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와 글로벌 전력망 투자 확대에 힘입어 역대급 호조를 보이고 있는 국내 전선업계가 호황 청구서를 받아들기 시작했다. 재고자산과 매출채권이 최근 6개월 새 급격히 확대되며 '현금 부담'이 가중된 까닭이다. 업계의 현금전환 속도와 자금부담 완화 능력이 슈퍼사이클 속 성장의 질을 판단할 주요 지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 실적 좋았는데 늘어난 '재고'…구리 가격 등 영향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S전선과 대한전선 등 국내 주요 전선업체의 연결 기준 재고자산은 최근 6개월 동안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LS전선의 올 2분기 말 재고자산은 총 2조114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3463억원 대비 57.1% 급증했다. 전년 말(1조4566억원)과 비교해도 45.2% 증가한 수치로, 올 상반기 들어 증가폭이 가팔라진 흐름이다. 대한전선도 재고자산이 크게 늘었다. 2분기말 연결기준 재고자산은 1조1400억원으로 각각 전년동기(7156억원)·지난해 말(8563억원) 대비 59.3%·33.1%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재고자산의 급증은 판매 부진에 따른 재고 누적의 신호로 해석되는 반면, 이번 전선업계의 재고 증가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다. LS전선은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4조5232억원과 영업이익 2384억원을 올려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영업실적 기록을 경신했다. 대한전선도 매출 2조2820억원과 영업이익 1213억원을 벌어 최대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즉, 업황 슈퍼사이클에 기반한 수주·생산 확대에 대응해 원재료와 재공품 등 재고 확보가 늘어난 가운데, 주요 원재료인 구리 가격 상승에 따른 재고 평가액 증가까지 겹치면서 재고자산 증가폭이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구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각 기업의 재고자산 변동에 상당 수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LS전선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기준 전기동 매입(수입)가격은 톤(t)당 2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2% 증가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원재료 매입액 규모도 같은 기간 35% 뛴 2조9003억원으로 집계됐다. 대한전선 역시 이 기간 원재료 매입액이 27.5%(1조2873억원→1조6407억원) 뛰었다. ◇ '받을 돈'도 두 자릿수 증가...커지는 '괴리' 재고뿐 아니라 매출채권도 외형과 함께 불어났다.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더라도 실제 대금을 회수하기 전까지는 매출채권으로 남는 만큼, 외형 성장이 가팔라질수록 영업 과정에 묶이는 자금의 절대 규모도 커질 수 있다. 실제 LS전선의 올 2분기 말 연결기준 매출채권(유동)은 1조7939억원으로 지난해 말 1조4770억원 대비 21.5% 증가했다. 대한전선도 같은 기간 매출채권이 6137억원에서 7056억원으로 15% 늘었다. 매출채권 증가 자체가 대금 회수 지연이나 재무건전성 악화로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매출이 성장하면 정상적인 대금 회수기간을 유지하더라도 매출채권의 절대 규모는 함께 늘어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재고자산과 매출채권이 동시에 불어나면서 회계상 이익 증가와 실제 현금 유입 사이의 간극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 확대를 위해 원재료를 먼저 확보하는 데 현금이 투입되는 반면, 제품을 판매해 매출을 인식한 뒤에도 실제 대금을 회수하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고객으로부터 미리 받은 선수금·계약부채 등 영업성 부채는 이 같은 운전자본 부담을 일부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LS전선의 경우 2분기 말 연결기준 계약부채가 약 9328억원으로 지난해 말 9119억원보다 소폭 증가했고, 대한전선의 선수금·계약부채도 같은 기간 1913억원에서 2473억원으로 늘었다. 수주 확대에 따라 고객으로부터 먼저 유입된 자금이 재고·매출채권 증가에 따른 현금 소요를 일부 완충한 셈이다. 반면 매입채무는 양사 모두 감소하며 운전자본 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LS전선의 2분기 말 연결기준 매입채무는 6507억원으로 지난해 말 7184억원보다 9.4% 감소했고, 대한전선도 같은 기간 3922억원에서 3356억원으로 14.4% 줄었다. 결국 재고와 매출채권 증가에 따른 자금 소요가 선수금·계약부채 증가에 따른 완충 효과를 웃돈 데다 매입채무까지 감소하면서, 전반적인 운전자본 부담은 확대된 양상이다. ◇ 현금흐름, 대규모 순유출로...재무활동 '보완' 이 같은 운전자본 부담은 양사의 실제 현금흐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역대 최대 수준의 영업실적에도 재고와 매출채권 증가가 현금유출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회계상 이익이 실제 현금창출력으로 온전히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LS전선의 경우 올 상반기 영업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 변동이 9706억원 규모 현금유출로 나타났고, 이 중 재고자산과 매출채권이 각각 66.5%(6453억원)·26.3%(2550억원) 비중을 차지했다. 이 같은 변동은 현금 흐름을 크게 끌어내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7042억원 규모 순유출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영업활동현금흐름이 2982억원 규모로 순유입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한전선도 상반기 재고자산과 매출채권 증가가 각각 2651억원(63.0%)·622억원(14.8%) 규모의 현금 유출 요인으로 작용했다. 두 항목에서만 3273억원(77.8%)이 빠져나가면서 영업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 변동은 총 4207억원 규모 유출이 발생했다. 이에 영업활동현금흐름 순유출 규모도 지난해 상반기 680억원에서 올해 3180억원으로 확대됐다. 이런 가운데, LS전선과 대한전선 양사 모두 올 상반기 영업·투자활동에서 발생한 현금유출을 재무활동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보완하는 흐름도 강하게 포착된다. LS전선은 상반기 각각 영업활동현금흐름과 투자활동현금흐름에서 7042억원·1524억원 규모 순유출을 기록한 반면, 재무활동현금흐름은 전년 동기 순유출(387억원)에서 9080억원 규모로 유입 전환됐다. 대한전선도 영업·투자활동현금흐름이 모두 순유출(3180억원·182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재무활동현금흐름에서 3203억원이 유입돼 전년 동기 대비 현금유입 규모를 102.6% 늘렸다. ◇ “설비투자 해야 하는데"...현금전환·자금조달 '주목' 이처럼 역대급 호황기를 맞은 전선업계의 실적과 현금흐름이 엇갈린 방향성을 보이면서, 각 기업의 향후 재고자산·매출채권 현금전환 속도와 자금조달 부담 완화 능력은 성장의 질을 판단할 주요 관전포인트로 남게 될 전망이다. 운전자본 부담 심화를 유발하는 구리 가격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업계의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 역시 지속되고 있어서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해저케이블 공장을 건립 중인 LS전선은 2분기말 기준 생산능력과 품질·효율 개선을 목표로 국내외 종속회사를 포함해 올해 총 4797억원을 투입했다. 올해 총 예상투자액이 1조2881억원에 달하는만큼, 투자 계획을 이행하려면 하반기에도 8084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충남 당진에 해저케이블 2공장을 건설하는 등 생산능력 확대를 진행 중인 대한전선은 올해 예상 투자액 1313억원 중 상반기 238억원을 지출하는데 그쳐 연중 투입할 향후 투자액이 연간 계획 기준 1075억원 규모로 잔존해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기적으로 국내 업체들의 외형과 이익창출력은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대규모 설비투자와 전기동 가격 상승에 따른 운전자본 부담 등으로 차입 부담 확대가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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