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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해봤니?] 홍삼·한우는 잠시 잊자…‘취향 저격’ 선물 뜬다

추석 선물 하면 떠오르는 공식이 있다. 부모님에게는 홍삼과 건강기능식품, 거래처에는 한우와 과일, 아이에게는 용돈이다. 올해는 조금 다르게 골라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머니에게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뷰티 디바이스를 선물하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성인용 레고를 건넬 수 있다. 신혼부부에게 커피머신, 시험을 앞둔 조카에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주는 선택지도 있다. 선물의 가격보다 '누구에게 주느냐'가 중요해졌다. 받는 사람의 나이와 취미, 생활방식을 한 번 더 생각하면 3만원으로도 센스 있는 선물을 찾을 수 있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100만원 안팎의 특별한 제품까지 선택지가 넓어진다. 올해 추석에는 '명절용 선물'을 고르기보다 평소 그 사람이 갖고 싶었던 물건을 찾아보자. ◇ 부모님에게 선물하기…홍삼 대신 '젊어지는 시간'을 부모님 선물은 가장 어렵다. 이미 웬만한 물건은 갖추고 있는 데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건강기능식품이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통했지만 올해는 선택지를 뷰티까지 넓혀볼 만하다. 집에서 피부를 관리하는 홈 뷰티 디바이스 시장이 커지면서 20~30대가 사용하던 제품을 부모 세대에게 선물하기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에이피알의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이 대표적이다. 현재 공식몰에서는 '부스터 프로 X2'를 한가위 선물 제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회원가는 35만9000원, 최적 할인가 기준 34만9000원이다. '부스터 글로우'는 회원가 24만9000원 수준이다. 비교적 부담을 낮추고 싶다면 '부스터 프로 미니 플러스'도 있다. 공식몰 회원가는 12만9000원이다. 어머니에게 화장품을 사드릴 때마다 “뭘 발라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을 들었다면 화장품 한 세트 대신 매일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고르는 방식이다. 피부 상태와 사용법을 따져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은 챙겨야 한다. 아버지가 자동차나 기계 조립을 좋아한다면 방향을 완전히 틀어도 된다. '장난감'이 의외의 효도 선물이 될 수 있다. 레고는 공식 쇼핑몰에서 성인을 별도의 선물 대상으로 분류한다. 자동차와 F1, 건축물, 예술작품 등을 조립하는 고난도 제품이 상당수다. F1을 좋아하는 아버지라면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RB20 F1 레이스 카'가 31만9900원이다. 빈티지 자동차 취향이라면 '람보르기니 쿤타치 5000 콰트로발보레'가 23만9900원이다. 예산 상한선을 풀면 '어른이 장난감'의 세계는 더 넓어진다. 레고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만2060개 브릭으로 구성된 18세 이상 제품으로 가격이 100만원을 넘긴다. 추석 선물 한 번으로 몇 달 동안 부모님의 새로운 취미가 생길 수도 있다. ◇ 2030세대에게 선물하기…백화점 대신 '성수동'을 포장한다 20~30대에게는 비싼 것보다 '내 취향을 알아줬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성수동이 힌트가 된다.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패션과 뷰티, F&B 브랜드가 모이고 팝업스토어가 끊임없이 문을 여는 이곳은 젊은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다음달 열리는 '크리에이티브X성수'만 해도 게임·공연·패션·F&B·뷰티 등 13개 분야가 성수동 전역을 채운다. 선물도 이런 방식으로 고를 수 있다. 유명 브랜드 하나를 고르기보다 작은 취향을 묶어 하나의 '성수 박스'를 만드는 식이다. 좋아하는 로스터리의 원두, 베이커리의 구움과자, 작은 향 제품이나 라이프스타일 소품을 직접 골라 포장하면 된다. 3만~5만원이면 커피와 디저트를 묶은 작은 선물이 가능하다. 10만원대로 올라가면 향수나 패션 소품을 더할 수 있다. 선물하는 사람이 직접 골랐다는 이야기가 생긴다는 점도 장점이다. '동네 빵집'을 선물하는 방법도 있다. 명절마다 등장하는 대형 제과업체 선물세트 대신 평소 줄을 서서 먹던 베이커리의 빵이나 구움과자를 골라 보내는 식이다. 장거리 배송 여부와 제품별 보관 방법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명절 선물과 접점을 만들고 싶다면 차도 재미있다. 오설록은 올해 말차 리추얼 기프트와 티푸드를 결합한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말차 리추얼 기프트는 정상가 4만6500원, 티 에디션 스페셜은 11만원이다. 익숙한 '차 선물'을 요즘 소비자가 좋아하는 말차 문화와 연결한 셈이다. ◇ 신혼부부에게 선물하기…그릇 대신 '둘이 매일 쓰는 물건' 신혼집 집들이 선물의 단골은 그릇과 냄비, 수건이다. 추석에는 한 단계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기준은 간단하다. 두 사람이 함께 자주 쓰지만 자기 돈으로 사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물건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부부라면 캡슐 커피머신이나 홈카페 용품이 후보가 된다. 10만원 안팎의 작은 머신부터 우유 스팀 기능을 갖춘 수십만원대 제품까지 예산에 맞춰 고를 수 있다. 직접 원두를 내려 마시는 부부에게는 그라인더나 드립 세트를 고르는 편이 낫다. 청소를 싫어하는 부부에게는 선물의 규모를 키워 로봇청소기를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제품을 갖고 있다면 무선청소기나 음식물처리기,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고가 제품을 고를 때는 '깜짝 선물'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신혼집은 공간이 제한적이고 이미 마련한 혼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50만~100만원짜리 가전은 받을 사람에게 원하는 제품을 물어보는 게 센스다. 작은 선물도 가능하다. 예쁜 와인잔이나 커피잔, 테이블 조명, 디퓨저처럼 집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제품은 3만~10만원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신혼부부에게는 명절 분위기를 내는 물건보다 명절이 끝난 뒤에도 둘이 계속 쓰는 물건이 오래 남는다. ◇ 조카에게 선물하기…“몇 살이야?"부터 물어보자 아이 선물은 '장난감'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 어렵다. 세 살 아이와 열 살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은 완전히 다르다. 미취학 아동이라면 연령 표시부터 살펴야 한다. 레고 듀플로는 18개월 이상부터 제품군이 나뉜다. '구급차와 운전사'는 2세 이상, 2만9900원이다. '디럭스 브릭 박스'는 18개월 이상, 7만4900원이다. '인터랙티브 기차 세트'는 3세 이상으로 18만9900원이다. 초등학생부터는 '요즘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같은 레고라도 자동차와 마인크래프트, 마블, 해리포터 등 취향에 따라 반응이 갈린다. 현재 레고 공식몰에는 3만원대 제품부터 10만원을 넘는 제품까지 연령별 선택지가 있다. 큰맘 먹고 '삼촌·이모 찬스'를 쓴다면 게임기도 후보가 된다. 한국닌텐도가 안내하는 닌텐도 스위치2의 희망소비자가격은 75만8000원이다. 올해 7월 나온 다른 본체 구성은 82만8000원이다. 100만원을 봉투에 넣어주는 것과 70만~80만원짜리 게임기를 사주는 것은 아이에게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부모에게 먼저 물어보는 과정은 필수다. 연령에 맞지 않는 완구나 게임을 덜컥 사주면 아이에게는 최고의 선물, 부모에게는 최악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 수험생에게 선물하기…엿 대신 '집중'과 '수능 이후'를 수험생에게 찹쌀떡과 엿을 선물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붙으라'는 뜻이다. 조금 더 실용적인 선물을 찾는다면 수험생활 자체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다. 독서실과 대중교통에서 사용할 수 있고 시험이 끝난 뒤에도 쓸 수 있다. 애플 AirPods 4의 일반 모델은 19만9000원,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모델은 26만9000원이다. 무료 각인도 가능해 이름이나 짧은 응원 문구를 넣을 수 있다. 3만~5만원대에서는 필기구나 독서대, 텀블러, 차 세트처럼 매일 사용하는 물건을 고를 수 있다. 카페인을 많이 마시는 학생이라면 커피 대신 무카페인 차를 보내는 방법도 있다. 오설록의 무카페인 티 에디션 허브 제품은 정상가 기준 3만2000원이다. 아예 수능 이후를 선물하는 방법도 있다. “시험 끝나면 한 달 떠나자." 필리핀에서는 영어 공부와 휴식을 결합한 단기 어학연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필리핀관광부 한국사무소에 등록된 하나투어 클락 가족연수 상품은 4주 과정으로 1대1 영어 프로그램과 레저 등을 결합했다. 2인 기준 260만원부터로 항공권은 별도다. 세부에서도 4~8주 영어수업과 호핑투어·워터파크 등 액티비티를 묶은 프로그램이 판매되고 있다. 당장 떠나라는 선물은 아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이 시간이 끝나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약속을 건네는 방식이다. ◇ 연인에게 선물하기…'비싼 것'보다 '우리 취향'을 연인에게 한우나 참치캔 선물세트를 건네기는 애매하다. 명절이라고 꼭 명절다운 선물을 고를 이유도 없다. 3만~5만원대라면 향 제품이나 작은 패션 소품, 좋아하는 디저트가 부담이 적다. 조금 더 쓰면 향수나 주얼리, 이어폰 등으로 선택지가 넓어진다. 여기에 '같이 하는 경험'을 붙이면 선물이 달라진다. 성수동에서 서로에게 5만원 이하의 물건을 하나씩 골라주거나 좋아하는 베이커리와 향 브랜드를 찾아 하루를 보내는 식이다. 물건을 주고받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데이트 자체를 선물로 만드는 셈이다. 선물의 핵심은 가격표가 아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명절 선물 시장의 범위는 이미 크게 넓어졌다. 올해 편의점에서는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상품부터 수천만원짜리 제품까지 등장했다. 백화점에서는 수십만원대 프리미엄 식품이 판매된다. 전통적인 한우와 과일 옆에 가전과 뷰티기기, 장난감, 여행상품이 나란히 선다. 선택지가 많아진 만큼 정답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부모님이라고 무조건 건강식품을 고를 필요가 없다. 아이에게 장난감만 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20대가 한우를 좋아할 수 있고 60대가 레고에 빠질 수도 있다. 초등학생이 게임보다 책을 원할 수도 있다. 3만원짜리 선물도 상대의 취향을 정확히 읽으면 특별해진다. 100만원을 쓰더라도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면 짐이 된다. 이번 추석 선물을 고르기 전 한 가지만 먼저 물어보면 된다. “요즘 뭐 갖고 싶어?" 여헌우 기자 yes@ekn.kr

[추석, 뭔지 아니?] ‘가배’부터 ‘추캉스’까지…한가위 2천년의 발자취

먹을 것이 넉넉하고 날씨도 선선하다. 들판에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과수원에서는 사과와 배, 밤과 대추가 익어간다.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추위는 멀었다. 농경사회에서 음력 8월 한가운데는 말 그대로 1년 중 가장 풍요로운 때였다. 우리 민족이 추석을 큰 명절로 여긴 배경도 여기에 있다. 추석은 단순히 연휴가 긴 날이 아니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가족과 이웃이 함께 먹고 놀았던 '수확 축제'에 가깝다. 올해 추석 연휴는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다. 추석 당일은 25일이다. 우리나라는 음력 8월15일을 추석으로 정하고 앞뒤 하루까지 사흘을 공휴일로 운영한다. 산업화와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명절을 보내는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직접 송편을 빚기보다 사 먹고 차례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래도 한 해의 풍요를 나누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는 추석의 기본적인 성격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추석을 쇠기 시작했을까. 왜 이날에는 송편을 먹고 성묘를 하며 보름달을 바라봤을까. ◇ '추석'보다 오래된 이름 '가배'…신라시대 기록까지 거슬러 추석은 음력 8월15일이다. '가배', '가위', '한가위', '중추절'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추석을 음력 8월1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대표 명절로 설명한다. '한가위'라는 이름도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은 크다는 뜻, '가위'는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음력 8월, 즉 가을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의미다. 추석의 정확한 기원이 언제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따라가면 신라까지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유리이사금 때 6부의 여성들을 두 편으로 나눠 길쌈 경쟁을 벌였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음력 7월부터 한 달 동안 길쌈을 한 뒤 8월15일에 승패를 가리고, 진 쪽이 음식과 술을 마련해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이를 '가배'라고 불렀다. 오늘날 추석의 직접적인 기원이 바로 이 행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8월 보름에 사람들이 모여 노동의 결과물을 겨루고 음식을 나누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추석 문화의 오래된 뿌리를 짐작하게 한다. 9세기 기록도 흥미롭다. 일본 승려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당시 신라인들이 8월15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여러 음식을 마련해 사흘 동안 노래하고 춤을 즐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전해지던 이야기로는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날을 기념한 것이라고 쓰여 있다. 다만 이는 당시 전승을 기록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확인된 추석의 기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통일신라 무렵에는 음력 8월15일이 상당히 특별한 날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 수확하고 쉬고 나누고…'민족 대명절'로 자리 잡다 농경사회에서 추석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커졌다. 음력 8월은 봄부터 땀 흘려 키운 곡식과 과일을 본격적으로 거두는 시기다. 새로 수확한 곡식과 과일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고 가족과 이웃이 나눠 먹는 풍습이 만들어졌다. 우리 전통 농경의례에서도 추석은 중요한 수확 의례였다. 새로 난 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천신'의 성격과 조상을 기리는 의례가 결합됐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추석은 왕실에서부터 일반 백성까지 폭넓게 쇠는 명절로 자리 잡았다. 2023년에는 추석을 포함해 설과 대보름, 한식, 단오, 동지 등 5개 명절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 당국은 우리 명절문화가 삼국시대부터 형성되고 고려시대에 제도화됐다는 점 등을 역사적 가치로 평가했다. 추석에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차례와 성묘다. 가족들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처음 거둔 음식을 마련해 조상을 기렸다. 산소를 찾아 벌초하고 성묘하는 풍습도 이어졌다. 조상의 덕을 기리는 동시에 한 해 농사가 무사히 결실을 맺은 데 감사하는 의미가 담겼다. 그렇다고 옛사람들의 추석이 엄숙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놀기 좋은 날'이었다. 한동안 고된 농사일에서 벗어나 풍성한 음식을 먹고 씨름과 활쏘기, 강강술래 등 각종 놀이를 즐겼다. 밤이면 밝은 보름달 아래 사람들이 모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와 넉넉한 음식,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기가 모두 겹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 추석엔 왜 송편을 먹을까…햅쌀·밤·대추에 '가을' 담겼다 추석을 이야기하면서 음식을 빼놓기는 어렵다. 대표 선수는 단연 송편이다. 멥쌀가루를 반죽해 깨·콩·팥·밤 등을 넣은 뒤 모양을 빚어 솔잎을 깔고 찐다. '송편(松편)'이라는 이름에도 소나무 '송(松)'이 들어간다. 송편은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만들어 한 해의 수확에 감사하는 의미를 지녔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과정 자체가 명절 문화였다. 예쁘게 송편을 빚으면 예쁜 아이를 낳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민간 속설도 전해진다. 지역마다 송편도 달랐다. 쌀이 많이 나는 곳과 감자·도토리 등이 흔한 곳의 재료가 달랐고 안에 넣는 소 역시 깨, 콩, 밤, 팥 등 다양했다. 추석상에는 또 햅쌀로 지은 밥과 토란국, 각종 전, 나물, 고기, 햇과일 등이 올랐다. 술 역시 새로 거둔 곡식으로 빚었다. 요즘 마트와 백화점의 추석 선물 매장에서 사과와 배가 빠지지 않는 것도 오랜 계절적 배경이 있다. 사과와 배는 대표적인 추석 과일이다. 농촌진흥청은 추석 출하에 맞춘 조생종 사과와 배 품종까지 개발·보급하고 있다.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배 생산·출하 현장을 점검하는 등 추석 과일 공급에 나섰다. 햅쌀 역시 마찬가지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추석 출하용 햅쌀 생산을 위해 조생종 벼 수확 시기를 별도로 관리했다. 최근 20년간 추석 날짜가 9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크게 움직이는 만큼 명절 날짜에 맞춰 수확할 수 있는 품종 개발도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전통적인 추석상은 단순히 '비싼 음식'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그 시기에 우리 땅에서 막 거둔 먹을거리를 한 상에 올린 결과물에 가깝다. ◇ 씨름하고 춤추고 달맞이하고…조상들도 추석엔 제대로 놀았다 먹었으면 놀았다. 지역에 따라 씨름과 소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활쏘기 등 다양한 놀이가 펼쳐졌다. 남부 지방에서는 강강술래가 대표적이다. 강강술래는 밝은 달 아래 여성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집단놀이다. 추석을 대표하는 전통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놀이에는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했다. 지금처럼 TV나 스마트폰을 각자 보며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한곳에 모였다. 일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수확의 결실도 함께 즐겼다. '달맞이'도 빼놓을 수 없다. 추석이 음력 8월15일인 만큼 밤에는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한 해 농사의 결실에 감사했다. 추석빔도 있었다. 설날 새 옷을 '설빔'이라 부르듯 추석에 마련한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했다. 계절이 바뀌는 명절을 맞아 새 옷을 입으며 건강과 평안을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으로 치면 추석은 먹거리 축제와 야외 스포츠대회, 공연, 패션 소비가 한꺼번에 열리는 거대한 가을 페스티벌이었던 셈이다. ◇ 왕도 추석엔 잔치했다…조선왕조실록에 남은 '별별 한가위'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면 추석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 1450년 문종 즉위년 음력 8월15일 기록에는 왕이 휘덕전에서 직접 추석제를 지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세종 때인 1424년에는 광효전에서 추석제를 풍악과 함께 거행했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추석이 민간의 명절일 뿐 아니라 왕실의 공식 의례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는 뜻이다. 1488년 성종 때 추석은 상당히 흥겨웠던 모양이다. 성종은 두 대비에게 잔치를 올리고 신하들에게 술을 내렸다. 실록에는 왕이 추석 잔치의 즐거움을 말하며 종친과 대신들에게 술을 즐기도록 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언제나 평화로운 추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497년 연산군 때에는 추석 제향 과정에서 신위판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져 관련자를 국문하도록 한 기록이 있다. 1821년 순조 때 추석에는 도성에 이른바 '괴질'이 유행했다. 실록에는 돌림병으로 민심이 뒤숭숭해지자 왕이 관련 조치를 내린 내용이 나온다. 같은 날 수재와 돌림병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로하기 위한 지시도 내려졌다. 수백 년 전 사람들도 풍요로운 명절 한가운데에서 질병과 재난을 걱정했다는 얘기다. 기록을 통해 보면 추석은 역사책 밖에 따로 떨어져 있는 '민속 행사'가 아니다. 왕실의 제사와 연회부터 백성들의 생활과 질병까지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 한복판에 있었다. ◇ 올가을엔 뭐 먹을까…사과·배·밤·대추부터 햅쌀까지 시대가 달라져도 가을은 여전히 먹거리가 풍성한 계절이다. 추석을 전후해 햅쌀을 비롯해 사과와 배, 밤, 대추 등 다양한 농산물이 시장에 나온다. 특히 사과와 배는 오랫동안 제수용과 선물용 수요가 겹치며 추석을 대표하는 과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최근에는 기후변화가 변수다. 폭염과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가 과실의 생육과 수확 시기에 영향을 주면서 추석 대목을 맞추는 농가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올해 7~8월 과실 비대·성숙기에 폭염과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추석 날짜가 해마다 달라지는 것도 농가에는 숙제다. 올해처럼 9월 하순에 추석이 들기도 하지만 2014년에는 9월8일, 지난해에는 10월6일이었다. 최근 20년만 따져도 9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난다. 우리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같은 추석이지만 농산물 생산자 입장에서는 매년 조건이 다른 셈이다. ◇ '먹고 또 먹는' 명절…잘 먹는 것만큼 잘 쉬는 것도 중요 풍성함이 추석의 미덕이지만 현대인에게는 과식이 고민이다. 갈비와 전, 잡채처럼 기름과 양념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부터 송편과 약과 등 간식까지 한꺼번에 먹기 쉽다. 평소보다 식사 시간이 불규칙해지고 술자리까지 더해질 수 있다. 무리해서 한 끼에 많이 먹기보다 평소 식사량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식사 뒤 가볍게 걷거나 가족과 산책하는 것도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다. 과거 조상들이 먹고 난 뒤 씨름하고 강강술래를 했던 것을 떠올리면 오히려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다. 식중독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가을이니 괜찮겠지' 하고 조리된 음식을 오랫동안 실온에 두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명절 음식의 경우 조리한 뒤 바로 먹고, 즉시 섭취하지 않을 경우 빠르게 식혀 냉장 보관할 것을 권고한다. 장거리 이동 시에는 보냉백이나 아이스박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육류는 중심온도 75도, 어패류는 85도에서 1분 이상 충분히 익히는 것이 식중독 예방에 도움이 된다. 선물 받은 과일도 아무렇게나 한데 넣어두면 오래 먹기 어렵다. 사과나 바나나, 복숭아처럼 에틸렌을 많이 발생시키는 과일은 다른 채소·과일의 숙성을 앞당길 수 있어 분리 보관하는 것이 좋다. 풍성한 한 상을 차리는 것만큼 남은 음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버리는 양을 줄이는 것도 요즘식 '잘 보내는 추석'이다. ◇ 한국에만 추석이 있을까…중국은 '월병', 베트남은 '어린이 명절' 보름달과 수확을 기념하는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역시 음력 8월15일을 '중추절'로 쇤다. 가족이 모여 달을 감상하고 둥근 월병을 나눠 먹는다. 둥근 달과 월병에는 가족의 화합과 재결합이라는 의미가 담긴다. 한국 추석의 송편과 중국 중추절의 월병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둘 다 가을 보름날 가족과 나누는 대표 음식이지만 모양과 재료, 의미를 풀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베트남의 음력 8월15일은 분위기가 또 다르다. '뗏쭝투(Tết Trung Thu)'라고 부르며 오늘날에는 특히 어린이를 위한 축제로 유명하다. 아이들은 형형색색의 등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사자춤을 즐기고 월병을 먹는다. 베트남 관광 당국도 뗏쭝투를 '어린이 축제'로 소개한다. 본래 수확을 축하하는 의미도 지녔지만 현재는 아이들의 번영과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날이라는 색채가 강하다. 같은 음력 8월 보름을 두고도 한국은 조상과 수확, 가족 공동체의 의미가 강하고 중국은 가족의 재결합과 달맞이, 베트남은 어린이와 등불 축제가 두드러진다. '보름달'이라는 같은 자연현상에서 출발했지만 나라별 생활방식과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명절 풍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 차례 줄고 여행 늘고…추석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신 중' 오늘날의 추석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대가족이 모두 모여 며칠간 음식을 만들던 모습은 줄었다.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지내지 않는 가정도 있다. 송편과 전을 직접 만들기보다 완제품을 구입하고, 긴 연휴를 활용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실제로 정부 역시 사회 변화에 따라 추석 풍습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명절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대신 국과 반찬, 전, 송편, 잡채 등을 구입하는 가정이 늘어난 것도 대표적인 변화다. 유통업계도 달라졌다. 대용량 선물세트 일변도에서 1~2인 가구를 겨냥한 소포장 상품이 늘고, 편의점에서는 1인용 명절 도시락을 판다. 호텔은 '추캉스' 상품을 내놓고 테마파크와 관광지는 명절 연휴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추석의 풍경이 '고향집 거실'에서 백화점과 편의점, 호텔, 여행지로까지 넓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추석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직접 농사지은 곡식을 조상과 이웃에게 나눴다면 지금은 선물세트를 주고받는다. 직접 송편을 빚던 자리에 간편식과 배달음식이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이 즐겼던 놀이의 자리를 테마파크와 여행지가 일부 대신한다. 형식은 바뀌었지만 먹을 것을 나누고, 쉬고, 만나고, 즐긴다는 명절의 핵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오늘날 추석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여기에 있다. '차례를 꼭 지내야 추석인가', '고향에 내려가야 제대로 쇠는 것인가'를 따지기보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왜 음력 8월 보름을 특별하게 여겨왔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봄부터 이어진 노동을 잠시 멈추고 수확을 축하했던 날. 막 거둔 음식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조상을 떠올렸던 날. 그리고 좋은 날씨 속에서 마음껏 먹고 놀았던 날이 한가위였다. 사는 모습은 크게 달라졌어도 풍요를 함께 나누고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제법 잘 어울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여헌우 기자 yes@ekn.kr

김승원 후보자 자진사퇴…“기대에 부응못해 송구”

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19일 자진 사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자로 지명한 지 20일만이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데 이어 2기 개각 인사들 중 두 명이 연속 낙마하게 됐다. 김 후보자는 이날 회견에서 “깊은 고민 끝에 법무부장관 후보자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말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어 “어제(18일) 대통령님 기자회견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며 “민생을 살피고 개혁을 완수해야 할 정부에 부담을 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지금 내려놓아도 진실은 포기하지 않겠다. 미완의 검찰개혁, 반드시 완수하겠다"며 “윤석열·한동훈 정치검찰의 표적수사와 한동훈의 수사기밀 불법 유출, 짜깁기 사태의 전모를 끝까지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후보자 사퇴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깊은 고민 끝에 법무부장관 후보자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했습니다. 국민주권 정부의 탄생을 위해 앞장섰고, 그 성공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후보자로 지명해 주신 대통령님께 감사드리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말 송구합니다. 어제 대통령님 기자회견을 보며 결심을 굳혔습니다. 국민의 삶과 정부의 성공이 우선입니다. 민생을 살피고 개혁을 완수해야 할 정부에 부담을 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법무부장관이 되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특권 없는 공정한 법 집행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뒷받침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형사사법체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장관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려던 걸음을 여기서 멈춥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저의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겠습니다. 특히 이번 일로 상처받으셨을 장애인과 가족들, 돌봄 현장에서 헌신해 온 분들과 저와 인연을 맺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 내려놓아도 진실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미완의 검찰개혁,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윤석열·한동훈 정치검찰의 표적수사와 한동훈의 수사기밀 불법 유출, 짜깁기 사태의 전모를 끝까지 밝히겠습니다. 이번 일이야말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국민들께 입증한 사례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제기로 발달장애인과 가족분들, 헌신하는 종사자분들이 받으신 상처가 꼭 치유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위해 일하며, 국민주권 정부의 일원으로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국방 R&D 시연회서 드론 추락…‘실패’인가 ‘혁신 과정’인가

국방부 주관 기술 시연회에서 무인기가 연이어 추락하자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행사를 진행했느냐는 십자포화에 가까운 날선 비난이 당국과 기업들을 향하고 있다. 일부 성공적인 시연 사례도 있었으나 아직도 무기체계 연구·개발(R&D) 단계의 시행착오를 결과적 실패로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19일 방산업계와 전문가들은 흠결 없는 성과만을 요구하는 '압축 성장' 패러다임이 연구 현장의 보신주의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미국·일본 등 선도국처럼 실패를 데이터 축적 과정으로 수용하고 '성실 수행 인정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등 인식과 제도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난 16일 국방부 주관으로 경기 포천 승진 훈련장에서 '2026 국방 드론 기술전'이 개최됐다. 이 행사에는 주한 미군·해외 방산 관계자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 방산업체들의 무인기 기술 시연이 진행됐다. 이날 시연에서는 일부 기업들이 기술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대한항공은 독자 기술로 자체 개발한 인공 지능(AI) 기반 무인기 22대의 자율 군집 비행·군집 동시 타격을 선보였다. AI 기반 실시간 자동 표적 식별(ATR) 기술을 적용한 선두 드론 2대가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10대는 적 방공망 교란을, 나머지 10대는 표적에 수직 강하해 정밀 타격을 완료했다. 또한 AI가 무인기 상태와 임무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음성으로 중계하는 'AI 기반 종합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용하며 1인이 다수의 무인기를 통제하는 역량을 입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무인기 기업 제너럴 아토믹스 에어로노티컬 시스템(GA-ASI)과 공동 개발 중인 단거리 이착륙(STOL) 무인기 '모하비'의 국내 모의 전투 비행을 실시했다. 모하비는 450마력급 터보 프롭 엔진과 고양력 장치를 장착해 폭이 좁은 전차 기동로에서 200m 미만 이륙, 100m대 착륙을 기록했다. 국토 대부분이 산악 지형인 국내 환경에 최적화된 야전 운용 능력을 평가받았고 양산 시 국내 생산 비중을 70% 이상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연회 전체 결과는 이와 달랐다. 당일 계획된 17개 임무 중 6개가 실패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AI 고속제트무인기 1호기는 사출 직후 지상으로 추락했고 2호기는 비행 중 통신이 단절되며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중소 방산업체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직충돌 드론·요격 드론 역시 비행 고도를 잃거나 표적 타격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동원된 12개의 민간 드론 중 5개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해당 기체들은 전력화가 완료된 양산품이 아닌 기술적 한계를 검증하는 R&D 시험 비행 단계의 시제품이었다. 통제되지 않은 주파수 간섭 환경에서 기체가 오작동을 일으킨 데이터를 실측한 것은 향후 전자전(EW) 상황 대비 및 항재밍(Anti-jamming) 능력 보완을 위한 귀중한 실측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시연 직후 언론과 여론은 이를 '기술적 망신'으로 규정하고 비판을 가했다. 결함을 찾아가는 정상적인 R&D 과정의 시행착오를 결과적 실패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기체의 시연이 대한항공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처럼 됐다면 아름다운 그림이었겠지만 실제 무기체계 연구·개발(R&D) 현장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라며 “준비가 안 됐다며 야유를 퍼부으며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언론의 행태는 분명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단기간에 무결점의 성과를 요구해 온 한국의 '압축 성장' 패러다임을 꼽는다. 현재 국가 R&D 사업 성공률은 99%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연구진이 감사·징계를 회피하기 위해 달성 가능한 하향식 목표만을 설정하는 보신주의적 구조를 반영한다. 국방 분야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작전 요구 성능(ROC)을 보수적으로 설정하게 돼 장기간의 체계 개발이 끝난 시점에는 변화된 글로벌 기술 환경에 부합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로 이어진다. 반면 글로벌 항공·우주·방산 선도국들은 R&D 과정의 실패를 필수 데이터 획득 과정으로 포용하고 있다. 미국 우주 기업 스페이스X는 2023년 대형 로켓 '스타십'의 첫 궤도 비행 중 발생한 공중 폭발을 '성공적인 실패'로 규정했다. 기체 파괴 전 획득한 원격 측정 데이터(Telemetry data)를 바탕으로 수냉식 시스템과 핫 스테이징 방식을 설계에 즉각 반영하며 혁신 속도를 높였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안전한 프로젝트를 실패로 간주하는 극단적인 위험 수용 문화를 유지한다. 스텔스 폭격기 F-117 개발 당시 시제기 '해브 블루' 두 대의 연이은 추락 과정에서 확보한 레이더 반사 면적(RCS) 실측 데이터를 통해 스텔스 설계를 실전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실전 배치 자산의 상실 앞에서도 철저히 실용주의적 기조를 보였다. 최근 일본 항공자위대에 실전 배치된 1000억 원 규모의 무인 정찰기 RQ-4B 글로벌 호크 1대가 임무 중 동해상에 추락했지만 방위성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원인 규명에 착수하는 한편, 이미 계획된 민간 대(對)드론 방어 체계 실전 배치 평가는 일정의 흔들림 없이 강행했다. 우리 정부도 R&D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2024년 1월 '국방과학기술혁신 촉진법' 일부 개정안을 시행했다. 연구 수행 과정의 성실성이 인정되면 과제가 실패하더라도 사업비 환수·참여 제한 등의 제재 처분을 100% 전면 감면할 수 있도록 '성실 수행 인정 제도'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에 구조적 한계를 제기하고 있다. 성실성 판정 기준이 정성적이고 주관적이고 행정부의 제재 감면 승인 이후에도 감사원 등 외부 사정 기관의 사후 감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져 실무진이 특혜 논란을 우려해 면책 결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맹점이 있다. 아울러 성실 실패로 인정된 과제의 실패 원인 분석 데이터(Raw Data)가 후속 연구를 위한 지식 기반 정보 체계(DB)로 연계되지 못하고 행정 서류로 소모되는 실태도 개선 과제로 지적된다. 첨단 국방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가들은 과제 평가 기준을 시제기의 정상 작동 유무 중심에서 '한계 상황에서의 유의미한 실측 데이터 획득'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또한 기술 준비 수준(TRL) 도약 목표치가 높은 고위험 과제에 대해서는 명백한 위법 행위가 없는 한 제재를 우선 면제(Opt-out)하는 '네거티브 감찰 규제 방식'이 요구된다. 나아가 민간 방산 업체가 극한의 전자전 모사 환경을 상시 활용해 테스트와 알고리즘 수정을 빠르게 반복할 수 있는 오픈형 테스트 베드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참한 성주 하루 여행’ 첫 운행 관광객 40명 성주 방문

대구 도시철도 연계 문양 역서 연계 형 인트라바운드 투어 무료 당일 관광 프로그램 세종대왕자태실·전통시장·성밖숲 등 당일 코스시장 장날과 연계해 총 7회 운영…지역 소비 확대 기대 성주=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경북 성주군이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과 지역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관광상품을 선보이며 대구 권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18일 성주군에 따르면 교통 거점 연계 형 인트라바운드 투어 '참한 성주 하루 여행'​이 지난 17일 관광객 40명이 참여한 가운데 첫 운행을 마쳤다고 밝혔다. 참한성주 하루여행은 대구 도시철도 문양역을 출발점으로 삼아 대도시권 관광객의 성주 접근성을 높이고, 관광객의 전통 시장과 지역 상권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한 무료 당일 관광 프로그램이다. 첫 여행은 사전 예약을 통해 모집한 40명이 문양역에서 출발해 세종대왕자태실과 성주전통시장, 성밖숲, 성산동 고분군 등 성주의 대표 관광지를 차례로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특히 단순히 관광지만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시장 체류 시간을 일정에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참가자들은 점심시간 성주전통시장에 머물며 지역 먹거리를 즐기고 장보기에 참여했다. 군은 관광객의 소비가 시장 상인들의 실질적인 매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광과 전통시장 방문을 하나의 코스로 묶었다. 성주군은 이번 첫 운행을 시작으로 성주전통시장 장날인 매월 2·7일과 주요 관광지를 연계한 하루여행 프로그램을 모두 7차례 운영할 계획이다. 대구와 인접한 문양역을 관광객 유입의 관문으로 활용해 대중교통 이용객을 성주 관광지와 전통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성주군 관계자는 “참한성주 하루여행이 관광객 유치뿐 아니라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교통 거점을 활용한 관광상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경북 여성기업, 중국 후난성 시장 두드린다…현지 여성기업가상회와 MOU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북지회, 창사 국제교류 포럼 참가 비즈니스 매칭·제품정보 공유·해외 판로 개척 협력 전자부품·식품 등 경북 우수제품 중국 시장에 선보여 구미=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경북 여성기업들이 중국 후난성 시장 진출과 해외 판로 확대에 나섰다. 19일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북지회는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서 열린 '2026 후난성 국제자매도시 교류협력 포럼'에 참가해 현지 여성기업인들과 경제교류 확대를 위한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은 후난성 정부와 후난성 상무청 등이 국제자매도시 간 경제·무역 협력과 기업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했다. 투자설명회와 기업 매칭 상담, 우수제품 전시, 산업 교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경북지회는 행사 기간 후난성 공상연합 여성기업가상회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양 기관은 여성기업 간 상호 교류와 기업·제품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비즈니스 매칭, 해외 판로 개척, 전시회와 경제교류 행사 공동 참여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단순한 친선 교류를 넘어 양 지역 여성기업의 제품과 기술을 실제 거래와 해외시장 진출로 연결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경북 여성기업들의 제품도 중국 현지에 소개됐다. 쓰리에스씨㈜는 RFID 태그 등 전자부품을 선보였고, 마루베이커리는 호두먹빵과 호두오일김, 호두오일 등을 전시했다. 쿡앤랩은 오징어채와 오징어다리 등 건어물 제품을 소개하며 중국 기업 및 현지 관계자들과 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다. 남영남 경북지회장은 구미 지역 농식품 브랜드인 '구미밀가리' 회원 자격으로 구미산 밀을 활용한 제품과 지역 특화 식품도 소개했다. 이를 통해 개별 기업 제품뿐 아니라 구미 지역 식품산업과 로컬 브랜드를 중국 현지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경북지회는 이번 MOU를 계기로 후난성 여성기업들과 정기적인 교류를 이어가면서 경북지역 여성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비즈니스 매칭과 현지 네트워크 구축을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경북 우수제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현지 전시·상담 행사와 연계해 실질적인 수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남영남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북지회장은 “이번 후난성 방문은 경북 여성경제인의 기술과 제품을 중국 현지에 알리고 여성기업 간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우수제품의 해외 홍보와 판로 개척을 확대해 여성기업의 성장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제교류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그린란드 영원히 통제한다”…트럼프, 오랜 숙원 현실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안보와 관련해 미국이 사실상 영구적인 통제권을 확보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이 덴마크 왕국 및 그린란드와 협정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기쁘게 발표한다"며 “이번 협정은 그린란드의 안보와 그 밖의 모든 필요에 대해 미국에 영구적인 통제권을 부여하며 미국이 제기해온 많은 우려를 완전히 해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에는 어떠한 비용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덴마크와 그린란드 대표들과 협력해 미국이 그린란드와 미국의 안보를 확보하고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영원히 보장받도록 했다"며 “이제부터 미국의 어떠한 적대국도 우리의 명시적인 서면 승인 없이는 그린란드에 기지를 둘 수 없고 군사력을 주둔시킬 수도 없으며 민감한 투자를 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100년 넘게 미국 대통령들은 그린란드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나는 이 매우 중요한 상황을 영구적이고 최종적으로 해결한 대통령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번 합의는 '무한 수명'으로 끝이 없다"며 “우리는 방금 이뤄진 일을 매우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오늘 합의된 모든 내용은 미국 국민에게 소중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번 협정을 토대로 그린란드에서 대규모 군사력 확충에도 즉각 나설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린란드 내 적절한 지역에 대규모 군사 주둔을 구축하는 절차를 즉시 시작할 것"이라며 “그린란드에는 이를 위한 적절한 장소가 많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그린란드 주민들과 함께 해당 지역의 개발과 건설을 추진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 거대하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땅과 관련해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훌륭한 국민들과 함께 멋진 미래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린란드를 매우 철저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미국에 꿈이 실현된 것과 같다"며 “매우 중요하고 역사적이며 특별한 일"이라고 밝혔다. 덴마크 정부도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그린란드와 덴마크 왕국, 미국을 위한 훌륭한 합의가 곧 이뤄지게 돼 기쁘다"며 “이번 합의는 북극과 북대서양 지역에서 우리의 공동 안보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에도 매우 좋은 합의"라고 밝혔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그린란드를 미국이 직접 통제하려 했던 구상에서 상당 부분 후퇴한 결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구상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그린란드 확보를 위해 압박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무력을 동원해 그린란드를 장악할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시사하는가 하면, 미국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 유럽 국가들을 겨냥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진격의 K-뷰티⑥] 韓 넘어 세계로···CJ올리브영 ‘질주’ 무섭다

[진격의 K-뷰티①] 화장품이 제2의 반도체? 글로벌 영토 확장 '가속 페달' [진격의 K-뷰티②] 한류 열풍에 트렌디한 마케팅까지…'인기몰이' 이유 있었다 [진격의 K-뷰티③] '인기 브랜드' 면면 살펴보니…기초부터 헤어케어까지 '각양각색' [진격의 K-뷰티④] ODM의 힘…韓 기업들 '글로벌 열풍' 이끈다 [진격의 K-뷰티⑤] 외국인 心 잡은 한국 화장품…관광객들 '장바구니' 살펴보니 [진격의 K-뷰티⑥] 韓 넘어 세계로···CJ올리브영 '질주' 무섭다 [진격의 K-뷰티⑦] 수출 지도 바꾼 한국…글로벌 트렌드 변화 속도도 빠르다 [진격의 K-뷰티⑧] 잘나가니 짝퉁도 기승…브랜드 지키기 “방심은 금물" [진격의 K-뷰티⑨] “단순 유행 넘어 원천 기술력 및 R&D 고도화 역량 쌓아야" [진격의 K-뷰티⑩] “정부 인프라 지원 절실…해외 규격 인증도 적극 지원해야" K-뷰티가 세계 시장을 질주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있다. CJ올리브영이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처럼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성장한 기업과는 결이 다르다. 메디큐브와 아누아, 조선미녀 등 최근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디 브랜드와도 역할이 다르다. 올리브영의 경쟁력은 수많은 제품 가운데 잘 팔릴 상품을 골라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큐레이션'에 있다. 국내에서는 신생 브랜드가 소비자와 만나는 등용문 역할을 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국의 최신 화장품을 한곳에서 경험하는 'K-뷰티 성지'가 됐다. 이제는 역할을 세계로 넓히고 있다. 미국에 직접 매장을 열고 온라인몰과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세계적인 화장품 유통업체 세포라와 손잡고 한국 중소·인디 브랜드를 해외 매장에 소개한다. 국내에서 K-뷰티 생태계를 키워온 유통 플랫폼이 해외로 직접 진격하기 시작한 셈이다. ◇ LA에 10만명 몰렸다…美서도 통하는 '올리브영' 미국 시장에서 나타난 초기 반응은 뜨겁다. 지난달 14~1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올리브영 페스타 LA 2026'에는 사흘간 10만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올리브영이 2019년 국내에서 시작한 체험형 뷰티 축제를 해외에서 선보인 첫 사례다. KCON LA 2026과 연계해 1422평 규모로 꾸린 행사장에는 55개 K-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참여했다. 현장 분위기도 한국의 올리브영을 단순히 미국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서울 지하철역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내부에는 강남과 성수, 명동, 홍대 등 서울의 대표 상권을 재현했다. 한글 도로표지판과 버스정류장, 횡단보도를 배치해 관람객이 K-뷰티와 한국 문화를 함께 경험하도록 했다. 제품을 진열하는 방식에도 한국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적용했다. 행사장 중앙의 '올리브영 스토어'에서는 더블클렌징부터 패드, 세럼, 선케어로 이어지는 순서대로 상품을 배치했다. 현지 소비자가 한국식 스킨케어 루틴을 직접 따라가며 제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 상품을 추천하는 '마이 컬러 바이브', 피부 상태를 분석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킨스캔' 등 체험 공간에는 행사 기간 긴 대기줄이 이어졌다. 브랜드에도 기회가 됐다. 페스타에 참여한 55개 브랜드는 모두 미국 올리브영 매장에 입점한 곳이다. 개별 중소기업이 미국에서 대규모 행사를 열기 어려운 상황에서 올리브영이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올리브영이 K-뷰티를 '파는 곳'을 넘어 해외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곳'을 노리고 있다는 의미다. LA 페스타에 앞서 문을 연 미국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났다. 올리브영은 지난해 1월 미국 현지법인 'CJ Olive Young USA'를 설립한 뒤 올해 5월 미국 오프라인 사업을 본격화했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미국 첫 매장을 열고 미국 전용 온라인몰도 동시에 선보였다. 패서디나점은 연면적 803㎡(약 243평) 규모의 단층 대형 매장이다. 애플스토어와 인접해 있고 도보 1~2분 거리에는 룰루레몬과 알로요가, 티파니앤코 등 글로벌 브랜드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전체 입점 브랜드의 80% 이상을 K-뷰티·웰니스 브랜드로 채웠다. 약 400개 브랜드, 5000개 이상의 상품을 취급한다. 메디힐·바이오던스·아누아·토리든·롬앤·퓌·미장센·어노브 등 한국 브랜드가 대거 들어갔다. 6월에는 LA 웨스트필드 센추리시티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베벌리힐스와 로데오드라이브에서 차로 5~10분 거리인 프리미엄 상권이다. 문을 열자 새벽부터 소비자가 몰렸다. 쇼핑몰 내부에 100m가 넘는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오픈런'이 벌어졌다. 미국 소비자의 높은 스킨케어 관심을 반영해 센추리시티점의 관련 매대는 국내 표준 매장보다 1.5배 크게 만들었다. 세럼과 에센스를 모은 공간, 토너패드와 선케어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 한국에서 사용하는 뷰티 디바이스 전용 공간도 별도로 꾸렸다. 피부 상태를 분석해 제품을 추천하는 스킨스캔 서비스도 제공한다. ◇ 매장 2개인데 美 전역으로…비결은 '세포라' 올리브영의 미국 공략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직접 매장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자체 오프라인 매장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세계적인 화장품 유통 플랫폼 세포라를 활용해 단숨에 미국 전역으로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달 20일부터 미국 세포라 오프라인 매장 580여곳과 온라인몰에 '올리브영 K뷰티에딧(OLIVE YOUNG K-Beauty Edit)'을 선보였다. 지난 1월 세포라와 체결한 파트너십의 결과물이다. 매대에는 올리브영이 직접 고른 19개 K-뷰티 브랜드의 제품 약 150종이 들어갔다. 미국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은 세럼과 크림, 선케어부터 토너패드와 새로운 제형의 클렌저, 마스크팩까지 K-스킨케어 루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국의 작은 화장품 브랜드가 미국에서 직접 세포라 입점을 추진하려면 브랜드 인지도부터 유통 협상, 물류, 마케팅까지 상당한 진입장벽을 넘어야 한다. 올리브영이라는 플랫폼을 거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판매 데이터와 소비자 반응을 토대로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골라낸 뒤 '올리브영이 선택한 K-뷰티'라는 묶음으로 세계적인 유통망에 진입할 수 있다. 올리브영이 단순한 화장품 판매업체가 아니라 한국 인디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종의 'K-뷰티 유통 인프라'를 자처하는 배경이다. 올리브영의 목적지는 미국만이 아니다. 회사는 미국에서 시작한 'K뷰티에딧'을 올해 안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태국, 홍콩의 세포라 오프라인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캐나다와 호주, 영국, 중동 등으로 진출 지역을 넓힌다. 오프라인 행사도 세계를 돈다. 국내에서 연 1회 열었던 올리브영 페스타를 올해부터 '월드투어' 형태로 바꿨다. 지난 5월 일본에 이어 8월 미국 LA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국내에서 인지도를 얻은 신생 브랜드를 해외 소비자에게 직접 보여주는 창구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온라인에서는 글로벌몰이 또 다른 축이다. 올리브영 글로벌몰은 해외 소비자가 한국 화장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역직구 플랫폼이다. 국가별 상품과 프로모션을 운영하고 배송비와 배송기간을 개선하며 취급 브랜드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3월 글로벌몰 '올영세일'에 참여한 브랜드 수는 2021년과 비교해 약 3배로 증가했다. 미국에는 별도 온라인몰까지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블루밍턴에 서부 통합물류센터를 구축하면서 기존 글로벌몰에서 영업일 기준 5~7일 걸렸던 배송기간을 미국 전용몰에서는 3~5일로 단축했다. 무료배송 기준도 60달러(약 8만원)에서 35달러(약 5만원)로 낮췄다. ◇ 한국에선 이미 'K뷰티 성지'…외국인이 0.9초마다 결제 올리브영이 미국에서 자신 있게 'K-뷰티 큐레이터'를 자처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국내 시장에서 쌓은 영향력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소비자 관련 지표가 더욱 눈에 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국내 올리브영 오프라인 매장에서 외국인이 구매한 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11월에야 1조원을 돌파했지만 올해는 시점이 3개월 빨라졌다. 1~8월 외국인 결제 건수는 1101만건이다. 회사가 매장 영업시간을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 0.9초마다 외국인 결제가 한 번씩 발생한 셈이다. 세금 환급 데이터를 기준으로 올리브영에서 상품을 구매한 외국인의 국적은 192개국에 달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매출 구성이다. 2022년만 해도 국내 오프라인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했다. 올해 8월에는 33%까지 높아졌다. 3년여 만에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외국인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수준으로 커진 것이다. 서울 명동이나 성수만의 현상도 아니다. 올해 1~8월 전체 외국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7% 늘어난 가운데 강원 지역은 105%, 경주 88%, 대전 80%, 전주 62%의 증가율을 보였다. 올리브영이 한국 여행 중 한 번 들르는 화장품 매장을 넘어 외국인이 K-뷰티 트렌드를 확인하는 쇼룸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성수동에서 운영하는 '올리브영N 성수'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기준 이 매장의 전체 매출 가운데 외국인 비중은 70%에 달했다. 피부 진단과 제품 추천을 결합한 스킨컨설팅 이용자의 72%도 외국인이었다. ◇ 신사동 작은 매장이 매출 5조8000억원 기업으로 지금의 위상을 감안하면 올리브영의 시작은 소박했다. 1999년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당시 제일제당그룹 HBC(Health & Beauty Convenience) 사업부가 선보인 신사업이었다. 약국과 화장품 가게, 슈퍼 등으로 나뉘어 있던 건강·미용·생활용품을 한곳에 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매장이었다. 처음부터 순항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규제와 사업모델 정립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환점은 2008년이었다. 식품·헬스 중심의 드럭스토어에서 '헬스&뷰티 스토어'로 사업 정체성을 다시 잡고 20~30대 여성 소비자와 화장품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혔다. 매장은 빠르게 증가했다. 2008년 57개였던 점포 수는 2011년 100개를 넘어섰다. 2017년에는 1000호점을 돌파했다. 오프라인 매장만 늘린 것도 아니다. 2018년 업계 최초로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드림'을 선보이며 매장과 온라인몰을 연결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구매가 급증하면서 이 같은 옴니채널 전략은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실적도 가파르게 뛰었다. CJ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리브영의 별도 기준 매출은 2022년 2조7774억원에서 2023년 3조8611억원, 2024년 4조79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5조8335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1.8%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447억원으로 22.5% 증가했다. 3년 사이 매출이 두 배 이상으로 커진 셈이다. 올리브영 성장에서 매장 수나 매출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국내 화장품 산업에 미친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과거 신생 화장품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려면 자체 매장을 내거나 백화점·대형마트 등에 입점해야 했다. 대규모 광고도 필요했다. 올리브영은 다른 방식을 만들었다. 여러 브랜드를 한 매장에 모으고 판매 데이터와 트렌드를 토대로 제품을 선별했다. 소비자는 브랜드 이름을 몰라도 '올리브영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신생 브랜드 입장에서는 전국 유통망과 온라인몰을 통해 단기간에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지난해 올리브영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사례를 수업 교재로 채택했다. 하버드 측은 유망 신진 브랜드를 발굴·육성하고 매장과 온라인, 글로벌 채널 등 인프라를 활용해 브랜드 성장을 지원한 구조를 주목했다. 다만 올리브영이 '성공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고 해서 해외 사업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세포라와 얼타뷰티를 비롯해 이미 강력한 뷰티 전문 유통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아마존과 틱톡숍 등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에서 이제 막 자체 매장을 열기 시작한 올리브영은 이들과 경쟁하며 현지 소비자에게 독자적인 브랜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리브영 입장에서는 다음 목표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장품 매장'이 아니라 '세계 소비자가 새로운 K-뷰티를 발견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이소영 청문회가 던진 질문…환경단체 ‘해외재단 후원’ 논란 [기후에너지환경 단상]

“이렇게 무관심한 청문회를 진행할 수 있다는 건 후보자께서 나름대로 우수한 후보자로 평가받는 게 아닌가 싶다."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이 한 말이다. 여러 지적이 오갔지만 지난 15일 청문회는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 후보자를 낙마시킬 만한 결정적인 쟁점은 나타지 않았다. 그러나 에너지업계가 바라보는 풍경은 조금 달랐다.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공동 설립한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의 해외재단 후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은 이 후보자가 지난 2016년 공동 설립한 단체다. 2017년 연간 기부금 180만원, 인건비 지급 인원 2명에 불과했던 조직은 지난해 기부금 178억6839만원, 고용인원 112명 규모로 커졌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해외재단이 공개한 자료에서 확인되는 지원금만 2020년 이후 11건, 약 46억9000만원이다. 대표적으로 덴마크 케이알재단은 2020~2024년 약 10억원을 지원했다. 논란은 단순히 해외에서 돈을 받았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후원의 목적과 국내 활동 사이의 관계가 쟁점이다. 해외재단의 지원 사업에는 석탄금융 중단이나 바이오매스 확대 억제 등 목표가 제시됐고, 기후솔루션은 이와 같은 방향의 정책 활동과 캠페인을 펼쳤다. 이 후보자 역시 국회의원이 된 뒤 해외 석탄발전 금융지원 중단을 요구하고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 측은 기후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지는 의제일 뿐 이를 기후솔루션의 활동과 연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이 후보자가 2020년 1월 기후솔루션에서 사직한 이후 단체 운영이나 재무 상황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내놨다. 기후솔루션은 기존 환경단체와는 꽤 다르다.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 전통적인 환경단체가 생태계와 환경오염 등 폭넓은 영역에서 시민 참여와 후원을 기반으로 환경운동을 펼쳐왔다. 반면 신생 환경단체인 기후솔루션은 탄소 감축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목표에 집중해 법률 수단을 적극 활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해외재단의 지원 비중이 크다는 점이 차이다. 이에 활동의 초점도 다소 다르다. 원전이나 재생에너지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보다는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바이오매스 등 화석연료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무게를 둬왔다. 그만큼 기존 에너지산업과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전력거래소 이사회 구성을 문제 삼았고 청정수소발전 의무화제도(CHPS)와 청정수소 인증제도를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바이오매스 발전 지원제도와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한국가스공사의 해외 가스전 투자 등을 둘러싸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승소 목적보다는 소송을 통해 정책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캠페인 성격이 강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화력발전 등 기존 에너지업계에서는 기후솔루션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해외재단의 지원을 받는 단체가 국내 에너지 정책 변화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문제 제기의 기원이 여기에서 나온다. 반대로 기후단체에서는 국내에서 기후위기 대응 활동에 장기간 자금을 지원할 민간 재원이 충분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국내보다 해외에 기후위기 대응을 지원하는 재단과 자금이 많은 만큼 해외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해외재단의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활동의 독립성이나 정당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이 후보자가 국회에 입성한 2020년과 지금은 기후솔루션의 규모도, 한국 에너지 정책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크게 달라졌다.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선언적 구호를 넘어 실제 국내 산업을 바꾸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기후단체를 바라보는 질문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용했던 이소영 후보자 청문회가 던진 질문은 이번 장관 후보자 개인에 대한 검증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거대한 전환 과정에서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는 시민단체의 자금과 활동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기후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커질수록 이 질문 역시 더욱 자주 등장할 것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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