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수사 중인 상황에서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4·10 총선 '정권 심판론'에 불이 붙고, 정부·여당 지지율 위기로 이어지면서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대사를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29일 공지에서 “이 대사가 오늘 외교부 장관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임명 25일만, 지난 21일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한 지 8일 만이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이 대사는 “저는 그동안 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으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면서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끝나도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그러기 위해 오늘 외교부 장관께 주호주 대사직을 면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사의를 표명하고 꼭 수리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직권 남용 혐의로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등에 의해 고발됐다.
국방부 장관이었던 지난해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채상병 사건 관련 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다.
공수처는 이 대사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지난해 12월 출국금지 조치했지만, 정부는 지난 4일 그를 주호주대사로 임명했다.
공수처 출국금지 판단에 정면으로 누른 조치다.
공수처는 대사 지명 이후인 이달 7일에도 이 대사를 불러 4시간가량 조사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튿날 당사자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이후 공수처는 출국금지 해제에 반대하며 반드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이 대사는 지난 19일, 21일, 27일 세 차례에 걸쳐 공수처에 의견서를 내고 소환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공수처는 증거물 분석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고, 참고인 조사 등이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이 대사를 소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내부적으로 총선 전 이 대사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이 대사 '귀국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외교부가 회의를 급조했다는 의혹 등이 이어지고 자신의 거취가 총선 리스크로 부상하자, 이 대사가 결국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사는 그간 채상병 사건에 외압을 행사하지 않았고, 군에 수사권이 없으므로 법리적으로도 직권 남용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