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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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22대 국회, 기후에너지 정상화 기대한다

기후악당(Climate Villain)은 기후위기 시대에 무책임한 대응을 하는 국가 또는 기업을 말한다. 국제기후단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는 해마다 12월 초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기후변화 대응이 진전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은' 4개 국가를 '오늘의 화석상'으로 뽑아 발표한다.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 컨소시움인 '기후행동추적'은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가들의 감축행동을 분석해 기후변화대응지수를 발표한다. 오늘의 화석상을 받거나 기후변화대응지수가 저조한 국가들이 기후악당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는 오늘의 화석상을 받은 4개국 중 3위에 올랐으며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7개 중 64위를 차지했다. 처음 국제사회의 기후변화대응 노력이 기후변화협약으로 결실을 맺은 1992년 무렵에 기후악당들은 먼저 산업화를 이루어 그동안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선진국들이었다. 그래서 기후변화협약은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원칙으로 하여 기후변화에 책임이 큰 선진 38개국이 앞장서 탄소 감축에 나서는 교토의정서를 2008년부터 5년간 진행하였다. 탄소감축 노력에서 가장 진지하게 임한 유럽연합은 교토의정서의 감축 목표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인 데 비해 미국은 세계 1위의 에너지 소비국으로서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에서 단연 선두임에도 정부가 바뀌면 교토의정서를 탈퇴하는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 기후악당 1호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개발도상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표적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산업화에서 뒤져 누적 배출량이 적고 경제성장을 위해 당분간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무렵부터 개도국에 대해서도 탄소감축노력을 강제하려는 쪽으로 분위기가 돌아섰다. 온실가스 배출에서 수십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미국이 2005년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며, 중국은 2018년 미국 배출량의 2배를 넘어섰다. 총에너지소비량에서도 중국은 2009년에 미국을 추월하여 2022년에는 두 배에 육박하고 있다.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는 개도국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들이 탄소감축 노력을 해야 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었고 결국 2015년 12월 파리협정이 체결되었다. 파리협정을 통해 각국은 자발적 탄소감축계획을 제출하고 2023년을 시작으로 5년마다 점검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총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에서 모두 세계 8위를 기록하는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 중의 하나이다. 1996년 OECD에 가입한 한국은 교토의정서가 논의되던 당시 감축의무국에 포함될 뻔도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며 감축 의무를 지지는 않았지만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한국의 위치는 선진국과 개도국 중간으로 대우를 받아 왔다. 이에 따라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애석하게도 지난해 성적은 중동의 산유국을 제외하곤 꼴찌를 기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새롭게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 되어 그 동안 한국으로 향하는 화살을 분산해준 중국이 지난해 발전설비용량에서 재생에너지가 50.4%로 절반을 넘어섰다. 2023년 중국의 총 발전설비용량 2,920GW 중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1,472GW로 화력발전설비 1,390GW를 추월하였다. 기후변화 연구기관 '저먼워치'의 2024년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도 한국은 29.98로 '매우 낮음'을 받았지만 중국은 45.56으로 '낮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 대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인들의 시선은 한국으로 몰리게 되었다. 산업화를 최우선 과제로 달려온 개발도상국 중국이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 되고서도 기후악당의 과녁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이미 재생에너지 분야 세계 최대 투자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산업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자 한 중국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분야에 국가 자원의 배분을 높였다. 그 결과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국내 보급을 지원하면서 보급률이 높아지고 관련 산업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였다. 현재 중국산 태양광 패널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85%이다. 전기차 세계 1위는 중국의 비야디(BYD)이며, 2차전지의 1위는 닝더스다이(CATL)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미래 먹거리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한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중국, 3년 연속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가 줄어들면서 관련 산업에서조차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한국, 이것이 2024년 한국의 모습이다. 4월10일 총선에서는 기후에너지 분야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정책을 내세운 정당과 정치인이 보다 많이 국회에 진출하여 역주행하는 기후에너지 정책이 제자리를 찾고 기후악당의 꼬리표를 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신동한

[EE칼럼] ASML의 넷제로 달성 전략 타당한가

최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발 한국 반도체 위기론이 언론을 통해 잇달아 보도되고 있다. 이들 언론보도는 ASML이 지난달 발표한 '2023 연차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ASML은 2040년까지 고객사를 포함한 모든 생산 유통 과정에서 넷 제로(Net Zero· 탄소 순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으며,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 여건이 열악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ASML의 '2023 연차보고서'을 살펴봤다. ASML은 3가지 배출 범위(Scope 1‧2‧3)에 대한 넷 제로 달성 목표 시한을 차등 설정하고 있다. 이 배출 범위 구분은 온실가스 회계처리 및 보고기준을 제공하는 '온실가스 프로토콜'에 따른 것이다. Scope 1은 제품 생산단계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을, Scope 2는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동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을, Scope 3은 협력업체와 물류 등 밸류체인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 배출량을 말한다. ASML의 목표 시한은 Scope 1과 2는 2025년, ASML 협력업체의 배출인 Scope 3 Upstream은 2030년, ASML 제품 고객사의 배출인 Scope 3 Downstream은 2040년이다(p.76). ASML의 넷 제로 달성 전략은 △에너지 사용량 저감 및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혁신 △ 신뢰할 만한 재생에너지 100% 사용 △ 다른 합리적 개선책이 없으면, 잔여 배출에 대한 보상이다(p.77). 재생에너지 100% 달성 수단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다. ASML은 에너지 속성 인증서(Energy Attribute Certificate)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하고, ASML의 실제 전기소비량과 재생에너지 전기구매량을 비교하여 재생에너지 구매 비율을 산정하고 있다. 최근의 비율을 보면, 2021년 92%, 2022년 91%, 2023년 91%이다(p.79). ASML의 야심찬 목표는 제때 달성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ASML의 Scope 1 배출량(kt)은 2021년 19.3, 2022년 17.3, 2023년 19.2였다. Scope 2 배출량은 20.1, 20.8, 15.9였으며, Scope 3은 11,426.2, 11,936.3, 15,025.2였다(p.79). Scope 1 배출은 주로 시설 운영 등을 위한 천연가스 사용으로 발생한다(p.80). 이 배출은 ASML 생산활동에 좌우된다. 이 생산활동 추이를 유추할 수 있는 지표가 총매출액인데, ASML 총매출액은 2022년 212억 유로에서 2023년 276억 유로로 약 30% 증가하였다(p.44). 혁신적 에너지 효율 기술이 나오거나 생산활동을 축소하지 않는 한 대폭적 감축은 어렵다. Scope 2 배출은 전기사업자로부터 구매하는 전기에 의한 것이므로, 이는 전기사업자 노력에 좌우된다. Scope 3 배출은 2023년에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전년 대비 ASML 생산이 확대됨에 따라, 협력업체 부품 생산과 물류 활동 등도 증가하면서 배출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ASML의 재생에너지 구매는 탄소 배출 저감에 실질적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 ASML은 우선 자신들의 시설 운영 등을 위해 천연가스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고, 그 후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하여 장부상 상계처리한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도 천연가스보다는 훨씬 적지만 탄소를 배출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발전원별 발전 생애주기 탄소 배출량(gCO2/kWh)을 보면, LNG 490, 태양광 27, 해상풍력 23, 원전 12, 육상풍력 11이다. ASML 방식은 장부상으로만 깨끗한 것이지, 실제로는 탄소를 두 번 배출한다. 문주현

[김상호 칼럼] 22대 총선 시대정신은 ‘기후 투표’

정치권은 이번 총선 시대정신을 윤석열정권 심판론 VS 국회(야당) 심판론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을 떠나 22대 총선 '시대정신'은 바로 '기후 선거'라 생각하고 또한 그리 돼야 한다고 봅니다. 구두선이 아니라 실질적인 2050 탄소중립 기반을 놓아야 합니다. 지역 여건상 하남시는 특히 그러합니다. 기후 선거란 각 당 후보들의 기후위기 대응 공약에 기후 유권자들이 기후 투표를 한다는 뜻입니다. 기후 유권자는 '기후위기 정보를 잘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위기 대응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들'입니다. 2024년 1월22일 시민단체 '기후정치바람'이 17개 광역시-도 각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172개 문항을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주요 결과는 △유권자 중 62.3%가 기후위기 대응 후보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과 후보에게도 투표를 고민합니다 △자신이 기후 유권자라고 인식한다는 유권자가 33.5%, 전체 유권자 중 1/3입니다 등입니다. 하남시는 개발 압력이 매우 높습니다. 교산신도시(약 200만평), 초이-산곡 기업이전지구(약 17만평), H2(약 3만평), 캠프콜번(약 7만5000평), 미사섬(약 50만평) 등 277만여평으로 여의도 면적 약 3배입니다. 아는 하남시가 기후 유권자가 많은 기후 선거구가 돼야 배경입니다. 민선7기 하남시장 재임 당시이던 2019년, 저는 '하남시 평균기온이 경기도 평균 12.7도보다 약 1도 높은 13.6도'라는 사실을 접하고 하남시 기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반복될 감염병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은 기후위기 대응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남시 기후위기 대응 민-관 협치 조직, 깨어있는 하남시민의 집단지성, '기후위기하남비상행동'은 2021년 4월 100여개 참여 단체와 30여개 실천단으로 출범했습니다. 기후위기 절박함을 공감하며, 하남시 100여개 시민 공동체가 지금도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기후위기 대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진행하는 고기 없는 월요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철회 △소등 캠페인 △시민과 함께하는 나무심기 등 지속가능한 하남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 총선을 '기후 총선'이라 규정하며, 출마자들과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간담회입니다. 모든 후보가 적극 호응하기를 기대합니다. 교산신도시 에너지 자립도시 구축 추진, 친환경 자전거 도로 확충, 자원순환경제 도시,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탄소흡수원총량제' 도입, 주민 의견을 반영해야만 할 미사섬 개발, 수소-전기버스 등 친환경 자동차 보급 확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 제도화 등에 하남시 정치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는 물론 정당의 기후위기 대응 공약 비교도 중요합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국제사회 약속 이행을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 강화(2030년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기업의 RE100이행 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 탄소중립산업법(한국형 IRA) 제정, 탈플라스틱 대책으로 탄소중립 실현 기여, 농촌을 재생에너지산업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국민의힘은 기후위기 대응, 함께하는 녹색생활을 목표로 기후위기대응기금 2배 확대, 원전-재생에너지 균형적 확충,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 녹색생활 인센티브 연간 50만원 지급 등을 공약했습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약 3% 유권자가 기후문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이든에게 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남시 후보들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과 정책은 투표 선택 기준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유권자 여러분! 각 정당과 후보의 기후위기 공약을 잘 비교하고 투표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결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22대 총선은 기후 투표(Climate Vote)입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EE칼럼] 한국석유공사, 수소안보전담기관 지정해야

지난해 11월 23일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수소 생산설비 3기 중 2기가 고장 나면서 수도권·충청권·강원권의 일부 수소충전소의 수소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국내 생산시설의 고장으로 인한 사건이었지만 향후 수소차를 포함한 수소 활용부문이 현재보다 급성장해 국민적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일어날 사회적 혼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2021년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50년에 필요한 청정수소의 약 80%를 해외 수입을 충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면 나머지 20%는 얼핏 국내에서 생산·조달하겠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개방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정책적 보호 없이 국내 시장 20%만을 상대하는 국내 청정수소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그냥 전량 수입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미 국내에서 생산이 중단된 암모니아나 요소가 좋은 사례이다. 해외 청정수소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CHPS) 등 청정수소 관련 정책들을 살펴보면 정부가 주로 국내 청정수소 생산보다는 해외 수입에 무게를 두고 지원하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이미 2030년 이전에 특히 발전용 청정수소·암모니아의 거의 전량을 해외수입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청정수소를 해외에 전량 의존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뛰따른다는 점이다. 수출국의 자원 무기화 및 정치적 불안정, 기술적 문제·인적 실패 등으로 인한 사고, 수송로에서의 이송 장애 발생, 재생에너지나 물 부족, 수소 생산 설비 중요 원자재 부족 등은 해외 생산 청정수소·청정암모니아를 국내로 도입할 때 고려될 수 있는 대표적인 잠재적 위험요인이다.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상태에서 해외생산 청정수소·암모니아의 공급 차질이 실재화될 경우, 이에 따른 국민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소·암모니아에 대해서도 기존 석유나 천연가스 등 화석에너지와 유사 또는 동일선상의 '안보' 대상으로 간주해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특히 국가경제 운용에 필수 자원 안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안보정책 수단인 수소·암모니아 비축 정책 마련이 현시점에서 가장 선행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수소·암모니아 비축정책에서 가장 먼저 비축 주체가 누구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비축의 본원적 책임은 민간 사업자이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저장수준과 사적·자발적으로 결정된 재고수준 간의 간극을 고려해 정부 등 공공부문이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 석유 및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 비축도 정부(또는 대행 공공기관)와 민간사업자가 분담하는 구조이다. 수소·암모니아도 내수판매 또는 자가 소비하는 민간사업자에게 일차적인 비축의무를 부과하고, 부차적으로 민간사업자의 비축의무를 대행하여 수행하거나 직접 비축의무를 부담하는 역할을 정부를 대행하는 공공기관이 해줄 필요가 있다. 특히 공공기관은 '국가자원안보 특별법' 에 따라 실제 자원안보 관련 업무의 일종인 비축의무 실행을 포함해 전반적인 수소·암모니아 안보 관련 실무를 담당할 '수소안보 전담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그리고 최소한 5~10년 정도 중단기적으로 수소·암모니아 비축사업을 실행할 '수소안보 전담기관'으로 한국석유공사를 검토해 볼 만하다. 현행 제4차 석유비축계획에 따라 한국석유공사에는 최소한 약 100만 배럴 규모의 프로판 저장 공동 비축시설 잉여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암모니아의 액화온도가 –33.4도로, –42도인 프로판과 유사해 프로판 저장탱크 일부 설비 개조를 통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저렴하게 암모니아 저장탱크로 전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석유공사를 '수소안보 전담기관'으로 지정할 경우, 향후 늘어나게 될 잉여 비축시설 또는 그 부지를 개조나 전환을 통해 암모니아나 기술적 제약을 극복할 경우 수소를 직접 비축하는 사업을 비용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할 수 있다. 김재경

[EE칼럼]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는 대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24일 도쿄전력(TEPCO)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소량의 삼중수소를 태평양으로 방류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안전한 행위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을 둘러싼 많은 지역에서는 상당한 긴장감이 확산됐다.중국과 러시아는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금지했으며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러한 처리수 방류가 인간의 DNA를 변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들은 시위에 나섰고 실제로 한국에서는소금사재기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헷갈릴 수 있는 시기였다.각국 정부, 도쿄전력, 국제원자력기구(IAEA), 필자와 같은과학자들은 처리수의 삼중수소가 건강에 위협을 끼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온 반면, 일부 정치인, 반핵 운동가 및 특정 단체들은 오염된 해양과 병든 물고기의 이미지를 꾸준히 상기시켰다. 방류 시작 후 약 7개월이 지난 지금, 이제는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해양 방류는 각국 정부와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는점을 알 수 있다. 해양 생물의 방사능 피폭수치는 이전 대비 대체로 변동이 없었으며 인체에 대한 영향은 '제로'에 수렴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우려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관련 기관의 교차 검증으로 이어졌다. IAEA는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에 장기간 상주할 계획으로 사무소를 설치해 자체 모니터링을 실시 중이다. 처리수 방류 전에는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하고 다른 방사성 물질 또한 기준치 미만인지 확인하는 검사가 행해지고 있다. 해양모니터링은 해수, 해초 및 다양한 어류와 해양생물에 대해 넓은 면적에 걸쳐 이뤄지고 있으며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NRA), 후쿠시마 현, 도쿄전력, 일본수산청, 환경성 또한 모두 모니터링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MonitorORBS' 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련 데이터를 보면 특별한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방류 시작시점을 포함해 대부분의 측정지점에서 눈에 띌만한 어떠한 변화조차 없었기 때문이다.해양생물에 대한 모든 검사는 인근 해역의 방사능 농도가 안전하다는 결과를 보여줬으며방류 지점 바로 옆에서 측정된 삼중수소 농도의 소폭 상승은 음용수 기준인 1500베크렐/리터(Bq/L)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정도다. 결과적으로 공포를 조장했던 이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수산업계에서는 어류의 세슘검출 기준을 50베크렐/킬로그램(Bq/kg)으로 설정하고 자체적으로 모니터링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일본당국의 제한치인 100Bq/kg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매우 보수적인 기준이다. 현재 EU 지역에서 식품 대부분에 대해 활용되는 기준은 1,250Bq/kg이다. 필자는 최근 후쿠시마현 오나하마 수산시장 맞은 편에 있는 식당에서 튀김을 먹고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토미오카의 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 방문 당일 토미오카 기차역의 방사능 측정 기기는 0.068μSv/h(시간 당 마이크로 시버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호주퍼스(Perth) 지역에 위치한필자의 사무실에서는 평균적으로 2배 가량 높은 수치가 측정된다.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별다른 피해 없이 더욱 높은 방사능 수치가 나오고 있다. 결론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의 삼중수소 방류는 일각에서 예고했던 것처럼 대재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지 13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제는더 이상 전 세계가 후쿠시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멀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물질은 각기 다른 수준의 방사능을 가지고 있으며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나오는 약간의 삼중수소는 어떠한 차이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젤 마크스

[김성우 칼럼] 넷제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유엔환경계획(UNEP)은 녹색경제를 '넷제로(Net Zero) 전환을 위한 경제활동, 공공 및 민간투자'라고 정의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원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생태계 손실을 예방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그 규모는 지난해 관련 기업의 시가총액 기준으로 약 6조 5000억 달러로, 2016년 대비 약 3배 확대되었다. 150여개국이 넷제로를 선언했는데 이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매년 7조 달러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2022년 5월 국제 로펌인 White & Case에서 전세계 29개국 투자회사 및 에너지기업 고위경영자 총 584명을 대상으로 향후 18개월내에 어느 분야에 투자할 것인지를 물었더니 가장 많은 42%가 '탈탄소/저탄소 기술'을 꼽아 글로벌 기업의 단기 투자 전략이 넷제로 전환임을 명확히 시사했다. 그러나 최근 2년새 예상치 못했던 전쟁들이 일어났고 인플레이션 등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과연 이런 전략이 여전히 유효할지 궁금했다. 마침 2023년 9월(공교롭게 위 설문 뒤 약 18개월 후) 흥미로운 설문결과가 공개되었다. 영미 로펌인 Womble Bond Dickinson에서 18개월 전과 유사하게 전세계 투자회사 및 에너지기업 고위경영자와 프로젝트 매니저 등 총 456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회사의 에너지전환 전략(운영 및 투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90%가 전환 전략에 오히려 더 집중했거나(56%) 유지했다고(34%) 응답했다. 지원금, 인허가, 인프라, 감축목표 등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비용증가 등 경제여건이 어려운 점이라고 밝히면서도, 바이오에너지, 폐기물자원화, 에너지 및 자원 효율증대, 탄소포집, 에너지저장, 전기차 등을 가장 매력적이고 성장가능한 기회로 꼽았다. 즉, 불확실성의 위험과 성장·도약의 기회가 공존하는 와중에도, 탈탄소 투자에 집중하는 넷제로 전략은 적어도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세가지 동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 기술가격 하락과 확산의 선순환이다. 태양광 설비는 지난 10년간 가격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격이 떨어지면 보급이 확산되고, 보급이 확산되면 규모의 경제로 가격이 더 떨어진다. 2009년 세계에너지기구(IEA)는 태양광 발전은 너무 비싸서 다른 발전원들과의 경쟁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지만 현실은 예상치를 크게 넘어섰다. 2022년 기준 전세계 신규 발전소 설치용량의 5분의 4가 재생에너지고, 2023년 기준 전세계 재생에너지 신규 설치용량 중 태양광이 4분의 3을 차지했다. 둘째 동인은 산업정책의 확산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고조되고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특정 산업에서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내 청정에너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표적인 산업정책을 도입했고, EU도 탄소중립산업법(NZIA) 등 상응하는 법을 마련했다. 이러한 정부지원은 넷제로 전환 투자에 대한 경제성을 높여 관련 투자를 활성화 시킨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강한 의지다. 지난 1월 울산에서 1만6200TEU급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명명식이 세계 최초로 진행되었다. 이는 세계적인 해운그룹 AP몰러-머스크(이하 머스크)가 2022년까지 발주한 총 18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중 첫 번째 선박이다. 메탄올은 탄소 등 오염물질 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선박 연료다. 머스크는 연료 수급이 불확실한데도 친환경 해운 시장 선점을 위해 그 비싼 배를 먼저 발주했다. 마치 전기차 충전소가 확충될지 불확실함에도 친환경 물류시장 섬점을 위해 조단위 규모의 전기차를 미리 주문한 것과 같다. 최근 국내에는 넷제로 전환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고민들이 많다. 예상치 못한 경영환경 변화 속에서 이런 고민은 당연하지만, 정책불확실성 및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 넷제로 전환 전략을 지속하는 동인들도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김성우

[EE칼럼] 석유 붐과 ‘돈쭐’ 내는 국내 대책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근 국내 에너지 시장에 두 가지 큰 이슈가 등장했다. 먼저 국제유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 4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수준을 넘었다. 올해 들어서만 50%나 뛰었다. 영국 북해 브렌트유도 배럴당 85달러를 웃돌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세계 원유가격 상승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여름 휴가철 단기적인 수송 연료 상승이나 러시아 원유 정제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 이슈를 넘는 중장기적인 시장추세에 주목하는 것 같다. 관련 연구기관에서는 2021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의 고유가 상황을 넘어서는 '새로운 석유 붐(Boom)'에 주목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영향은 이제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이슈는 우리 정책금융기관, 5대 시중은행이 민관 합동으로 2030년까지 452조 원의 '미래 에너지 펀드'를 조성해 신재생발전시설 증설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능력 제고에 힘쓰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자금은 지난 5년 연 평균 투자액(36조 원)보다 67% 늘어난 연 60조 원에 달한다. 이를 통해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약 8597만t 감축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30년까지 국가 감축 목표의 29.5% 수준이다. 이에 따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현행 9.2%에서 2030년 21.6%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조치들은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조정제도'와 글로벌 탄소배출 규제강화 등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35년 재생에너지 비중 40%로 확대하고 내연(內燃)차 판매 중단을 4·10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국가 실현을 위해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키겠다고 밝혔다. 전기·수소차 보조금을 확대하고, '무제한 교통패스'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2035년에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52% 감축하며,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검토한단다. 밖에서는 '원자재 붐'으로 에너지 시장이 들썩이는 데, 안으로는 '돈쭐'(돈+혼쭐) 내는 에너지-기후정책(안)이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 단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제원유 시장변화를 살펴보면 그 가격 상승은 세계 원자재시장 상승 기조(commodity bull market)의 일환이다. 지금 세계 원자재시장에서 원유뿐 아니라 리튬, 구리 등 첨단 청정소재와 커피 등 소재 곡물 가격까지 급등세를 보인다. 관련 기관들은 경제가 '디플레이션'(deflation)을 벗어난 상태에서 심각한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유발하지 않을 수준의 통화 재(re-)팽창인 '리플레이션(reflation)' 상태의 특징으로 보고 있다. 사실 여러 국가에서 어느 정도 물가상승을 용인하는 관련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1970년대 석유파동이나 2000년대 중국 경제급등 이후 새로운 석유 '붐'이 왔다고도 한다. 여기다 BRIC (Brazil, Russia, India and China) 국가들의 성장 추세도 원자재시장에 지속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판국에서도 공급여건 확대에는 많은 자본과 원자재 투입이 요구되어 장기적인 시설 확충 수익보장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급격한 원자재 '붐'이 오래 지속되지 못 한다는 평범한 시장 논리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금융자본 투입을 통한 신재생 확대. 기후대책 강화, 그리고 국제경쟁력 강화시도는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특히 관련 기술 확산과 성숙화 '사이클' 효율화 차원에서 장기 측면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경쟁적 정책대안 제시로 오해될 수 있는 에너지-기후대책은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 정치의 계절에는 '타이밍' 맞게 제시되는 '자칭' 전문가 조언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핵(脫核) 정책이 다시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선포하며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신재생 중심 시대'를 선언했다. 당시 24기의 운용 원전을 2030년과 2040년 각각 18기와 14기로 줄이고, 전체 전력설비에서 원전설비 비중을 2017년 19.3%에서 2030년 11.7%, 2040년 7.6%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규건설취소(4기)와 건설 중단(2기) 등을 포함하여 원전 13기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원전 감소는 발전사업자인 한전의 적자와 온실가스 증가로 이어졌다. LNG 등 대체연료 수입증가와 온실가스 배출증가 때문이다. 원전산업계를 비롯한 전후방 관련 산업에도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특히 매출 및 고용 감소, 수출 기회상실 등의 여파도 크다. 관련 연구기관 분석으로는 2035년까지 연간 8조 원의 국민부담(과학기술한림원) 유발과 2030년까지 한전 전력 구입비용 146조 원 증가(입법조사처)를 전망했다. 탈원전 정책은 과학적 계량 논리가 미비해 미완(未完)의 이념정책으로 남았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미래세대로의 부담 전가를 두려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신재생 확대, 기후변화 대응 전략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과학적 재검증이 필수적이다. 특히 지금 계량 불가능한 미래 위험통제비용은 갈수록 심각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갈성자원 논리와 기술혁신 논리가 지배하는 에너지-기후변화 시장은 항상 불완전하다. 미래 시장실패 비용은 완전한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불완전한 시장 논리가 여기서는 진리다. 최기련

[EE칼럼] 원자력 안전규제는 국문학이 아니다

서툰 행정가의 문건을 보면 비전, 목적, 목표, 원칙이 뒤죽박죽 사용된다. 비전으로 되어 있지만 목표인 경우도 있고, 목적이라고 되어 있지만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다. '이번 인사의 원칙은…'에서도 방침이라는 표현이 맞다. 원칙은 바뀌지 않는데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하면 수용하기보다 덤비는 것이 보통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기도 한다. 이 표현은 항상 지체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하는 표현이고 소통실패의 책임을 말을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 '공정성', 그리고 '신뢰성'이다. 이런 단어는 별도로 정의되지 않았다면 국어사전에 있는 정의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원자력 안전규제에 부합하는 정의는 사전적 의미의 정의와는 다르다. 원자력안전규제는 우리가 경험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심지어 원자력공학 전공자도 그 분야의 종사자가 아니라면 철학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우리 원자력기술은 기초없이 도입국의 규정과 체제를 베껴오는 것에서부터 출발했고 기초를 채울 시간도 없이 진도를 뽑아야 했기 때문에 노하우(Know-how)는 있지만 노와이(Know-why)가 부족하다. 원안위가 홈페이지에서 제시하고 있는 안전규제의 원칙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의 원칙을 비교해 보자. 원안위는 전문성(Excellence)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경험 축적'으로 정의한다. US NRC는 이를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건 기본이기 때문이다. 원안위는 독립성(Independence)을 '국가와 국민만을 고려하는 흔들림 없는 업무추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NRC는 윤리적 성과기준(Highest possible standards of ethical performance)으로 정의한다. 담당자가 흔들리는게 아니라 업무의 결과가 윤리적으로 바르면 된다는 것이다. 원안위의 이상한 정의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 출신이거나 이들 기관에서 연구비와 강의료를 받은 인사들을 모두 비독립적인 인사로 분류하고 원안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전개되었고 결국 전문가를 배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또 같은 기준이라면 걸러져야 할 탈핵운동가들은 거르지 않는다.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학회활동에도 제한을 두는데 이에 대해서도 NRC는 독립성이 격리(Isolatio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안위는 투명성(Transparency)을 '안전규제 전 과정을 의혹없이 수행'으로 정의한다. NRC의 원칙인 공개성과 솔직함(Openness)과 유사하지만 업무상 도덕성에 더 비중을 둔다. 원안위엔 없지만 NRC는 효율성(Efficiency)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규제결정은 부당한 지연없이 즉시 내려져야 한다'로 되어 있다. 이것이 없었기 때문에 신한울1호기 운영허가는 심사를 마치고도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12회가 넘는 위원회를 개최하면서 1년 이상 지연시켰고, 이로 인해 국가적으로는 1조 원의 손실이 있었을 것이다. 원안위는 공정성(Impartiality) 원칙을 '불편부당(不偏不黨)의 객관성 견지'로 정의하고 있다. NRC는 명료성(Clarity)을 제시하는데 이 원칙은 '일관성, 논리성, 실제성'으로 풀이한다. 이것 역시 다르다. 전자는 윤리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나 후자는 업무추진의 방식으로 접근한다. 원안위는 신뢰성(Reliability)을 '원칙을 준수하고 명확성과 일관성 유지'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NRC는 '가용한 최신 기술에 기반'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 원자력안전규제는 미국의 규제를 모태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실행차원에서 그리고 법제화 차원에서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목적과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원안위의 규제원칙은 미국과 유사하나 내용은 원자력 안전규제 차원에서 특화된 정의가 아니라 사전적 정의 또는 담당공무원의 상식선에서 풀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합리적 실행의 차원이 아니라 담당자의 윤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칙이 흔들리면 이행의 방향과 방식도 흔들린다. 그게 우리 원자력안전규제의 현주소다. 정범진

[EE칼럼] 에너지 시장 새 바람 일으키는 해상풍력

바람은 태양 복사 에너지, 지구의 자전, 산과 들, 바다 등의 불규칙한 지표면 등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발생한다. 기원전 3천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 젓는 수고를 덜기 위해 배에 돛대를 세워 바람을 동력으로 이용하였다. 육지에서 바람을 동력으로 사용한 풍차의 역사는 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밭에 물을 대고 곡물을 빻고 물을 퍼 올리는 용도로 풍차를 이용하면서 고되고 시간이 많이 드는 노동이 크게 줄었다.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대항해시대는 기술사적으로 범선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한강 유람선 크기의 범선이 바람에만 의존해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당시 범선 항해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풍지대였다. 적도와 북위 및 남위 30도 지점은 무풍지대가 존재하는 지역이다. 무풍지대로 인해 범선의 항해 경로는 매우 길었다. 유럽에서 북미로 향할 때는 서아프리카까지 내려가서 편동풍인 무역풍을 이용했고, 유럽으로 돌아올 때는 보스턴까지 올라간 다음 편서풍을 탔다. 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풍차는 미국의 찰스 브러시가 최초로 개발했다. 옥외 조명용인 브러시 등은 에디슨 전구의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 1880년에 약 6천 개의 브러시 등이 미국 곳곳을 밝혔다. 브러시 등으로 브러시는 부자가 되었고, 클리블랜드에 있던 그의 집은 석유왕 록펠러 등의 거부들이 모여 살던 거리에 있었다. 1887년에 찰스 브러시는 자신의 집 뒷마당에 18미터 높이의 풍차를 세워 지하실에 있는 발전기와 배터리에 연결하여 자신의 저택에 불을 밝혔다. 바람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였다. 현대적 풍력 터빈의 본격적 개발은 덴마크에서 이루어졌다. 덴마크의 양자 물리학자로 192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가 후원하여 설립한 리소국립연구소에서 풍력에 대한 연구를 주도했다. 보어는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나치 치하의 덴마크에서 미국으로 탈출해 오펜하이머의 스승으로서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여러가지 조언을 하는 인물로 나온다. 보어는 전쟁이 끝나고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원자력의 평화적 활용을 위해 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 여기서 개발한 덴마크 산 터빈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치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 전 세계 풍력 개발의 90%가 캘리포니아에서 이루어졌다. 1987년에 캘리포니아에 설치한 새 터빈 중 90%는 덴마크제였다. 덴마크는 1991년 세계 최초로 해상풍력발전 단지도 개발했다. 국영 에너지기업인 오스테드가 덴마크 남부 롤랑드 섬의 얕은 바다에 11기의 해상풍력 터빈을 설치했다. 바다에 터빈을 설치하면 더 강한 바람을 더 자주 맞을 수 있다. 산이나 건물 같은,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터빈은 육로로 수송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크기를 훨씬 더 키울 수도 있다. 육지에서는 3~4MW급을 설치하지만, 바다에서는 용량이 두 배가 넘는 8~12MW급까지 세우고 있다. 파리협정 제2조 1항은 각국의 모든 재원 흐름을 저탄소 발전에 부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 원칙으로 작용한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 이후 원자재 가격과 물가 상승, 높은 이자율 등으로 인해 해상풍력 산업이 어려움을 겪었으나, 미국 IRA의 세액공제 규정 완화, 유럽의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영향으로 중단되거나 지연된 사업들이 재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바람의 질도 좋은 편이다. 해상풍력을 야심차게 설치하고 있는 대만이 공급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과는 달리, 타워, 하부구조물, 해저케이블, 해양플랜트 시공 경험과 같은 산업도 잘 발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해외 개발사들이 한결같이 꼽는 장점이다. 현재 상업용 해상풍력이 124.5MW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185배나 많은 약 27GW가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상황이다. 해상풍력발전 단지의 운영 시에는 석탄, 가스 등의 타 전력생산 부문에는 필요한 연료비가 들지 않아 영업잉여 등의 부가가치가 크다. 부가가치는 국민소득계정의 국내총생산(GDP) 개념과 일치하므로 해상풍력 운영 부문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확대는 우리나라 GDP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터빈이나 전력변환장치 등에 대한 기술개발을 통해 국산화율을 높여간다면 해상풍력 설치 시의 경제적 효과도 더욱 커질 수 있다. 바람을 동력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해상풍력은 대항해시대의 범선과 같다. 다른 점은 대항해시대의 범선이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세계를 누볐다면, 해상풍력은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기후변화 완화라는 인류 전체의 복리증진을 위해 평화롭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상풍력이 탄소중립 시대의 주역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성우

[김상호 칼럼] 막가파 공약 양산, 유권자 책임

이번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더불민주당 하남시 갑-을 지역 본선 진출 후보들이 결정됐습니다. 시민 선택을 받기 위해 후보자들이 내놓는 '공적 약속', 즉 '공약'도 관심거리로 떠올랐습니다. 모든 공약은 기록으로 남게 되며, 선출된 순간부터 반드시 실천할 의무가 생깁니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제가 하남시장 후보로서 내건 공약 역시 다시금 성찰해 봅니다. 저는 당시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공약하자고 선거캠프에 주문했습니다. 특히 미사-위례-감일-원도심 주민대표단 간담회에서, 저는 지킬 수 없는 공약은 가능한 확답을 지양하고, 최대한 시민 입장에서 해법을 모색하고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런 제 입장에 대해 커뮤니티 까페 등 온라인상에선 “김상호는 안하거나 못 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당선되려면 못해도 일단 한다고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당시 현행법과 하남 상황 등 다양한 정보를 가진 현직 시장인 제 입장에서, 단지 오로지 표만을 얻기 위해 불가능한 내용을 된다고 공약할 수는 결코 없었습니다. 이는 하남시민은 물론 지역정치, 시민사회,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으려는 한 정치인의 단말마와 다름없습니다. 반면 당시 상대 후보는 명함과 현수막, 심지어 선거공보에까지 △미사 수석대교 재검토 △미사 신설중(가칭 한홀중) 2025년 개교 △미사 9호선 2023년 착공 △원도심 3호선 '신덕풍역' 현대아파트 앞 신설 △위례신사선 본선과 하남 연장선 동시 착공 등을 공약으로 과감하게(?)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지방선거 이후 2년이 다가오는 지금, 이런 공약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상황입니다. 덕풍역은 신덕풍역 신설이 아니라 역사 위치 조정으로, 위례신사선 하남 연장선은 지역갈등 속에 놓여있고, 더 중요한 자체 본선 연결도 기재부와 서울시의 건설비 갈등으로 지역 핵심현안으로 부각됐습니다. 수석대교 재검토는 '관제 동원 데모' 논란 속에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지하철 9호선 연장도 이제야 비로소 지역 주민설명회가 시작됐습니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You can fool all the people some of the time and some of the people all the time, but you can not fool all the people all the time)"고 설파했습니다. 총선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뇌리를 관통해 가슴에 울려 퍼지는 명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정치적 올바름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총선 후보들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남다릅니다. 하남시민 여러분, 하남 유권자 여러분! 하남 미래 발전과 하남정치 혁신을 원한다면 후보들에게 무조건적인 막무가내 약속을 강요하지 말아주십시오. 정치인 약속이 희망고문이 아니라 정확하고, 세밀한 하남의 역점사업으로 추진되도록 첫걸음부터 시민과 함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막가파 요구는 '아니면 말고 식' 공약을 양산하는 토양입니다. 하남시에도 요청합니다. 정당을 떠나, 출마 후보들 공약은 대체로 숙원사업과 민원에서 출발합니다. 어떤 사안은 앞뒤를 따지기도 전에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다양한 공약이 어느 정도 현실 가능한지, 사전에 점검할 수 있도록 진영을 따지지 말고, 먼저 나서서 사실을 확인해주기 바랍니다.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한 '가짜 공약'을 지양하고, 진짜 할 수 있는 일들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도 후보시절에, 공약을 만드는 단계에서 여러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하남시에서 협조해야 합니다. 선거공보에 실리는 공약은 국민혈세인 세금, 하남시정 우선순위와 행정력 투입,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후보들에게도 요청합니다. 시민불편에 공감하고, 하남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공약으로 정치 신뢰를 높여주시기 바랍니다. 오는 4월 총선에선 우리 하남시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 하남의 구체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진정한 일꾼을 뽑는 선거가 되길 바랍니다. 모든 후보님이 지킬 수 있는 진실한 약속의 힘이 공약으로 발휘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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