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 대림대 교수 |
경위야 어찌됐든 우리의 입장에서는 국내의 대표적인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싸우는 모습부터 거북했는데 막대한 소송비용을 지불하면서 결국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에 어부지리를 안겨줄게 뻔해 어느 쪽도 득 될게 없는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반기는게 당연하다. 특히 미국은 세계 자동차의 선도국일뿐더러 막대한 시장 규모는 물론 기술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시장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미국 자동차 제작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SK가 미국내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와 더불어 미국의 핵심 이익과 결부되기 때문에 대통령 거부권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할 수 있다. ITC 결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도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의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던 사안이었다.
그래서 이번 합의는 더욱 빛을 발했다. 불확실성이 가장 컸던 SK의 주가가 합의후 급등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만이 아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의 향방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어 이번 합의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전기차의 주도권이 더욱 거세지고 미래 모빌리티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 산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배터리를 주도하고 있는 한·중·일 사이에서 미래 배터리 산업의 주도권 싸움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뭉쳐도 미래가 불학실한 상황에서 뭉치지는 못할망정 해외 핵심 시장에서 같은 편이 돼야 할 국내 기업들이 뒤엉커 싸우는 모습은 더 이상 나오면 안 된다. 필자가 항상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강조하면서 미래 배터리 산업의 산·학·연·관 관계를 더욱 공고히 구축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두번째는 국내의 여건을 더욱 선진형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국내도 아닌 미국 시장에서 두 기업이 분쟁을 일으킨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영업기밀 등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을 확인하고 정리할 수 있는 관련법이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간 또는 기업과 개인 간에 보이지 않는 침해사실이 발생할 경우 보호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나 법적인 체계가 국내에는 갖춰져 있지 않다. 결국 선진화된 제도를 갖춘 미국 시장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우리는 아직 관련 선진 제도적 구축이 미약하고 아직도 규제 일변도의 포지티브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국내는 기업하기 힘든 구조로 바뀌고 있는 부분을 주시하여야 한다. 말로만 하는 기업 활성화가 아닌 실질적인 제도적 구축과 시스템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세번째는 기업 윤리적 측면이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사람 빼가기가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뺏기는 기업이나 뺏는 기업이나 모두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 등 경쟁국이 해당 분야 전문가를 몇배씩 연봉을 높여주며 사람과 기술을 빼가는 관행은 오래됐지만 최소한 국내 기업끼리는 윤리적 부분이 작용했으면 한다. 물론 해외로 나가는 국내 전문가의 출국을 막기는 어렵지만 정부나 지자체, 기업의 전문가 대접에서 물적, 정신적 측면의 구조적 문제가 확실하게 개선되어야 한다.
지적 소유권에 대한 무분별한 베끼기 관행과 개인이나 중소기업의 특허권을 침해하는 대기업의 관행도 심각하다. 이러한 기본적인 시스템 구축과 법적 제도적 보완은 중요한 시작점이다. 특히 이번 문제에 있어서 사과할 것은 분명하게 사과하고 통 크게 털어넘기는 관행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미래 모빌리티가 크게 변모하고 있는 시기다. 미래가 모호한 안개길인 만큼 장점을 가진 기업끼리 새로운 짝짓기가 성행하고 있다. 이번 합의를 통하여 더욱 뭉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기업 투자를 부추길 정부의 적극적인 분위기 조성과 역할을 거듭 강조하면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의 환원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