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자체가 재건축·리모델링 규제와 관련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김준현 기자] 일관되지 않은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정책으로 인해 도시정비사업 시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2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같은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임에도 불구하고 재건축·리모델링 규제와 관련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에 대해 안전진단을 면제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반면 리모델링과 관련해선 서울시가 오히려 규제를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10월 리모델링시 안전성 검토를 기존 1차례에서 2차례로 늘렸다.
또 시는 최근 유권해석을 통해 리모델링 단지는 필로티 구조로 건축할 시 수평증축이 아닌 수직증축으로만 진행해야 한다면서 C등급 받은 약 17개 단지를 필로티로 추진할 수 없게 했다. 이 단지들은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해서 시간과 비용 모든 부분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에 리모델링을 계획하던 단지들이 재건축으로 사업을 선회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올해 준공 32년차를 맞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는 2008년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리모델링을 추진하다가 재건축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합 해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 2020년 건축심의를 통과했으나, 지난 2022년 9월 수직증축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또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권을 반납하며 사업이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송파구 ‘거여1단지’가 지난해 3월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해산한 적도 있다. 풍납동 ‘강변현대’도 1년 6개월간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해 조합 해산 검토에 들어가기도 했다.
문제는 리모델링 단지에서 재건축으로 사업을 선회하려고 해도 용적률 등 문제로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시가 지난해 발표한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 지역 4217개 공동주택 단지 중 3096개 단지는 사업성 때문에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리모델링 예정 단지 주민들은 정부의 재건축 활성화 만큼이나 주거 환경 개선 효과가 큰 리모델링에도 각종 지원·활성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 리모델링 조합이 모여 있는 ‘서울시리모델링주택조합협의회’는 최근 윤석열 정부의 대선 당시 공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선 공약에는 리모델링 추진법 제정, 안전진단 및 안전성 검토 절차 개선, 리모델링 수직·수평 증축 기준 정비 등 내용이 담겨있으나 하나도 진행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의 늑장 행정도 비판받고 있다. 시는 리모델링 사업의 지지부진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리모델링 운영기준 개선과 활성화 방안을 구상하겠다고 나섰다.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에 근거해서 내달부터 12월까지 약 10개월간 진행한다.
리모델링 A조합장은 "활성화 방안을 지금 다시 만들면 그전에 추진한 단지들은 또 사업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결국 이는 정부의 신속한 공급정책과도 반하게 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식 정책이다"고 지적했다.
정비사업 시장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동우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노후공동주택리모델링연구단 단장)는 "재건축으로 노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나 모든 단지가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혼란을 주고 있다"며 "정책으로 사안을 해결하기 보단 각 단지마다 사업 추진기간과 형평성, 기술적 문제를 심도있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kjh123@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