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해 온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 등 27명을 기소하며 18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특검팀은 비상계엄 준비가 사실상 2022년부터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 논의는 2023년 10월 군 장성 인사 이전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봤다. 조 특별검사는 15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윤석열 등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비정상적 군사작전을 통해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인했으나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실패했다"며 “윤석열 등은 국회에서 이뤄지는 정치활동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은 비상계엄 시기를 2024년 총선 이후로 확정한 뒤,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계엄을 결행하는 방안을 놓고 지속적으로 논의해 왔다. 조 특검은 “윤석열과 김용현은 2024년 7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들른 하와이에서, 동행한 강호필 합참차장에게 '한동훈은 빨갱이다. 군이 참여를 해야되는 것 아니냐'며 한동훈에 대한 적개심과 비상계엄의 필요성을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4년 10월 1일 군사령관들과의 만찬 자리에서는 '한동훈을 잡아오라. 총으로 쏴 죽이겠다'라고 말했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한 법관을 체포하려 했다"며 “이러한 사실을 통해 윤석열이 신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거스르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비상계엄을 통해 제거하려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최초로 계획한 시점을 2023년 10월 군 장성 인사 이전으로 특정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을 임명해 비상계엄 실행을 위한 군 지휘 라인을 구축했다. 이들 장성은 비상계엄 당시 병력 동원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특검팀이 2023년 군 인사부터 비상계엄의 '진용'을 갖췄다고 판단한 근거로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이 제시됐다. 비상계엄의 계획자로 지목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기재된 군 인사 내용이 실제 인사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점에서 계엄을 염두에 둔 인사 조율이 이뤄졌다고 결론 내렸다. 특검팀은 또 2022년 7~8월께 윤 전 대통령이 “총선 이후 계엄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는 사정기관 고위직 출신 인사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정상적 군사작전을 통해 북한의 무력 대응을 유도함으로써 비상계엄 여건을 조성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고 판단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적 행동이 먼저임. 전시 또는 경찰력으로 통제 불가 상황이 와야 함', '군사적 명문화, 공세적 조치, 적의 요건을 조성' 등 북한 도발을 유인하려는 취지의 문구가 다수 확인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특검팀은 국회 기능을 정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부정선거' 프레임이 적극 활용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아닌 대북 작전을 담당하는 정보사 요원 등을 중심으로 수사단을 꾸리고, 야구방망이·송곳·망치 등을 준비해 지난해 총선 결과를 반국가세력에 의한 부정선거로 조작하려 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180일간의 수사에서 특검은 이첩·인지·접수 사건을 합쳐 총 249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리했고, 군검찰과의 협업 사건을 포함해 총 27명을 재판에 넘겼다. 현판식도 없이 곧바로 수사에 돌입한 내란 특검은 3대 특검 가운데 처음으로 비상계엄 선포 당사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소환해 사실상 첫 '포토라인'에 세웠다. 수사 개시 엿새 만에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윤 전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불구속 상태였던 상황에서도 출범 22일 만에 다시 신병을 확보했다. 이후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을 지난 7월 19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기소한 데 이어, 지난달 일반이적 혐의, 이달 4일 위증 혐의로 각각 추가 기소했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윤 전 대통령을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이적, 위증 등 혐의로 총 세 차례 기소하며 수사의 정점을 찍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변칙적 스타일의 조은석 특검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특검은 수사를 국무회의 라인까지 확대해 지난해 12월 3일 밤 계엄에 가담한 인물들을 잇따라 기소했다.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구속기소했고, '국정 2인자'로 불렸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정부 관계자 8명,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관계자 9명,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군 관계자 6명,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등 정치인 3명도 각각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무리한 영장 청구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국회 '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구속 역시 불발됐다. 전체 13건의 구속영장 청구 가운데 6건이 기각되면서 '표적 수사' 논란도 제기됐다. 다만 특검은 수사 막바지에 김건희 여사가 박성재 전 장관을 통해 자신의 수사에 개입하려 한 정황을 새로 포착하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5월 '명품백 전담수사팀'이 꾸려진 이후 그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과, 수사 지휘라인이 전면 교체된 날 통화한 내역까지 확인했다. 특검은 박 전 장관이 김 여사의 수사 상황을 직접 보고받은 증거도 확보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하며, 수사 종료 직전까지 의혹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정치권 반응은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특검 수사 종료를 두고 “내란 수사의 전반전이 끝났다"고 평가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0일이 충분하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며 “노상원 수첩과 검찰의 계엄 연루 의혹,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표결 방해 의혹 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내란은 헌정질서를 겨눈 범죄"라며 2차 종합특검 추진 방침을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특검 수사를 “증거 없는 내란 몰이"라고 비판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번 발표는 수사 결론이 아니라 정치 브리핑에 가깝다"며 “입증되지 않은 주장과 잇단 영장 기각은 표적 수사 논란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