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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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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닥공’식 탄소중립을 경계한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5.10 10:00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탄소중립은 단순히 이산화탄소의 순 배출량을 영으로 만들기 위한 저탄소 에너지전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 문명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땅 속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탄소를 지상으로 끄집어내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상으로 끌려 올라온 탄소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고, 자동차를 달리게 하고, 하늘과 바닷길을 열어 대량생산, 대량소비, 국제 분업 등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현대 경제체제를 탄생시켰다. 탄소경제의 출현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지상으로 풀린 탄소는 산소와 결합하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여 지표면의 온도를 상승시켰다. 탄소경제를 멈춰 세울 수도 있는 기후변화 부메랑이다.

기후변화의 방지책은 명확하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탄소에너지를 땅 속에 태초의 상태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탄소중립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은 탄소경제의 종말과 무탄소경제로 전환하는 경제패러다임의 일대 변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흔히 변화는 도전이자 기회라고 한다. 특히 탄소중립과 같은 대규모 변혁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발 빠르게 적응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나뉘는 것이다.

적응에 성공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한낱 피하고 싶은 위협일 뿐이다. 따라서 책임 있는 국가라면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탄소중립에 적응이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부문을 세심하게 살피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인류가 활용할 수 있는 무탄소 에너지원은 태양광, 풍력, 수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밖에 없다. 따라서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탄소중립은 대개의 탄소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에너지전환 이외에는 도리가 없다. 이와 같은 전환 과정에서 탄소경제에서는 유용했지만 무탄소경제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자산이 발생하게 된다. 이른바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다. 좌초자산은 일종의 강요된 손실이다. 따라서 좌초자산은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그 크기를 최소화해야 한다.

좌초자산의 책임소재는 좌초화를 초래한 변화의 원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변화가 시장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적응 실패의 책임을 자산의 소유자에게 물어야 하겠지만, 공익을 위해 정부가 인위적이고 갑작스럽게 취한 변화라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불안한 전력수급을 안정시키고자 민간석탄발전소 사업을 부추겼던 정부가 갑자기 선언한 탄소중립에 의해 석탄발전소가 좌초화되는 사례는 후자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좌초자산의 손실은 자산의 가동기간을 연장하면 할수록 줄어든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어느 날 무 자르듯 싹둑 줄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가동연한 및 가동률 조정, 대체방법 모색 등을 통해 손실을 줄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피할 수 없는 손실에 대해서는 기업도 정부도 면책될 수 없다. 왜냐하면 기후변화는 공식적으로도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1992년 이후 30년 간 지속적으로 경고음을 냈던 위험요인이어서 기업도 정부도 탄소관련 자산의 좌초 가능성을 인지해야 했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좌초자산을 에너지산업에 국한된 이슈로 보아서는 결코 안 된다. 탄소경제의 모든 자산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좌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 유조선, 도시가스 배관망, 내연기관, 제철소 고로 등과 같은 유형자산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일자리, 기술 등과 같은 무형자산도 좌초의 대상이다. 더욱이 이들 좌초자산은 대개 대규모이기 때문에 탄소산업발 금융위기가 우려된다는 소위 탄소버블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경제 전반에 걸친 이슈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탄소중립에 따른 좌초자산도 기후변화 못지않게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탄소중립은 방어적으로 조심조심 다뤄야 할 문제이지,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률안처럼 정부가 공익의 명분으로 좌초자산화를 강제할 수 있는 ‘닥치고 공격’식 접근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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