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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발 퍼붓겠다”더니…트럼프, ‘호르무즈 봉쇄’ 이란에 3차 공습 [이슈+]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다시 격화하면서 지난달 체결된 종전 양해각서(MOU)가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이란이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미국이 대(對)이란 추가 공습을 단행하자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다시 최고조로 치닫는 모습이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해군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해상 안전을 위협하기 위해 선박의 항해 시스템을 끈 선박 1척을 공격해 운항을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여러 선박이 승인되지 않은 항로를 이용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 했으며, 승인된 항로로 이동하라는 경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을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그리고 미국의 개입이 종료될 때까지 봉쇄하겠다며 모든 선박의 통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혁명수비대는 “이란에 대한 어떠한 공격 행위도 강력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필요할 경우 중동 지역의 새로운 적 기지들도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선언 직후 이란에 대한 이번 주 세 번째 공습을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중동 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성명을 통해 “11일 오후 7시 15분(미 동부시간) 이란에 대한 세 번째 공습을 시작했다"며 이번 작전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키프로스 국적 컨테이너선 'MV GFS 갤럭시'를 공격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번 공격으로 민간인 선원 1명이 실종됐고 선내 화재와 기관실이 크게 파손돼 해당 선박이 더 이상 항해를 이어갈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란은 이전 상선 공격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이후에도 MOU를 준수할 기회를 다시 부여받았지만 또다시 이를 저버렸다"며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자유롭게 통항하는 민간 선원과 상선을 공격할 수 있는 이란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켜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공습이 군 통수권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란이 매우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이제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현지 매체들은 남부 해안 여러 지역에서 폭발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선언과 미국의 추가 공습으로 전쟁 종식을 위한 후속 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한층 불투명해졌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양측 모두 대화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시사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강경 발언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란은 후속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최근 체결된 합의의 핵심 약속을 먼저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휴전 없이도 협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거부했다. 여기에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11일 오만을 방문해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논의했다. 다만 미국 측 고위급 협상 대표는 회담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에서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 관리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은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의 모든 항로가 선박 운항에 개방돼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해협을 통과하는 민간 선박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0일 이란이 자신에 대한 암살 위협을 실행에 옮길 경우 “1000발의 미사일을 퍼붓겠다"고 경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달 종전 MOU 체결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충돌을 이어왔다. 미국은 지난 8일에도 이틀간 이란 남부를 공습했으며, 이란은 이에 대응해 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한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한편, 그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부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대한 복수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엑스를 통해 “이 보복은 반드시 이행돼야 하는 우리의 확실하고도 부인할 수 없는 의무"라고 밝혔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칠곡군, 폐기 참외의 대변신…친환경 가죽으로 재탄생

상품성 떨어진 참외 부산물 활용해 친환경 식물성 가죽 개발…농업·환경·산업 융합 성과 비건 인증 획득·크라우드펀딩 흥행까지…자동차 내장재 등 미래 소재시장 진출 본격화 농업 폐기물의 고부가가치화 모델 제시…순환경제·농가소득 확대 기대 칠곡=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버려질 운명이던 참외가 친환경 산업의 새로운 원료로 거듭났다.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되던 참외 부산물이 식물성 친환경 가죽(비건 가죽)으로 재탄생하면서 농업과 환경, 소재산업을 잇는 새로운 순환경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경북 칠곡군은 국내 최초로 참외 부산물을 활용한 식물성 친환경 가죽 개발과 상품화에 성공했다고 12일 밝혔다. 그동안 선인장과 사과 부산물을 활용한 비건 가죽은 상용화된 사례가 있었지만, 참외 부산물을 활용한 친환경 가죽 개발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이번 성과는 단순한 신소재 개발을 넘어 농업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산업자원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버려지는 농산물을 줄여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대표적인 자원순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사업의 출발점은 지난 2024년 장마철이었다. 당시 집중호우로 상품성이 떨어진 참외 일부가 낙동강으로 유실되면서 환경문제가 제기됐고, 가격 안정을 위해 수매한 물량 가운데 상당량도 활용되지 못한 채 폐기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칠곡군농업기술센터는 농민들이 정성껏 재배한 참외를 단순 폐기하는 대신 산업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같은 해 관련 아이디어를 공모사업에 제안했지만 선정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연구 초기에는 참외를 통째로 건조해 가죽을 제작하는 실험을 진행했지만 높은 수분과 당분 때문에 원단의 강도와 내구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수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참외 속은 축산 사료로 활용하고, 껍질만 건조·분말화해 식물성 원단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연구 방향을 전환했다. 이후 수십 차례의 실험과 공정 개선을 거쳐 내구성과 활용성을 갖춘 참외 가죽 원단 개발에 성공했다. 칠곡군은 2024년 10월 친환경 식물성 소재 전문기업과 공동 연구를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 참외 가죽 원단 생산에 성공했다. 이어 친환경 패션브랜드 ㈜할리케이와 협업해 가방과 카드지갑, 명함지갑, 펜케이스 등 다양한 시제품을 제작하며 본격적인 상품화 단계에 들어갔다. 기술 경쟁력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올해 1월에는 국내 비건표준인증원의 비건 제품 인증을 획득했으며, 원단 내 참외 함유율도 초기 4%에서 7%, 현재는 10%까지 끌어올렸다. 군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참외 함유율을 22%까지 높이는 연구도 지속할 계획이다. 최근 친환경 소비와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물성 소재를 활용한 비건 제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업계는 물론 자동차와 생활용품 산업에서도 동물성 가죽을 대체할 친환경 소재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는 가운데 참외 가죽 역시 차세대 바이오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칠곡군이 SNS를 통해 참외 가죽 제품을 소개한 게시물은 조회수 100만 회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모았고, 지역 공방 '참예담'이 제작한 제품은 북삼농협 하나로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 협업 제품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목표 금액을 조기에 달성하며 상품성과 소비자 수요를 동시에 입증했다. 칠곡군은 앞으로 제품군을 더욱 다양화해 패션 소품을 넘어 자동차 내장재와 생활용품, 친환경 산업 소재 등으로 활용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지역 농업과 소재산업을 연계한 신산업 육성을 통해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외 가죽에는 지역의 상징성도 담았다. 아이보리 색상은 참외 속살, 노란색은 참외 열매, 초록색은 참외 잎, 검은색은 참외가 자라는 땅을 의미하도록 디자인해 지역 농산물의 정체성을 제품에 녹여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상품성이 떨어진 농산물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하면 미래 산업의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민관 협력을 통해 농업 부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친환경 산업과 연계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손중모 기자 jmson220@ekn.kr

코스피 7000 지켜낼까…CPI·금통위·TSMC 실적 ‘3중 관문’[주간증시]

지난주(6~10일) 코스피는 삼성전자 2분기 잠정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급락과 반등을 오가며 마감했다. 이번 주(13~17일)는 미국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주요 반도체 기업의 2분기 실적 등이 몰리며 지수 방향성을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주 국내 증시는 극심한 변동성에 시달렸다. 코스피 시장에서 사이드카 세 차례, 서킷 브레이커가 한 차례 발동했다. 둘 다 시장이 과열됐을 경우 발동되는 시장 안정 조치다. 삼성전자가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7일(-4.91%)에는 매도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가 차례로 발동했다. 8일(-5.35%)에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했다. 9일 장중 한때 지난 6월 10일 이후 최저점인 7063.76까지 밀렸다. 10일(+2.52%)에는 지수가 반등하면서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하며 7475.94로 마감했다. 한 주간 코스피는 7.57% 하락했다. 삼성전자 2분기 잠정 실적 발표 이후 반도체 고점론이 부각되면서 변동성이 커졌다. 삼성전자 2분기 실적은 역대 최고치였다. 매출 171조원,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달성했다. 최근 3년간 삼성전자 합산 영업이익(82조8700억원)보다 한 분기 만에 번 돈이 더 많았다. 엔비디아 1분기 영업이익(81조8555억원)도 넘어섰다. 하지만 시장에선 반도체 사이클의 정점이 지났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투매가 쏟아졌다.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 하이퍼스케일러 설비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쏠림 등이 겹치며 하락 폭은 더 컸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실적 발표에서 숫자가 주는 의미보다는 투자 심리 측면에서 매도 물량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반도체 고점론을 실적 부진보다 실적 피크에 대한 우려로 보고 있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재 쟁점은 '반도체 싸다'가 아닌 현재 주당순이익(EPS)이 과거처럼 짧은 사이클 고점의 실적인지, AI 인프라 병목에 기반한 긴 시계열의 실적인지 여부"라고 짚었다. 이번 주 국내 증시는 극단적인 저평가 매력과 굵직한 이벤트가 팽팽히 맞서는 구간에 진입한다. NH투자증권은 이번 주 코스피 예상 밴드를 6900~7900포인트로 제시했다. 지난주 급락에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2배 수준으로 떨어지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저점(6.27배)을 밑돌았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선행 PER 7배 이하 구간에서는 악재보다 호재에 민감해지는 시장이 될 것"이라며 코스피 7000선을 주요 지지선으로 제시했다. 이번 주는 실적 발표 기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14일 미국에서 JP모건,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주요 금융사가 실적을 발표한다. 반도체 섹터에서는 ASML(15일)을 시작으로 TSMC와 시게이트(16일) 등 핵심 기업 실적이 연이어 공개된다. 이들 실적과 가이던스 상향 여부는 AI 반도체 업황의 방향성을 가늠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실적 증가율의 피크아웃 여부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매물 소화를 위한 박스권 등락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주가의 추세적인 재상승을 위해서는 이익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AI 수요 지속 및 빅테크의 자본지출(CAPEX) 확대를 뒷받침하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반도체 지분율이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향후 외국인이 리밸런싱으로 조절할 물량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인은 국내 반도체 증익 사이클마다 차익 실현과 비중 조절을 위해 국내 반도체주 순매도로 대응해왔다. 지난 2017년과 2020년, 2026년 상반기가 대표적이다. 다만 올해는 과거 사례와 달리 반도체 업종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49%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3년 48.7%를 기록한 뒤 최저점이다. 나정환 연구원은 “앞으로 순매도가 더 이어질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리밸런싱으로 조절할 잔여 물량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아졌다"며 “이 경우 향후 실적 확인 국면에서 외국인이 순매수로 전환한다면 수급 개선의 여지는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14일 미국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15일 생산자물가지수(PPI) 발표도 증시 방향을 결정지을 변수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6월 헤드라인 CPI가 전년대비 3.92%로 5월(4.2%)보다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과 6월 ISM 제조업·서비스업 가격지수의 동반 하락을 고려하면 인플레이션 둔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물가지표에서 둔화 흐름이 확인되어야 연준의 긴축 경계감이 한풀 꺾일 수 있다"며 “시장 예상에 부합할 경우 인플레이션 경계감은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6일 열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한은 총재가 인상 필요성을 직접 시사한 만큼 시장은 이미 기준금리 인상(2.50%→2.75%)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다만 반도체 호조 이면에 고용·내수 부진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88%에 달하는 가계부채 부담이 있어 큰 폭의 추가 인상 신호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과 자체보다 향후 인상 속도에 대한 총재의 코멘트가 증시 방향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시장에서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가운데 함께 발표될 경제전망 수정에서 성장률과 물가 전망치가 상향 조정될 경우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은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태현 기자 cth@ekn.kr

민주당 전대 ‘2부 리그’도 계파 싸움…‘친명·친청’ 세 대결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의 8·17 전당대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당권 주자에 이어 '2부 리그'인 최고위원 경선 출마자들도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당 대표 주자인 김민석 전 국무총리 쪽을 지원하는 친명계(친이재명계) 의원들과 정청래 전 대표를 지지하는 친청계(친정청래계) 의원의 세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8·17 전당대회에서 5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한다. 현재 당내에서는 자천타천으로 10여 명이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민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전당대회에 나오느냐'는 질문에 “그동안 권유를 많이 받았고 고심을 해왔는데 이제는 결심을 했다. 출마를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한 의원은 친청계 핵심 인사로 꼽힌다. 그는 출마 배경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의 성공, 2028년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길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라며 “제가 지도부가 된다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친청계에서는 최민희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 의원은 최고위원 출마 여부에 대해 “고민 중"이라며 “곧 결정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역 최고위원인 문정복 의원과 이성윤 의원의 재도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특히 이성윤 의원은 최근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감기약 성분' 해명을 연일 문제 삼는 등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친청계의 선봉에 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 대표 선거를 둘러싼 친명·친청 경쟁이 최고위원 선거로까지 확산되면서 계파 간 신경전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친명계의 최고위원 출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친명계 여성 주자인 서미화 의원은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했다. 장애인 인권운동가 출신인 서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어떤 국민도 어떤 당원도 소외되지 않는 대체 불가 모두의 민주당이라는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건태 의원도 최고위원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친명계인 이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 변호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 의원은 “자기 정치 욕심으로 이재명 정부와 엇박자를 낸 지도부 교체는 당원들의 요구이자 이번 전당대회의 시대정신"이라며 “당·정·청 간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포용과 실력으로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키는 사람이 되겠다"며 “국정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강력하게 쟁취하는 최전방 공격수가 돼 대한민국의 위대한 도약에 한 몸 바치겠다"고 강조했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최고위원 출사표를 던졌다. 성남시의원과 경기도 대변인을 지낸 김 전 부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김 전 부원장은 출마 선언에서 “이재명 정부의 눈부신 혁신 속도를 당의 입법 지원이 제때 뒷받침하지 못해 당원들과 국민들의 답답함이 커지고 있다"며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박성준 의원 등도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반면 공식적으로 계파색을 드러내기보다 '통합'을 앞세우는 후보들도 있다. 박선원 의원과 김영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가 대거 몰린 배경으로 치열해진 당대표 경쟁을 꼽는다. 당 대표 후보와 최고위원 후보들이 사실상 '러닝메이트'처럼 함께 선거운동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당 대표 경쟁이 최고위원 선거로까지 확산됐다는 분석이다. 한편 후보 등록은 오는 17일까지다. 민주당은 20일 예비경선을 통해 23일 본경선에 진출할 후보 8명을 가린다. 최고위원 예비경선은 당 중앙위원 투표로 진행된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르포] 홈플러스, 눈물의 고별전…직원·입점상인 ‘각자도생’ 길로

대형마트가 가장 붐비는 토요일 오후. 기자가 찾은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에서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매대는 거의 텅 비어 있었지만 손님은 수 백명이 붐볐다. 홈플러스가 '재고 떨이'에 나선 상품을 싼 값에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매대에는 '무조건 3천원' 또는 '50% 할인' 표지가 붙어 있었고 손님들은 쓸만한 물건을 카트에 담느라 분주했다. 선택할 수 있는 물품은 제한적이었다. 2층 식품매장(메가푸드마켓)은 매대의 90% 이상이 비어 있었고 3층 생활용품·의류 매대도 30% 이상 비었다. 그러나 계산대는 거의 전 라인이 가동됐고, 계산대 앞에는 계산을 하려는 손님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2층에 있는 안경점도 '점포정리 끝장세일' 표지를 내걸어 안경을 사려는 손님들로 붐볐고, 바로 옆 홈플러스 고객서비스센터도 환불 등을 위해 방문한 손님들로 꽉 찼다. 같은 시각 서울 영등포구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널찍한 신선식품 코너에는 3000~5000원짜리 의류 매대가 줄지어 놓였고 손님들은 옷, 슬리퍼, 침구류, 캠핑용품 등을 카트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일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받았으나 오는 20일까지 운영자금 조달계획을 마련해 즉시항고할 수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 본사 건물에 있는 강서점은 물론 서울시내 점포 직원과 입점점주들은 이미 파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강서점의 한 판매직원은 “(홈플러스 강서점은) 다음주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는다"고 말했고, 영등포점의 한 입점점포 점주도 “(홈플러스 영등포점은) 오는 15일까지만 운영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이미 대형마트로서의 생명을 다한 상태다. 청소·시설관리 등 외주업체는 회생절차 폐지 결정 후 계약이 해지돼 판매직원들이 청소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본사도 홍보실 등 주요 인력이 공백 상태다. 홈플러스 점포 수는 기업회생 신청 직전월인 지난해 2월 서울 15개, 전국 108개에서 7월 현재 서울 11개, 전국 64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본사 직원은 약 2만명에서 1만2000여명으로 줄었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대형마트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워진 상태다. 홈플러스 본사 직원들의 6월분 급여는 체불돼 있고 7월 1일부터는 퇴사자의 퇴직금 지급도 1개월 유예됐다. 다만 홈플러스 노조는 여전히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는 오는 15일 서울 광화문 MBK 본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청와대까지 가두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사실상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대주주인 MBK나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모두 홈플러스를 회생시키려는 의지는 없어보인다. MBK와 메리츠측은 지난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이 마련한 긴급 간담회에서 여당의 압박에도 긴급운영자금 투입에 대한 양보안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홈플러스 직원들에게 1인당 최대 2100만원씩 체불임금 대지급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조치로, 특별히 홈플러스를 위한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홈플러스 노동자보다 더 외면받고 있는 피해자들은 입점점주들이다. 11일 현재 강서점과 영등포점에는 일부 외식점포를 제외하면 80~90% 가량의 입점점포들이 운영을 계속하고 있지만, 경기 북수원점 등 지방 점포들은 이미 상당수 입점점포들이 인근 다른 상가로 빠져나갔다. 문제는 이들이 홈플러스에 입주했을 때 납부했던 '점포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점포 보증금은 식음료·리빙 업종 입점업체들이 향후 임대계약 종료시 매장설비의 원상복구 등을 보증하기 위해 내는 보증금으로, 임대계약 종료 후 돌려받는다. 홈플러스입점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약 8000곳의 입점업체가 평균 2000만원씩 보증금을 냈다. 그러나 입점점주들에 따르면 이 점포 보증금은 이번 회생 과정에서 납품업체의 물품대금과 같은 '상거래채권'이 아니라 '회생채권'으로 분류됐다. 상거래채권은 우선변제 대상이 돼 이미 상당수 지급이 완료됐지만, 점포 보증금은 당장 매장 운영에 필요한 돈이 아닌 '묶여있는 돈'이라 후순위 변제 대상이 회생채권으로 분류됐다는 설명이다. 영등포점의 한 생활용품점 입점점주는 “이미 홈플러스를 떠난 점주는 물론 아직 남아있는 점주도 점포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회생절차 진행중이던) 지난 1년간 장사가 안돼 적자도 막심했는데 내가 냈던 2억원의 점포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할 상황이라 나도 시설 원상복구를 안하고 나갈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 점주는 “정부는 임금체불 직원에 대한 대지급금 지급과 별도로 협력업체에도 긴급운영자금 대출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모든 입점업체가 아닌 일부 영세 입점업체에 한정돼 실효성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홈플러스의 인위적인 회생에 부정적인 시각이다. 이미 1인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로 가족단위 고객 방문으로 호황을 누렸던 대형마트는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이마트, 롯데마트 등은 신선식품 강화, 콘텐츠 강화 등 변신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홈플러스는 유통 전문기업도 아닌 사모펀드가 인수해 운영하면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는 변신을 꾀하는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이형서 인턴기자

홈플러스 ‘운명의 일주일’ 회생 가능성 여전히 ‘안갯속’

홈플러스의 운명이 앞으로 일주일 내에 결정된다.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를 끝내겠다고 선언하며 즉시항고 기간을 14일로 못박았기 때문이다. '마지노선'인 오는 20일까지 대주주 MBK파트너스나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홈플러스는 청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필요한 돈은 필수운영자금 2000억원이다. '극적 회생' 가능성을 남기고 홈플러스는 내우외환에 휩싸여 있다. 정상적인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가운데 다양한 곳에서 잡음이 새나오고 있다. 상인들은 거리로 나섰고 노동자들은 연좌 농성을 벌였다. 은행들이 홈플러스 협력업체에 금융지원을 결정하고 정부가 임금 체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언 발의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 '안전 우려' 12일 마트 쉬는날 이후 영업 중단 가능성 거론 12일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현재 자체브랜드(PB)인 '심플러스' 재고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신선식품이나 식음료 품목 상당수는 납품을 받지 못했다. 이미 받은 물품도 대금 정산 문제 등이 엮여 있어 정상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더 큰 문제는 시설관리와 청소 등 외주 인력이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주차, 청소, 시설관리 등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을 홈플러스 직고용 직원들이 임시방편식으로 맡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안전 우려 탓에 '마트 쉬는날'인 12일 이후 홈플러스가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홈플러스는 오는 20일까지 운영자금 2000억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 법원에 즉시 항고하지 못하면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 MBK와 메리츠는 추가 지원금 2000억원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메리츠는 MBK와 김병주 회장의 보증을 조건으로 1000억원의 긴급운영자금 대출금을 준비했지만 나머지 1000억원은 MBK가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MBK는 김 회장의 개인 증여 등을 통해 이미 수천억원의 자금과 신용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했다며 맞서고 있다. 메리츠는 지난 3일에도 입장문을 내고 대출 지원의 핵심 조건이었던 김 회장의 개인 보증에 대해 확답을 여전히 받지 못한 상태라고 폭로했다. 메리츠 측은 “(1000억원의) 대출 실행 전제조건으로 MBK뿐만 아니라 김 회장의 보증을 함께 요구했는데 사측이나 김 회장 측에서 이런 의사를 담은 공문을 보내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MBK는 지난달 30일 회생법원에 보낸 의견서에 김 회장의 보증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가 직접 고용한 인원은 지난달 말 기준 1만2000명 정도다. 납품 중소기업·소상공인 150곳이 아직 받지 못한 대금 규모는 업체당 평균 7억7400만원이다. 이들 대금은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 상거래 채권은 후순위 채권인데, 홈플러스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 2월 말 기준 104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단채 피해자 역시 4019억원에 수준의 피해액을 구제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홈플러스 측은 일단 자금난에 체불됐던 5월까지의 임금은 모두 지급했다고 밝힌 상태다. 홈플러스는 “자금 상황으로 작년 12월 이후 매월 급여가 지연 지급되면서 6월까지 지연 지급된 급여의 누적 총액은 1410억원"이라며 "5월까지의 급여는 모두 지급 완료됐고 현재는 6월 급여 332억원만 체불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거리로 나선 상인·노동자들···정부는 아직 '신중 모드' 사태가 긴박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상인과 노동자들은 정부와 여론에 '긴급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점포 입점 점주들은 시청 등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속적인 영업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안수용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장을 포함한 5명의 홈플러스 직원은 지난 10일 MBK파트너스 본사가 있는 건물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광화문 D타워 건물 로비 출입구를 막고 '홈플러스 먹튀 주범 MBK 나와라, 김병주', '투기자본 MBK퇴출 김병주 구속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농성했다. 이들이 건물 안쪽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들어가자 MBK 측은 오는 14일 김광일 부회장과 면담을 약속하며 농성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노조는 이를 수용해 연좌 농성을 해제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이와 별도로 오는 15일 광화문에서 총파업 대회를 열 방침이다. 정치권과 은행 등은 일단 '급한불'을 끄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은 홈플러스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긴급 금융지원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홈플러스 납품 대금 입금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협력업체에 업체당 최대 5억원의 신규·대환 대출을 지원하고 대출 금리를 최대 1.0%포인트(p) 우대한다고 지난 8일 밝혔다. KB국민은행은 홈플러스와 거래하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최대 5억원 운전자금 대출, 할인 금리 제공, 대출 만기 연장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나은행도 신규 자금이 필요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최대 5억원의 긴급 경영안정 자금을 지원하고 최대 1.3%p 범위 내 금리우대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역시 협력업체에 5억원 이내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만기가 다가오는 여신의 경우 원금 상환 없이 대출 기간을 연장해줄 계획이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3월부터 홈플러스 협력업체에 최대 5억원 대출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홈플러스의 임금체불 규모를 확인하고 피해 근로자를 위해 대지급금을 신속 지원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피해 근로자에게 1인당 최대 2100만원 체불 임금 대지급금을 신속히 지급할 예정이다. 긴급 생계 안정을 위해 1인당 1000만원 한도로 연 1.5%의 저금리 생계비 융자도 지원한다. 중소 협력업체와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 지원도 강화한다. 소상공인 대상 긴급경영안정자금의 우대금리 적용 및 한도 상향 조치는 오는 15일부터 접수를 받기로 했다. 정치권은 대주주 MBK와 채권자 메리츠를 향해 운영자금을 마련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다만 '정부 직접 개입'에 관련해서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9일 국회에서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MBK파트너스-메리츠 경영진 간담회'와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간담회'를 연이어 열고 메리츠와 MBK 경영진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1년치 비 10%가 1시간 만에…기후변화가 바꾼 한반도 ‘홍수 지도’ [기후 신호등]

늦게 시작된 올여름 장마가 매섭다. 전국 곳곳에서 폭우가 쏟아지면서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시간당 150㎜ 안팎의 극단적인 호우가 쏟아지는 사례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1년치 강수량의 10%가 1시간에 쏟아지는 만큼 배수시설 등 인프라가 감당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강우 패턴이 급격히 변화하고 홍수 발생 양상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한반도는 여름철 극한 강수의 정점 시기가 앞당겨지고 그 강도가 세지는 등 전례 없는 홍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기후 신호등'에서는 최신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변화의 메커니즘과 미래 전망,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정부와 학계의 대책을 종합적으로 짚어본다. ◇글로벌 강우 패턴의 변화와 발생 메커니즘 기후 변화가 강우 패턴을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은 크게 열역학적(thermodynamic) 기여와 역학적(dynamic) 기여로 구분된다. 열역학적 기여는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롱(Clausius-Clapeyron)' 원리에 따라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대기가 보유할 수 있는 수증기량이 약 7%씩 증가하면서 폭우의 잠재력을 높이는 현상을 말한다. 대기 중에 수증기 많아지면 한꺼번에 많은 비를 쏟아내게 된다는 얘기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지난 9일 수평 해상도를 1㎞에서 500m로 높여 산출한 '남한 상세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현재(2000∼2019년)보다 1.5℃ 높아지면 연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린 24시간 동안의 강수량은 6.4%, 지구기온이 3.0℃ 오르면 22.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와 3.0℃ 상승하면 5일 최다 강수량은 각각 3.6%와 19.0%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역학적 기여는 대기의 수증기를 실제로 비로 바꿔주는 기상 시스템(엔진)이 얼마나 강력하게 돌아가는지를 의미한다. 공기가 얼마나 빠르게 위로 솟구치는지(수직 속도), 그리고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부는지(대기 순환)와 같은 '공기의 움직임' 그 자체를 말한다.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8월 '지구물리학 연구 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중위도 지역의 극한 강수 증가는 주로 기상 전선(atmospheric fronts)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전선 같은 전선은 성질이 다른 두 공기 덩어리(예: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는 경계선이다. 연구팀은 전선이 대기 중에 풍부해진 수증기를 비로 전환하는 가장 효율적인 기상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단순히 수증기가 많아져서 비가 오는 게 아니라, 전선이라는 기상 시스템이 폭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훨씬 더 무서운 폭우(극한 강수)는 대부분 기상 전선이 대기 중의 풍부한 수증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비로 바꿔버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홍수 발생 시기도 앞당겨지거나 늦춰져 기후 변화는 홍수의 규모뿐만 아니라 발생 시기까지 앞당기고 있다.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5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위적인 기후 변화는 전 지구적 홍수 시기를 기온 0.5℃ 상승당 약 0.43일씩 앞당기고 있다. 홍수 시기의 변화는 단순히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넘어, 기온과 강수 패턴의 복합적인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 북반구 고위도 지역의 경우, 기온이 올라가면서 얼어붙었던 눈이 녹기 시작하는 시점이 빨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봄철 해빙기 홍수가 과거보다 훨씬 일찍 발생하게 된다. 비가 주로 내리는 지역에서도 연중 최대 강우가 발생하는 시점 자체가 변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우기의 시작과 끝이 달라지면서 홍수의 정점도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홍수 시기가 앞당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모든 지역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연구팀은 “홍수가 일찍 발생하는 지역은 더 일찍 발생하고, 늦게 발생하는 지역은 더 지체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멕시코, 동남아시아, 중국 일부 지역, 중동 및 동유럽 지역에서는 오히려 홍수 시기가 늦춰지는 경향이 보인다. 이미 전 세계 육지의 50.7%가 7일 이상의 홍수 시기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댐 운영, 수자원 관리, 농업 계획 시스템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의 댐과 저류지는 수십 년간의 안정적인 계절적 주기를 바탕으로 설계돼 있다. 홍수 시기가 3주 이상 변하면 기존 운영 규칙은 무용지물이 돼 댐 붕괴나 범람 위험이 커진다. 중국의 밀 수확기(현재 5~6월)가 홍수기(현재 7~8월)와 겹치거나, 브라질의 옥수수 파종 시기가 앞당겨진 홍수기와 맞물리면서 농작물 피해와 식량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한반도 강수 패턴의 급격한 변화: “8월에서 7월로의 이동" 한반도의 경우, 여름철 시간당 극한 강수(HER)의 발생 시기와 빈도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포항공대(POSTECH)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팀이 지난해 6월 'npj 기후와 대기과학(npj Climate and Atmospheric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과거에는 8월에 폭우 빈도가 가장 높았으나 미래 최악의 시나리오(SSP5-8.5)에서는 폭우의 정점이 7월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서북태평양 아열대 고기압 세력이 강해지면서 과거보다 더 북쪽으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이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시계 방향으로 강한 남풍이 불면서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한반도로 집중적으로 유입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7월의 극한 강수 빈도가 저탄소 시나리오(SSP1-2.6)에서 약 2배, 고탄소 시나리오(SSP5-8.5)에서는 무려 3.7배(271%) 급증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7월에 아열대 고기압이 한반도 동쪽에 강력하게 자리 잡는 게 원인이다. 아울러 연구팀은 정체전선으로 인한 폭우가 7월에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SSP5-8.5 시나리오에서 7월의 정체전선 관련 폭우 빈도는 현재보다 무려 약 644%나 급증, 8월보다 7월에 더 많은 폭우가 쏟아지게 만든다. 한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중층 기압골'이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끌어내려 하층의 고온다습한 공기와 강하게 충돌하도록 만들고, 이로 인해 짧은 시간에 엄청난 비를 뿌리는 극한 강수가 발생하게 된다. ◇지형적 영향으로 국지성 폭우 증가 한반도의 폭우는 지형적 요인에 의해 매우 국지적인 특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특정 지역에 비를 쏟아붓는 '폭우의 파편화'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국토의 약 63%가 가파른 경사의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수 패턴이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공주대 대기과학과 서명석 교수팀이 지난해 9월 '아시아태평양 대기과학 저널(Asia-Pacific Journal of Atmospheric 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3~2022) 한국의 폭우는 지형적 영향으로 매우 국지적인 특성을 보인다. 지형성 강수는 습한 공기가 산을 타고 강제로 상승하면서 온도가 낮아지고 수증기가 응결돼 비구름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기가 산의 사면을 타고 올라가며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비를 쏟아붓게 된다. 산맥(태백맥, 소백산맥 등)은 이동하는 저기압이나 전선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 때 좁은 골짜기나 산맥의 경계면에서 성질이 서로 다른 공기가 강하게 충돌하면서 대기 불안정이 심화돼 국지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의 단열 팽창 및 냉각이 활발해져 평지보다 훨씬 잦고 강한 폭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라산 고산 지대의 경우 평지보다 폭우 빈도가 약 4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제주도 외에도 강원도 미시령과 경남 거제 등지에서도 폭우 위험 지대로 분류된다. 이들 지역은 해안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높은 산지를 배후에 두고 있어 해양에서 공급된 수증기가 지형을 타고 급격히 상승하면서 매우 강한 비를 뿌린다. 태백산맥 서쪽 사면은 7월 장마철에 중규모 저기압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면서 태백산맥과 충돌하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산맥 서쪽 지역(수도권 및 충청 일부)은 지형적 상승 효과가 더해져 폭우 빈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과거 데이터에 갇힌 홍수 대책, '기후 뉴노멀'에 무너진다 최근 한반도를 덮친 기록적인 폭우는 기존 방재 시스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통계에만 의존하는 관리 체계로는 더 이상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국내의 기존 유역 모의 방식은 주로 강수량 분포나 초과 확률 등 단순화된 지표에만 의존하는 바람에 홍수의 지속 시간, 빈도, 규모 사이의 복합적인 역학 관계를 포착하는 데 미흡하다는 것이다.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극한 강우가 일상화되면서 기존 구조물들의 안전성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 당시 다수의 하천에서 50~100년 설계 빈도를 초과하는 홍수위가 관측되었는데, 이는 기존 하천 및 배수 체계만으로는 홍수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 사례다. 특히, 교량이 제방에 맞닿게 설치된 경우나 계획 홍수위보다 제방 높이가 낮은 경우, 굽이치는 하천 유역 등 구조적 취약 요인이 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하수도 시설 운영은 주로 수질 관리에 치중돼 있어 도시 침수 대응 역량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도 문제다. 또한 기존 홍수 예보는 정보 생산자(대하천) 중심이고, 비(非)시각적이어서 국민들이 실시간 위험도를 체감하고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분석도 나왔다. ◇정부와 학계의 대응 대책: 디지털 기술과 통합 관리 폭우와 홍수가 일상화되는 '뉴 노멀' 시대에는 과거의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미래 기후 시나리오를 반영한 선제적이고 통합적인 안전 전략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정교하고 선제적인 대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AI) 기반 홍수 예보가 눈에 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전국 223개 하천 지점을 대상으로 AI 홍수 예보를 시행하고 있다. AI 기반의 도시 침수 위험 예측 기술이 실제 침수 사례에서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정부는 또 물순환 촉진을 강화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국가 물순환 촉진 기본방침'을 마련하고, 하천 정비를 넘어선 '유역 단위 통합 물관리'를 선포한 바 있다. 불투수 면적을 줄여 빗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들도록 하고, 저류지 및 지하 방수로를 확충하는 한편, 기후 변화 시나리오를 인프라 설계 기준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하천 범람 지도와 도시 침수 지도를 제작해 내비게이션 등을 통해 실시간 침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해나가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시승기] 2.7톤 전기 MPV의 반전…‘우아한 항해’ 더 뉴 스타리아 일렉트릭 리무진

마치 범고래 같다. 크지만 날렵한 올블랙의 차체가 햇빛을 받으면 검게 반짝인다. 완만한 곡선으로 유려하게 떨어지는 전면부와 직선으로 곧게 뻗는 후면부 라인이 군더더기 없다. 앞머리의 일자형 라이트는 범고래 눈가의 흰 무늬처럼 보인다. 지붕 끝으로 이어져 살짝 튀어나온 스포일러는 작고 날씬한 꼬리 같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잔잔한 물살을 가르듯이 부드럽게 나간다. 밑으로 잡힌 무게중심이 빗길에서도 묵직한 안정감을 준다. 문을 닫으면 물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아늑하고 조용하다. 뒷좌석 의자를 다 눕히면 그야말로 가만히 물에 떠 있는 듯 편안하게 몸을 감싼다. 현대자동차가 새 전동화 모델로 자신 있게 내놓은 다목적차량(MPV, Multi-Purpose Vehicle) '더 뉴 스타리아 리무진 일렉트릭'이다. MPV는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까다로운 차종이다. 운전자 입장에서의 안정적인 주행감과 공간 활용성, 탑승자 입장에서의 편안한 승차감과 편의성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 패밀리카나 비즈니스 의전 차량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어느 한가지도 포기할 수 없다. '더 뉴 스타리아 리무진 일렉트릭'은 그 까다로운 요구를 균형감 있게 풀어냈다. 지난 10일, '더 뉴 스타리아 일렉트릭 리무진'을 타고 비 오는 서울 시내를 달렸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바로 체감되는 건 넓은 공간이다. 전장 5255mm, 전폭 1995mm의 넉넉한 사이즈답게 모든 좌석의 레그룸이 여유롭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정도다. 운전석에 앉아 조수석 쪽으로 팔을 크게 휘둘러도 걸리는 게 없다. 대시보드 역시 수평으로 길게 뻗어있다. 탁 트인 개방감 덕에 장시간 운전에도 피로감이 덜하다. 정면 계기판 디스플레이는 '턴 바이 턴' 내비게이션을 지원한다. 중앙 디스플레이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전방을 주시하며 주요 경로를 안내 받을 수 있었다. 드라이브 모드를 바꿀 때마다 계기판에 푸른 불빛이 부드럽게 들어왔다가 나가니 보는 재미가 있다.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운전대) 사이에는 넓은 선반이 자리하고 있다. 가로세로 폭이 넓고, 울퉁불퉁하게 파여있어 따로 거치대 없이 휴대전화를 편하게 세워놓을 수 있다. 디테일이 좋다. 도로에서는 스타리아 특유의 높은 전고(1990mm)가 본 적 없는 시야를 만들어냈다. 마치 서서 운전하는 것처럼 양옆 차선과 앞에 가는 차의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가드레일이 팔꿈치 높이로 보였다.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틀지 않아도 복잡한 시내 도로의 전방 상황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시야를 방해하니 높은 시야가 더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주행은 연비 우선의 '에코 모드'를 사용했다. 덕분에 가속 페달을 밟으면 곧바로 속도가 오르는 전기차의 특성에도, 급격하게 빨라지지 않고 완만했다. 브레이크를 밟아 급정거를 할 때면 전기차 특유의 앞뒤로 쏠리는 느낌이 살짝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속페달로 부드럽게 멈춰 설 수 있었다. 퇴근 시간 차가 막힐 때는 자율주행 기능인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해 잠시 운전을 맡겼다. 비가 오는 날엔 양옆에서 달리는 차량이 젖은 바닥을 스치며 내는 소리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거슬리기 마련이다. 이 날 세찬 비가 내렸지만, 한 번도 그 마찰음을 듣지 못 했다. 차음과 방진에 공을 들인게 느껴졌다. 2열 도어 글래스에는 이중 접합 차음 유리가 설치돼있다. 여기에 쇽업소버(완충 장치)와 차체가 만나는 연결 부위의 철판 두께까지 두껍게 보강했다. 덕분에 거친 주차장 노면을 지나가도 잔진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MPV가 그러하듯 차체가 높다고 해서 출렁이지도 않았다. '더 뉴 스타리아 일렉트릭' 하부에는 충돌 시 에너지를 분산하는 임팩트 바와 함께 배터리가 탑재돼 있다. 최고 출력 160kW, 최대 토크 350Nm, 전비 4.1km/kWh의 84.0kWh 4세대 배터리다. 한번 충전하면 최대 387km를 달릴 수 있다. 대용량 배터리와 안전장치의 중량이 아래에서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니 윗부분은 흔들릴 일이 없다. 다만 6인승 MPV에 대용량 배터리까지 더해지면서 공차 무게는 2695kg, 2.7톤에 달한다. 통상 차가 무거워지면 코너링이나 핸들링 조작 시 조향 반응이 둔해지기도 한다. 직접 운전해보기 전에는 조심스러웠다. 걱정이 무색하게, 스티어링 휠을 아주 조금만 움직여도 차체가 기민하게 반응했다. 비 오는 올림픽대로에서 급커브 구간이 반복됐을 때도 흔들리거나 쏠리는 느낌 한 번 없이 그저 경쾌했다. 현대차는 늘어난 중량에 대응하기 위해 '더 뉴 스타리아 일렉트릭 리무진'에 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인 R-MDPS를 적용했다. 기존 방식대로 스티어링 휠의 기둥 대신, 아예 바퀴가 있는 바닥 쪽에 모터를 달았다. 바퀴를 직접 밀고 당기니 스티어링 휠을 꺾는 만큼 바퀴가 칼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빗길에 살짝 미끄러질 때면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이 바로 작동하며 차선을 맞췄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뒷좌석으로 넘어갔다. 내내 습하고 더운 날씨에 에어컨 없이 차 안에서 쉴 수는 없었다. 시동을 끄고 곧바로 다시 에어컨을 켰다. 전기차의 특권이다. 뒷자석 천장에도 공조 장치를 작동하는 물리 버튼이 있어서 에어컨을 조절하기 위해 앞좌석까지 넘어가지 않아도 된다. 짙게 틴팅이 된 양옆의 프라이버시 글래스가 외부 시선을 차단해 줘 마음도 편했다. 차의 진가는 2열에서 드러났다. 리무진이라는 이름에 맞게, 2열에는 전용 프리미엄 시트인 '이그제큐티브 시트'를 적용했다. 가죽 본연의 촉감을 살린 최고급 세미 애닐린 천연가죽을 사용해 겉보기에도 푹신했다. 암레스트의 원터치 버튼으로 한 번에 좌석을 끝까지 눕히니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무중력' 같은 착석감을 만들어냈다. 천장에는 엠비언트 라이트가 은은하게 빛나며 '파노라믹 스카이 루프'를 느끼게 했다. 더 놀라운 건 안마 기능이다. 14가지 방향 조절 기능을 사용해 다리받침까지 다 펴고 편안하게 눕자 마사지를 받을 준비가 끝났다. 암레스트에 있는 '에어 컨투어 바디케어' 버튼을 눌렀다. 5가지 마사지 모드 중 하나를 선택해 잠시 눈을 붙였다. 앉아서 받을 수밖에 없는 여타 차량의 마사지 시트와 달리 누워서 마사지를 받자 안마의자가 부럽지 않을 만큼 시원했다. 다시 시트를 세워 반쯤 앉은 채 리모콘을 손에 쥐었다. 루프 쪽으로 리모컨을 누르면 17.3인치 크기의 폴딩형 디스플레이가 내려온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각종 OTT와 스마트폰 미러링까지 지원한다. 시트 팔걸이 안쪽에는 노트북을 펼쳐놓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테이블이 들어가 있고, 스마트폰 무선 충전도 가능했다. 3시간 정도 차 안에서 영상 시청과 급한 업무, 마사지와 낮잠까지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차 안에만 있었는데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통풍과 에어컨 등 개별 공조까지 조절하니 쾌적하기가 더할 나위 없었다. 마치 차 안이 아니라 작은 휴게실이나 서재에서 푹 쉰 듯 하다. '더 뉴 스타리아'의 프리미엄 라인답다. '더 뉴 스타리아 리무진'은 1.6리터 터보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EV) 두 가지 파워트레인으로 운영된다. 그 중 '더 뉴 스타리아 일렉트릭 리무진(6인승)'은 최상위 트림인 인스퍼레이션 모델이다. 친환경차 세제 혜택 적용 기준 가격은 8482만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기차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서울시 기준 보조금은 297만원이다. 여기에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를 기본 적용해 차량의 주요 기능을 최신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블루링크 스토어를 통해 디스플레이 테마 변경이나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도 가능하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

“수억 달러 수입해놓고 핵심원료 유출…‘스크랩·특수강’ 국가 전략 자원화 필요”

“한국은 매년 수억 달러를 쏟아 고부가가치 소재를 수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소재에서 나온 스크랩은 무분별하게 수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채민석 세아창원특수강 연구소장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K-스틸법 발효와 특수강 산업의 전망과 과제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고율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스크랩이나 소재의 수출을 사실상 제한하는 등 전략 자원화하고 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채 소장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기조 아래 우리나라도 특수강 소재나 원료인 스크랩을 전략 자원화하고, '클로즈드 루프(폐쇄형 자원 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크랩이란 철강 제품을 생산·가공하거나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고기능재 특수강의 경우, 철 스크랩과 니켈이나 타이타늄 등 희소 합금을 핵심 원료로 활용한다. 전기로에 이들 원료를 녹여 생산하는 특수강은 우주항공이나 방산, 소형모듈원자료(SMR) 등에 활용되는 핵심 전략 소재로 범용 철강소재보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채 소장에 따르면, 글로벌 특수강 소재 시장은 지난 2024년 기준 2363억달러(350조원)에서 오는 2030년 2846억달러(428조원)까지 연평균 3.5% 성장률을 보이며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비롯해 방위·우주항공 등 특수강 소재를 활용하는 미래 산업이 최대 20%에 이르는 가파른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특수강 산업은 지정학적 한계와 산업 구조상 ▲공급망 취약성 ▲인프라·정책 공백 ▲시장 불확실성 등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더욱이 주요 자원 강국들이 관세 조치를 통해 핵심 자원을 무기화하고, 고부가 소재 시장을 소수 글로벌 기업이 독과점하는 탓에 국내 특수강 산업이 처한 구조적 리스크는 한층 극대화되고 있다는 게 채 소장의 진단이다. 그는 폐쇄형 자원 순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국내 특수상 산업계가 이러한 구조적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유일한 출구전략이라고 주장했다. 폐쇄형 자원 순환 체계는 '대체 원료 투입(폐기·부산물)→특수강 제조→고부가 제품 생산→특수금속 스크랩 회수·재자원화'로 이어지는 자원 재활용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스크랩 투입 비율을 20%포인트(60%→80%) 향상하는 것 만으로도 원료비(304 스테인리스강 100톤 생산 기준)를 13.3%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채 소장의 분석이다. 그는 “스크랩을 국가 전략 자원화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 K-스틸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 주도로 산·학·연·정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특수강 수요 산업과 소재 개발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실제 테스트베드를 이끌어 내는 등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윤석 부산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K-스틸법을 글로벌 철강산업 패러다임의 3중 전환 속에서 탄생한 '한국형 전환 프레임워크의 출발점'으로 평가하면서도 “입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하위 법령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K-스틸법이 탄소 감축을 위한 전기로 전환과 설비 고도화를 장려하고, 전기로의 원료가 되는 재생철자원(스크랩 등) 가공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적 요구 아래 발효됐으나, 실질적인 법제도적 지원 근거가 부재한 탓에 실효성이 부적하다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이미 고로(용광로) 산업에서 특수강 산업으로 전환한 미국의 경우 에너지국과 국방부의 보호 아래 산업 보호와 수출 제한에 나섰고, EU도 탄소국경제를 통해 관세 장벽을 펼치는 등 자국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며 “글로벌 철강 패권이 생산 경쟁에서 벗어나 '안보화', '공급망 내재화' 양상으로 패러다임을 변화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이를 벤치마킹해 특수강 산업을 지원·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교수는 ▲가치사슬의 상향 이동 ▲저탄소 생산 체계의 무기화 ▲에너지 및 자원 안보의 정책화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과 균형 성장 ▲입법적 한계 극복 및 하위법령의 역할 등을 K-스틸법이 직면한 5대 과제로 지목했다. 이 밖에 그는 정부의 산업 지원 기준이 고로와 전기로 어느 한 곳에 편향되지 않도록 양자간 다원적 평가 지표를 도입해 가치 중심의 다원적 정책 지원 기준을 설계하고, 저탄소철강의 인정 기준을 정교화하는 한편, 재생철자원 범위를 명문화하는 등의 K-스틸법 하위 법령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실제 특수강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K-스틸법의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보완·대책 방안도 다수 제기됐다. 나영상 한국재료연구원 극한재료연구소장은 “AI 반도체 산업을 비롯해 방산, 우주 등 한국의 미래 전략산업으로 부상하는 분야에서는 특수합금의 중요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며 “개별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소재 평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국가 특수합금 실증 센터'를 설치하고 국가가 나서 이를 운영하도록 명문화하는 방식으로 입법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나 소장은 후속 보완 과정을 거쳐 K-스틸법 내 명시된 재생철자원의 범위를 '범용 고철'에서 '특수강·희유금속 스크랩'으로 확장 명시하고 가공·원천 R&D 조항을 신설하는 등의 법률적 제언도 제시했다. 황병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K-스틸법이 고로 중심의 탄소중립에 편중되지 않도록 전기로 특수강의 별도 독립 세부지표를 명시하고 'K-스틸 기본계획' 수립 시 이를 반영함으로써, 범용재와 특수강의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담보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K-스틸 기본계획이 단순 탄소배출량 감축에만 중점을 두고 수립될 경우 정책 자금이 고로 중심의 대형 R&D에만 편중될 수 있다는 게 황 교수의 지적이다. 이 밖에 장희상 주식회사 태웅 사장은 전기로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 전력요금 지원체계와 심야·경부하 전력 활용 확대, 재생에너지 연계 및 장기 전력구매 제도 등을 K-스틸법에 포함해 산업계의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고 지공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연주 산업통상부 철강세라믹과장은 “정부는 10대 특수탄소강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올해부터 2031년까지 10대 특수탄소강 개발을 위해 국비 2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며 “업계 수요를 면밀히 살피고 업계의 R&D·설비 투자 등 세액공제 혜택 등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전기로·특수강 등 기술의 '신성장 원천기술' 지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지정학 방정식 下] ‘K-방산 2.0’, 무기 너머 ‘국방 생태계’ 판다

현재 글로벌 주요국의 국방 획득 거버넌스는 완제품 도입에서 벗어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 중심의 배타적 안보·경제 블록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에 직면한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가성비와 신속 납기'에 의존하던 초기 수출 모델(K-방산 1.0)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거시적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 이른바 'K-방산 2.0' 전략을 가동 중이다. 현대 무기체계의 획득 경제학에서 최초 도입 비용(Acquisition Cost)은 전체 수명 주기 비용(Life Cycle Cost)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30~50년간 이어지는 유지·보수·개량(MRO) 및 부품 조달에서 발생한다. K-방산 2.0의 핵심은 바로 이 '70%의 후속 군수 지원 시장'을 선제적으로 통제하고, 나아가 도입국의 거시 경제와 국방 밸류체인(Value Chain)에 자본과 인프라를 직접 투입하는 데 있다. 이는 수출 실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도입국의 국방 예산·산업 인프라·전술 교리를 한국의 방산 밸류체인에 구조적으로 종속시키는 강력한 락인(Lock-in, 잠금) 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현재 K-방산은 ▲전면적 산업 내재화(현지화) ▲정책 금융 조달(차관) 결합 ▲제도적 규제 우회 등 3대 축을 통해 글로벌 지정학 장벽의 간극을 파고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 방산 시장에 견고하게 형성된 EU 역내 방산 기금(SAFE) 연계·고강도 자국 생산 규제(Offset)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한국 방산 기업이 직접 자본을 투입해 비관세 장벽 내부의 '유럽 현지 기업화'를 이루는 방안을 꼽는다. 외부자 한계를 지우고 현지 산업 경제와 완전히 동기화되는 '트로이의 목마' 전술이다. 현대로템이 폴란드 군비청과 체결한 8조8000억 원 규모의 K-2 전차 2차 실행 계약은 이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교과서적 사례로 꼽힌다. 현대로템은 폴란드 현지 요구 사항을 반영한 'K-2PL' 모델의 생산 라인 구축과 핵심 기술 이전(ToT)을 명문화했다. 또한 폴란드를 거점으로 생산된 물량을 향후 루마니아 등 인접 동유럽 국가들로 '공동 수출'한다는 이익 공유 비전을 선언했다. 이로써 현대로템은 폴란드 방산업계 내 일자리 창출은 물론, 경제적 수출 동력까지 제공함으로써 도입국을 '무기 소비자'에서 한국 방산 생태계의 '공동 투자자'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루마니아 시장에서도 동일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보병 전투 장갑차(IFV) 수주전에서 EU 역내 카르텔에 밀려 고배를 마셨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K-9 자주포 수주 직후 루마니아 현지에 거점 조립·부품 생산 공장 착공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선제적 인프라 투자는 유럽 방위산업 기반(EDTIB) 강화를 명분으로 외부 진입을 막는 EU의 보호주의를 합법적으로 우회하는 핵심 기제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방 예산이 자국 내 양질의 고용 창출로 환원되기를 바라는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셈이다. 유럽의 거점화 전략은 역내 전장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화 시기의 공백과 맞물려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현재 루마니아 육군은 차세대 주력 전차 획득 소요를 제기하며 현대로템의 K-2 전차와 독일 레오파르트 계열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 수주전의 핵심 변수는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해 공동 개발 중인 140mm 주포 등을 탑재한 차세대 지상 전투 체계(MGCS, Main Ground Combat System)의 상용화 시점이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유럽 자체 차세대 전차 개발이 기술적·정치적 이견으로 2035년 이후로 지연됨에 따라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전력 공백을 메워야 하는 동유럽 국가들에게는 5~10년의 안보 공백기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K-2 전차는 이미 폴란드에서 실전 배치와 현지 양산 인프라가 완비돼 있어 이 지연된 틈을 즉각 파고들 수 있는 전 세계 유일의 최신 3.5세대 플랫폼이다. 서북유럽 전차 대비 지정학적 열세를 기술적 적시성(Time-to-Market)이 마케팅 포인트다. 다만, 유럽 내부의 견제가 심화되고 이 '골든 타임'의 유효 기간이 2~3년 내외로 좁혀질 수 있어 '포괄적 생태계 제안'이 차기 수주전의 승리자를 결정할 전망이다. 초대형 국방 예산 편성에 재무적 유동성 제약이 따르는 동남아시아 및 중남미 등 신흥국 시장에서는 공급자 측의 선제적인 '정책 금융(여신) 지원'이 물리적 성능 제원을 압도하는 수주 결정 변수로 작용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필리핀 공군과 최대 20대 규모 수출을 두고 논의 중인 차세대 전투기 KF-21 획득 사업은 금융과 MRO가 결합된 '코리아 턴키(Turn-key)' 모델의 시금석이다. 첨단 전투기는 기체 도입 비용보다 30년 간 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2~3배 더 드는 거대 자본 집약적 플랫폼이다. 한국 측은 단일 플랫폼 공급을 제안하는 경쟁국들과 달리 획득 비용의 최대 70%를 한국수출입은행 주도의 장기 차관으로 제공하는 파격적인 재무 솔루션을 제시했다. 이에 더해 필리핀 영토 내에 KF-21 전용 항공 정비 시설을 구축하고 현지 운용 인력을 직접 양성하는 종합 군수 지원(ILS, Integrated Logistics Support) 패키지를 결합했다. 이는 도입국이 직면한 초기 자본 조달의 한계를 수출국 금융으로 상쇄하고 운용 유지 리스크를 인프라 이식으로 해소해 주는 고도화된 복합 획득 모델이다. 가장 폐쇄적이면서도 거대한 단일 방산 시장인 미국에 대한 접근 방식은 정면 돌파 대신 철저한 '우회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국 내에서 건조되지 않은 선박의 조달을 엄격히 제한하는 '존스법'을 유지하고 있어 외부 기업의 신규 함정(Newbuilding) 진입이 차단돼 있다. 이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연간 200조 원 규모로 추산지만 자국 내 인프라 노후화와 인력 난으로 극심한 적체를 겪고 있는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해체 후 재조립(MRO) 시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한화오션의 필라델피아 조선소 인수에 이어 양사는 2026 회계연도를 앞두고 미 해군 군수지원함 등 정비 사업을 연달아 4건 수주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 내에 안착했다. 이는 까다로운 미 해군의 보안 인가를 통과하고 군수 밸류체인 내 '신뢰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고 장기적으로 존스법의 예외 조항이 발동되거나 오커스(AUKUS) 필러 2 등 동맹국 중심의 연합 건조 프로젝트 가동 시 최우선 파트너로 선택받기 위한 전략적 교두보 확보로 풀이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산업화 마스터플랜 '비전 2030'에 의거, 국방 지출의 50% 이상을 자국 내 조달로 전환하는 현지화(ICV, In-Country Value) 의무 비율을 강제하고 있다. 차세대 3000톤급 잠수함 사업을 공략 중인 한화오션은 요구치를 상회하는 '60% 현지화율' 달성 계획과 함께 조선소 인프라와 수중 방산 전자 생태계 전체를 사우디 방위산업청(GAMI) 산하에 복제해 이식하는 포괄적 인프라 협력안을 제시했다. 중남미의 핵심 거점인 페루에서는 HD현대중공업과 현대로템이 각각 페루 국영 조선소(SIMA)·육군 조병창(FAME)과 함정 공동 개발·K-2 전차 총괄 협약 등을 담은 포괄적 전략 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완제품을 수출하는 '공급자' 위치에서 벗어나 상대국의 중장기 국방 마스터플랜을 기획하는 '설계자'로 격상됐음을 시사한다. 최근 글로벌 국방 획득 사업의 일련의 흐름은 방위산업이 파편화된 기계 공학적 제조업의 영역에서 자본·거시 산업 정책·지정학적 외교가 고도로 얽힌 '초거대 체계 통합 시장'으로 전환됐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자국 산업 생태계 내재화 요구와 막대한 국방 예산의 재무적 분산 지원, 30년 수명주기의 군수 조달 안정성 보장이라는 다층적 과제를 단일 기업의 영업력만으로 일괄 타결할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따라서 K-방산이 현재의 외형적 팽창을 구조적 지속 가능성으로 전환하고 글로벌 방산 4강(G4)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소모적인 내부 출혈 경쟁을 통제해야 한다는 제언도 존재한다. 플랫폼을 건조하는 조선·기갑·항공 체계 업체, 탐지·정밀 타격 무장을 공급하는 방산 전자 업체, 막대한 여신 규모를 통제하는 재정경제부·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 기관, 기술 통제·국방 외교를 전담하는 국방부·방위사업청가 단일한 지휘 체계로 결합된 '국가 단위 체계 통합(National System Integration)' 거버넌스가 시급히 가동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성훈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규모 방산 수출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닌 국가 대 국가의 외교·안보 역량이 결집된 G2G 토털 솔루션 사업"이라며 “대통령실 주도의 범정부 컨트롤 타워를 가동해 외교·국방·산업·금융 부처가 단일 창구로 움직이는 '원팀 코리아' 거버넌스를 신속히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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