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일부 품목의 글로벌 공급망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꺼낸 얘기다. 대부분 ‘반도체=못’이라는 비유에 주목했지만 핵심은 ‘왕국’이 멸망하게 된 과정이다. 말이 없다고 왕국이 무너지진 않는다. 피 튀기는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세계에는 보다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우리는 선도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 중 하나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 재진출 사실을 알린 뒤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텔은 반도체 생산기지가 대만, 한국 등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미국·유럽에 생산거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못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선언. 전쟁의 서막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반도체 독립’을 위해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고 있다.
총탄이 날아들기 직전인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태평하다. 정부가 내놓는 구호는 삼성·SK의 경영 전략과 다른 점이 없다. 해외 투자 소식이 알려지면 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라며 기업을 압박하기 바쁘다. ‘재벌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총수 일가에 대한 무리한 수사를 계속한다. 3000개 넘는 특허를 가진 강소기업이 중국으로 넘어갈 처지에 놓여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시야가 ‘못’에만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초격차’ 기술력을 믿고 좋은 못을 만들 궁리만 한다. 삼성전자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맞지만 전시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인텔의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이라는 행간에서는 ‘기술력’이 아닌 ‘정치논리’라는 숨은 뜻을 찾아야 한다. 구글, 아마존, 애플, 퀄컴 등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는 모두 미국 기업이다.
이번 전쟁의 전선이 어디까지 넓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차 개발, 인공지능(AI) 기술 경쟁, 로봇·드론 주도권 싸움 등이 펼쳐질 것이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유효세율이 경쟁 상대인 TSMC·인텔의 2배 수준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우리 정부의 결단만 남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