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국내 그린 에너지 현장을 가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크라우드펀딩의 성공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아직 초보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 기반이 취약한데다 크라우드펀딩 등 새로운 금융기법 발달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에너지전환과 그린뉴딜에 속도를 내면서 우후죽순처럼 추진되는 태양광·풍력 등 발전단지 조성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주민 수용성 문제로 지지부진한 신재생에너지사업이 주민의 참여와 이익공유를 통해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을 도입하면서 활기를 얻은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의 본래 목적인 재원 조달보다는 주민 수용성 확보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 주민, 시민단체, 사회적기업 등 참여 필요성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 참여를 통해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했거나 풀어나가는 신재생에너지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태양광의 경우 서울 양천구 목동의 ‘양천햇빛공유발전소’, 풍력은 강원도 태백시 원동 가덕산의 ‘태백 가덕산 풍력사업’를 꼽을 수 있다. 양천햇빛공유발전소은 국내 최초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한 모델이다. 발전소 건설 사업 당시 양천구 지역주민들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해 큰 화제를 모았다.

태백 가덕산 풍력사업은 국내 최초 대규모 풍력 주민참여형 모델이다. 강원도청과 한국동서발전 등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에 지역 주민이 참여해 전기 판매이익을 공유하도록 설계됐다.

태양광=서울‘양천햇빛공유발전소’

100% 시민 투자유치로 도심에 세워

양천햇빛공유발전소는 서울 도심에 크라우드펀딩으로 조성된 태양광발전소다. 서울에너지공사 관리동과 자재창고 옥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전시설 용량은 95.85㎾ 규모다.

지난 2017년 준공된 양천발전소의 태양광 사업 개발과 금융, 관리운영·사무위탁 등 전반적인 업무는 당초 신재생에너지 전문 크라우드펀딩 플렛폼 ‘루트에너지’가 맡았다. 양천발전소 투자금 1억8000억 원 전액은 양천구 주민과 일반시민 투자로 조달했다. 태양광 설치부지는 서울에너지공사가 연간 180만원의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대여했다.

3년 간 1년 단위로 3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투자금 모집은 각 회차별 투자 모집 전액을 약속한 수익률 적용으로 상환하고 다시 모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투자금 모금은 모두 목표액을 채웠으며 투자금은 약속한 연간 투자수익률대로 일반투자자에 6.75∼7.75%, 지역주민엔 7.55∼8.25%를 적용해 상환했다.

"주민 주도 에너지전환 가능성 보여준 선례"

서울에너지공사가 건물 옥상을 발전소 부지로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진섭 전 서울에너지공사 사장(현 대통령비서실 기후환경비서관)의 역할이 컸다.


양천발전소 1차 펀딩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당시 박 전 사장은 "개인적으로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이 시민의 손에 달려있다고 본다"며 "공사는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향상, 에너지 복지 확대를 통해 시민 주도의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양천발전소와 관련해 실무를 담당한 조창우 서울에너지공사 부장을 지난 10월 29일 서울에너지공사 관리동 옥상 양천발전소에서 만났다. 약 135개의 태양광패널이 줄을 지어 설치돼 있었다. 옥상 태양광발전소는 심플했다. 잠시 태양광발전소를 둘러보자 조 부장은 "태양광발전소가 생각보다 심플하죠?"라며 말을 건넸다.

조 부장은 "벤처기업과 마을주민 등이 태양광발전을 위해 공공부지를 임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당시 공사가 지원한 1호 청년 에너지 벤처기업 루트에너지로부터 사업제안을 받고 부지를 임대했다"고 설명했다.

루트에너지는 3차례에 걸쳐 일반시민 및 투자자로부터 모집한 투자금을 모두 상환한 뒤 지난 7월 양천발전소를 강서양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하 강서양천조합)에 양도했다. 시민이 주주로 참여해 지은 발전소가 공식적으로 시민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에 대해 조 부장은 "현 김중식 서울에너지공사 사장은 이를 두고 ‘주민 자산화’라고 말했다"며 "지역주민이 재생에너지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라고 전했다.

조 부장은 신재생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금융)이라서 리스크는 있다"며 "시행 주체나 부지, 수익 모델이 잘 검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시공도 중요하다"며 "시공 단가를 낮추기 위해 가는 전선을 사용하거나 모듈이 불량할 경우 손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장된 펀딩 수익률 돌려줘…내년쯤 시민 학습장 활용"

양천발전소는 예상 발전량 달성 측면에서도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강서양천조합으로부터 전달받은 자료에 따르면 양천발전소는 지난해 연간 12만3656kWh를 발전했다. 하루 평균 발전 시간은 3.53시간을 기록했다. 이는 예상치였던 12만2448kWh를 웃도는 수치이다.

양천발전소 환경성과

12만2448kWh의 발전량으로는 스탠드형 에어컨 약 102대를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연간 55t의 온실가스와 연간 0.06t의 질소산화물을 감축하는 효과에 해당한다.

양천발전소는 서울형 햇빛발전지원(서울형FIT) 적용 대상으로 생산 발전량 1kWh당 100원의 지원도 받는다.

조 부장은 "보장된 펀딩 수익률을 돌려줄 수 있었던 데는 서울형FIT 적용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천발전소는 강서양천조합이 운영하는 3번째 발전소다. 이현주 강서양천조합 이사장은 "조합은 태양광발전사업을 희망하는 시민 조합원을 모집, 태양광발전소를 준공하고 관리한다"며 "양천발전소는 완공된 발전소로 조합에서는 관리만을 담당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천발전소는 시민 학습의 장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이 이사장은 "도심에서 태양광발전시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드물다"며 "향후 양천발전소는 시민 학습의 장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너지공사에서 양천발전소와 관련해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 중인 것으로 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내년쯤에 가능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풍력=강원 ‘태백 가덕산 풍력단지’

국내 최초 대규모 주민참여형 모델

가덕산 풍력사업 주민참여 비율

태백 가덕산 풍력단지는 강원도 소유 산림을 활용해 43.2㎿의 대규모로 조성됐다. 최근 마지막 풍력발전기 설치까지 마무리돼 총 12기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섰다. 가덕산 풍력사업에는 약 1250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강원도에 발생하는 경제 효과는 약 4934억 원으로 추정된다.

가덕산 풍력사업은 국내 최초로 주민참여형 모델로 설계됐다. 강원도청과 동서발전이 주주로 참여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태백시민 등으로부터 사업비 중 4%에 해당하는 50억 원을 모금한다는 계획이다.

50억 원 중 33억 원은 정부지원 사업인 국민주주프로젝트로, 17억 원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집한다. 국민주주프로젝트는 태양광·풍력 발전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발전소 인근 주민에게 투자금의 최대 90%를 장기저리로 융자 지원하는 사업이다.

가덕산 풍력사업의 크라우드펀딩 모집은 지난 10월 16일 시작됐다. 20년간(240개월) 연 8.2%의 고정 수익률을 제공하는 채권형 펀드로 내년부터 분기마다 이자수익이 제공된다.

가덕산 풍력단지는 지난 11월 중순부터 공식적인 상업발전을 시작, 6개월간의 시험운전을 거쳐 내년 5월 준공할 예정이다.

가덕산 풍력단지 시험운행 현장

"강원도 직접 투자로 지역경제 활성화 및 도민 이익 공유"

가덕산 풍력사업이 주민참여형 모델로 설계된 것은 강원도의 의지가 컸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신재생에너지보급실적조사’(2018)에 따르면 강원도는 국내 풍력발전 용량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풍력발전은 대규모 발전회사나 외지기업이 투자·유치하면서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해 주민 참여형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강원발전연구원 연구보고서 ‘강원도 에너지 산업 육성 방안’(2017)에서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가덕산 풍력사업의 실무를 담당한 김동환 강원도청 주무관은 "강원도에는 풍력발전단지가 많지만, 대규모 외지기업이 주로 투자했다"며 "풍력발전단지는 2㎿ 풍력발전기 1, 2기만 설치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과 주민 이익 공유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었다. 김 주무관은 "강원도에서는 풍력발전을 통해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도 기여하고 발생한 수익이 도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직접 투자하게 됐다"며 "가덕산이 강원도가 소유한 도유림이라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이행에 있어 가장 큰 장벽으로 주민 갈등이 지목되기도 한다. 김 주무관은 "주민참여형 사업을 통해 주민 수용성을 향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수목적법인 설립 등 절차 복잡…현행 1㎞인 주민 범위 한계"

가덕산 풍력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복잡한 절차와 1㎞에 한정된 주민 범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 주무관은 "강원도에서 그동안 직접 투자한 소규모 풍력발전단지는 있었지만, 전국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대규모 사업이라 절차가 복잡했다"며 "사전 절차만 2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을 위해 별도의 특수목적법인 설립이 필요한데 이를 설치하기 위해 절차가 많다"며 "이런 절차를 거치면서 투자도 받아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적은 인구밀도 때문에 주민참여 금액을 모집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3㎿ 이상 풍력발전소 투자에 지역주민이 일정비율 이상 참여할 경우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발급에 추가 가중치를 부여받는다. 발전소 반경 1㎞ 이내 거주 주민(읍·면·동에 1년 이상) 5명 이상 참여, 총사업비의 4% 이상, 지분 20% 이상 참여 시 가중치 1.2가 부여된다. REC 가중치가 크면 수익이 높아진다.

김 주무관은 "가덕산 풍력사업의 경우 주민 범위에 태백시 원동 주민만 해당이 된다"며 "대규모 사업인 만큼 비율을 환산했을 때 수십억 원을 모집해야 하지만 원동은 가구 수가 30가구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주무관은 "주민참여형 제도에서 REC 가중치를 인정받는 지역 범위를 사업 규모에 따라 차등해 사업 규모가 큰 사업일수록 범위를 확대했으면 한다"며 "산업통상자원부 회의 때 이를 건의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강원도는 가덕산 풍력사업이 마무리된 후 2차 풍력사업 등을 검토 중이다.

김 주무관은 "태백 가덕산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현재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의 다른 재생에너지 사업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강원도도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대상지가 있는지 계속해서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