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경영난에 허덕이며 대대적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전체 시장 부진에 더해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영향력 확장으로 주요 수요처를 잃으면서 휘청이고 있는 것이다. 기존 강자들이 주춤하는 반면 현대자동차는 연일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판매량 글로벌 톱3에 오르면서 세계적 강자로 거듭난데 이어 최근 미국 시장서도 신기록을 달성하면서 '톱2'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유럽, 일본의 완성차 기업들이 잇달아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나섰다. 공장 노동자뿐만 아니라 수장까지 교체하는 등 강경한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크게 흔들리고 있는 곳은 독일의 폭스바겐그룹이다. 그간 토요타에 이어 글로벌 2위를 지켜왔지만 최근 경쟁에서 크게 밀리며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에 파업까지 안팎으로 골치가 아픈 상황이다. 폭스바겐은 미래투자 자금 확보 등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공장 10곳 중 3곳을 폐쇄할 예정이고, 직원들의 임금도 10% 삭감할 방침이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폐쇄되는 공장 규모에 따라 독일 직원 최대 3만명이 해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의 강경한 대응에 근로자들은 들고 일어났다. 지난 2일 폭스바겐 근로자들은 기업의 결정에 반대하며 독일 전역에서 경고파업에 들어갔다. 이는 2018년 이후 현지 사업장서 벌어지는 첫 대규모 파업이다. 세계 4위 완성차 기업 미국의 스텔란티스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지프, 푸조, 크라이슬러, 시트로엥 등 미국과 유럽을 넘나드는 메이저 브랜드를 산하에 두고 있는 기업이다. 지난 1일 스텔란티스는 카를로스 타바레스 최고경영자(CEO)의 사임을 수락했다. 타바레스 CEO는 2021년 1월 출범한 스텔란티스의 초대 CEO다. 사임 이유는 역시나 '실적 악화'다. 스텔란티스는 올해 상반기 순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850억유로(약 125조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미국의 포드, 일본 닛산 등 기존에 영향력 있던 기업들도 감원 계획을 밝히며 대대적으로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다. 업계에선 이들의 연이은 구조조정 행보에 대해 '중국 시장 수요 감소'를 주원인으로 꼽았다. 중국은 수억명의 고객이 존재하는 최대 시장이었다. 특히 폭스바겐, 닛산 등은 중국 판매 비중이 비교적 높은 기업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내수 시장을 빠른 속도로 점유해가고 있다. 지난해 친환경차 판매 1위로 거듭난 BYD를 필두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는 결국 기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악화로 이어졌고 구조조정까지 연결된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이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약 10년 전만 해도 이들보다 떨어지는 인지도, 판매량을 보였지만 이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강자'로 거듭났다. 현대차의 선전은 낮은 중국 의존도와 미국시장서의 성공 두 가지가 주효했다. 현대차는 진작 중국 시장에서 발을 뺐다. 다른 기업들보다 먼저 매를 맞은 덕에 중국이 아닌 다른 시장에 집중할 수 있던 것이다. 과거엔 중국에 5개 공장을 짓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지속된 판매 부진으로 2개 공장을 매각하는 등 그 규모를 빠르게 줄였다. 2013년엔 연 판매 100만대를 넘는 등 호시절도 있었지만 2017년 사드 보복 등 악재가 겹치며 지난해엔 24만대 판매에 그치는 등 이미 쓴 맛을 보았다. 다행히 현대차는 빠르게 대응해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 기존 5개 공장을 3개로 감축했고 나머지 공장도 중국 판매용이 아닌 신흥시장 공급용으로 전환하며 큰 타격을 막은 것이다. 덕분에 현대차는 중국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중국을 떠난 현대차는 미국서 큰 성공을 거뒀다. 현대차·기아는 지난달까지 미국 시장에서만 154만8333대를 팔았다. 이 기세라면 지난해 165만2821대를 넘어 최다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미국 판매 차종의 대부분은 마진이 좋은 친환경차, SUV으로 이뤄져 수익성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에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올해 도요타그룹에 이은 글로벌 수익성 '톱2'에 오를 것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 빠르게 적응한 덕분에 단기간에 고성장을 이룰 수 있던 것"이라며 “그러나 중국 기업들이 세계 진출을 선언하면서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경쟁력을 꾸준히 갖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찬우 기자 lcw@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