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환 편집위원 |
주지하다시피 한전공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 전남지역에 제2의 포항공대를 설립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수도권에 비해 발전에서 소외된 지역에 우수한 교육기관을 설립해 인재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려는 뜻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저출산 여파로 가뜩이나 지방 대학을 중심으로 정원 미달사태가 확산되고 있어 기존 대학마저 대폭 줄여야 할 판에 대학을 또 만들겠다니 "거꾸로 간다"는 소리가 나오는게 당연하다. 더구나 광주과기원(GIST) 등 한전공대와 비슷한 기능의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이 이미 5곳이나 있음을 볼 때 더욱 납득이 안된다.
학교 설립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공기업인 한전에 떠넘기는 것도 문제다. 한전공대 설립·운영에는 2031년까지 1조 61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1조원을 한전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전이 돈을 펑펑 벌어 들여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아 놓고 있어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데 상황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들어 한전의 재무 상태는 줄곧 내리막이다. 탈원전·탈석탄·재생에너지확대 정책이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한전의 부채는 새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104조8000억원에서 매년 증가세를 보이면서 지난해에는 132조4753억원에 달했다. 2024년엔 159조4621억원으로 훨씬 더 불어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부채비율도 지난해 187.5%에서 2024년에는 234.2%로 높아질 전망이다. 부채비율 200%는 통상 우량기업 여부를 가리는 기준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볼 일이 결코 아니다.
한전의 처지는 이명박 정부시절 한국수자원공사와 닮았다. 이명박 정부는 22조원이 소요되는 4대강 사업의 사업 타당성과 국민혈세 투입을 놓고 비판 여론이 커지자 사업비 22조원중 본사업비 15조원의 절반이 넘는 8조원을 수자원공사에 부담시켰다. 수자원공사는 7조9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해 사업비에 충당했고 이자로 연간 수천억원을 부담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19.6%에 불과했던 부채비율은 4대강 사업 여파로 2011년 116%로 높아졌고 2015년에는 211%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수자원공사의 부담을 덜어주기위해 출자액을 계속 늘리는 식으로 지원에 나섰고 수자원공사의 자본금이 계속 늘어났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수자원공사의 자본금 한도를 10조원에서 15조원으로 늘렸다. 정부 지원만으로 부족해 2016년에는 수자원공사가 광역상수도 물값을 4.8% 전격 인상함으로써 4대강 사업비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비난이 일었다. 2018년에는 4대강 문서 등을 무단으로 대량 파기한 사실이 드러나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소동을 보면 최근 있었던 한전의 새 사장 공모가 지원자가 1명 밖에 없어 불발되고 재공모를 벌이는 혼선이 빚어진 것이 이상할게 없다. 예년 같으면 10명 정도는 경쟁자가 몰렸을 자리다. 1년 남짓 남은 정권의 임기가 끝나면 이번 정권에서 벌인 일을 뒤치다꺼리 하느라 시달릴게 걱정될 테니 열기가 뜨거울 수 있겠는가.
공기업에 정책비용 떠넘기기는 수자원공사에서 보듯 결국 세금 투입이나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한전이 쓴 덤터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미 한전의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올해부터 국제유가 등 전력 생산용 연료비를 3개월 주기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사실 이 제도에 따르면 2분기에는 전기요금을 올려야 했다.지난해말부터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함으로써 인상 요인이 생긴 때문이다. 하지만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탓인지 전기요금 인상에 제동이 걸렸다. 선거가 끝난 3분기에는 어찌될지 궁금하다.
공기업은 공공의 복리증진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돼야 한다. 공기업을 정권의 전리품인양 정책사업에 함부로 동원하고 뒷감당은 국민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행태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내세울 무수한 공약에 담길 사업도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