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의 변화에 맞게 현행 특구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3일 대학 교수, 민관 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 등 지역경제 전문가 50인을 대상으로 '특구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같은 주장이 나왔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제도 역량을 집중해 수요자(기업)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나눠주기식 특구 지정을 지양하고 집적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등 현행 특구제도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현행 특구제도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전문가의 76%가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보통'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22%였으며, 2%만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인프라 구축 및 정주여건 개선과 기업 투자 유치 촉진 측면에서 특구제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성과가 좋은 특구제도로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인천), 대덕연구개발특구(대전),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 포항 규제자유특구 등을 꼽았다. 특구의 조성 목적이 달성됐거나(인천경제자유구역-외자 유치), 특구 기능이 잘 자리 잡았거나(대덕연구개발특구-R&D), 특구 대표 산업이 명확한 경우(오송-첨단의료, 포항-폐배터리 등) 등 차별점이 명확한 사례들이다.
현행 특구제도의 전반적 운영 현황에 대해 전문가들의 48%가 '보통'이라고 응답했다. 44%가 '잘 운영되고 있지 않음'이라고 답했다. 반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답한 전문가들은 8%에 불과했다.
특구제도가 잘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지역별로 나눠주기 식 특구가 지정되는 등 제도 역량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류승한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도가 많다 보니 동일 산업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특구가 추진되고 기업·투자 유치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제도가 복잡해 기업이 이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행정비용 등 전반적 관리비용이 높아지는 문제도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특구제도에서 개선이 가장 시급한 사항으로 유사 특구제도의 통·폐합을 꼽았다(88%). 기업 수요 맞춤형 특구제도 발굴(42%), 세제특례 정비·확충(40%) 등이 뒤를 이었다.
현행 특구제도들 간 차별성을 묻는 질문에는 전문가의 82%가 '차별성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8%의 전문가는 '차별성이 있다'고 했으며, '모르겠다'는 응답이 10%였다. 유사 특구제도의 통·폐합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6%가 통·폐합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20%는 '통·폐합보다는 특구별 차별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생가했다.
박철우 한국공학대학교 교수는 “특구별로 담당 부처가 다르고, 관련 법도 다른 경우가 많아 유사 특구를 통폐합하는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며 “우선 지난달 출범한 기회발전특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이후 다른 특구들을 기회발전특구와 연계하거나 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지방투자촉진특별법(지촉법)이 빨리 통과돼 기회발전특구가 조속히 안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훈 대한지리학회 회장(강원대 교수)은 “우리나라 특구제도는 지난 50년간 산업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며 “다만 시대 흐름과 산업 판도의 변화에 발맞추어 공급자(정부, 지자체) 중심이 아닌 실제 수요자(기업)의 니즈 중심으로 특구제도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체 특구제도를 원점에서 검토해 효과가 미미하거나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특구를 과감히 통·폐합하고 개별기업 맞춤형 인센티브 개발, 정주환경 개선 등 지역주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방안에 재정·정책 등 제도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