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개별 설치보단 중앙공급”…이명주 교수가 말하는 한국형 히트펌프 전환 전략](http://www.ekn.kr/mnt/thum/202608/news-p.v1.20260828.a860fc0e19e04afbba13e3afa0acb613_T1.png)
“우리나라처럼 공동주택 비중이 높은 곳에서는 개별 설치보다 기계실에 중·대형 히트펌프와 축열조를 설치해 여러 세대에 열을 공급하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이명주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만나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한다는 (정부의) 목표가 매우 도전적이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통령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온실가스 감축분과 민간위원이자 건물·도시 전문위원회 전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건축물의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보급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 고층 공동주택의 경우 세대마다 히트펌프 실외기와 저장설비를 둘 공간이 부족하고 전력설비 용량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공동주택 특성에 맞춰 개별 히트펌프를 설치하거나, 단지 기계실에 중·대형 히트펌프와 열 저장시설인 축열조를 설치해 여러 세대에 열을 공급하는 중앙공급 방식을 적용하고, 특히 도시에 버려지는 열 등을 회수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생열과 하수열, 산업폐열, 데이터센터 폐열 등 도시에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하기 위한 기반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이 어디에서 얼마나 발생하고 주변에 어떤 수요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국가·지역 단위의 '열지도'를 구축하고 이를 열네트워크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열에너지의 전환 없이는 건물부문 탄소중립도 달성하기 어렵다"며 “건축물의 에너지성능을 다루는 정책과 열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정책이 따로 움직이지 않도록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명주 교수와의 일문일답. - 현재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에서 어떤 정책에 주목하고 있는가. ▲ 건축물이 실제로 사용하는 에너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일에 주목하고 있다. 건물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5210만톤(t)에서 2030년 3500만t, 2035년에는 2420만~2280만t까지 줄여야 한다. 17년 안에 절반 이상을 감축해야 하는 만큼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동안 건축물의 에너지성능을 다루는 정책과 열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정책은 서로 떨어져 있었다. 지금 전문위원회에서는 이 두 정책이 따로 움직이지 않도록 연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 현재 국회에서 청정열에너지 관련 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법 제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 청정열에너지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열에너지를 국가 에너지전환의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력은 장기계획과 통계, 시장과 지원제도가 비교적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열은 건축물과 산업, 지역난방 등 여러 분야에 흩어진 채 관리돼 왔다. 열에너지는 우리나라 최종에너지 소비의 약 48%를 차지한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열에너지에 관한 통계와 감축목표, 투자와 지원의 근거는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열은 전기와 달리 멀리 보내기 어렵다. 도시 안에서 버려지는 열이 있어도 주변에 어떤 열수요가 있는지, 열의 온도와 발생시간이 맞는지 알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다. 국가 차원의 계획뿐 아니라 지역별 열지도와 열에너지 계획이 필요하다. 청정열에너지법은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책임과 근거를 만드는 법이어야 한다. - 청정열에너지 사용을 의무화한다면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나. ▲ 청정열 공급의무는 필요하다. 다만 몇 %를 의무화할 것인지부터 정해서는 안 된다. 지역마다 이용할 수 있는 열원의 종류와 양이 다르고 열수요의 밀도와 열배관을 설치할 수 있는 여건도 다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너지사업자와 공공 열공급시설부터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신도시와 공공주택지구처럼 계획단계에서 열공급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사업도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존 지역에는 준비기간을 주고 지역별 열원과 수요를 조사한 뒤 적용해야 한다. - 의무비율을 정하지 않으면 보급이 따라올 수 있겠는가. ▲ 의무비율은 전국에 하나의 숫자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공통적인 최저기준을 두고 지역 여건에 따라 조정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유럽연합은 지역냉·난방에 사용되는 재생에너지와 폐열·냉열 비중을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2%포인트씩 확대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방향은 참고하되 먼저 실제 공급실적과 지역별 잠재량을 파악해 출발점을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환비용이 열요금에 그대로 반영돼 주민 부담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청정열 의무화는 공급량을 늘리는 제도인 동시에 지역 주민이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열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가 돼야 한다. - 정부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보나. ▲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는 매우 도전적이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350만대의 가스보일러를 350만대의 개별 히트펌프로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주택은 공동주택 비중이 높다. 특히 기존 고층 공동주택은 세대마다 실외기와 저장설비를 둘 공간이 부족하고 전력설비 용량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단지에서는 개별 설치보다 기계실에 중·대형 히트펌프와 축열조를 설치해 여러 세대에 열을 공급하거나 재생열을 이용하는 지역 열네트워크와 연결하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신축 공동주택은 설계할 때부터 히트펌프 위치와 전력용량, 배관과 저장공간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보급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정책 성과를 기기 대수로만 판단하면 실제 효과를 알기 어렵다. 몇 대를 설치했는지와 함께 얼마나 많은 열을 공급했고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보급 목표를 세우되 최종 성과는 감축량으로 평가해야 한다. - 기존 공동주택에 히트펌프를 대규모로 보급하려면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하나.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기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열의 양을 확인하는 것이다. 단열성능이 낮은 노후 공동주택에 큰 용량의 히트펌프부터 설치하면 초기비용과 전력사용량이 모두 늘어난다. 외피성능을 개선해 열소비량을 줄인 뒤 적정 용량을 산정해야 한다. 기존 공동주택은 세대별 설치 가능성만 살펴서도 안 된다. 단지의 변압기와 간선설비가 추가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겨울철 여러 세대의 히트펌프가 동시에 작동할 때 발생하는 최대전력도 검토해야 한다. - 히트펌프와 청정열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인가. ▲ 히트펌프의 경제성은 기기 가격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설치비를 지원받아도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우면 사용자는 가동을 줄이게 된다. 반대로 전기요금을 일률적으로 낮추면 겨울철 전력수요가 한꺼번에 증가할 수 있다. 초기 시장에서는 설치비 부담을 낮춰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보조금을 기기 구입비에만 집중하기보다 장기간 낮은 금리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더 지속적이다. - 전기요금을 히트펌프에 맞춰서 개편할 필요도 있는가. ▲ 전기요금은 히트펌프를 언제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이 많은 시간에는 히트펌프를 가동해 열을 저장하고 전력수요가 높은 시간에는 가동을 줄이면 전력망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이러한 운전에 요금 혜택이나 수요반응 보상을 제공하면 축열시설 활용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탄소배출권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히트펌프를 설치했다는 사실만으로 감축실적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화석연료 사용량이 실제 얼마나 줄었는지 측정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지원제도와 동일한 감축량을 중복 인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화력발전이 많아 히트펌프가 탄소중립 수단으로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현재의 전원구조에서도 히트펌프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히트펌프는 전기로 열을 직접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공기와 물, 땅속에 있는 열을 끌어와 필요한 곳으로 옮기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기 1단위를 사용해 약 2.5~4단위의 열을 공급할 수 있다. 이 정도 효율이라면 화석연료 발전이 남아 있는 전력으로 운전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개별 가스보일러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 국제에너지기구도 탄소집약도가 높은 전력으로 운전할 때조차 히트펌프가 가스보일러보다 온실가스를 최소 20%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감축효과는 더 커진다. - 물에 전기를 흘려 저항열로 물을 데우는 전극보일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 전극보일러는 역할이 다르다. 전기 1단위를 거의 1단위의 열로 바꾸기 때문에 같은 전력을 사용한다면 히트펌프보다 생산하는 열이 훨씬 적다. 대규모 전극보일러를 지역난방의 상시 열원으로 운영하면 전력수요와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아 출력을 제한해야 하는 시간에는 전극보일러가 유용할 수 있다. 남는 전기를 열로 바꿔 대형 축열조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면 전력계통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전극보일러는 잉여전력을 흡수하거나 피크수요에 대응하는 보완설비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 산업폐열이나 데이터센터 폐열 등 버려지는 열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 버려지는 열을 활용하려면 배관을 설치하기 전에 먼저 열지도를 그려야 한다. 어느 시설에서 몇 도의 열이 얼마나 발생하고 하루 중 언제 나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장과 발전소, 하수처리장, 소각시설, 데이터센터가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이를 국가와 지역의 열지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열은 전기처럼 먼 거리까지 보내기 어렵다. 데이터센터나 산업단지의 입지를 정할 때부터 주변에 공동주택과 병원, 공공시설처럼 열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요구하는 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기술과 제도가 자리 잡는 동안에는 익숙한 생활방식을 바꾸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 수고를 지금 우리가 감당한다면 다음 세대는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고도 따뜻하고 쾌적하게 사는 일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 일상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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