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 소득 불평등은 완만하게 완화되는 흐름을 보이는 반면 자산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건강·주거 영역에서도 계층·세대·지역에 따른 격차가 구조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24일 발표한 '한국사회 불평등의 현주소–2025 대한민국 불평등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 불평등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국회도서관, 국회예산정책처, 국회미래연구원, 국회입법조사처 등 국회 소속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해 작성됐다. 불평등 지수의 체계적 정리부터 조세·주거·자산·교육·건강 영역별 현황 분석, 다차원 불평등 지수 개발, 입법 정책 과제 도출까지 포괄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그동안 개별 영역별로 분절돼 있던 불평등 논의를 하나의 구조로 묶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중심축이 소득에서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장기적으로 감소 추이를 보이며 소득 분배는 일정 부분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순자산 지니계수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소득 불평등보다 더 높은 수준을 지속적으로 기록했다. 국민 대다수(76.7%)가 자산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자산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18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가격 급등은 자산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심화시킨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소득이 자산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약화된 반면, 이미 보유한 자산의 가격 상승과 상속·증여를 통한 이전이 자산 격차를 확대하는 핵심 경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산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를 넘어 세대 이동성, 주거 안정성, 노후 안전망 전반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불평등 인식 조사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빈부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경제 소득 불평등에 대해 81.5%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외국은 불평등의 원인으로 '부유층의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꼽은 반면, 한국은 '노동시장의 임금격차', '재벌 전문직 중심의 사회구조', '자산 불평등, 자산에 대한 부의 세습' 등을 불평등의 핵심 원인으로 꼽고 있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다양하고 복잡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는 소득·자산·교육·건강을 종합한 다차원 불평등 지수(H-MDI)를 새롭게 개발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 변화를 계량적으로 제시했다.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활용한 분석 결과, H-MDI는 2011년 0.179에서 2023년 0.190으로 상승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소득·교육·건강 영역의 불평등은 완만하게 감소한 반면, 자산 불평등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2011년에는 소득 요인이 다차원 불평등을 주도했다면, 2023년에는 자산이 소득과 유사한 수준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불평등 심화의 주된 원인으로 전환됐다. 이는 소득 중심의 불평등 완화 정책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을 수치로 확인한 결과다. ◇교육·건강·주거 격차 커져…가정 배경이 교육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 교육 영역에서는 취학 기회와 제도적 접근성 측면에서 형식적 평등은 상당 수준 확보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정 배경이 교육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유의미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진학 선택, 재수·반수 등 재도전 기회는 상대적으로 가정 배경이 양호한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계층 재생산 구조를 고착화할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진단이다. 건강 불평등 역시 구조적 성격이 뚜렷하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기대수명, 자기평가 건강, 삶의 질 지표가 일관되게 낮게 나타났다. 미충족 의료 경험은 저소득층·고령층·농어촌 거주자에서 높게 유지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주거, 노동, 교육, 지역 인프라 등 사회적 건강결정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거 불평등은 세대별로 다르다. 청년층은 월세와 비아파트 거주 비중이 높아 주거 불안정성이 구조화돼 있고, 중년층은 주택 보유 여부에 따라 내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이한 점은 고령층은 자가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노출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주거 불평등이 단순한 주거 문제를 넘어 자산 형성과 건강, 돌봄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평등 인식과 체감과는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비교에서 한국이 불평등 관련 지수 일부에서 상위권 평가를 받으면서도, 국민이 체감하는 불평등 인식은 매우 높다는 점이다. 불평등 조정 인간개발지수(IHDI), 지속가능개발지수(SDG Index) 등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평가를 받았지만, 세계행복지수나 성격차지수에서는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국내 인식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 이상이 경제·소득 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으며, 특히 자산 불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했다. 보고서는 불평등 완화를 위한 조세정책의 방향으로 단순한 세율 인상 논의에서 벗어나 과세 구조 전반의 재설계가 필하다고 제시했다. 노동소득 과세에서는 세율 인상보다는 세입 기반 확대를 통한 소득세 기능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고, 자본소득 과세에서는 과세 공백과 차등 구조를 해소하는 방향의 보완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재산 과세의 경우 거래세 중심 구조가 부동산 자본이득을 적절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상속·증여를 포함한 재산세 구조 전반의 재설계를 과제로 제시했다. 소비세 역시 고령화 시대의 재원 확보라는 현실을 고려하되, 역진성 완화를 위한 면세 범위 조정과 재정지출과의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한국 사회는 이미 '소득 이후의 불평등' 단계에 진입했으며, 자산과 삶의 조건을 포괄하는 다차원적 접근 없이는 불평등 완화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행정데이터 접근성 개선, 데이터 표준화, 범부처 통합 활용 체계 구축 등 증거기반 입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불평등 완화를 위한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소득 중심 정책의 성과에 안주하기보다, 자산·주거·건강·교육이 얽힌 구조적 불평등을 해체하는 중장기 입법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보고서 발표회에서 축사에 나선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는 객관적 분석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입법과 정책을 통해 불평등이 개인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고, 보다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해나가겠다"며 “이번 보고서가 대한민국 불평등의 현주소를 이해하고, 향후 입법과 정책 논의에 유용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연숙 기자 youn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