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에너지경제 포토

오세영

claudia@ekn.kr

오세영기자 기사모음




[특별인터뷰] 유연철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기후위기 대응은 110m 허들경기…속도전 뿐 아니라 장애물도 넘어서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3.29 15:25
2021033001001382400059681

▲유연철 외교부 기후변화대사(2021 P4G 졍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이 29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오세영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기후위기 대응의 종목은 110m 허들경기입니다. 이젠 100m 단거리 경주에서 종목이 바뀌었으니 속도전만 잘 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장애물도 잘 넘어야 합니다."

유연철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29일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및 기업의 경쟁 패러다임 변화를 이같이 알기 쉽게 표현했다. 기후변화 대응시대에 경제·산업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간 속도만 빠르면 됐던 100m 단거리 경기 때와 달리 경기 종목이 바뀐 만큼 속도 뿐 아니라 각종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실력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유 대사는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을 맡아 요즘 분주하다. 이 정상회의는 당초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1년 연기돼 오는 30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준비기획단은 개최방식이 최근 갑작기 비대면으로 변경돼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유 대사는 정상회의 개최 두 달을 앞두고 바쁜 틈을 내 서울 종로구 적선동 적선현대빌딩 사무실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유 대사와 일문일답.

 

P4G 정상회의, SK 등 국내 기업 활동 기대…다수 글로벌 기업도 초청 

 


-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개최가 두 달 남았다. 준비기획단장으로서 소감과 포부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최초 환경분야 정상회의라는 데 의미가 크다. 올해는 파리 협정이 이행되는 첫 해이자 2050 탄소중립 포문을 여는 해이기도 하다. 같은 연도에 P4G가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환경분야에 입문한지 딱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91년도부터 환경분야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30년 되는 해에 한국 최초 환경분야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니 감개무량하다.

-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준비상황은.

▲원래 지난해 열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로 미뤄졌다. 올해에는 대면 형식으로 직접 초청도 하고 얼굴을 맞대며 기후환경에 대한 논의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코로나19 확산세가 사그라 들지 않아 비대면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비대면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데에 3가지 특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참여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회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 P4G 정상회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P4G는 정부 뿐 아니라 기업과 시민사회까지 참여하는 21세기 융합형 조직이다. 여태까지 정부가 주도하는 형식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이뤄졌다면 민관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협력이라는 형식의 플랫폼으로 보면 된다. P4G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협업과 융화다. 참여 국가들도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중견 국가들로 구성돼 있다.

- 이번 정상회의에 회원국은 물론 환경분야의 주요국가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과 함께 기업, 시민단체 등도 초청된다고 하는데 국내외 어떤 기업과 단체들이 참여하는지. 또 이들의 참여로 기대하는 효과는.
▲우리나라의 경우 SK가 P4G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중시하는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에 집중하고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그룹인 만큼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또 한화 등 현재 친환경에 관심이 많은 국내 그룹사들의 활동도 기대하고 있다. 다수 글로벌 기업도 초청해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참여할 지 지켜봐달라.

- P4G 정상회의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P4G 정상회의를 거쳐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목표를 상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소중립 목표에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지원의 책임은 선진국에 있다. 개도국을 포용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의 선도국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기업은 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겠다는 캠페인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시민단체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웨이스트제로 운동 등을 통해 함께 움직여야 한다.

2021033001001382400059682

▲유연철 외교부 기후변화대사(2021 P4G 졍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이 29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오세영 기자

 

‘다자주의+지속가능 발전’…기후위기 대응 외교 핵심 전략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2050 탄소중립선언’을 발표하고 인천 송도에 사무국이 위치한 녹색기후기금(GCF) 재원 기여금을 1억불에서 2억불 상향 조정했다. 이번 제2차 P4G 정상회의 서울 개최는 환경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전 세계 국가들이 한국에 바라는 기대가 크다. 한국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변모한 유일한 국가다.

한국의 활동은 개도국의 지표가 된다. 즉 한국은 개도국들의 미래 지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선진국도 우리나라가 기후 환경 관련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국제 사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GCF 기여금도 원래 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1억불에서 2억불까지 상향했다. 이를 계기로 많은 국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 국가들의 노력 못지 않게 우리나라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의 선도 혹은 주요 국가로 자리잡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2050 탄소중립이나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 1.5도 특별보고서 내용을 얼마나 빨리 기준에 맞춰 전환하느냐가 기후위기 대응의 승자다.

1.5도 특별보고서는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산업 발전은 100m 단거리 경주, 즉 속도전이다. 그러나 종목이 기후위기 대응으로 바뀌는 순간 110m 허들경기가 된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장애물도 잘 넘어야 하고 더 멀리 가기도 해야 한다.

경제·산업 발전에서 기후위기 대응으로 종목이 바뀌었으니 훈련 방식도 그에 맞춰야 한다. 속도만 올리는 데 집중할 게 아닌 장애물을 뛰어넘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에 적응한다는 게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자 생존력이다.

- 기후위기 대응 외교는 양자보다 다자외교로 구현될 수 있을텐데 이를 위한 우리나라의 외교 전략은.
▲우리나라는 수출 등 대외 의존력이 높다. 그래서 양자체제가 아닌 멀티네트워킹 방식을 추진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여서 상대 국가가 유리한 방향으로 협의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외교 전략 첫 번째는 다자주의 지지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단기간의 목표가 아닌 지속가능한 점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속가능 발전 전략을 국제협력으로 이뤄내야 한다.

- 기후나 환경 분야는 통상 정부가 주도하는 대책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지금까지는 친환경 시대였다. 자발적으로 친환경 활동을 하면 박수를 받고 하지 않아도 패널티가 없었다. 지금부터는 필(必)환경이다. 그린 서바이벌이다.

단순히 환경친화적인 활동을 장려하는 걸 넘어서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패널티가 발생한다. 전 세계와 투자자, 미래세대가 원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녹색 채권을 사라’ 혹은 ‘녹색 제품을 만들어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래세대는 녹색기업이 아니면 취업하려고 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녹색 제품을 찾는다.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들을 채용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녹색기업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탄소 저감이 돈 되는 세상…‘탄소가격 내재화’로 선순환 필요 

 


- 시장이 먼저 움직이는데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먼저 변하는 시장에 맞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정한 전환에 따른 비용 투자다. 기존 에너지 자원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원전이나 자원을 가진 국가가 아니다. 에너지 전환을 다르게 해석해보면 석유나 다른 자원에 종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석유·가스 등 자원 글로벌 패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방향은 맞지만 기존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 대해선 특별 배려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공정한 전환에 따른 비용 투자가 중요한 것이다.

- 우리나라 주력산업이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다소비 구조로 짜여져 있는 만큼 탄소중립과 양립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선순환할 수 있는 묘안이 있는가.
▲성장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탄소 배출권 거래를 통해 형성되는 탄소 가격의 내재화 방법이 있다. 탄소 가격을 포함하지 않으면 판매 자체가 되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다.

탄소 가격을 제품에 반영하려면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구매가격의 숫자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탄소 가격 포함 여부로 구매를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 즉 기업의 입장에서는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게 돈이 되기 때문에 탄소 가격 내재화가 선순환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취지의 공감에도 속도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 속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 추진은 전력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역시 정부의 의욕과잉이 갈등과 부작용을 낳는다는 비판도 제기되는데.
▲10년 전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금 2050 탄소중립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행동할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의 10년도 마찬가지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세상이 발전하고 아젠다가 바뀔 것이다. 큰 방향을 잡고 나가다 보면 좋은 기술들이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만 봐도 그러하다.

우리는 기술 개발 속도가 엄청 빠르다. 2050 탄소중립을 두고 단순히 한다, 못한다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탄소중립 목표를 향해 가면서 노력하다 보면 여러 방안과 대안들이 마련된다고 본다. 물론 달성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지금 세대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다.

목표를 세우고 그 의지를 밝히는 게 우선이다. 미약하더라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성과가 있는 게 중요하다. 그 의지를 결집하기 좋은 수단이 이번 P4G 정상회의가 아니겠는가.

- 외무고시를 통해 공직을 시작한 공무원으로서 어떻게 기후환경 전문 외교관으로 자리매김했나.
▲ 외교관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이자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여야 한다. 후배 외교관들에게 스페셜리스트로서 지역과 직무 등 두가지 분야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가 이런 철학을 가지고 그간 살아온 게 그런 평가를 얻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이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국내 기후환경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30년 전 1991년 외교부에 지구환경과장 직제가 처음 만들어지고 이 자리를 맡았을 때 총무과장이 밥을 사며 장관의 뜻이라고 위로했다.

당시 국내 상황은 불모지나 다름 없었지만 외교부가 도전적 실험을 한 것이다. 그게 인연이 돼 개방형으로 바뀐 환경부 국제협력관, 공모직이 된 기후변화대사 등에 잇따라 도전했던 게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 주변의 배려 덕분이다. 기후환경 문제로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 개인적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P4G 정상회의란?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라는 뜻의 ‘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약자다.

현재 미국의 워싱턴 D.C.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12개국 정부(한국·덴마크·네덜란드·멕시코·베트남·에티오피아·칠레·케냐·콜롬비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남아공 등)와 세계도시기후정상회의(C40),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세계경제포럼(WEF), 세계자원연구소(WRI) 등 국제기구·협의체와 민간기업,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있다.

개도국 중심으로 각국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적절히 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도록 지원한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식량, 물, 에너지, 도시, 순환경제 등 5개 분야에 대한 해결책을 개발해 개도국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는 지난 2018년 덴마크에서 열린 제1차 정상회의에 이어 두번째다.

 

유연철 대사 약력 

 


  △1961년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영국 레딩대 국제관계학 석사 △1987 제21회 외무고시 합격·외교부 입부 △1991 외교부 지구환경과장·유엔기후변화협상 최초 참여 △2003 외교부 환경협력과장 △2008 외교부 에너지기후변화과장 △2010∼2011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국제협력팀장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설립 참여 △2011 환경부 국제협력관(국장) △2012 녹색기후기금(GCF) 한국 유치 참여 △2013 주제네바대한민국대표부 차석대사 △2016 주쿠웨이트대한민국대사관 대사 △2018 외교부 기후변화대사(현) △2019 유엔기후변화협약 이행부속기구(SBI) 부의장 △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현)


claudia@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