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국내 자동차 연구개발 혁신의 현주소를 찾았다.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다. 1995년 문을 연 이곳은 최근 2년 동안 주요 연구시설에 대한 '리모델링'을 마쳤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연구개발 산실답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연구소 정문에서 출입 승인을 받고도 굽이진 도로를 3분 정도 달려야 비로소 연구단지에 다다른다. 도로 옆으로 수소 충전소와 검은색 위장막으로 가려진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A, B, C 연구단지라고 쓰여진 파란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면, 드디어 연구동이 자리하고 있다. 남양기술연구소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혁신을 넘어, 하드웨어 기술력과 완성차 품질까지 아우르는 기술 역량으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해 가고 있다"면서 “어떤 자동차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끝없는 시험과 개선, 그리고 검증을 통해 완성될 뿐"이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차세대 개방형 제어기 검증실, 노바랩(Nova-Lab)이다. 2,700㎡의 넓은 공간에 총 14대의 '와이어카(Wire-car)'로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검증셀이 늘어서 있다. 입구 벽면에 부착된 모니터를 통해 와이어카와 검증셀의 작동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1톤 트럭 길이의 와이어카는 일반적인 자동차의 모습이 아니다. 얼핏 보면 '개방형'이라는 말 그대로 차체는 없고 자동차 시트만 눈에 보인다. 2019년부터 운영 중인 와이어카는 시험차(Prototype) 제작 전 차량의 정상 작동 여부를 테스트하는 용도로 개발됐다. 헤드램프, 사이드미러 등 대부분의 부품이 실제 차처럼 갖춰져 있다. 수 많은 전선이 제어기와 부품들에 연결돼 있어 실제 운전하면서 작동하는 모든 기능을 시험한다. 완성차와는 달리 실물 제어기를 탈착할 수 있어 회로 분석이 수월하고, 차량의 기능과 통신 상태도 빠르고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정차 테스트 중에는 헤드라이트나 공조장치를 켜거나, 시트를 움직일 수 있고,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지도 확인 가능하다. 이 때 모든 데이터는 손바닥만한 통신분석장비를 거쳐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며 실시간으로 저장된다. 주행 테스트를 할 때는 와이어카 옆 세개의 모니터에 가상의 주행 시나리오 영상이 함께 표시된다. 전방 충돌 방지 보조 (FCA) 테스트를 진행하자, 실제 상황처럼 짧고 높은 경고음이 들리기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와이어카를 이용하면 차량 성능 개선과 보완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서 “특히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를 개발하는데 효율적"이라고 했다. 노바랩을 나와 도보로 3분 정도 걸으면 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있는 파이롯트 센터에 도착한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고객을 위한 타협하지 않는 완벽함을 추구'라는 문구가 크게 걸려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실제 차량이 제작돼 실험 주행 도로를 달리기 전까지, 이곳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스튜디오의 가상 환경에서 수백번 테스트 주행이 진행된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270도 화각으로 펼쳐진 대형 곡면 스크린과 그 앞의 시뮬레이터 차량이다. 차체는 매트한 질감의 검정색 카본으로 만들었다. 실제 차량의 3분의 2 정도 길이로, 차량 뒷문 손잡이 직전까지의 부분을 실제 차량과 똑같이 제작했다. 최대한 실제 주행과 가까운 느낌을 주기 위해 차량 내부도 제네시스 G80 차량의 스티어링과 악셀 등 실제 인테리어를 사용했다. 가상 주행이 시작되면, 도로 표지판과 방지턱 등 실제 주행 환경이 구현된 시뮬레이션 영상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운전석에 탑승한 연구원이 악셀을 밟으면 영상 속 도로도 빠르게 흘러가고, 방지턱을 넘을 때면 덜컹하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동시에 차량 전체가 하단 레일을 따라 앞뒤양옆으로 바쁘게 오가고, 차량 바로 아래에 있는 원형 바닥판도 분주하게 돌아간다. 전후, 좌우, 상하 직선 운동과 롤(Roll), 피치(Pitch), 요(Yaw)로 구성된 6자 유도 모션 시스템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룸 밖에서는 연구원들이 모니터를 통해 운전자 시점에서의 차량 전방과 후방, 내부 운전석 상황 등을 지켜보고 있다. 연구원들은 차량의 움직임을 인가하면서, 도로 데이터와 주행 측정값을 기록한다. 실제 주행도로를 mm단위로 세밀하게 스캔해 구성한 도로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시뮬레이터를 구동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발생한다. 남양연구소에서는 세계 최초로 차량 주변의 데이터만 최소화해 전송하는 '지형 서버(Terrain Server)' 방식을 적용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차량 부품을 제조하는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dvanced Mobility Solution Center, 이하 AMSC)를 찾았다. 남양연구소에서는 금속 거푸집 없이 부품 설계 데이터만 가지고도 적층 제조 기술, 즉 3D 프린팅을 활용해 부품을 제작한다. 적층제조솔루션팀 소속 전승엽 책임 매니저는 “설계 형상에 맞춰 적층되는 높이를 실시간으로 보정하기 때문에 원하는 형상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AMSC 4층에는 플라스틱 소재의 폴리머 분말을 녹여서 부품을 출력하는 폴리머 분말소결셀 설비가 갖춰져 있다. 장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에 폴리머 분말소결셀 장비 2대가 나란히 서있고, 곳곳에서 장비가 작동하는 진동음이 들렸다. 폴리머 분말소결셀 장비는 정사각형 형태로 양팔을 벌린 길이보다 더 폭이 넓다. 내부에 분말이 도포될 때는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작동하는 내내 주황색 적외선 불빛이 번쩍이고 초록색 상태표시등이 깜빡였다. 이렇게 생산한 부품들은 시험 검증용이나 헤리티지 모델 부품 복원용 등으로 쓰인다. 같은 건물 1층에는 차량 부품의 치수를 측정, 분석하는 디지털 측정 센터(DMC)가 자리하고 있다. 단순히 부품이나 완성차의 치수를 디지털 방식으로 측정하는 걸 넘어서서, 차량 개발부터 양산 직전 단계까지 발생하는 품질 편차나 조립의 정밀도까지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한다. 파이롯트품질검증팀 하재민 파트장은 “DMC의 목표는 현대차그룹 전체의 디지털 측정 역량을 한 단계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했다. 센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차량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바디 스트럭쳐(Body Structure)들이 여러개 길게 늘어서 있다. 각 바디 스트럭쳐 양 옆으로는 3차원 측정장비 CMM(Coordinate Measuring Machine)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천장에 닿을 듯 높은 세로 축이 앞뒤로 이동하고, 가로 측정 축이 매달린 채 스트럭쳐 곳곳에 접촉한다. 가로축 맨 끝에는 빨대 굵기만한 금속 센서 칩이 달려있다. 이렇게 스트럭쳐 하나 당 1000개 포인트의 치수를 정밀 측정할 수 있다. SDV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자동차는 더 이상 하드웨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는 검증 과정이 오늘날 자동차의 경쟁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남양기술연구소는 미래차를 개발하는 공간인 동시에 미래차 개발 방식을 바꾸는 공간이었다. 실차를 만들기 전 가상공간에서 먼저 달리고, 데이터로 품질을 검증하며,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기술로 개발 과정을 끊임없이 고도화하고 있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