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 특집 ②] ‘메이드 인 코리아’는 왜 사라졌나…중국에 내준 에스컬레이터](http://www.ekn.kr/mnt/thum/202608/news-t.v1.20260825.8219958fe9894cdba200552566c90b4f_T1.png)
서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대 중 한 대 이상이 설치된 지 15년을 넘겼지만 노후 설비를 제때 고치고 교체하기 위한 국내 제조기반은 이미 10여 년 전 사실상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중국산이다. 안전인증제도가 도입된 2019년 이후 국내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약 6600대 가운데 99%가 중국산으로 추정될 정도다. 완제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스컬레이터 한 대에 들어가는 80~100개 안팎의 부품 가운데 90% 이상을 중국산에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안전인증 대상 6개 부품 가운데 국산 비율도 33.1%에 그쳤고 제품에 따라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서울 지하철 1881대, 생산국별 현황도 별도 통계 없어 국내 최대 도시철도 운영기관인 서울교통공사의 에스컬레이터 현황에서도 현재 시장구조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에스컬레이터 1881대의 제조사와 모델명, 생산국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공사는 호선과 역명, 승강기번호, 설치일 등의 설비 현황은 공개했지만 생산국에 대해서는 별도 취합·가공이 필요한 정보라며 정보부존재 결정을 내렸다. 제조사와 모델은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서 승강기번호를 개별 입력해 확인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중국산 비중을 별도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설비의 생산국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시설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가 어느 국가에서 생산됐고 제조사별 공급구조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통계체계는 갖춰져 있지 않은 셈이다. 전국 시장을 보면 중국 의존도는 보다 뚜렷하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는 2019년 이후 설치 제품의 사실상 대부분이 중국산으로 추정됐다. ◇ 중국산 가격 공세…현대엘리베이터도 결국 생산기지 이전 처음부터 국내 에스컬레이터 제조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비롯한 국내 승강기 업체들은 과거 국내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직접 생산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생산능력과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제품이 빠르게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중국산 에스컬레이터 가격이 국산보다 30~40%가량 저렴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가격 경쟁이 중요한 공공시장에서 국내 생산업체가 중국의 대규모 생산기지와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다. 국내 대형 승강기 업체 가운데 마지막까지 에스컬레이터 생산기반을 유지했던 현대엘리베이터도 결국 국내 생산에서 손을 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4년 에스컬레이터 국내 생산기반을 중국법인으로 이전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기술과 브랜드로 판매되는 제품도 이후 중국 생산체계를 활용하게 됐다. 회사는 현재도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무빙워크 등의 설치와 유지보수 사업을 하고 있지만 국내 에스컬레이터 완제품 생산기반은 사라졌다. 단순히 공장 하나가 없어진 것에 그치지 않았다. 생산물량이 사라지자 관련 부품업체와 숙련 기술인력까지 함께 줄어들면서 국내 공급망 전체가 약화됐다. ◇ 엘리베이터와 달랐던 공공시장…대기업 참여도 제약 에스컬레이터 산업이 쇠퇴한 배경에는 공공조달 구조도 있다. 지하철과 공공시설에서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함께 발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공공조달 참여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대기업이라도 엘리베이터와 묶인 사업에서는 참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수요 자체가 엘리베이터보다 작은 것도 약점이다. 에스컬레이터는 설치 장소의 층고와 길이, 경사도 등에 따라 제품 사양이 달라 대량 표준생산에도 한계가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국내 생산시설과 전문인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반면 세계 최대 승강기 시장 가운데 하나인 중국에서는 대규모 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국내 업체 입장에서도 중국 생산 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 자체 생산라인을 유지하는 것보다 경제적인 선택이 됐다. 가격 경쟁에서 시작된 생산기지 이전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는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만들고 싶어도 완제품부터 부품, 기술인력까지 공급망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완제품 99%에 부품 90% 이상…문제는 '중국산' 자체가 아니다 중국산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제품의 안전성과 직접 연결할 순 없다. 제조국만으로 에스컬레이터의 품질이나 고장 가능성을 판단할 수 없으며 설치연도와 이용량, 유지보수 상태, 부품 교체 주기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특정 국가 제품의 품질보다는 공급망이 한 국가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2023년 국정감사 당시 공개된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설치 후 20년을 넘긴 에스컬레이터는 당시 7975대에 달했다. 그러나 수입업체나 공단이 충분한 여유 부품을 보유하지 않아 필요한 부품을 즉시 공급하기 어려운 문제가 지적됐다. 승강기안전관리법상 승강기 또는 중요 부품의 제조·수입업자는 유지관리용 부품 제공 요청을 받을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정해진 기간 안에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국정감사에서는 실제 현장에서 해외 부품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례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서울 지하철에서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의 복구에 수일에서 수주가 걸리는 현상 역시 이러한 공급망 문제와 무관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서울교통공사는 이번 정보공개청구에서 설비별 고장·복구 현황과 부품 조달기간 등을 별도로 취합한 자료는 제공하지 않아 제조국과 복구기간의 상관관계를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 10여년 만에 다시 '한국산' 추진 10여 년간 끊겼던 국내 에스컬레이터 생산기반을 다시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현대엘리베이터의 100% 자회사 현대엘리베이터서비스는 국내 중소 승강기 업체들과 함께 2024년 9월 경남 거창에 합작법인 'K-에스컬레이터'를 출범시켰다. 2014년 국내 에스컬레이터 생산을 중단한 지 10년 만이다. 거창은 승강기안전기술원과 한국승강기대학교, 승강기 전문기업들이 모여 있는 국내 최대 승강기 산업 집적지다. K-에스컬레이터는 이곳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동시에 국내 중소기업들과 부품 공동개발과 국산화를 추진한다. 초기에는 공공입찰 시장과 노후 에스컬레이터 교체(MOD)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향후 해외시장까지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거창군의 투자지원 검토자료에 따르면, 사업 초기 계획은 58억6000만원을 투자해 연간 300대, 월 25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연간 생산액은 210억원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10년 전 가격 경쟁에서 밀려 국내 생산을 접었던 현대엘리베이터가 이번에는 직접 대규모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대신 자회사와 중소기업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돌아온다면 다시 국내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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