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에 가면 바람개비 모양의 풍력 발전기가 군데군데 서 있다. 이 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바람의 세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곳의 풍력 발전소라고
해봐야 작은 마을 단위에서 1~3개 발전기를 돌리는 소규모 발전소다. 이 발전소들은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세운 곳이다.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마을에서 일부를
저렴하게 쓰고 나머지는 전력회사에 판다. 주민들 입장에선 필요한 전기를 자급자족하고
가욋돈까지 벌어들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최근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친환경을 넘어 사회적 가치까지
만들어낸다. 새로운 금융기법과 만나 참여의 확대를 이끌어내면서 누구나 발전소 주변 지역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다. 고향 또는 연고지의 발전사업에 십시일반 자금을 대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거나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자선 및 후원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신재생에너지가 새 부가가치 창출의 날개를 달게 된 금융기법은 크라우드펀딩이다. 이는 말 그대로 대중(Crowd)이 함께하는 기금(Fund)란 뜻이다.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재원조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소액단위로 재원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자금조달은 후원 또는 투자를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출자가 금융 기관이나 자금력이 풍부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대출받는 형태와 구별된다. 크라우드펀딩의 유형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비영리 형태로 기부형과 보상형, 영리 형태로는 지분투자형과 대출형으로 각각 나뉜다.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신재생에너지 크라우드펀딩이 최근 국내에서 정부의 에너지전환 가속화 및 그린뉴딜 추진으로 본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정부는 이미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따라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7%였던 재생에너지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3배인 20%로 높이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025년까지 태양광과 풍력설비를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 두 달 앞서 한국판 뉴딜의 두 번째이자 그린뉴딜의 첫번째 현장방문 일정으로
전북 부안 풍력발전 개발단지를 찾아 "2030년 세계 5대 해상풍력 강국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세 개 단지 124메가와트(MW) 규모의 해상풍력을 2030년에는 백 배 수준인
12기가와트(GW)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린뉴딜은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지난 7월 확정·발표한 국가 프로젝트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다. 정부는 2025년까지
추진될 이 한국판 뉴딜을 위해 내년 정부 예산안에 무려 21조3000억원을 반영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이런 막대한 재정 투입과 함께 관련 인프라 구축 등 생태계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는 “정부의 의지가 이처럼 강한 만큼 공공의 재생에너지 확대 기반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민간 참여를 늘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그에
맞는 금융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규모 투자와 안정적인 수익 회수를 중시하는 전통 제도권 금융기관들로선 아직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큰 매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가 초기단계 산업으로 소규모 불안정한
사업추진 환경에 놓여 있어서다.
그 대안으로 새로운 금융기법 크라우드펀딩이 재생에너지 산업계의 주목받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이처럼 지역사회 중심으로 추진되는 재생에너지 사업에 지역 주민을 포함
불특정 다수로부터 소규모 자금을 모아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금융기법이다.
이같은 영리 목적 외에도 공공의 수익을 고려하는 크라우드펀딩이 있다. ‘사회적 금융’으로
부르는 이런 형태의 크라우드펀딩은 기본적으로 친환경, 지속가능, 소외계층 지원, 지역사회
기여 등과 연결돼 환경·지역 친화적인 신재생에너지와 본질적인 공통점을 갖는다.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수단으로서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량의 계량화가 가능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점도 재생에너지가 크라우드펀딩과 결합할 수 있는 요소다. 환경 등 사회적
가치 중시의 압력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환경단체는 물론 투자기관들조차 사업의
환경 중시 목소리는 이미 투자의 방향을 결정할 정도로 커졌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의 확산도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높이도록 유인한다. ESG경영은 기업의
투자결정 때 그간 재무적 성과만을 보고 판단했던 전통 방식과 달리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도 중요 고려 사항으로 삼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투자 동기
지난 2018년 독일의 에너지 협동조합에 출자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설문 결과,
경제적 이익 공유는 세 번째로 높은 이유에 불과했다. 그보다 월등하게 높은 점수를 받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출자 동기는 재생에너지 보급 자체와 지역의 가치 창출이었다.
재생에너지를 통해서 지역에 의미 있는 가치가 창출되고 이러한 일련의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에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뜻이다. 주민참여형
크라우드펀딩 모델은 경제적 이익 공유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갖는
친환경성, 지속 가능성, 지역 가치 창출 등 보다 큰 의미의 가치를 전해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크라우드펀딩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을 이끌 수 있는 여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첫째
신재생에너지 시장 참여자들의 재원 조달을 도울 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자를 에너지 금융업자 또는 에너지 생산자로 변환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온라인 투자 플랫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셋째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증진시킬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에너지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적극적인 정치적 지원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