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50년 무사고 하늘길 누비고 ‘기억의 자리’로…국립항공박물관 ‘대통령 전용기’ 야간 개장 가보니](http://www.ekn.kr/mnt/thum/202608/news-p.v1.20260816.a7145151186c40b782b7cce063b31ed9_T1.png)
한여름 밤,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김포국제공항 인근 항공기 엔진 형상의 국립항공박물관을 배경으로 웅장한 비행기 한 대가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1974년 우리나라가 대통령 전용기로 도입한 첫 번째 항공기이자 50여 년간 대한민국 공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운용된 'HS-748(기체 번호 1713)'이다. 국립항공박물관은 8월 11일 개막하는 특별전 '마지막 비행, 새로운 시작 - 대통령 전용기 HS-748'을 앞두고 지난 12일 저녁, 개관 6년 차 이래 처음으로 특별 야간 개장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야간 행사에는 175팀이 지원해 단 20팀(56명)만이 선정될 정도로 관람객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기자는 이 특별 여정에 동행해 대한민국 영공을 누빈 HS-748의 발자취와 영웅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이날 야외에서는 국토교통부 항공교통관제사 출신인 국립항공박물관 학예연구관이 김포공항과 활주로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 해설을 진행하며 행사의 깊이를 더했다. 그는 “이곳 김포공항 부지는 1950년대 6·25 전쟁 때부터 미군이 군용 비행장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주변에 황토색 지붕으로 된 공군 군사 우체국(APO) 건물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김포공항에는 2개의 활주로가 있는데, 박물관과 가까운 구 활주로는 길이 3600m에 폭 45m인 반면 건너편 신 활주로는 길이 3200m, 폭 60m로 짧고 더 넓다"며 “항공기가 발달하면서 이착륙 거리는 짧아지는데 비행기 동체는 점차 넓어지는 경향이 있어 이를 수용하기 위해 새로 만들어지는 활주로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전문적인 관제 지식을 곁들였다. ◇ 국가의 품격을 더한 '공군 1호기'와 무사고의 심장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 “모든 임무를 마치고 기억의 자리로 오다"라는 문구가 이번 전시의 의미를 묵직하게 전달했다. 우리나라 첫 대통령 전용기는 1950년대 미군으로부터 인수한 C-47이었으나 1970년대 귀빈 공수 임무 전담 비행대대가 창설되며 국가의 품격을 더할 수 있는 전용기가 필요해졌다. 이에 1974년 영국 왕실 전용기로도 사용되며 성능과 안정성을 인정받은 호커 시들리(Hawker Siddeley)의 HS-748이 도입됐다. 본격적인 전시에 앞서 최은정 국립항공박물관 도슨트는 “초창기 모델인 C-47은 앞쪽 하단에 무궁화 그림이 있어 '무궁화호' 또는 '루머'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며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는 과거처럼 직접 구입하지 않고 대한항공의 기재를 임차해 운용하고 반납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역사적 배경을 짚었다. 전시장 제원표와 야외 안내판에 표기된 HS-748의 제원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 '호커 시들리'가 생산한 쌍발 프로펠러 여객기인 HS-748은 길이 20.42m(67ft), 날개 길이(폭) 30.02m(안내판 기준 30.2m, 98ft 6in), 높이 7.57m(24ft 10in)이며 기본 무게(Basic Empty Weight)는 1만2882kg이다. 롤스로이스 다트 엔진 2기를 탑재해 417km/h(225kt)의 순항 속도를 낸다. 원래 52인승으로 설계됐으나 대통령 전용기로 도입되면서 26명만 탑승할 수 있도록 개조됐다. 1974년 도입부터 1985년까지 중·단거리 대통령 전용기로 운용됐고 이후 공군 수송 임무를 수행하다 2024년 12월 31일부로 공식 퇴역했다. 전시를 안내한 최은정 국립항공박물관 도슨트는 “HS-748은 1985년까지 11년간 대통령 전용기로서 'KOREA AIR FORCE 001' 콜사인으로 불리며 임무를 수행했고, 이후 2024년 공식 퇴역할 때까지 공군에서 정부 수송기로 활약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비행기의 심장인 '롤스로이스 다트(Rolls-Royce Dart) 터보 프롭 엔진' 실물이었다. 프로펠러 길이가 4m가 넘는 이 엔진은 짧은 활주로에서도 안정적인 이착륙을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최 도슨트는 “조종사와 정비사 모두 입을 모아 엔진의 훌륭함을 칭찬했다. 날개가 길어 만에 하나 엔진에 문제가 생겨도 글라이딩 착륙이 가능할 만큼 튼튼하고 뛰어난 기체였다"고 부연했다. ◇ “정비사의 자랑·완벽한 임무"…보이지 않는 영웅들의 헌신 전시는 '비행기와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통해 50년 무사고 비행을 이끈 조종사외 정비사, 객실 승무원의 헌신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최 도슨트는 비행기 정비 방식의 원리를 설명하며 “비행기는 튼튼하면서도 하늘에 무사히 떠야 하기 때문에 견고하고 가벼운 조립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거운 용접이나 접착제 대신 '리벳(rivet)'을 이용해 촘촘히 기체를 조립하는 원리로 정비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50년 무사고 비행, 정비사의 자랑' 코너에는 우리나라 공군에 도입된 유일한 영국제 항공기였기에 기체 관련 설명서부터 시작해 정비 교본이 모두 영국식 영어로 작성돼 있어 선배들의 노트로 밤낮없이 공부해야 했던 정비사들의 고충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또한 '안전한 비행, 완벽한 임무'를 위해 갤리에 구비된 핫팟과 오븐으로 정성껏 다과를 준비했던 승무원들의 일화도 돋보였다. 이들은 최종 선발 이후 기내 안전 교육은 물론 비즈니스클래스 객실 서비스 교육까지 철저히 받은 뒤 임무에 투입됐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복장과 기내 물품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최 도슨트는 조종 예복을 소개하며 “현재 1호기 기체는 민항사 기체를 빌려 쓰기에 대한항공의 정복을 입지만, 그 외 고정익이나 헬기 임무를 수행하는 공군 조종사들은 전시된 남색 조종 예복(특수복)을 입고 비행에 나선다"고 전했다. 또한 베이지색 승무원복에 대해 “1960년대 초기에는 여자 승무원만 있었고 치마나 원피스를 주로 입었으나, 2010년대부터 남녀 승무원이 모두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전시된 의상은 헬기 임무나 추운 날씨에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여자 승무원에게 새로 도입된 바지 정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봉황기가 새겨진 기내 서비스 식기를 가리키며 “이런 기내 식기에 밥을 먹으면 한 그릇이 얼마나 예뻤을까 상상하게 된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조종사 코너에서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당시 수송 임무를 맡았던 조종사가 훗날 교황청으로부터 전달받은 흑백 사진이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보안상 군 공항에서 사진 한 장 남기기 어려웠던 시절, 철책을 함께한 자신의 '애기(愛機·아끼고 사랑하는 비행기)'와의 잊지 못할 순간을 간직한 귀중한 사료였다. ◇ “대통령이 이렇게 좁은 곳에?"…찜통 더위 날린 관람객들의 환호 이날 행사의 백미는 야외 전시장에 위치한 HS-748 실물 기체 내부 관람이었다. 보존과 방역상의 이유로 평소 굳게 닫혀 있던 기체의 문이 한시적으로 열리자 관람객들은 신발에 덧신을 씌우고 조심스레 트랩(계단)을 올랐다. 본래 52인승으로 설계된 내부는 26인승 맞춤형 공간으로 개조돼 있었다. 프로펠러 항공기 특성상 소음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기체 맨 뒤쪽에는 넓은 좌석과 테이블이 갖춰진 '하늘 위 집무실(대통령 좌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기내 냉방 시설이 없어 찜통 더위가 이어졌지만 관람객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설렘이 가득했다. 가족과 함께 온 관람객 정명옥 씨는 “뉴스에서만 보던 전용기를 실제로 보니 요즘 여객기보다 크기가 아담해 신기했다"며 “노을 지는 활주로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 다른 국립박물관들처럼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야간 개장을 정례화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아들 김진혁 군 역시 “진짜 비행기인가 싶어 가까이 가봤다"며 눈을 반짝였다. '항공 덕후' 아들 시현 군과 함께 온 신윤복 씨는 “비행기의 역사를 훑어보고 실물을 직접 볼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딸 윤서 양과 함께 방문한 윤세진 씨는 “대통령이 어떻게 이렇게 좁은 곳을 탔을까 상상해보는 것이 신기했다. 여름 방학을 맞아 아이에게 평소 볼 수 없는 전용기를 보여줄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프로펠러 여객기가 생소하고 신기했다는 관람객 임대환 씨의 긍정적인 평가도 이어졌다. ◇ '마지막 비행,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24년 12월 31일, 하늘에서의 모든 임무를 마친 HS-748은 국립항공박물관으로 이전하기 위한 대공사를 거쳤다. 안전한 이송을 위해 엔진·프로펠러·날개·동체를 모두 분리한 뒤 공군의 도움과 전문가·보존 과학자들의 손길을 통해 비행기는 지금의 자리에서 새롭게 재조립됐다. 그간 HS-748이 공군에서 무사히 50여 년간 임무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천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린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탁월한 성능과 사람들의 헌신이 빚어낸 이 항공 문화 유산은 이제 퇴역 기체라는 꼬리표를 떼고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새로운 시작(At the Last Flight)'을 맞이하고 있다. 50여 년 대한민국 영공의 품격을 지켜낸 HS-748 특별전은 국립항공박물관 3층 기획 전시실과 야외 공간에서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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