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던 것과는 달리, 2년 만에 표심이 완전히 돌아서 윤 정부는 5년 내내 '여소야대' 지형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의료 개혁을 포함한 교육·노동·연금 3대 개혁은 물론 국정과제로 내세운 원전 확대 등 에너지믹스 개편, 시장원칙 작동, 요금정상화 등 구조개혁도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범야권이 180석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원자력발전 확대를 중심으로 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추진에 심각한 제동이 걸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에너지업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지난해 말 실무안(초안) 발표가 예정됐으나 총선 이후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일정이 계속 밀리면서 업계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원전 확대 발표가 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실제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11차 전기본의 세부내용이 대폭 수정될 것이라는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총선에서도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걱정이 현실화됐다"며 “실제 지난 2년간 윤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주요 정책이 거대 야당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장 11차 전기본에서 원전 확대 정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공무원들도 사실상 레임덕 상태인 정부보다 거대 야당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범야권 180석의 경우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을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기준이다. 민주당이 151석 이상을 차지해 단독으로 법안처리가 가능해지면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순조롭게 국정 운영을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원전 최강국' 건설 기조는 퇴색하고,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자는 취지의 RE100 대신 원전 등을 포함한 무탄소에너지(CFE)를 확대하자는 계획도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반대로 석탄화력발전 퇴출, RE100 및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 유세 현장에서 줄곧 “RE100도 모르면서 'RE100 같은 건 몰라도 된다'라는 마인드로 어떻게 재생에너지 중심사회에서 대한민국 경제 산업이 견뎌내겠나. 재생에너지를 확충하지 않으면 우리 수출 기업은 국내 생산을 못 하고 유럽,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국내 좋은 일자리가 다 없어진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의 기후환경 전문가인 이소영 국회의원과 박지혜 당선인도 기후공약 발표현장에서 “RE100 조기 달성 여부에 대한민국 경제의 운명이 걸렸는데, 도대체 국가는 뭐하고 있느냐"며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했다.
이 의원은 “기업 생존이 걸려 있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RE100이 무엇이냐'를 물었고, 당선 후에는 재생에너지 예산을 반토막 냈다"며 “RE100과 탄소중립에 앞장서지 않는 기업과 이를 외면하는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RE100 참여 글로벌 기업은 400개가 넘었고, 국내 기업 300개 중 30%가 해외 거래처로부터 재생에너지 이용을 요구받았다"며 “탄소중립을 넘어 직접 탄소를 줄이겠다는 '탄소 네거티브'까지 선언하는 등 RE100 '경주'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 의원은 “RE100은 원자력발전(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데, 윤 정부는 지난해 원전을 주축으로 하는 CFE라는 무탄소연합을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20개 국내 기업만 참여하고 있을 뿐 단 하나의 국외 기업도 CFE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선진국 중심으로 탄소무역장벽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누가 얼마나 더 빨리 탄소배출을 줄이느냐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결정되고, 얼마나 빨리 RE100을 달성하느냐에 기업 운명과 국가 미래가 걸렸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치권은 물론 에너지업계에서도 다른 주요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환경 산업 분야의 근본적인 정책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