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재건축 현장, 조합-시공사 공사비 갈등 점화
공사비 증가에 착공 지연…주택공급 확대 제동 우려
표준계약서 배포했지만…“궁긍적으로 재초환 폐지해야"
자잿값 및 인건비 등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통한 주택 공급 확대 및 건설 경기 부양 정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치솟는 공사비 안정화나 실질적 규제 완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조합-시공사 공사비 갈등 곳곳 이슈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건축, 재개발 현장 등을 중심으로 인허가 절차 등을 마쳤지만 실제 공사에 들어가는 착공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이달 초 발표한 건축착공 면적은 지난 2022년 11만840㎡으로 전년 13만5299㎡ 대비 18%, 지난해는 7만815㎡로 전년대비 36%나 줄었다.
이는 공사비가 급등하다 보니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이 발생해 착공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알려진 대표적 사례는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사업이다. 현대건설은 조합 측과 2조6363억원에 공사 계약을 체결했지만 최근 1조4000억원 증액을 요구해 갈등을 빚고 있다. 3.3㎡(평)당 548만원에서 829만원으로 51.2%나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최근 부산에서도 범천 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에 기존 3.3㎡당 539만9000원인 공사비를 926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기존 도급계약 대비 무려 72% 오른 금액이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17년 3.3㎡당 약 500만 원의 공사비로 신반포22차 재건축 사업을 수주했다 하지만 최근 도저히 이 가격으로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조합 측과 1300만원선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HDC현대산업개발도 송파구 잠실진주 재건축 사업에 3.3㎡당 660만원에서 889만원으로 인상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해 재협상 중이다.
이에 따라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하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에는 1건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13건, 2021년에는 22건, 2022년에는 32건, 2023년에는 30건 등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재건축사업을 수주했을 당시는 코로나 이전이거나 직전이고, 이후 자잿값 등이 30% 안팎으로 폭등하면서 당시 제안한 가격으로는 절대 공사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며 “최근의 재건축 사업들의 경우 공사비가 3.3㎡당 89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오른 상황이어서 (기존 수주 공사들은) 이보다는 덜 낮은 금액까지만 인상하는 방향으로 계약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 재초환 폐지 등 실질적 규제완화 동반돼야
정부 일각과 건설업계에선 이같은 공사비 급등 사태가 건설경기 활성화, 주택 공급 확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된 1.10 부동산 대책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연한을 사실상 없앴다. 이달 들어선 노후계획도시재정비촉진법 시행령을 제정해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2022년 이후 본격화된 고금리 사태와 건설업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상승 등으로 침체 일로에 있는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동시에 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카드였다.
하지만 정작 최근의 자잿값·인건비 등 공사비 급등하면서 재개발·재건축 공사의 착공이 늦어지면서 이같은 부양책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주거용건물 건설공사비지수는 152.47이다. 2020년 12월(121.46)과 비교하면 25.5% 상승했다. 건설자재지수도 2020년 12월 106.4에서 2023년 12월 144.2로 35.6% 증가했다. 주요 건설자재인 철근과 시멘트가 자재값 상승이 컸다. 이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이 약 12%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높다.
따라서 범 정부 차원의 공사비 안정 대책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폐지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게 건설업계의 요구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 외국인 노동자가 현장에 투입이 되지 않다보니 국내 노동자를 쓰게 됐는데 여기서 특히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며 “오른 인건비는 다시 내릴 수 없고, 이 부분도 공사비 상승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재초환 폐지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제경 투미컨설팅 소장은 “공사비가 급등하다 보니 돈이 될 법한 재건축 사업에만 몰리는 게 현실이고, 앞으로도 사업성이 없는 곳은 착공조차 하기 힘들 것"이라며 “정부가 자잿값이나 인건비, 금리 등을 직접 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나마 손댈 수 있는 재초환 폐지를 통해 어느정도 사업성 있는 곳들이 착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공사비 급등에 따른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입장이다. 우정훈 국토교통부 건설산업과장은 “자재수급 불안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부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서 시장 동향 정기 조사 실시 등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