 90달러선을 밑돌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25일 105.33달러로 마감했다. 정유사 공급가 상한선을 둔 데 따른 손실을 보전하는 문제도 상방 압력을 가중시키는 변수다. 최근 추가경졍예산으로 정유사 지원과 나프타 수급안정 등의 목적을 묶어 5조원 수준을 잡았다. 하지만 보전해주게 될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3차 때부터 가격 상한선을 국제가격 변동에 연동해 결정한다는 기준이 깨지면서 정책의 원칙이 흔들리고, 4차 최고가격 동결도 싱가포르 석유시장 가격이 낮아진 점을 근거로 사실상의 인상 효과라는 정부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손실 산정 기준도 아직 안 나와 정유사들은 여전히 손실을 감내하고 공급가 상한선에 맞춰 제품을 공급하는 부담을 이어가고 있다. 중동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원유 조달과 석유제품 출고 시점 차이에 따른 재무제표상 재고 이익이 잡히지만, 수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데다 미국산 같이 원거리 운송이 필요한 원유도 더 많이 도입하면서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유사 공급가를 제한하는 최고가격제 구조에서는 자영 주유소들이 정유사 직영 주유소보다 더 높은 판매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고, 영세 주유소들이 큰 저장고를 보유한 대형업체들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가격이 10원이라도 더 싼 주유소를 찾아 나서는 경향 때문에 안정적인 유통구조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