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10월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 제1동 사전투표소에서 막바지 점검이 한창이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윤수현 기자] 선거구 획정안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어오면서 최종 확정 문제를 두고 여야가 수 싸움에 돌입했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의원회가 국회에 제22대 총선 선거구 획정안 초안을 제출하면서다.
선거구 감소가 예상됐던 강남은 현행 유지된 반면 노원은 1석이 사라지는 등 수도권 내 조정이 다수 이뤄졌다. 현역의원 영향이 큰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수용 불가’ 입장을 내놨고, 국민의힘에서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선거구 획정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선거구 획정 논란은 총선 때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의 표면적인 배경은 총선이 치러지는 4년마다 선거구별로 인구수가 변화하는 점이다. 선거구별 인구 수가 시간 경과로 줄거나 늘어난 만큼 선거구 조정으로 선거구별 인구 수 편차를 줄이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대의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선거구별 인구 규모의 조정인 셈이다.
문제는 선거구별 인구수 변화로 선거구별 편입 행정구역을 쪼개거나 합쳐야 하면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에 유·불리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부자연스럽게 선거를 정하는 이른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 이뤄지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형적이고 불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막기 위해 국회의 의결을 거쳐 선거구를 법률로 정하는 선거구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게리멘더링을 근원적으로 제한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급기야 헌법재판소가 기형적이고 불공정한 선거구 획정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줄이도록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1995년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가장 적은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4대 1로 맞추라고 판결한 이래 이 기준을 계속 강화했다.
2015년엔 인구 편차를 2대 1로 맞추라고 판결하면서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선 많은 의석이 탄생한 반면 농촌은 인구가 적은 시·군이 결합하면서 의석이 줄어들게 됐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 도시·농촌간 인구편차 확대 등이 원인이 된 것이다.
1995년 이전에는 인구수에 따라 협상에 의해 선거구를 조정해왔지만 인구 편차 규제 장치가 생기면서 정당간, 의원들 간의 갈등 양상이 심화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선거구 획정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당별 밥그릇 싸움을 비롯해 현역 의원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22대 총선 선거구 획정안. 연합뉴스 |
◇ 민주당 "국민의힘 의견만 반영…편파적" vs 국민의힘 "인구 기준으로 정한 것"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 획정위는 인천과 경기도가 1석씩 증가하고 전북과 서울이 1석씩 감소한 선거구 획정안을 지난 5일 국회에 보고했다. 지난 1월 31일 기준 하한 13만6000명 이상, 상한 27만3200명 이하의 인구 기준이 적용된 결과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수도권의 경우 서울에서는 노원 갑·을·병에서 갑·을로 1석 줄었다. 경기에선 부천과 안산 각 1석씩 감소했지만 평택·하남·화성 각 1석씩 증가해 총 1석 늘었다. 인천도 서구 갑·을이 갑·을·병으로 1석 증가했다. 1988년 소선거구제 두입 이후 단일 선거구를 유지했던 종로는 구역조정에 따라 인접한 중구와 합쳐졌다.
부산에서는 남구 갑·을이 하나로 통합됐지만 북·강서구 갑·을이 북구 갑·을과 강서로 나뉘며 총 의석수가 18석으로 유지됐다. 전남은 의석 수에는 변화가 없지만 순천이 1석 늘고 해안가 군 단위 지역 4곳이 3곳으로 줄었다.
이번 획정안이 나온 직후 민주당은 여당에 편향됐다며 재의결을 요구했다. 민주당 세력이 강한 수도권과 호남 선거구는 사라지는 반면 국민의힘 텃밭인 서울 강남과 대구·경북(TK) 지역은 변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선거구가 1석씩 줄어드는 노원·부천·안산 지역구는 민주당 다선 의원이 내리 당선된 지역이다. 당 내에선 이대로 총선이 치러질 경우 경선에서 ‘집안싸움’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제25조의 원칙과 합리성을 결여한 국민의힘 의견만이 반영된 편파적인 안으로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개특위 야당 간사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전북만 손대는 결과는 어떤 경우에도 설명되지 않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도 "공직선거법 25조를 기준과 원칙으로 하면 선거구 획정에서 인구수 기준과 농산어촌 지역 대표성을 반영하게 돼 있다"며 "인구수 대비 선거구 현황을 보면 경기 안산, 서울 노원, 서울 강남, 대구 달서 순으로 적다. 강남은 빼고 도리어 전북과 경기 부천이 들어간 부분들은 아무리 봐도 특정 정당에 편향된 획정안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획정안에 정당 유·불리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올해 1월 31일 자 인구 기준으로 상·하한을 적용했을 때 분구·통합 대상 지역을 정한 것"이라며 "획정안을 특정 정당 유·불리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수도권 감석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수도권 의석을 다수 점하고 있다 보니 불리한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구역 경계 조정에 대해서는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 의원은 "구역 경계 조정과 관련된 해당 지역 의원과 당협위원장 의견을 더 수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역대 국회 선거구획정 시기
국회 | 선거구 획정일 | 선거일 |
제16대 | 2000년 02월 26일 | 2000년 04월 13일 |
제17대 | 2004년 03월 12일 | 2000년 04월 15일 |
제18대 | 2008년 02월 29일 | 2008년 04월 09일 |
제19대 | 2012년 02월 29일 | 2012년 04월 11일 |
제20대 | 2016년 03월 02일 | 2016년 04월 13일 |
제21대 | 2020년 03월 07일 | 2020년 04월 15일 |
◇ ‘기울어진 운동장’에 속 타는 신진 정치인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자신의 표밭을 새로 개척해야 하는 예비후보자, 특히 지역구를 노리는 정치 신인에게는 더 불리한 상황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선거구 획정이 지연될 수록 기성 정치인에게는 유리하지만 그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정치 신인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들은 유권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자신을 알려야 하는 처지지만 공직선거법에 의해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까지는 선거사무소를 차리거나 얼굴과 이름이 적힌 선거홍보용 현수막을 걸 수 없다. 내년 4.10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은 오는 12일이다.
일찍부터 경기 동두천·연천 출마를 준비하며 기반을 다져온 손수조 국민의힘 리더스클럽 대표는 선거구 조정 관련 현역과 예비후보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했다.
손 대표는 6일 자신의 SNS을 통해 "예비후보 등록 일주일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안이 제안됐는데 준비 중인 연천군 동두천시 지역구가 갈린다고 한다"며 "해당지역 현역 의원은 본인이 정개특위 소속이니 절대 분리되지 않도록 사수하겠다 한다. 지역구민들과 예비후보인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오리무중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장 예비후보 등록일이 12일인데 연천·포천·가평·동두천·양주를 두고 선거운동 하라는 말인가"라며 "현행 선거법상 늦어도 내년 총선 1년 전인 지난 4월 10일에는 결론이 나야 할 일이었다. 언제까지 이러한 무능을 반복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런 국회를 국민들이 감안하고 봐줘야 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다만 역대 총선 선거구 획정 과정에 비춰보면, 이번에도 국회는 각 당의 유·불리에 따라 선거구 경계를 일부 조정하고 초비대 선거구 문제를 해결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철현 경일대학교 특임교수는 "큰 틀에서 정당의 유·불리는 없다"면서도 "민주당이 어쨌든 전북 쪽이 조금 줄었고 부산이나 강남 쪽에는 반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힘 텃밭이 좀 유리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마 그것은 추가 협상을 통해 좀 더 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남권과 호남권,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이 분명한 상황에서는 한 석을 줄인다는 것은 굉장히 큰 것이기 때문에 영남과 호남 의석수의 증감은 똑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비대한 선거구나 수도권에서 경계구역을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국회의원 정수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개개인 입장에서 보면 불리해지는 의원도 있겠지만 당 차원에서 볼 때는 (소수의 의견은) 묻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헌법에 따라 인구 비율만 보고 따져 선거구 획정을 하지만 각 당마다 유·불리가 달라지면서 논란이 된다"면서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계속해서 (수도권)의석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구 획정의 변화 때문에 수도권 의석수가 더 많아진 것도 있다. 예전에는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4대 1이었는데 지금은 2대 1이기 때문"이라면서 "수도권에서는 쪼갤 지역수가 많아지니 의석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선거구 획정이 내년 선거일이 임박해서야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역대 총선에서도 선거구 획정은 쉽지 않았다.
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 당시 선거구 획정은 같은 해 3월 12일(37일 전)에 완료됐다. 18대 총선(2008년 4월 9일)과 19대 총선(2012년 4월 11일)에서도 선거구는 각각 47일, 44일을 남기고 2월 29일에 가까스로 정리됐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2016년 4월 13일)에선 총선 42일 전인 2016년 3월 2일, 2020년 21대 총선에선 총선 39일 전인 2020년 3월 7일 선거구가 획정된 바 있다.
ysh@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