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친일 논란 下] 일제 때 돈 벌면…‘기업인과 친일의 경계선’](http://www.ekn.kr/mnt/thum/202608/news-p.v1.20260816.ad65f1f102954a0393abe8edca1efa3a_T1.png)
일제강점기에 회사를 운영해 돈을 벌었다면 '친일 기업인'일까. 일본 회사에 취직했다면 어떨까. 광복 81주년을 맞아 당시를 살았던 기업인들의 행적을 들여다보면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회사에 다니며 공장을 운영했다. 훗날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을 세운 창업 1세대 상당수도 일제강점기에 처음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반면 같은 시기 기업을 경영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원하거나 식민통치 기구와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기업인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됐고, 수십년 뒤 정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랐다. 두 부류를 가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앞선 1편이 일본인이 남긴 귀속재산이 해방 이후 한국 기업에 어떻게 넘어갔는지를 추적했다면 이번에는 '일제강점기의 경제활동은 어디까지 생업이고, 어디서부터 친일행위로 평가됐는가'를 들여다봤다. ◇ 기업인도 친일인명사전에…박흥식·김연수 등 이름 올라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는 정치인과 관료, 군인, 경찰뿐 아니라 경제인도 포함됐다. 경제 분야 수록자 가운데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박흥식과 김연수다. 박흥식은 일제강점기 화신백화점을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 '조선 최고의 부자' 가운데 한 명으로 불렸다. 문제는 사업가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박흥식은 일제의 전쟁 수행과 관련된 군수산업에 참여했다. 해방 후인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기업인 가운데 처음으로 체포된 인물도 박흥식이었다. 당시 반민특위가 기업인을 바라본 기준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단순한 사업활동이 아니라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행위 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실제로 반민특위의 조사·송치 자료를 보면 '군수산업'은 별도의 조사 분야였다. 확인된 조사 건수 20건 가운데 17건이 특별검찰부로 송치되고 5건이 기소됐다. 김연수 경성방직 사장의 사례는 더욱 복잡하다. 경성방직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조선인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김연수는 기업 경영 외에도 일제 말 각종 친일·전시협력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훗날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이 됐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역사적 평가가 처음부터 하나로 정리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는 김연수에게 무죄가 선고됐지만, 수십년 뒤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과정에서는 일부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로 판단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도 경제 분야 인물로 수록됐다. 친일 문제를 둘러싼 판단 기준 자체가 시대에 따라 논쟁의 대상이 돼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회사를 다녔느냐보다 '무엇을 했느냐' 친일인명사전의 선정 기준을 보면 경제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친일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선정기준은 일제의 국권침탈과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는지를 핵심으로 삼았다. 경제 분야에서는 국책 경제기관·단체의 간부로 활동하며 일제의 경제정책에 적극 협력했는지,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거액의 금품을 헌납했는지, 군수산업 책임자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이 판단 대상이 됐다. 개인의 구체적인 행위와 지위, 지속성과 적극성 등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역시 2005년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협력해 이뤄진 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가기구로 설치됐다. 이는 '일제 때 일본 회사에 다녔다'거나 '일제 때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친일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 같은 시대 살았던 재계 창업주들은 이 기준을 현재 주요 그룹의 창업 1세대에게 대입하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열어 일제강점기부터 사업가로 활동했다.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 역시 쌀가게를 운영하고 자동차 정비사업에 뛰어들었다. 김종희 한화 창업회장은 일제가 전시경제를 강화하던 시기 화약 유통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선화약공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이 일제강점기에 경제활동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박흥식 등의 전시협력 행위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앞서 살펴본 친일 조사와 사전의 기준 자체가 '어디에서 일했느냐'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느냐'를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편 사례도 있다. 효성 창업주 조홍제는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6년 6·10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훗날 모두 '기업인'이 됐지만 식민지 시대의 행적은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친일인명사전에 없다=친일 아니다'도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특정 인물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자체가 '친일행위가 전혀 없었다'는 인증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일인명사전은 민간 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자체 기준과 사료 검증을 거쳐 편찬한 결과물이다.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역시 별도의 법률과 조사 범위에 따라 활동했다. 실제로 친일 문제를 둘러싼 판단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 정부 조사위원회, 민간 연구기관 사이에서도 조사 목적과 적용 범위가 완전히 동일하지 않았다. 따라서 명단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만으로 역사적 평가를 끝내기보다 구체적인 행적과 사료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관련 연구의 기본적인 접근법이다. ◇ 81년 지나도 어려운 질문…'생업'과 '협력'의 경계 기업인의 친일 문제는 다른 분야보다 판단하기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식민지 경제 자체가 일본 제국의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을 운영하려면 당시의 행정·금융·유통체제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전쟁으로 갈수록 원료와 생산량, 물자 배급까지 국가 통제가 강화됐다. 그러나 그런 구조 안에서 사업을 했다는 사실과 식민통치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행위를 동일하게 평가할 수도 없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가 '군수산업'을 별도의 조사 대상으로 삼고, 훗날 친일인명사전 역시 경제인의 구체적인 지위와 전쟁협력 행위를 따진 것도 이런 경계선을 설정하려는 시도였다. 한국 근현대 경제사를 연구한 한 전문가는 “일제강점기에 기업을 운영했다거나 일본계 기업에서 근무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협력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지위와 역할을 맡았는지 등 구체적인 행위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기업활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시의 전쟁협력이나 식민통치 지원 행위까지 단순한 생업으로 설명해서도 안 된다"며 “개별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당시 자료를 토대로 각각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광복 81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 기업인'의 경계선을 한 문장으로 긋기는 쉽지 않다. 다만 과거의 조사와 연구가 보여주는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일제강점기에 돈을 벌었느냐가 아니라, 그 돈과 지위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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