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방정식 上] ‘가성비·속도전’ 약발 다한 ‘K-방산 수출 1.0’](http://www.ekn.kr/mnt/thum/202607/news-p.v1.20260709.3fb6d4cb7ee541a1b46e0b5b6fee41ab_T1.jpg)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비 경쟁 심화로 전 세계 국방 지출이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이하 K-방산)은 2022년 이후 폴란드를 비롯한 주요국에서 대규모 수주 실적을 기록하며 외형적 팽창을 이뤘다. 증권업계와 관련 기관 지표를 종합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산업(KAI)·LIG D&A 등 국내 주요 방산 4사의 올해 합산 매출은 48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초기 K-방산의 수출 실적을 견인한 핵심 요소는 활성화된 양산 라인을 바탕으로 한 '신속한 납기'와 경쟁국 대비 우수한 '가격 대비 성능'이었다. 안보 위협에 직면해 단기적인 전력 공백을 우선적으로 메워야 했던 일부 국가들의 긴급 소요(UOR, Urgent Operational Requirement)와 K-방산의 제조 공급망 우위가 부합한 결과다. 그러나 각국이 단기 소요를 어느 정도 충족하고, 향후 30~50년을 운용해야 하는 해양 플랫폼·차세대 기갑 등 초대형 전략 무기체계 획득 사업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기존의 수출 공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도입국의 요구 조건이 개별 무기체계의 하드웨어 제원 평가를 넘어 기존 안보 동맹망과의 상호 운용성, 장기적인 군수 생태계 편입, 그리고 도입국의 거시 경제적 산업 인프라 구축으로 고도화돼서다. 해상 작전 환경, 특히 잠수함 운용은 고도의 은밀성이 요구되며 고립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도입 시점의 플랫폼 스펙보다 수명 주기 전반에 걸친 동맹국 간의 수중 데이터 연동과 기항지에서의 부품 호환, 연합 대잠전 수행 능력이 사업자 선정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 총사업비 60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의 우선 협상 대상자 미선정 사례는 이러한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으로 이뤄진 '원팀 코리아'는 태평양 무기항 횡단을 통해 원양 작전 능력이 실증된 3600톤급 장보고-III 배치(Batch)-II(도산 안창호급) 모델을 제안했다. 반면 캐나다 국방부가 1순위로 고려한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의 '타입 212CD'는 현재 기본 설계 단계에 머물러 있는 플랫폼이다. 실증된 자산이 도면 상의 자산에 밀린 결정적 요인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체계 내에서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확보에 있다. 독일은 전 세계 20여 개국에 잠수함을 공급하며 북해와 대서양 전반에 방대한 유지·보수·운영(MRO) 공급망과 전술 데이터 베이스를 선점하고 있다. 캐나다 군 당국 입장에서는 독립적 규격의 우수한 플랫폼을 단독 도입해 독자적인 정비망을 구축하는 것보다 기존 NATO 회원국들과 부품을 상호 융통하고 작전 지휘망을 원활히 연동할 수 있는 '연합 군수 생태계 편입'을 전략적 운용 리스크 최소화 방안으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기존 방산 시스템에 종속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 제조업 역량을 상쇄한 것이다. 총 7조4000억 원 규모의 폴란드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오르카 프로젝트) 역시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폴란드는 앞서 지상 전력 부문에서 한국산 현대로템 K-2 전차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를 대규모로 채택했지만, 해상 전력 사업에서는 인접국인 스웨덴 사브(Saab)를 우선 순위 파트너로 선정했다. 이는 전장 환경의 지리적 특수성과 직결된다. 폴란드의 핵심 해상 방어 구역인 발트해는 수심이 얕고 염도가 균일하지 않아 러시아 발트 함대 견제를 위한 역내 국가 간의 밀접한 전술 공유가 필수적이다. 최근 스웨덴이 NATO에 공식 합류함에 따라 발트해의 지정학적 구도가 재편됐고, 폴란드는 물리적 거리가 먼 한국의 플랫폼 대신 수십 년간 발트해 해상 네트워크를 주도해 온 스웨덴과의 직접적인 전력 통합을 안보적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상 무기의 대규모 도입 이력이 타 영역의 무기 체계 획득으로 자동 승계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정학적 연대가 해양 전력 획득의 변수라면 지상 무기체계 부문에서는 유럽연합(EU) 중심의 역내 방산 경제 보호주의가 실질적인 비관세 진입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보병 전투 장갑차 '레드백(Redback)'이 탈락한 루마니아 장갑차 사업(5조 원, 246대)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다. 레드백은 앞서 호주 육군 차세대 장갑차 사업에서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Lynx) KF41'을 기술·성능 평가에서 앞서며 최종 선정된 바 있다. 루마니아 수주전에서는 라인메탈의 링스가 최종 낙찰자가 됐다. 국방·획득 전문가들은 이 결과의 원인을 무기의 기계적 성능 격차가 아닌 EU 특유의 자본 조달 구조와 자국 산업 내재화 규제에서 찾고 있다. 우선 자금 조달 구조에 따른 배타성이 거론된다. 루마니아는 이번 사업 전체 물량 중 94%에 해당하는 232대의 구매 자금을 EU의 '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기금을 통한 저리 대출로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SAFE는 유럽 내 방위산업 기반(EDTIB) 강화와 회원국 간 무기체계 공동 구매를 장려하기 위해 조성된 자본이다. 역내 자금을 활용해 무기를 도입하는 구조상 비(非)유럽권 국가의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재정 운영의 목적성 및 EU 정책적 타당성 측면에서 구조적인 불이익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고강도 현지 생산·밸류체인 통합 요구도 제기된다. 루마니아 정부는 기술 이전(ToT) 외에도 자국 내 메디아스(Mediaș) 공장에서 전체 장갑차 물량의 70~80%를 조립·생산하고, 핵심 부품 공급망과 유지보수 체계를 현지 산업과 100% 통합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라인메탈은 일찍이 헝가리 등 동유럽 거점에 궤도형 장갑차 생산 라인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며 역내 방산 공급망에 융합돼 있어 이와 같은 요구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했다. 이는 국방 예산을 자국의 제조업 고용 창출과 산업 고도화를 위한 경제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동유럽 국가들의 최근 획득 경향을 반영하며 결과적으로 외부 국가의 진입을 차단하는 산업적 보호막 역할을 수행했다. 캐나다·폴란드·루마니아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글로벌 주요 방산 시장의 획득 기준이 단품 위주의 'B2B(기업 간 거래) 제조·납품' 방식에서 이탈했다는 점이다. 무기체계의 제원과 단가 비교단계를 넘어 ▲대상국의 거시 경제 파급 효과 ▲장기 군수 조달 안정성 보장 ▲역내 안보 동맹망으로의 완전한 편입 여부가 사업의 최종 승패를 가르는 결정 변수로 격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K-방산의 외형적 성장은 유의미한 경제적 지표이나 현재의 양적 팽창을 넘어 북미 및 서북유럽 등 방산 선진국이 주도하는 주력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K-방산 1.0' 모델의 구조적 한계를 객관적으로 진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입국의 방위산업 생태계에 자본과 기술을 직접 투자하는 전면적 현지화 역량, 대규모 국방 예산의 재정적 부담을 대체할 수 있는 G2G 기반의 금융(차관·대출) 지원 패키지, 수명 주기를 책임지는 장기 MRO 네트워크 구축 역량이 결합된 '통합 국방 솔루션 제공자(System Integrator)'로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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