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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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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경기불황과 슬기로운 소비생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8.24 10:05

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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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 샐러리맨들이 흔히 하는 푸념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월급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고물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리도 치솟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2022년 7월 기준)는 86이다. 소비심리지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경기에 대한 판단이나 전망 등을 조사하여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서, 보통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에서 소비심리지수가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소비심리지수는 향후 경기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경기선행지표의 역할을 하며, 이는 선진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근 들어 모든 소득계층에서 소비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빠른 물가상승 때문에 저소득층의 소비도 줄어들고 있고, 주식시장의 불황으로 고소득층의 소비 역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계부채와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함으로써 미국 소비자의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이렇듯 불황을 설명하는 다양한 지표들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2016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는 ‘불황기 소비유형’ 이라는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불황기 소비유형은 ‘불황복종형’, ‘불황순응형’, ‘불황자존형’, ‘불황부지형’의 4가지 소비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유형인 불황복종형은 소비를 최대한 자제하는 소비유형이다. 이 소비유형에 포함된 소비자들은 나보다는 가족을 위한 소비를 지향한다. 두번째 불황순응형은 가성비를 따져 소비하나 작은 사치를 즐기기도 한다. 셋째 불황자존형은 불황이지만 나를 위한 소비를 줄이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고 유행하는 것을 구매한다.넷째 불황부지형은 지금을 불황이라 생각 안하며 따라서 소비에도 변화가 없다. 교육,건강, 식료품 지출은 오히려 더 늘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당시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61%는 ‘현재 경기가 불황’이라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조사 당시 MZ세대에 해당되는 10~30대의 응답자들은 현재의 경제상황은 불황이지만 나를 위한 소비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고물가는 나를 위해 소비하는 MZ세대의 소비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다. 오히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를 극도로 줄이는 무소비 활동이 SNS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 ‘아나바다 운동’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짠테크’와 ‘무지출챌린지’가 그들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짠내나는 소비를 하면 ‘궁상맞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이는 불과 얼마전까지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YOLO)문화와 플렉스(FLEX)를 외쳤던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현상이다. 그들은 지금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SNS를 중심으로 공유하고 있다. 소비의 유행에 중심에 있었던 그들이, 고물가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자구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식비를 아끼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며, 합리적 소비의 일환으로 중고 제품 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가까운 거리는 공공자전거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6월에 발간된 ‘서울 교통이용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공공자전거 서비스인 따릉이의 5월 하루평균 이용건수는 약 15만 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74.4% 증가했다.

기업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싼 물건을 찾는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자사 브랜드의 중고 제품을 직접 구입해 판매하는 기업이 등장했다. 또한 매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도시락을 구매할 수 있는 ‘도시락 구독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가성비 높은 상품에 관심을 기울이며,기업도 이에 발맞추기 위해 가격파괴 상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가격파괴가 소비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투자와 고용이 위축되고 결국 이것은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더욱이 가격을 내려도 소비가 늘지 않으면, 장기 불황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짠내나는 소비가 길어지면 시장에서 돈의 흐름이 멈추는 ‘경제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지출을 줄이기 보다는 나에게 맞는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통해 지출을 조절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지루한 장마처럼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다. 지치지 않고 슬기로운 지출을 계획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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