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정유업계가 고유가 환경 속 가파른 실적 개선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웃지 못하고 있다. 장기화된 국제 정세 불확실성과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등 여파로 경영 피로도가 누적된 가운데, 수십조원대 담합 의혹을 둘러 싼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까지 본격화하면서다. 1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올 3분기 연결기준 영업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11조6313억원과 영업이익 1조1768억원으로 제시됐다. 각각 전년 동기보다 38.2%·413.4% 증가한 수치다. 시장에선 에쓰오일 뿐만 아니라 SK이노베이션(정유 부문)과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등 정유 4사의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5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조원에 조금 못미쳤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수익성이 불과 1년 새 2~3배 가량 개선되는 셈이다. 배럴당 3~5달러선을 보였던 복합정제마진이 올 들어 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달러 이상 강세를 지속하고 있는 영향이다. 다만 정작 정유업계 내부에서는 이 같은 호실적을 마냥 반기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최고가격제와 수출 물량 제한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내수부문 손실이 구조적으로 누적되는 가운데, 수출 여력 역시 한계에 다다르며 우호적인 글로벌 시장 여건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내수부문에서 발생한 손실 일부를 보전해준다지만, 보전 주체인 정부가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과 국내 통제 가격간 차액이 아닌 '원가' 기준 보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실제 보전규모 전망치는 당초 업계 추산을 크게 밑도는 형국이다. 지난해 기준 휘발유는 8월, 경유는 9월(2040만9000배럴)에 당해 최대 수출물량을 기록한 뒤 감소세를 보였던 만큼, 업계의 수출 상한선은 올 4분기 들어 직전 분기 허용치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지난 3월께 정부가 시행한 수출제한 조치에 따라 전년 동월의 100% 밑으로만 휘발유·등유·경유 등 석유제품을 수출할 수 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선 최고가격제의 단계적 완화 및 수출제한 탄력화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최근 석유제품 가격 담합 의혹을 둘러싼 공정위 압박까지 거세지면서 이 같은 방안을 요구할 동력도 상실되는 모양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일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의 44조1000억원 규모(매출) 석유제품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고 본격적인 심의 절차에 착수했다. 이에 따른 과징금 규모는 부과기준율(3.0%~10.4%)에 따라 최대 4조6000억원 규모로 거론된다. 앞서 지난 7월에는 검찰이 국내 정유 4사와 일부 임직원을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기며 간접적인 영향을 포함한 업계의 담합 규모를 26조원 수준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담합 의혹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른바 '기름값 짬짜미'라는 꼬리표가 붙어 업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곤두박질 치고 있다"며 “지난 상반기에 이어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번 분기 실적 발표가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정유 4사 대표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증인 채택으로 최근 업계에 대한 압박이 정치권까지 확산하는 가운데, 업계는 일단 '전쟁을 틈타 불법행위로 폭리를 취했다'는 오명을 해소하는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특히 공정위 심의 대상에 오른 SK에너지는 지난 8일 “향후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 사실 관계와 당사 입장을 성실하고 투명하게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석유시장 가격체계 투명성 및 거래관행 개선 △공정거래 및 내부통제 체계 강화 △석유 유통고객과의 상생협력 강화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위한 역할 지속 등을 골자로 한 쇄신안을 마련해 추진에 나섰다. 마찬가지로 심의 대상에 있는 HD오일뱅크의 경우, 공정위 판단을 전면 반박하며 심의 절차에서 적극 소명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교환된 모든 정보는 이미 시장에 공개됐거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 가능한 사후 정보로, 회사의 가격 및 판매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며 “특히 공정위가 미국·이란 전쟁 이후 입금가를 담합했다고 판단한 부분은 경쟁사 관계자의 일방적 진술에 기초한 것일 뿐, 담합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 절차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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