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EE칼럼] 플라스틱 협약, 한국 리더십 발휘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5.08 09:46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달 말 캐나다 오타와에서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국제협약(이른바 플라스틱 협약)의 성안을 위해 열린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가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당초 계획했던 기간보다 하루 연장되며 치열한 밤샘 토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INC-4에서는 지난해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INC-3에서의 논의를 토대로 유엔환경계획(UN Environment Programme: UNEP)이 작성한 '수정 초안(revised draft text)'에 대해 토론을 계속했지만, 참가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환경부의 설명이다.


유엔 차원에서의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대응은 기후변화 대응에 비해 논의 자체가 매우 늦게 시작됐다. 2022년 2월에 역시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Resumed fifth session of the UN Environment Assembly: UNEA-5.2)가 2024년까지 플라스틱의 생산 및 소비부터 폐기물의 처리까지 전주기를 포함시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유엔환경총회는 193개에 달하는 유엔 회원국 모두가 참여해 UNEP의 사업은 물론 글로벌 환경 현안들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회의인데, 2022년에서야 비로소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협약을 마련하자는 데 중론이 모아진 것이다. 성안을 목표로 총 5차례의 정부 간 협상을 진행하기로 하였고 마지막 정부 간 협상이 될 INC-5는 올 해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플라스틱 오염 대응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논의는 일찌감치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역시 우여곡절의 과정이 매우 길었다. 1997년에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총회(Third session of the Conference of the Parties: COP3)에서 이른바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었지만, 미국은 선진국 중에 유일하게 비준을 거부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 역사적 책임이 크다고 하는 선진국들과 아직 산업화를 해야 하는 개발도상국 사이의 간극이 커서 감축에 대한 의무가 이른바 Annex I에 속하는 선진국으로 한정되었다.


교토의정서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한 것과는 달리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당사국 총회(COP21)에서는 참가국 전체가 참여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하게 된 데에는 개최국인 프랑스의 올랑드 전 대통령과 당시 유엔의 수장이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70년대부터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를 경고해 왔고, 90년대 초에 들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전 회원국이 참여하는 체제로 전환된 것은 2015년이었으니, 무려 20여년의 노정을 거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파리협정을 탈퇴하여 다시 한 번 기후 거버넌스 레짐을 흔들기도 했다.




기후 거버넌스 레짐이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것을 떠올릴 때, 플라스틱 협약의 성안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INC-5까지 전문가 그룹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기로 하였지만, 최대 쟁점 사안이라고 하는 1차 플라스틱인 폴리머 생산의 감축은 아예 의제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이 환경단체들의 비판을 사고 있다. 이는 1차 플라스틱의 주원료가 되는 석유를 생산하는 주요 산유국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 역시 미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불과 150만 톤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약 3억 9천만 톤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소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인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6년에는 88kg 정도였으나, 이제는 조사 기관마다 수치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90kg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가 모두 막대하다 보니, 정부 역시 플라스틱 협약에 대해 다소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INC-4 개최 기간 중 태평양 도서국들을 포함한 20여 개국이 폴리머 생산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부산으로 가는 다리(Bridge to Busan)'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정작 개최국인 한국은 참여하지 않아 빈축을 사게 됐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산업 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깊을 수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해 온 것은 수출이고,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인 석유화학 제품의 경우 수출 비중은 60%에 달한다. 그러나 국내 우수 기업들이 플라스틱을 대체할 만한 재료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부산 INC-5를 산업 체질 전환의 계기이자 미래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을 주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고 있느니 만큼 플라스틱 거버넌스 레짐 설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입장이 다른 국가 간의 간극을 조율하는 데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인류세의 유산이라는 플라스틱의 오염 방지를 위한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결단과 리더십이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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