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美, 에너지에 300조 투자…韓 기업, 세계시장 도약할 역대급 기회”

[인터뷰] “美, 에너지에 300조 투자…韓 기업, 세계시장 도약할 역대급 기회”

“AI와 반도체와 더불어 미국 시장에 대한민국 기업에 엄청난 기회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에너지 기업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김희집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한미 간 대규모 투자 협력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미국 내 전력망·원전·가스 및 가스발전·ESS 분야에서 엄청나게 큰 규모의 시장이 열리고 있다"며 “국내 에너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특히 “미국에 투입될 것으로 거론되는 수백조원 규모 투자 가운데 미국 측에서 에너..

[인터뷰] “가문 자산 관리 넘어 가업 승계 솔루션 제시”…송재광 신영증권 APEX패밀리오피스 부장

“신영증권 '패밀리오피스'는 가문의 문제를 직접 풀어내는 '해결책(솔루션)'입니다. 단순히 자산관리(WM)의 한 종류로 접근하는 다른 금융사들과는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경쟁사들이 우리 방식을 물어보고 참고하기 위해 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송재광 신영증권 APEX패밀리오피스본부 부장은 자사 패밀리오피스만의 차별점을 이같이 강조했다. 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송 부장을 만나 패밀리오피스 사업의 전략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물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WM 서비스는 증시 상황에 따라 변하는 주식 중개 수수료(브로커리지) 수익을 보완할 수 있는 핵심 사업이다. 그중에서도 초고액 자산가들의 가문 자산을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는 전 금융권의 최대 격전지가 됐다. 금융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신영증권은 자사 패밀리오피스의 정체성을 솔루션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한 자산 관리를 넘어, 고객과 그 가족이 마주한 문제를 함께 풀어내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기업 오너가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할 때 그저 조언에 그치지 않는다. 신영증권은 이 솔루션에 대해 '회사의 재무제표와 세무조정계산서까지 들여다보며 세금을 줄이고 안전하게 자산을 이전할 수 있는 맞춤형 구조를 짜는 데 모든 역량을 쏟는다'고 설명한다. 신영증권을 찾는 자산가들의 고민은 한결같다. 결국 자산을 다음 세대에 안전하게 물려주고, 그 물려받은 자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다. 최근에는 증여세를 내더라도 자녀에게 자산을 일찍 증여해 증시 상승세 속에서 자녀의 투자금을 마련해주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신영증권은 이런 고객 요구에 맞춰 자산 관리를 전담하는 프라이빗 뱅커(PB)와 문제 해결을 전담하는솔루션 PB를 나눴다. 사안에 따라 본사 헤리티지솔루션본부나 투자은행(IB)본부 전문가, 외부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이 협력해 전략을 짠다. 솔루션을 설계하는 패밀리헤리티지서비스와 이를 고객에게 전달하고 조율하는 패밀리오피스로 역할을 나눠 전문성을 높인 구조다. 다음은 일문일답. -증권사, 은행 등 전 금융권이 패밀리오피스 사업을 전개하는데, 이들과 차별화되는 신영증권 패밀리오피스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신영증권은 솔루션과 자산관리를 구분하고, 솔루션에 진심을 다한다. 자산관리는 재산에 대한 단편적인 관리, 솔루션은 더 큰 프레임에서의 고객 문제 해결이다. 예를 들면 가업 승계를 위한 구조 개편이 있다. 중소·중견 기업 오너들에게 주요 자산은 그 회사의 주식이다. 증여세를 계산하고 절세 시점을 잡는 것은 단편적인 서비스다. 신영증권 패밀리오피스는 회사의 전반적인 지배구조를 확인하고, 재무제표 및 세무조정계산서 그리고 보유 부동산 리스트 등을 검토해 가업승계 관점에서의 기업 구조개편 솔루션을 마련한다. 여기에 재원 마련 방안과 가업승계 특례 등을 고려한 절세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 자산관리 측면에서 보면, 신영증권의 포트폴리오는 PB의 뷰에 좌우되지 않는다. PB는 고객 관리의 역할에 더 중점을 두고, 포트폴리오는 신영증권 패밀리오피스의 '모델 포트폴리오'에 기준점을 둔다. 이후 각 고객의 투자 성향이나 니즈에 맞게 개별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후 본사 자산관리솔루션부에서 고객 각자의 포트폴리오를 모델 포트폴리오와 비교하고 필요하다면 자산 배분 재조정(리밸런싱)을 진행한다. -신영증권 자산가 고객들이 가장 많이 토로하는 고민은 무엇인가. ▲자산가들의 고민은 본인의 자산을 후대에게 안정적으로 이전하는 것과, 후대가 이전된 자산을 잘 보존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증시가 사상 최대의 활황을 맞이하자 고민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과거에는 상속·증여세로 인해 승계 자산이 줄어드는 것을 주로 우려했다. 최근 일부 고객은 증여세를 부담하더라도 일정 재산을 미리 승계해서 자녀들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증여세를 부담하더라도 이후 증가하는 자산의 가치에 대해서는 추가 세금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솔루션을 도출하기 위해서 자산관리 전문가 그룹과 현장 PB 간 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신영증권 패밀리오피스에는 자산관리를 담당하는 자산관리 PB가 있고, 고객의 니즈에 맞는 솔루션을 담당하는 솔루션 PB가 있다. 자산관리 PB가 초기 상담을 맡고, 솔루션 PB와 소통하며 자산운용 전략을 세우고 다듬는다. 더 깊은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신영증권 내 헤리티지솔루션 본부, IB본부의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가업승계 관점에서 구조 개편 전략을 수립할 때 기업매각이나 인수합병(M&A), 자금조달 등에 대한 솔루션이 필요한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또한 솔루션 실행 단계에서는 필요하다면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 신영증권의 외부 전문가 네트워크와 협업할 수 있다. -신영증권에는 패밀리오피스와 패밀리헤리티지서비스가 모두 있다. 차이점이 무엇인가. ▲패밀리헤리티지본부가 전문가 조직으로서 솔루션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역할에 중점을 둔다면, 그 솔루션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가족 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설득하는 것은 패밀리오피스의 역할이다. 아무리 좋은 솔루션이 있더라도 고객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소용없다. 고객 가족에 적합한 솔루션을 설계하고 적시에 제안하여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따라서 패밀리헤리티지본부와 패밀리오피스본부 간의 유기적인 협업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통상 패밀리오피스는 자산 규모(AUM)로 고객을 선별하는데, 신영증권은 가입 조건으로 장기 거래와 신뢰관계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가 있나. ▲대부분의 고액자산가들 성향 상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처음부터 많은 자금을 맡기는 경우가 드물다. 당장의 수익성을 보기보다는 신뢰관계를 더 깊게 쌓아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고객을 만들고자 한다. 처음에 큰 규모의 자금이 유입되지 않더라도, 자산승계와 관련된 고객의 고민을 해결하고 자산을 관리하다 보면 인연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APEX패밀리오피스가 출시된 첫해인 지난 2012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는 고객들도 있다. 자산 승계 과정에서 1세대 고객과 맺은 인연을 그 다음 세대 고객과 이어가기도 한다. -신영증권의 APEX패밀리오피스가 10년, 20년 뒤에도 자산가를 위한 금융서비스로 남기 위해 현재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디인가. ▲다른 금융기관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위해 해외 패밀리오피스 운영 벤치마킹, 가업과 자산승계 솔루션 관련 해외사례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해외에서 적용하고 있는 전략을 벤치마킹해 국내 고객들에게도 제안하고 적용하기 위함이다. 최근에는 국내 자산가들이 직접 싱가포르에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거나 회사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플립(Flip) 형태의 구조개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현지 상황 파악, 국내와 싱가포르 간 '크로스보더(국경 간)' 규정 확인 등 현지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출장도 다녀왔다. 김태환 기자 kth@ekn.kr

[기자의 눈] 이번엔 DX 차례? 삼성전자 노사갈등 그만 멈춰야

삼성전자가 노사 갈등의 그림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과급 논란'을 겨우 봉합했는데 이번에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에서 잡음이 새나오고 있다. DX 직원들로 구성된 삼성전자 노동조합 동행은 최근 진행된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 관련 '효력 정지'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회사 측에는 가처분 신청이 진행 중이니 연봉 계약 체결 절차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문제는 이들이 '조합원 캠페인' 시행을 준비 중이라는 점이다.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으면서도 회사를 압박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정시 출퇴근, 단체 연차, 공동 기자회견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있다. 반도체(DS) 부문을 중심으로 한 성과급 체계에 DX 부문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결코 반가운 장면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앞선 성과급 논란과 파업 리스크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경영진과 직원, 노조 모두가 갈등에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삼성전자가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경쟁 상대인 TSMC는 천문학적인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DX 직원들의 문제 제기 자체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같은 회사 안에서 보상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면 불만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 역시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방법론은 별개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식은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조가 조직별 이해관계만 앞세우기 시작하면 삼성전자 전체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DS와 DX는 경쟁 상대가 아니다. 함께 움직여야 하는 한 몸이다. 삼성전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노사 문제 하나가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지금 국민들이 삼성전자에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분쟁이 아니다.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고, AI 시대 주도권을 확보하고,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길 바라고 있다. 노조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노조 역시 흔들린다. 회사가 성장해야 보상도 가능하다. 삼성전자 구성원들이 소모적 대립 대신 상생을 위한 결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이슈&인사이트] K-UAM의 성공 조건은 국제표준과 국민 신뢰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동력비행 성공 이후 항공은 인류의 이동과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왔다. 오늘날 미래항공모빌리티(AAM/UAM)는 전기추진 수직이착륙기(eVTOL), AI 자율비행, 디지털 공역관리 기술을 결합하며 새로운 항공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하늘을 일상적이동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제3의 항공혁명'으로 불릴 만하다. 정부의 'K-UAM 기술경쟁력 강화 방안'과 '운용개념서 1.5'는 기술 자립과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정책 의지를 보여준다. 초기 상용화 시점을 2028년으로 조정하고, 비도심 공공서비스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한 것도 현실적 접근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K-UAM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술 안전 실증 못지않게 국민이실제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GTX를 비롯한 고속·고밀도 광역교통망이 이미 상당 수준 구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M이 기존 교통 수단 대비 어떤 시간 절감 효과와 경제성을 제공할 수 있을지 면밀한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법·제도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첫째, UAM 항공기를 '항공안전법' 체계 안으로 조속히 편입할 필요가 있다. 현행 '도심항공교통법'은 '도심형항공기'를 도입하고 있으나, 국토교통부 고시의 기술기준은 법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상위법인 '항공안전법'에 '도심형항공기'에 대한 명확한 분류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하위 행정규칙이 기술기준을 먼저 설정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행기와 헬기의 특성을 결합한 신개념 수직이착륙 항공기(Powered-lift)와의 관계가 불명확하며, 소음 기준 역시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항공기 분류는 안전인증과 운항규칙의 출발점이다. 실제 운항 단계에서는 감항증명, 운항승인, 조종사 자격 등 기존 항공안전 체계와의 연계가 불가피하다. 현재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국 연방항공청(FAA), 유럽항공안전청(EASA) 등은 Powered-lift 항공기를 기존 항공안전 체계 안에서 수용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 역시 특별법 중심 접근을 넘어 '항공안전법' 안에서 '도심형항공기'의 분류와 안전기준을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시범 단계와 상용화 단계의 경계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현행 도심항공교통법은 시범운용구역 내에서 '항공안전법' 규정을 완화하는 특례를 두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초기 상용화 모델이 시범사업 단계와 상당 부분 중첩돼 있다는 점이다. 항공안전 체계에서 실증 단계와 상용 운항 단계의 구분은 엄격해야 하며, 규제 특례가 사실상 상용 운항 단계까지 연장되는 방식은 국민적 신뢰 확보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UAM 정책은 단순한 '모빌리티 산업'이 아니라 '항공체계'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으로 UAM은 기존 항공체계의 연장선에서 관리되고 있다. 일본 역시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정책과 인증은 항공당국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ICAO를 중심으로 감항인증·공역관리·운항규칙에 관한 국제표준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UAM이 원격조종과 자율비행 체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초기 단계부터 공역관리, 인증, 사이버보안 등을 고려한 중장기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K-UAM은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미래 글로벌 항공질서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항공의 역사는 기술만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K-UAM이 국제표준과 국민적 신뢰를 기반으로 추진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미래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E칼럼] 국제원유가격의 하락과 국내 석유제품가격의 비대칭성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지난주 이란 사태가 종결될 기미가 보이자 국제원유시장의 가격이 WTI를 선두로 Brent와 Dubai유 모두 90달러 선으로 급락하였다. 미국 EIA는 지난주 원유 재고가 330만 배럴 이상 감소해 6주 연속 감소하였다고 발표했지만 그 감소 폭이 전문가들의 전망치인 400여만 배럴에 못 미치면서 가격 하락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물가격 역시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2월 말에 시작된 이번 사태가 약 3개월 만에 일단 안정되는 모양이다. 사태의 종결이 확정되고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던 유조선들이 다시 운항을 재개하면 국제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인 70달러 선으로 거의 곧바로 회귀할 것으로 전망된다. Dubai유 기준 2월 말 70달러 수준이던 국제원유시장 가격은 3월 중순에 137달러까지 치솟았다가 4~5월 내내 100달러 선에 머물러 왔다. 이번 전쟁과 같은 공급 부문의 쇼크가 국제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한시적이라는 국제석유시장에 대한 오랜 분석 결과가 이번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이란을 제외하면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시설은 대규모 피해가 없어 앞으로의 수급에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완전히 위험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이번 사태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호르무즈 해협이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기에 주요 국가들은 새로운 원유 수송경로 등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이제 중장기적인 대비책을 준비하여 내어놓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란 사태의 영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실시한 정책들을 이제 하나둘씩 거두어 드릴 필요가 있다. 그 중 특히 석유제품가격에 대한 최고가격 고시 방침은 빠른 시한 안에 종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때는 최고가 고시는 오히려 국내 소비자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국제원유가격이 이번에만 폭등한 것은 아니었다. 2001년 1월 국제원유시장 가격은 20달러대로 시작하였으나 2005년 이후 급증한 중국의 소비량으로 2008년 8월에는 배럴당 140달러를 넘었으나 2009년 초 40달러 초반까지 폭락했다가 이후 다시 상승하여 2011~2014년 기간 동안 100~120달러대를 유지하였다. 이후 다시 낮아진 국제유가는 한때 2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으나 2021년 다시 상승하기 시작, 2022년에 다시금 120달러를 돌파하였었다. 이후 60~70달러대로 안정적이던 국제유가가 올해 초 이란 전쟁으로 130달러까지 폭등한 것이었다. 국제유가가 폭등하였을 때마다 우리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140달러 이상 폭등했던 2008년 여름, 이명박 정부는 '휘발유가격이 묘하다'고 언급하면서 국내 정유사에게 리터당 100원씩을 인하하라고 압박하였으며, 역시 120달러 이상 치솟았던 문재인 정부 때는 휘발유, 경유에 붙는 세금을 리터당 100원가량 깎아 가격을 인하하였다. 한편, 이번 정부는 1993년에 퇴출시켰던 최고가격고시제와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국내 소비자가격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지난 이명박, 문재인 정부는 모두 1993년 이후 시행해 온 석유제품의 시장가격 결정방식을 유지한 채로 중간 단계의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시행한 반면, 이번 정부는 정부가 직접 소비자 가격을 제한하는 예전 방식을 다시 적용한 것이다. 휘발유,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의 경우 소비자가격의 절반은 수입과정의 세금과 특별소비세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정액형이기에 국제유가 변동에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즉, 예를 들어 국제원유가격이 2배 올라도 국내 제품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그 절반 정도인 것이다. 그 반대로 국제가격이 절반으로 하락해도 국내 제품가격은 그 절반 정도만 하락하게 된다. 이를 보통 비대칭성(asymmetry)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환율이 변동하는 경우 이 영향도 추가되어 국제가격과 국내가격 변동의 비대칭적인 차이를 만들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대칭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주로 국제유가가 하락할 때 나타나게 되는데, 국제가격의 하락폭에 비해 국내가격이 하락폭이 매우 적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시행중인 최고가격 고시제도는 국제원유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 그 조정속도를 느리게 하여 시장의 효율성을 회복하는 속도를 늦출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불만을 오히려 중폭시킬 수 있다. 최고가 고시는 긴급한 시기에는 효과적이나,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여러 부작용을 일으킴이 알려져 있었기에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시장가격 결정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며 이명박, 문재인 정부도 그 기조를 유지한 것이다. 국제원유시장이 안정되어 가고 있는 지금, 응급처방으로 시행하고 있는 시책들을 늦지 않게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바란다. bienns@ekn.kr

[윤석헌 시평] 중금리 대출과 민관의 역할

중금리대출은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 신용점수 하위 20~50%인 중신용자를 대상으로 연 5~15% 범위의 금리로 공급하는 대출이다. 시중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비은행금융기관에서 취급한다. 금융사 스스로 공급하는 민간 중금리대출과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정책금융인 사잇돌대출이 공존하며, 작년 8월말 기준 총잔액이 109.8조원에 달했다. 금융위의 정책 취지는 저신용 고객의 금리 부담을 낮춰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정부의 끈질긴 노력에 불구하고 중금리대출은 금융시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금융사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경쟁적 금융시장에서 대출금리 인하는 금융사 이익 감소를 초래하고 특히 신용정보의 비대칭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기대손실까지 예상된다. 중금리가 대출시장에 미치는 효과를 두 가지 시나리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금융사와 대출고객 간 신용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금리 차등화가 어려워 모든 고객에게 단일금리가 적용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중금리(중간 수준 단일금리) 도입은 금융사의 기대손실을 초래한다. 경쟁적 대출시장에서 금융사 이윤이 영(0)이 되도록 이미 결정된 대출금리가 중금리 도입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도의 수익 보전이 없다면 금융사는 손실이 발생하여 중금리대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둘째는 금융사가 중개역량을 발휘하여 신용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함으로써 대출금리가 고객의 신용정보를 반영하여 차등화되는 경우이다. 기존의 저신용자 가운데 일부를 중신용자로 다시 인식하거나 또는 경영자문⦁지원을 통해 신용위험을 낮추어 중금리로 지원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 경우 나머지 저신용 고객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저신용 고객 중 상대적으로 우량한 고객들이 중금리로 빠져나간 상황에서 나머지 고객들의 평균 신용등급이 낮아졌기에 이익 하락을 우려하는 금융사가 대출금리를 인상하거나 심지어 대출을 거절할 수도 있다. 결국 중금리대출의 도입은 금리인하 혜택을 보는 일부 고객에겐 이득이나, 혜택에서 제외되는 나머지 고객은 부담이 증가하면서 양극화 심화로 이어진다. 시나리오 구분의 핵심은 고객의 신용을 재인식 내지 개선하는 금융사의 중개역량 발휘에 있다. 중개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단일금리가 유지되는 첫째 경우에서 중금리 정책이 대출고객에게 제공하는 금리인하 효과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반면, 중개기능이 작동하는 둘째 경우에서 중금리 정책은 최소한 일부 고객에게 금리인하라는 실질적 편익을 부여한다. 다만 이로부터 발생하는 손실을 만회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고객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문제가 초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구분은 정부가 정책의 초점을 중금리 도입 자체보다 중개기능 활성화에 맞추어야 함을 말해준다. 중금리대출을 추진하는 정부는 금융사 손실 보전을 위한 여러 가지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대부분 유인이 정보 비대칭성 해소와 무관하여 금리 차등화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대율 등 건전성 및 영업행위 규제 완화는 금리 차등화 혜택은커녕 부작용을 부를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분석은 정부가 중금리 정책을 직접 추진하기보다 금융사의 중개기능 활성화를 유인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저신용 소비자의 부담 증가에 대응하는 게 옳은 방향임을 알려준다. 최근 신한금융이 도입한 '소상공인 땡겨요' 프로그램은 소상공인의 성공확률 내지 신용도를 높이는 긍정적 중개역할로 평가된다. 소상공인의 주문 데이터로부터 정보를 수집 실질적 상환 능력을 파악하여 중금리대출과 결합하면, 금리 차등화 내지 인하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은행은 대출금리 하락에 따른 이윤 보전을 위해 제3자인 나머지 저신용 고객들에 대한 금리인상과 대출거절 등에 나설 수 있어 금융당국의 관심과 대응이 요구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중금리대출은 포용금융으로 보기 어렵고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이 따른다. 사잇돌대출은 중신용자의 금리부담 경감을 추구하므로 금융 접근성을 높이려는 포용금융과는 결이 다르다. 또한 중개기능 활성화 없이 금융사 이익 감소를 초래하여 지속가능성에도 문제가 있다. 정부는 중금리대출은 민간에 맡기고 저신용 고객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민관의 역할 분담에 나서야 할 것이다. bienns@ekn.kr

[데스크 칼럼] 삼전닉스를 쥔 ‘환상 속의 그대’

1년 전엔 '5천만 국민이 정치, 종교전문가'라고 했다. 누구든 정치가, 종교가 어떠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요즘 전문 분야가 달라졌다. '5천만이 주식전문가'다. 묻지 않아도 AI와 주식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 식견을 펼친다. 나는 묻지도 않았다. 주제는 단연 '삼전닉스'다. '자본시장부장이신데 몇 층에 들어가셨냐?' 'AI가 어쩌고 저쩌고인데 어떻게 전망하시냐'는 질문을 자주(최근엔 매번) 받는다. '주식 잘 안한다'고 답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길거리에 돈이 굴러다니는데 그걸 왜 안 주워?' '주식 초짜인 나도 어떻게 버는지 알겠는데? 바보인가'라는 투다. 집요하게 캐물어 오면 못 이겨 답한다. “6층에 들어가 견디다 급전이 필요해 9층에서 나갔다" 그러면 대부분 “안타깝다"고 말은 해준다. 그러나 능글한 표정에선 '나보다도 주식을 모르면서 증권부장을 하고 있구먼'이라는 의미가 잘 전달된다. AI에 대한 전망도 캐묻는다. “AI 발전 속도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고, 그 발전이 어느 특이점을 만나면 반도체 수요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메모리반도체가 아니라 범용의 칩이 이를 대체하면 발주했던 반도체 물량도 거둬들일 수 있다"는 정도로 답한다.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중간에 말을 끊으며 “반도체는 3년 동안 수주할 물량을 이미 확보했다. 삼전닉스 끄떡 없다. 유튜브만 보면 다 나온다"란다. 표정을 보면 '내가 산 미국 Ai주식과 삼전닉스는 3년 동안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야'란 확신성 소망이 읽힌다. '삼전닉스신자' 앞에서 머쓱해질 때 이런 가사가 떠오른다.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 꼭 잘 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인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라는 곡이다. 그때의 '아이들'이 이미 노년에 접어들고 있을 정도로 오래 전 노래다. 주가는 환상이고, 살고 있는 모습은 실물이다. 1년간 코스피 지수는 2000에서 현재 8500까지 급등했다. 지수가 약 4.25배 상승하는 동안 시총은 4000조원 이상(절대 자산) 늘었다. 그 4000조는 어디에서 왔나. 예적금은 물론 마통 등 신용대출, 주담대, 보험 해약 등등 거의 모든 금융자원을 한데 끌어모은 거다. M2 대비 주식 시가총액 비율은 약 135% 정도에 달한다. 실리콘밸리에 사는 아이들이 AI 발전 방향을 살짝 틀어버리면 이런 환상은 쉽게 깨진다. 투매가 일어나고 증시에서 실물 시장으로 현금이 쏟아져 나온다. 거대한 주가 차익이 부동산으로 넘어가면 그동안 대출규제로 잡아놨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다. 이에 더해 임금 수준이 올라가며 근원물가도 자극하게 된다. 금통위 점도표가 50bp 인상에 몰린 이유 중에 하나다. 물가 고삐를 쥐려면 금리를 크게 올릴 수밖에 없다. 금리를 올리면 현재도 유동성 수혜를 입지 못한 다양한 섹터(시총 절반은 삼전닉스)는 돈줄이 더 꽉 막힐 수밖에 없다. 주식으로 돈은 벌었으되 물가로 까먹고, 유동성은 풍부해졌으되 기업에 자금은 마르게 된다. 지방선거까지 나온 증시 부양책이 '환상'을 채워줬다면 이제는 '살고 있는 모습'을 챙겨야 할 때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기자의 눈] “태양과 바람이면 충분하다?” AI 시대가 묻는 전력의 현실

정부는 AI 3강 도약을 외친다. 하지만 정작 AI 산업의 핵심인 전력 문제에서는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최근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직접구매계약(PPA) 특례가 제외된 것이 대표적이다. AI 강국의 핵심인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는 수백 메가와트(MW)급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사실상 발전소 하나를 통째로 붙여야 돌아가는 산업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이를 감당할 전원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계통 문제가 여전하다. 전력망은 생산과 소비가 실시간으로 맞아야 하는 시스템인데,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출력이 급변하기 때문에 결국 별도의 백업발전과 대규모 송전망·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가 함께 필요하다. 원전은 장기간이 걸린다. 결국 업계에서는 LNG 같은 과도기 전원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배경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탄소중립이 산업 발전이나 지방 기업 유치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잘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도 이런 현실 고민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대통령이 “좌우뇌 충돌이 안 되다 보니 다른 부처와 충돌하는 것 아니냐"고 언급한 대목은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최근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문제를 둘러싸고 과기정통부·산업부·기후부 간 시각차가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만 늘리면 산업 경쟁력과 전력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진작 모든 공장을 RE100만으로 운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은 순간적인 전압 흔들림에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미국 빅테크들도 이미 현실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은 RE100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원전과 천연가스 기반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원전 수명연장과 가스발전, SMR 논의가 동시에 커지는 이유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유럽(EU)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전기요금이 미국 대비 2배 이상, 중국보다 약 50%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곧바로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체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탄소중립은 분명 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산업 현실과 속도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결국 현장에서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누가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느냐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생에너지냐 화석연료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탄소중립 사이의 현실적인 균형점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인터뷰] “美 에너지에 300조 투자…韓 기업, 세계시장 도약할 역대급 기회”

“AI와 반도체와 더불어 미국 시장에 대한민국 기업에 엄청난 기회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에너지 기업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김희집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한미 간 대규모 투자 협력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미국 내 전력망·원전·가스 및 가스발전·ESS 분야에서 엄청나게 큰 규모의 시장이 열리고 있다"며 “국내 에너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특히 “미국에 투입될 것으로 거론되는 수백조원 규모 투자 가운데 미국 측에서 에너지 인프라에 많은 부분을 투자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전력망, 원전, 가스파이프라인 및 터미널, 가스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력기기 제조 등 거의 모든 에너지 분야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이 참여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협상 일환으로 미국에 3500억달러(약 525조원)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 가운데 1500억달러는 미 조선분야에 투자하고, 2000억달러는 반도체, 에너지 등 양국의 협의로 정해진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직 시장이 정해진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지금부터 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실제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차피 우리가 부담하게 될 자금이라면 단순히 돈만 내는 구조가 아니라 대한민국 기업들이 실질적인 사업 기회를 확보하고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진출을 도모하며 많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구조라야 한다"며 “민관이 함께 움직이며 전략적으로 미국 측과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김교수는 오는 6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미국 에너지부(DOE)가 주최하는 한미 에너지 비즈니스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양국 정부와 양국 에너지 기업 의사결정자들이 다양한 미국 내 신규 에너지 사업기회를 논의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미국 에너지 시장 진출이 단순한 수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수행하면 대한민국 에너지 기업들의 수준 자체가 달라진다"며 “그동안 국내에서 익숙했던 방식이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글로벌 수준의 계약, 설계, 건설, 운영, 안전 등의 전체 시스템을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계약 이행과 전력 공급 신뢰도에 대해 상세하게 자료를 제공해야 하며 위반시 큰 벌금을 내야 하지만 규정에 잘 맞게만 한다면 보상도 크게 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미국은 약속된 시간에 전력 공급을 못하면 막대한 패널티가 부과된다"며 “이런 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업의 관리 체계와 운영 역량도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효성중공업과 LS일렉트릭 등을 언급하며 “미국 전력 인프라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며 “특히 투자로서는 송전망과 가스망 투자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고 있어 장기 투자 매력도가 높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발전사업은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 변동성이 크지만 큰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반면, 송전망·가스망 같은 인프라는 적정 수익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어 안정성이 높다"며 “향후 미국 에너지 투자 확대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에게 상당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원전 및 SMR 분야에 대해서도 상당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현재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경쟁 가능한 국가가 많지 않다"며 “프랑스와 미국, 일본이 과거 대비 약화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 역시 최근 대미 투자 확대를 계기로 원전 산업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현재 경쟁 우위를 갖고 있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며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끝으로 “지금은 우리 에너지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이번 기회를 활용해 글로벌 사업 경험과 기술·운영 역량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달의 인물] 김영훈 장관, 파업 주도했던 경험이 삼성전자 파업 막은 저력 됐다

지난 20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머릿 속엔 한 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우리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삼성전자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도 차관을 대신 보냈다. 각 부처의 1주년 국정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였지만 그에게는 파업을 막는 게 더 중요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막판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김 장관은 이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정부세종청사에서 대기했다. 오전, 조정이 결렬됐다는 소식에 그는 노사 양측에 교섭 재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경기지방고용노동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취재진도, 카메라도 물린 채 직접 중재에 나섰다. 그렇게 6시간 후 노사가 잠정 합의를 도출했다. 이날 노사의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은 지난 27일 노조 투표에서 70% 이상 찬성률로 가결됐다. 김 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누군가 다시 대화의 판을 깔아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 파업 주도 노조 위원장이 장관으로…긴급조정권 '딜레마' “긴급조정권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사 잠정 합의를 이끌어낸 직후 김 장관은 이렇게 털어놨다. 노조의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조정이 결렬되자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긴급조정권은 노조 쟁의행위를 정부가 강제로 중단시키기 위해 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조정 절차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간 파업이 금지된다. 마지막 긴급조정권 발동은 지난 2005년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때였다. 당시 그는 철도노조 위원장이었다. 현재 장관이 된 그로서는 긴급조정권이 '최후의 수단'이기 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딜레마'였다. 누구보다 노사 관계를 잘 알고, '교섭·파업 전문가'란 수식어도 붙었던 그다. 실제 그는 철도노조 위원장이었던 2016년, 74일이란 역대 최장기 철도 파업을 이끈 장본인이었다. 그해 현대차 노조 파업 때는 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마저 시사했다. 정부의 강제 개입 의사에 그는 “긴급조정권 발동 시 모든 조직이 총파업에 나서겠다"며 반발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장관으로서 긴급조정권 발동 권한을 손에 쥐게 됐다. 노사 양측의 입장을 고려해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된 그에게 파업은 주도가 아니라 막아야 할 사안이 됐다. 장관으로서 긴급조정권을 결정하는 순간, 노동자로서 뿌리 내린 삶을 부정하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토록 그가 노사의 대화와 자율 교섭에 목을 맸던 이유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교섭마저 실패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면 아마 장관직을 걸자는 생각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가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산재) 사망사고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을 때다. 김 장관의 말에 이 대통령은 “산재가 줄어들지 않으면 진짜 직을 걸라"고 했다. 포스코이앤씨 작업 현장에서 올해만 네 번째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직후였다. 삼성전자 파업 건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직을 걸여야 할 사안이었다. ◇ 국회의원 낙선…철도 기관사가 장관으로 직행 열차 김 장관은 철도 기관사였다. 지난해 6월 23일 이재명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던 날도 그는 부산에서 김천까지 ITX 새마을호 열차를 몰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현직 기관사가 장관으로 가는 직행 열차를 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안전운행 하겠다." 그는 1992년 한국철도공사 전신인 철도청에 입사, 철도 기관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노동 운동에 몸 담게 된다. 2006년 3월 1일 전국 철도 총파업을 주도해 구속된 전력으로 그에게는 소위 '파업 전문가'란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지난 2010년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다. 당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과 파견법 등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 정책에 맞서 20일 넘게 단식 투쟁도 벌였다. 그의 정치 이력은 2017년 정의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와의 인연으로 공동선대위원장에 임명되면서다. 노동 운동가 출신에게 정치 도전은 녹록지 않았다. 2020년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를 마셨다. 22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그는 정계를 떠나 철도 기관사로 돌아갔다. 그와 오랜 지인이었던 한 노동계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보면, 적군이 별로 없고 올곧은 사람인데 이제 정치는 안 한다고 서운한 마음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그랬던 그가 2022년 20대 대선 때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대위 노동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게 되면서다. 앞서 이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민주노총 위원장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노동부 장관 발탁은 이재명 정부가 공약했던 '노동 중심 사회'에 걸맞는 절묘한 인사란 평가도 나온다. 노동계 관계자는 “단순히 특이한 경력 그 이상이다. 철도 기관사, 노총 위원장이란 최전선에서 쌓은 경험이 노동 정책의 최고 결정자로 이어진 것"이라며 “노동 현장과 정무 양측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 드문데, 이 정부의 노동 사회 기조 전환과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 “끝나야 끝난다" 물밑 대화의 힘…노사 “신뢰 생겨" “불광불급(不狂不及), 끝나야 끝난다" 미치지 않으면 다다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노사의 3차 사후조정까지 결렬돼 파업을 목전에 뒀을 때 김 장관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쓴 메시지다. 그는 막판까지 노사와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장관님이 우리 노동부로서는 절대 대화가 먼저라고 수차례 말씀하셨다"며 “사후조정을 시작하면서 장관님부터 파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표 쓰자고 했다"고 말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1~3차 사후조정이 진행될 때 김 장관은 물밑에서 노사를 만났다. 사측에는 “반도체 부문 적자 직원도 성과급을 받을 수 있도록 성과주의 원칙에 '예외'를 두되 시행 시기를 늦추자"고 설득했다. 노조에도 자신이 노조 위원장 시절 파업을 주도한 경험을 들며 “파업 앞두고 압박감도 심하고, 고립돼 있을텐데 같이 해결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김 장관의 끈질긴 대화와 설득 속에 노사 모두 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공감대와 신뢰가 쌓인 끝에 장관의 최후 교섭 제안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당시 노조는 이해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며 “긴급조정이나 파업보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는 신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늦은 밤 삼성전자 노사가 잠정 합의안에 서명했다. 김 장관은 그제서야 웃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공동 과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힘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주요 약력 △1968년 부산 출생 △마산중앙고 △동아대 축산학과 △성공회대 NGO대학원 정치정책학(정치학) 석사 △한국철도공사 기관사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 △정의당 제21대 국회의원 후보 △더불어민주연합 제22대 국회의원 후보 △현 고용노동부 장관 원승일 기자 won@ekn.kr

[기자의 눈] 정치인의 말과 삶이 다를 때 ‘민심은 가장 먼저 등을 돌린다’

강진=에너지경제신문 문승용 기자 정치 지도자의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기 시작할 때, 민심은 생각보다 빠르게 등을 돌린다. 역사는 반복해서 이를 보여줬다. 조선 후기 삼정문란 시기 지방 수령과 권력층은 백성들에게 농토를 지키고 세금을 감내하라 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한양과 부유한 지역으로 재산과 생활 기반을 옮겼다. 백성과 함께하겠다던 명분과 실제 삶의 괴리는 결국 체제 불신과 민란으로 이어졌다. 프랑스혁명 직전 역시 마찬가지다. 귀족과 권력층은 국민들에게 국가 재정을 위한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정작 베르사유와 대도시 중심의 호화로운 삶을 유지했다. 민중은 가난 자체보다도 권력층의 이중적인 삶에 더 분노했다는 해석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현대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인들은 늘 지역 균형 발전과 공동체 회복, 지방 살리기를 외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자산과 가족의 미래는 수도권이나 대도시 핵심지에 두는 모습이 반복될 때 유권자들은 본능적으로 “정말 그 지역의 미래를 믿고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근 무소속 강진원 강진군수 후보를 둘러싼 논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강 후보는 오랜 기간 강진군정을 이끌며 인구 유입과 지방소멸 대응, 청년 주거 지원 정책 등을 주요 성과로 내세워 왔다. 청년들에게는 강진에 정착하라고 독려했고, 지역에 사람이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재산 및 거주 관련 논란 속에서 강 후보가 강진에는 자가 없이 소액 임차권만 두고, 가족 자산은 광주 주요 주거지와 아파트 분양권 등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지역사회 일각에서 씁쓸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논란 이후 강 후보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집이 있느냐가 아니라 성과"라고 해명했지만, 일부 군민들은 단순한 재산 문제보다 정치인의 삶의 방향성 자체를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강진군 주민 또한 “군민들에게는 지역에 남아 살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의 삶의 기반은 도시를 향하고 있다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고 한탄한다. 물론 정치인의 거주지나 재산만으로 모든 정책의 진정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방소멸 위기 지역에서 주민들이 단체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능력만이 아니다. 지역의 미래를 자신의 삶과 함께 걸고 있다는 상징적 태도 역시 중요한 신뢰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연설보다 그 사람의 삶을 본다. 어디에 집이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치인의 미래가 과연 어느 지역 위에 놓여 있는가 하는 점인지도 모른다. 문승용 기자 symnew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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