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성진 전 한전 이사 “우리 돈으로 AP1000 하청할 이유 없어…한국형 원전으로 美 진출해야”

[인터뷰] 조성진 전 한전 이사 “우리 돈으로 AP1000 하청할 이유 없어…한국형 원전으로 美 진출해야”

조성진 전 경성대학교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한국이 미국 원전 건설에 투자할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사업에 하청 형태로 참여하는 대신 한국형 원전 APR1400을 직접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자금과 기술·인력을 투입하면서 사업 주도권과 장기 수익은 해외 기업에 넘기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비상임이사를 지낸 조 전 교수는 26일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원전 건설에 활용한다면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해야 한다"며 “건설·..

[이슈&인사이트] 플랫폼 경제와 개인정보 보호 규제

지난 주말에 가족과 함께 대형마트를 직접 찾아 장을 봤다. 최근 경영난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자금을 수혈받고 재개장을 한 곳이었다. 품질이 균질한 공산품이 아닌 과일, 육류, 생선 등 신선식품을 고를 때는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보고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매장을 둘러보다 전에 없던 신상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연 매출 6조 원으로 국내 대형마트 매출 2위였던 업체가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유통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유통시장이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점유율 상당 부분을 가져간 것이다. 이런 추세는 유통시장만이 아니라 교육, 미디어·콘텐츠, 운송, 숙박 등 다양한 산업 부문을 장악해 가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을 보면 명확해진다. 전통적 플랫폼이었던 대형마트가 시장을 온라인 마켓에 내준 것과 마찬가지다.공교롭게도 현재 경영상 위기를 겪고 있는 대형마트나 해당 업체를 궁지에 몰아넣은 온라인 유통업체나 모두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해당 대형마트는 10여 년 전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판매할 목적으로 사은행사를 하면서 주민등록번호 등 고유식별정보까지 수집해 보험사에 제공했다. 그런데 행사 당시 이러한 개인정보 수집과 제3자 제공에 대한 동의 관련 내용을 잘 보이지 않는 1㎜ 크기 글자로 적었다. 결국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고, 과징금에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게 됐다.빠른 배송을 마케팅 전면에 내걸고 급속도로 성장해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꾼 온라인 유통업체 역시 대량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고객들의 손해배상 민사 소송도 진행 중이다. 개인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유통업체들은 그만큼 많은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유하고 있고, 이렇게 보유한 개인정보를 부실하게 관리하면 개인정보 보호 위반으로 인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최근 플랫폼은 온라인으로 모집한 대규모 고객에게 서비스를 해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다시 이를 이용해 연관 서비스를 개발하여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려고 한다. 즉, 보유하고 있는 고객의 개인정보와 플랫폼 이용 데이터 자체가 플랫폼 기업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에 부응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플랫폼 업체들의 관리도 강화되어야 하지만, 변화된 경제 운영의 중심에 있는 플랫폼 성격을 반영한 개인정보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플랫폼 업체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려면 개인정보 보호 법령과 보호지침에 따라 이용 목적, 항목, 보유기간을 알리고 해당 개인정보의 주체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동의를 받을 때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제3자의 성명과 연락처까지 알리도록 정하고 있다. 문제는 플랫폼 이용자 사이에서는 이용 구조상 제3자 제공 동의 당시 향후 누가 개별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받을지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어 제3자의 성명이나 연락처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플랫폼에 공개된 개인정보는 제3자에 대한 제공을 전제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공개한 것이므로 제공 동의로 본 2016년 대법원판결 취지처럼 별개 제3자 제공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플랫폼 이용자 중에는 설령 플랫폼 운영자의 개인정보 수집에는 동의했더라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특정한 다른 이용자에게 제공·공유되거나, 특정 개인정보는 제공·공유되는 걸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최근 대법원판결처럼 이용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플랫폼 이용자에게 제3자 성명과 연락처를 고지해 동의하는 방식의 현실적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배포한 개인정보 처리방침 작성지침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자의 성명이 아닌 '배차 기사'라는 분류 명칭만으로 기재하고, 향후 실제 제공받은 제3자의 성명과 연락처를 확인하는 방식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실무상 적용되는 개인정보 처리방침 작성 지침에 불과하고, 향후에도 플랫폼 운영 구조상 제3자의 성명과 연락처를 제공하기 어려우면 적용할 수 없어 규제의 위험을 모두 피하기는 어렵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도 보호되어야 하지만, 실생활에서 이용을 피할 수 없는 플랫폼의 위치를 생각하면 균형감 있는 규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양희철

[EE칼럼]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둘러싼 논점들

정부가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전력이 부족한 수도권의 가격은 올리고, 발전소가 몰린 지방의 가격은 낮춰 기업 이전을 유도하고 송전망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얼핏 보면 에너지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원론적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요금제 설계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수요공급 메카니즘과 가격결정 원칙과 거리가 멀다. 도매가격 산정의 불투명성, 지역 구분의 임의성, 정산조정계수의 형평성, 송전망 건설 책임의 공백. 이 네 가지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역요금제는 '정치요금'으로 전락할 것이다. 첫째, 도매가격 선정이 불투명하다. 현행 도매시장은 가격을 시장이 아니라 행정이 만든다. 발전사를 변동비 순서로 계통한계가격(SMP)이 정해지는 변동비만을 기반하여 만든 한시적인 CBP 구조이고 강제풀 시장이다. 현재 SMP는 전국 단일가격이라 계통 혼잡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진짜 시장이라면 조류 분석을 통한 도매 지역 구분을 통하여 노드별 가격제를 채택해야 한다. 수요 공급의 구역이 어딘지 도매시장의 입장에서 명백한 구분이 필요하고 그러한 기반으로 지역의 도매 가격이 결정되어야 한다. 실제 최종 정산을 좌우하는 것은 정산조정계수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원전과 석탄 같은 저비용 전원은 SMP보다 훨씬 낮은 단가로 정산되는 등, 거래 가격과 정산 가격이 이원화된 구조를 소비자는 알 수 없다. 산정 근거와 산출 데이터가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다. LMP 전환 역시 같은 우려를 낳는다. 가격 산정 로직과 시뮬레이션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지역 간 가격 차이는 논쟁과 갈등의 빌미가 될 뿐이다. 둘째, 소매 지역 구분이 임의적이다. 애초 수도권·비수도권·제주의 3분할 방안이 반발에 부딪히자, 급하게 인천을 경기북부로 묶고, 경기 남부는 가장 비싼 지역으로 따로 분리해 내고, 강원과 충청을 묶고, 영호남을 묶는 정치적 묘수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그럴 만하다. 전력 자립도가 천차만별인 지역을 하나로 묶는 논리적 기준이 없다. 정부는 권역을 잘게 쪼개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하고 현행 4권력 방식도 논리가 있어야 한다. 행정 구분은 전력의 조류 분석과 아무 상관이 없고 소매 시장도 전기의 수요공급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으로, 몇 개 권역으로 나눌 것인가. 계통 혼잡도, 전력 자립도, 지방 낙후도 등을 고려 했다지만 여전히 그 차별화는 지역을 설득하기에도 부족하고 전력만으로 지역 이전을 강요하는 인센티브로도 여전히 미약하다. 셋째, 정산조정계수의 형평성이 의문이다. 이 계수는 애초 저비용 발전원의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려던 장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발전사별로 다른 계수가 적용돼 '같은 전기를 생산하고도 다른 가격'을 받는 구조가 고착됐고, 연 1회 행정적으로 결정되는 과정의 공정성은 계속 지적되어 왔다. 한전의 발전자회사가 한 개로 통합되면 막강한 발전사의 사업에 정산조정계수를 통하여 안전판 위에서 몸집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비용인상은 모조리 사횢거 비용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보는 몇몇 민간 LNG 발전사는 계수 적용 대상에서 빠져 LMP 도입 시 도매가격 하락을 수익성 악화로 그대로 맞을 처지다. 시장원리에 따라 각자 정산받게 하려면 그 전제인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이 먼저다. 넷째, 송전망 미건설의 책임 공백이다. 지역요금제의 존재 이유는 송전 혼잡이다. 그런데 우리의 혼잡 상당 부분은 자연이 아니라 정책 실패의 결과다. 주요 송전선로 31곳 중 26곳 건설이 지연됐고 동해안의 석탄과 남해안의 재생에너지는 송전혼잡의 피해자가 되기 일보 직전이다. 한전은 송전망 독점 사업자다. 그런데 송전망 건설사업은 주민들의 반대로 절반 이상이 지연되고 있다. 지역에 발전소가 있지만 송전망도 지방을 지나간다. 주민 수용성 갈등을 방치해온 정부·한전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요금 차등으로 혼잡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책임의 역전이다. 송전망 적기 건설을 위한 보상·협의 제도 개선을 지역요금제 도입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송전망 건설의 비용은 결국 혼잡 비용에서 나와야 하고 그 비용은 송전망 혜택을 보는 수도권 소비자이어야 할 것이다. 건설 미비의 책임과 미비의 혜택이 불균등한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고 정치권이 책임져야할 것을 방기한 상황이다. 지역요금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AI 전력수요 급증이 맞물린 전환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제도다. 시장 감시 기구의 독립성 강화 역시 이 투명성의 전제 조건이다. 다만 이 네 가지 흠결을 안고 출발해서는 안 된다. 가격 산정의 투명성, 권역 설정의 과학성, 정산의 공정성, 그리고 송전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담보될 때, 지역요금제는 비로소 국토 균형과 에너지 정의를 함께 실현하는 미래의 제도가 될 것이다. 에너지는 정치의 도구화 되고 정치적 비합리적 요금 체계의 개편은 미래 소비자의 부담일 뿐이다. 조홍종

[기자의 눈] “상폐는 억울하다”는 코스닥, 주주에게는 떳떳한가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에 코스닥 상장사 주총장을 다니다 보면 종종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수많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성장하겠다며 시장에 들어온 상장사인지, 몇몇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는 동네 구멍가게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서다. 주주가 문제를 제기해도 제대로 된 답변 없이 넘어가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총장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도 의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된다.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는 뒷전이고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유리한 선택이 반복됐다는 의심을 사는 기업도 있다. 상장사가 누구의 것인지를 되묻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종목은 달라도 주총장에서 만난 소액주주들의 요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주주가치를 높여달라는 것, 주가를 방치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적어도 납득할 수 있게 회사를 경영해달라는 것이다. 회사의 돈을 경영진 개인의 곳간처럼 여기지 말라는 요구도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장사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에 가깝다. 그런데 일부 코스닥 기업에서는 이 기본을 요구하는 것조차 주주들의 지나친 간섭처럼 취급돼 왔다. 필요할 때는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등을 통해 시장에서 돈을 끌어오면서 정작 돈을 댄 주주들의 목소리는 외면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주가가 장기간 추락해도 책임지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경영진을 둘러싼 이해하기 힘든 자금 거래가 발견돼도 충분한 설명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하나둘 쌓여 지금의 코스닥 이미지를 만들었다. 물론 코스닥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건실한 기업이 훨씬 많다. 몇몇 부실기업의 행태를 전체 코스닥 기업으로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는 좋은 기업 몇 곳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불투명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시장 전체에 대한 할인으로 돌아온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최근 강화되는 상장폐지 요건을 두고 코스닥 기업들의 아우성이 큰 것도 그래서 복잡하게 다가온다. 시가총액 200억원 기준과 동전주 퇴출 등 높아진 문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기업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일률적인 기준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까지 시장에서 밀어내는 부작용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절규가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코스닥 기업들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은 정말 없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상장은 기업에 주어지는 영구적인 권리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회사의 지분을 내주고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투명한 경영과 주주에 대한 책임을 약속하는 계약에 가깝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호소하기에 앞서 그동안 상장사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했는지부터 자문할 필요가 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EE칼럼] 녹지 보존이 친환경 도시인가?

서울의 주택 공급을 위한 공공택지 개발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용산 어린이정원 부지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서는 서울 도심의 귀한 땅을 활용해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렵게 확보한 녹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논쟁에는 오래된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개발은 환경파괴이고 보존은 친환경이라는 이분법이다. 물론 도시 녹지는 탄소를 흡수하고 열섬을 완화하며 시민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녹지가 있다는 사실과 현재의 토지 이용이 환경적으로 최적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용산은 더욱 그렇다. 용산공원 대상지의 기존 식생에 대한 공식 조사에서는 현존 식생의 자연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산림은 5.7%에 불과하고 조경수 27.4%, 잔디 7.5% 등 오랜 군사기지 이용 과정에서 형성된 인공적 공간의 특성이 강하다. 땅 아래도 살펴봐야 한다. 과거 용산 미군기지 내외 지하수 조사에서는 석유계총탄화수소와 벤젠 등의 오염이 실제 확인됐다. 일부 기지 내부 관정에서는 벤젠이 당시 기준치의 수백 배에 달한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현재 어린이정원 전체의 오염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간 군사기지로 사용된 토지라면 지상의 나무와 잔디만큼 토양과 지하수의 상태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상처에 고름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붕대로 덮어둔다고 치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땅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곳은 제대로 조사하고 오염됐다면 철저하게 정화해야 한다. 지표가 녹색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두는 것을 환경보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때때로 자연을 인간이 손대서는 안 되는 '신의 영역'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도시 안에서 어느 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신념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이어야 한다. 탄소의 관점에서 녹지 보존과 개발의 환경효과를 숫자로 한번 따져보자. 용산 어린이정원 약 30만㎡ 전체에 국내 도시녹지 연구에서 제시된 탄소흡수 원단위를 단순 적용하면 수목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연간 약 70~400tCO₂ 범위로 추정된다. 실제 흡수량은 수목의 밀도와 크기, 수종과 식재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서울 평균을 기준으로 5000가구가 주거에너지에서 배출하는 탄소는 연간 약 1만5000t 규모다. 물론 5000가구의 배출량 전체를 녹지의 탄소흡수량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주택이 어디에 들어서든 에너지는 소비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입지와 건축방식에 따라 그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이다. 고성능 제로에너지 건축과 재생에너지, 지역에너지 시스템을 적용하면 이 운영탄소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직주근접에 따른 교통에너지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도시의 탄소를 결정하는 것은 녹지의 면적만이 아니라 건축과 에너지, 교통을 포함한 도시구조 전체인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개발이 환경적으로 우월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건설에 사용되는 철강과 콘크리트에서도 상당한 내재탄소가 발생한다. 기존 수목의 탄소저장, 열섬 저감, 생태와 물순환의 가치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숫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환경비용과 편익을 같은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래야 녹지 면적만으로 도시의 친환경성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알 수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용산을 놓고 개발과 보존이라는 구호로 싸울 것이 아니라 30년, 50년의 '환경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야 한다. 녹지의 탄소흡수와 열섬 저감, 건설의 내재탄소, 건물의 에너지효율과 재생에너지, 직주근접에 따른 교통 탄소 감소, 물순환과 생태, 토양·지하수 정화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그 결과 현재보다 환경성능이 좋아지는 개발이라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토양을 정화하고, 가치 있는 수목은 보존하면서 탄소흡수와 생태적 기능이 더 높은 녹지를 조성하고, 제로에너지 건축과 재생에너지, 대중교통과 직주근접을 결합하는 것이다. 개발하면서도 개발 이전보다 환경적으로 더 나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용산의 선택은 용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의 공공택지마다 같은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주택은 필요하고 땅은 부족하다. 탄소중립도 포기할 수 없다. 이제 '개발은 환경파괴, 보존은 친환경'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넘어야 한다. 환경정책의 목표는 자연을 손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bienns@ekn.kr

사라진 청년 일자리, AI 탓 말라

사람들은 인공지능(AI)이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챗GPT가 등장하기 전에 몸값이 높았던 컴퓨터공학과 출신 개발자는 물론 변호사와 회계사 같은 전문직 일거리도 AI가 대체하고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행도 지난 18일 발표한 '청년 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이런 내용을 담았다. 최근 4년간 청년 일자리가 28만5000개가 줄었는데 이 가운데 26만8000개(94%)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를 줄인 주범은 AI가 아니다. 보고서도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청년 고용 부진을 곧바로 AI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경력직 중심 채용 등이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 현재의 변화는 AI만의 직접적인 효과라기보다 기존 채용·업무 방식 변화를 AI가 가속화 한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마디로 청년 일자리 감소의 주 요인은 AI가 아니라 기업 채용 방식 변화 등 다른 곳에 있다는 이야기다. 옳은 분석이다. 리더스인덱스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500대 기업의 고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도 이를 말해 준다. 이에 따르면 신규 채용에서 30세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56%에서 지난해 51%로 쪼그라들었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등 기업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 측면에서만 보면 경력직 위주 채용은 일종의 직무 유기라고 볼 수 있다. 공고해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청년 취업을 가로막는 벽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벌어지다 보니 청년들은 인턴도 대기업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에 청년 일자리가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고용 문제를 이야기할 때 '9988'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이들이 고용의 88%를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이 무색해졌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고용 비중도 급격하게 줄고 있다.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꺼리고 청년은 연봉과 복지 수준이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구직난과 구인난이 동시에 벌어지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이달 8일 청년들과 현장 전문가를 불러 일자리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의 경력직 위주의 채용 방식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한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곧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일 경험'을 폭넓게 인정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해 청년이 첫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는 이 정도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기업이 경력직보다 신입 직원을 더 많이 채용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당장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지 못하더라도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예컨대 기업들이 경력직을 채용하면 그것에 비례해 청년 신입사원을 뽑게 해야 한다. 인센티브를 줄지 규제할지는 정책 효과를 시뮬레이션해 보고 결정하면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세금을 투입해 좁혀야 한다. 대기업 연봉을 억지로 줄일 수 없다면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수입을 정부가 보전해 주는 방식은 어떨까.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대기업 연봉의 80% 정도 받을 수 있도록 세금으로 지원하는 파격적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너무나 절실하기에 재원 마련에서도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초과 세수를 활용하든,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에서 끌어오든 방법을 찾아보자. 청년이 첫 직장을 잡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후유증이 생긴다. 단지 일자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늘어나는 고립 청년, 자살과 범죄의 증가 등 사회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언제까지 경험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편의점과 배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을 방치할 셈인가.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기자의 눈] 사관학교 통합론 불 지핀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빤쓰런’

최근 군 안팎이 육·해·공 3군의 사관학교를 통폐합하는 이른바 '통합 사관학교' 창설 논란으로 뜨겁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통합 사관학교론에 불을 지피자 각 군 총동창회와 예비역 단체들이 “각 군의 고유한 전통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처사"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찬반 여론을 수렴하고 갈등을 조율해야 할 관련 공청회 자리를 국방부가 오는 26일 개최한다고 발표하고선 정작 안 장관이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장관 참석 여부가 공청회 개최에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며, 김홍철 정책실장이 공청회를 주관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이 주도해 거대한 국방 개악안을 던져 놓고서 정작 십자포화에 가까울 이해 관계자들의 비판이 쏟아질 껄끄러운 소통의 자리에는 나타나지 않고 실무진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행보는 안 장관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탈영(군무 이탈) 의혹'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과거 방위병으로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 제기한 탈영 의혹에 대해 명쾌한 해명 조차 못한 장관이 이제는 국가 안보의 백년대계가 걸린 핵심 정책의 공청회마저 회피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과거엔 탈영 의혹을 남기더니 이제는 국방 정책마저 '빤쓰런' 하느냐"는 조소가 터져 나온다. '빤쓰런'이란 2011년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일부 선임병들이 위기 상황에서 후임병들을 버려두고 속옷 차림으로 줄행랑을 친 데서 유래한 말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나 체면은 모두 내팽개치고 오직 자기만 살겠다고 허겁지겁 달아나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태를 조롱할 때 쓰인다. 명색이 대한민국 국방부의 수장이라는 자가 논란에 거대한 산불을 내놓고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은 부하 직원들에게 대신 맞게 한 채 홀연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책임감을 버리고 달아나는 '빤쓰런'의 본질적인 의미와 절묘하게 겹쳐 보인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반대의 목소리가 클수록 더 앞장서서 설득하고 토론해야 한다. 정책의 불씨만 던져놓고 쏟아지는 세간의 비판의 화살은 면하려는 것이 국방 수장의 올바른 자세일 리 없다. 안 장관이 진정으로 사관학교 통합을 미래 강군 육성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개혁이라고 믿는다면 비겁하게 요리조리 도망칠 것이 아니라 당당히 공청회장에 나와 반대파들과 마주해 쓴소리를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마땅하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이슈&인사이트] 조성현 대령과 특검만능주의

이강윤 정치평론가 2024년 12월 계엄 그날 밤, 예하 출동 부대에 “국회에 진입하지 말고 서강대교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한 게 국회 청문회와 헌재 법정에서 확인됐다. 헌재에서 “본회의장 인원들 싹 다 끌어내라"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일관되고도 구체적으로 증언, 탄핵 결정에 적잖은 근거를 제시했다. 계엄 당일 자신과 자신 부대의 행적과 임무수행에 대해 공개 반성과 사과도 했다. 많이들 알고있는 조성현 전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대령 얘기다. 조 대령은 작년 9월 '헌법적 가치 수호 유공자'로 선정돼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국방부는 “조 대령이 불법·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고 국민과의 충돌을 피해 국가적 혼란 방지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한 마디로 '참 군인'이라는 얘기다. 들리는 말로는 조 대령이 장성 진급을 한사코 사양했다고도 한다. 2차 종합특검이 지난 20일 조 대령을 내란 가담 혐의(중간실행자)로 기소했다. 특검이면 특검이지 2차 종합특검은 도대체 뭔가. 비유가 좀 그렇지만, 학원종합반같은 건 아닐텐데, 뭘 '종합'한다는 건지 널리 알려져있지 않다. 1차 종합특검은 무슨 수사를 어떻게 했고 성과는 뭐였지? 특검이 하도 많아서 AI에게 정리해보라고 했더니 똑똑하다는 AI도 헷갈려하며 답변이 계속 오락가락한다. 2차 종합특검이 어떤 사안을 왜 추가 수사하기 위해 출범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지방선거까지 내란척결 분위기 유지하려 1, 2차 특검 끝나자마자 또 띄운 거"라는 항간의 추측이 무성했었다. 2차 종합특검의 조 대령 기소는 특검만능주의와 기소 숫자를 수사 성과로 여기는 관행/집착이 빚은 넌센스가 아닌가 싶다. 탄핵만능주의도 마찬가지. “대법관 서면 제청은 건국 이후 전례 없는 일"이라며 대법원장 탄핵을 또 꺼낸다. 대법원은 “청와대에서 일정을 잡아주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고, 청와대는 “서면제청에 대한 협의 자체가 없었다. 법원 얘기는 다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신뢰와 권위의 상징이어야 할 청와대와 법원이 진실 게임을 벌이는 형국이다. 옳지 않다. 국격에도 좋지 않고. 서로 말꼬리 잡으며 탓하거나 여염 사인들처럼 진실 공방 벌이지 말고, 지금이라도 격에 맞게 소통해 서로 지킬 예의와 절차를 밟아나가리라 기대한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조희대 거부감'은 작년 5월 초, 당시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위반사건(허위사실공표)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심때문일 것이다. 결국 파기환송심은 연기됐고 다른 사건에 대한 재판도 줄줄이 중단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러 재판의 유-무죄 여부에 대한 결정은 잠시 서랍속에 넣어둬진 상태다. 끝난 게 아니고. 물론 이번에 대법원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 중 한 사람을 두고 양측 견해가 달라서 생긴 사달같은데, 갈등의 근원이자 핵심은 '상호 불신'일 것이다. 계엄 이후 여권을 봐오면서 든 생각은 과유불급, 네 글자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중학생 정도면 다 아는 성어다. 그런데 이 성어를 대개들 잊는다. 특히 권한이나 권세를 쥐게 되면 그러하다. 브레이크 고장난 기관차는 반드시 사고를 부른다. 토인비의 말처럼 되풀이되기에 역사인가. 과유불급을 잊은 결과는 당연히 실패와 후회일 터. 후회란 항상 일이나 상황이 끝나고서 뒤늦게 혀를 끌끌 차며, 가슴 치며 하는 거다. 그래서 뒤 후(後)자 후회. 전철은 밟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 교훈 삼으라고 있는 건데, 꼭 되밟고는 후회한다. 정 그래야 직성이 풀리겠거든 전철 되풀이하고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라. 어쩌면 그리도 대부분의 정권이 닮았고 진행루트가 비슷한가. 이런 반복, 답답하고 폭폭하다. 야당일 때와는 달리 청와대는 국정의 총괄-포괄 책임 기관으로서 의연하고 대범한 자세가 절실하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 그냥 내건 구호가 아니라면. 아직도 '윤 어게인'밖에 모르는 국민의힘을 보면 황당하고 어이 없다. 정당이라 보기 힘들다. 그런 국힘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보고 '우리 편'에서 '모두'로 나아가는 게 맞다. 그게 집권 세력이 취할 바다. 당정청의 강경파들을 보면 안중무인인듯 하다. 진정으로 이 정부를 성공시키려거든 돕는 자세와 방법에 대한 겸손한 숙고가 필요하다. △각종 '내로남불'과, △여론과 다른 강성 드라이브(공소취소특검 추진, 형사소송법 개정, 법왜곡죄 등), △유치찬란한 구시대적 충성경쟁과 전쟁을 방불케하는 상호 비방 따위로 국정지지율이 추세적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민심이 유리되고 있건만, 철야부흥회 전도사처럼 정신승리와 “전투 앞으로!"만 외쳐댄다. '에코 챔버'다. 양극화 대책, 지방소멸 대책, 출생절벽 대책, 부동산 대책, 경기침체 타개책에 진력하고 또 진력해도 여가가 없을 때이거늘…. bienns@ekn.co.kr

[특별기고] 전력수요 급증 시대, 가스 인프라를 활용해야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미래 전력수요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최근 수요계획 소위원회가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신규 수요를 반영해 제시한 2040년 최대전력 목표수요는 158.4~165.0GW로, 불과 몇 달 전 전망보다 약 27GW 늘어났다. 이는 단순히 전력수요 전망치가 높아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I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는 안정적인 전력공급 자체가 산업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전력정책은 '얼마나 많은 전력을 생산할 것인가'뿐 아니라 '필요한 전력을 언제, 어디에서 공급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려면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충분한 발전설비를 확보하고 전력망도 적기에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처럼 대규모 전력수요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 발전설비의 총량 못지않게 필요한 지역에 전력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따라서 기존의 '대규모 발전-장거리 송전-수요지 소비' 방식과 함께 수요지 인근에서 직접 전력을 생산하는 분산형 전력공급 체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분산전원의 역할을 신규 전력수요에 대한 추가 공급수단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기존에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망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던 산업체와 대형 수요처의 일부가 중소형 자가·분산발전으로 전환한다면 중앙계통이 담당해야 할 전력수요 자체를 줄일 수 있다. 이는 기존 발전설비와 송·변전망의 부담을 완화하고, 그렇게 확보된 계통의 여력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새롭게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수용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분산전원은 단순히 새로운 발전설비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전력 인프라에 새로운 공급여력을 만들어내는 수단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 가스 인프라다. 우리나라는 수십 년에 걸쳐 LNG 인수기지와 주배관망, 전국의 도시와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도시가스 배관망을 구축해 왔다. 그동안 이러한 인프라는 주로 가정과 산업체에 연료를 공급하는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그러나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시대에는 가스망을 전력망과 함께 국가 에너지시스템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에너지 수송 인프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모든 에너지를 전기의 형태로 장거리 수송할 필요는 없다. 기존 가스망을 통해 에너지를 수요지까지 운반하고, 그곳에서 열병합발전, 연료전지, 가스엔진·가스터빈 등을 활용해 필요한 전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전력망과 가스망이라는 두 개의 국가 에너지 네트워크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는 대규모 가스발전뿐 아니라 수요지 가까이에 설치되는 중소형 가스 분산전원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중소형 발전설비는 산업단지, 데이터센터, 병원, 대형 상업시설 등 수요처의 특성에 맞춰 설치할 수 있고, 수요 증가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충하는 것도 가능하다. 열수요가 있는 곳에서는 열병합발전을 통해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함으로써 에너지 이용효율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적기 전력공급(Time to Power)'이라는 가치도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첨단산업 투자 경쟁에서는 전력가격 못지않게 필요한 전력을 언제 공급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입지 조건이 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는 준비됐는데 송전망이 수년 뒤에 완성된다면 그 시간의 차이는 투자 지연과 산업경쟁력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구축된 도시가스 배관망을 활용한 중소형 분산전원은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탄소중립 시대에 천연가스 소비를 무조건 확대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천연가스 역시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인 만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가스 자체의 저탄소·무탄소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그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 고효율 열병합발전과 연료전지의 활용을 확대하고, 바이오메탄과 청정수소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와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합성해 생산하는 e-메탄의 활용도 검토할 수 있다. 천연가스의 생산과 이용 과정에 CCUS를 결합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가스 인프라를 단순히 화석연료 시대의 유산으로 볼 필요는 없다. 공급되는 가스의 탄소집약도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다양한 탈탄소 기술을 결합해 나간다면 기존 가스망은 미래의 저탄소·무탄소 에너지를 수송하고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에너지의 탄소집약도를 지속적으로 낮춰가는 것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탄소중립을 함께 추구하는 현실적인 전환전략이다. 이제 정책과 시장제도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야 한다. 중소형 분산전원이 생산하는 전력량만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송전망 부담을 얼마나 줄이는지, 기존 계통에 얼마나 새로운 공급여력을 만들어내는지, 필요한 지역에 얼마나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 계통 유연성과 에너지효율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그 가치를 적절히 보상할 필요가 있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적극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는 방법은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망을 계속 확충하는 것만이 아니다. 신규 전력수요의 일부를 수요지에서 직접 충당하고, 기존 전력수요의 일부도 중소형 자가·분산발전으로 전환해 중앙계통이 감당해야 할 수요를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한 전력수급 대책이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시대일수록 국가가 이미 구축한 에너지 인프라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력망과 가스망, 중앙집중형 발전과 분산형 발전은 서로 경쟁하는 인프라가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전기화 시대에 가스 인프라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고 있다.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면서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 에너지안보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 에너지 인프라 전체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발전소와 전력망을 구축하는 노력과 함께, 이미 전국에 구축된 가스 인프라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스타벅스 너마저…본업 견조한 이마트, 자회사 실적은 과제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많은 기자 직업 특성상 경사 축하용으로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5·18 탱크데이' 논란 이후 부정적 꼬리표가 붙은 이후로는 그런 적이 많지 않았다.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정치적 상징화에 이어 공직사회까지 퍼지면서 대놓고 선물하기 어려운 선물로 전락해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그룹의 전사적 쇄신까지 약속했지만 완전한 이미지 회복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눈치다. 운영사인 SCK컴퍼니 입장에선 올해 2분기 '사상 첫 적자'라는 타이틀까지 받게 돼 더 뼈아프다. 마케팅 실책의 여파로 1999년 한국 진출 이후 27년 간 이어온 무결점 기록이 깨진 것이다. 앞서 코로나19·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형 외부 변수까지 버텼던 점을 고려하면 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본업 위주로 개선세를 보이는 모회사인 이마트 입장에선 자회사 리스크 탓에 덩달아 흔들리는 꼴이 됐다. 올해 1분기만 해도 14년 만에 연결기준 최대 영업이익을 냈던 반면, 2분기에는 43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할인점·트레이더스·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이마트의 별도기준만 보면 2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사실상 이마트 본체가 벌어들인 이익을 자회사·관계사가 깎아먹은 셈이다. 수년 째 대형 적자를 내는 중인 신세계건설·SSG닷컴뿐 아니라, SCK컴퍼니마저 18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실적 부담을 키운 것이다. 2분기 어닝 쇼크에 본업 반등에도 주식 시장은 냉담했다. 이마트 2분기 실적 공시가 발표된 지난 13일, 시작가 8만300원였던 주가는 장중 7만5600원까지 5.85% 떨어졌다. 이후로도 하락세가 지속되며 이달 21일 기준 이마트 종가는 7만1900원으로 마감했다. 일부 증권사는 자회사의 실적 불확실성 등으로 향후 이마트 주가에 대한 기대치를 내리는 움직임도 보였다. 하나증권은 이마트 목표주가를 11만원→8만2000원으로 낮췄고, 키움증권도 13만원에서 10만3000원으로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기업은 숫자로 실력을 증명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이마트가 시장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향후 실적에 달렸다. 가장 큰 책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인물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그동안 지속 강조해온 '본업 혁신' 기조 성과가 가시화됐지만 자회사 실적 반등이라는 또 다른 시험대에 섰다. 그가 책임 경영과 함께 인공지능(AI)·부동산 개발 등 신사업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전력투자비 조달, 원가회수율 공개가 핵심이다

지난 20일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공개된 전력수요 재전망은 충격적이다. 2040년 목표 최대전력은 지난 4월 전망한 131.8~138.2GW에서 158.4~165.0GW로 26.6~26.8GW 늘었다. 연간 전력소비량도 657.6~694.1TWh에서 847.3~885.1TWh로 약 190TWh 증가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최대전력 전망이 20%, 전력소비량이 28%가량 상향된 것이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전력수요 지형을 바꿨다. 전기를 어떻게 생산할지도 문제이지만, 전기를 필요한 곳까지 보낼 전력망은 누가, 무슨 돈으로 건설할 것인가. 한전은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 2038년까지 72조8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는 이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10GW 이상 전력공급 설비가 반영돼 있다. 하지만 호남권 반도체 산단과 AI 데이터센터가 추가되고 정부가 전력망 건설 시기를 앞당기라고 요구하면서 72조8천억원 보다 크게 높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연간 투자비가 약 10조원, 이 가운데 송전망 투자가 약 8조원이라고 밝혔다. 지중화 확대, 주민 보상 강화, 자재비 상승까지 고려하면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한전의 영업이익은 4조9천억원이다. 흑자라고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연결 기준 부채는 210조원을 넘었고 차입금은 133조원에 달한다. 상반기 이자비용만 2조1천억원이다. 여기에 정부는 11차 전기본의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목표 78GW를 100GW로 높였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발전설비만 세운다고 전기가 저절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송전망과 변전소, 에너지저장장치(ESS), 계통 안정화 설비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반도체·데이터센터처럼 대규모 수요처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전력망 비용은 더 커진다. 공짜 점심이 없듯 공짜 전력망 역시 없다. 민간투자를 끌어들인다 한들 비용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한전에 차입을 떠넘기는 방식도 한계에 이르렀다. 전기요금 조정과 재정 분담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한전은 과연 유의미한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할 수 있을까. 소비자는 자신이 내는 요금이 원가보다 비싼지 싼지조차 알 수 없다. 정부가 인상률만 결정해 통보하니 요금 조정 때마다 모든 소비자가 “왜 나만 올리느냐"고 반발한다. 지역별 차등요금제 역시 원가 차이를 반영하는 것인지, 지역 지원 정책인지 구분하지 않으면 또 다른 교차보조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전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왔음에도 전기요금은 여전히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의 그늘을 못벗어나고 있다. 전기요금 탈정치화의 핵심은 '용도별 원가회수율 공개'다. 정부는 2012년까지 주택용·일반용·산업용·농사용 등 종별 원가회수율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자료 공개가 중단됐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3년 원가회수율은 평균 95.1%, 산업용 97.9%, 일반용 99.7%, 주택용 89.6%, 농사용은 35.1%였다. 산업용 원가회수율이 높아진 것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총 11회에 걸처 80.6%를 인상한 결과이다. 2022년 이후에도 산업용은 kWh당 80.0원, 주택용은 40.4원 인상됐다. 지금은 '전기요금'이라는 명목으로 누가 누구를 얼마나 보조하고 있는지 추정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깜깜이 상태에서 막대한 전력망 비용 마련을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한다고 하면 산업계와 일반 국민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 정책적으로 특정 용도의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해야 한다면 그 차액은 투명하게 계산해 정부 예산으로 지원할 때가 왔다. 복지·농업·산업정책 비용을 한전 장부 속에 숨겨 다른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구닥다리 방식은 이참에 일소해야 한다. 원가를 알아야 지원이 필요한 경제 주체와 정책 목적이 분명해지고 그 지원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 발표보다 앞서 정부가 해결할 일은 용도별 공급원가와 원가회수율을 공개하고 앞으로의 용도별 전기요금 인상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얼마나 더 지을 것인가"를 넘어서 “누가, 어떤 원칙으로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에 대해 모두 고민할 때다.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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