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차지호 민주당 의원, “UN AI 허브, 빅테크 이전 신호탄 될 것”

[단독] 차지호 민주당 의원, “UN AI 허브, 빅테크 이전 신호탄 될 것”

세계보건기구(WHO)·국제노동기구(ILO) 등 UN 6개 기구가 한 지붕 아래 모이는 건 “일하면서 한 번도 못 봤다"는 말이 나올 만큼 드문 일이다. 그 기구를 하나의 연대체로 묶은 건 유럽도, 미국도 아닌 한국이었다. 민주당 차지호 의원(경기 오산·초선)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가 구상한 '글로벌 AI 허브' 프로젝트는 지난달 유엔 6개 기구와의 협력 의향서(MOU) 체결로 첫 번째 결실을 맺었다. 블랙록 자본 유치, UN 총회 비전 선포에 이은 UN 플랫폼 유치의 첫 단추가 꿰어진 것이다. 반년 남짓한 시간에 이 판이 짜였다...

[이슈&인사이트] 한유원, 판촉기관을 넘어 성장설계 기관이 돼야 한다

소상공인 지원정책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이제 질문부터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행사를 열었는가, 얼마나 큰 매출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그 지원이 얼마나 오래 남는 성장으로 이어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행사 기간 매출은 올릴 수 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뒤에도 고객이 다시 찾고, 판매채널이 남고, 사업자가 스스로 운영역량을 갖추고, 다음 성장단계로 올라설 수 있어야 비로소 정책은 구조가 된다. 이제 소상공인 지원도 '한 번 팔아주는 정책'에서 '계속 팔 수 있게 만드는 정책'으로 넘어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의 존재 이유는 더 커진다. 한유원은 이미 백화점, 홈쇼핑, T커머스, 라이브커머스, 온라인 플랫폼, 공공구매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연결할 수 있는 드문 실행기관이다. 동행축제 같은 대규모 소비행사를 움직일 수 있는 동원력도 갖고 있다. 문제는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강한 실행력을 어디까지 확장하느냐다. 이제 한유원은 판촉을 잘하는 기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의 성장을 설계하는 기관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 변화의 핵심은 사업의 양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지원의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판로지원이 행사, 입점, 판매기회 제공에 무게를 뒀다면 앞으로는 지원 이후의 성장경로까지 설계해야 한다. 한 번의 라이브커머스 출연이 재구매율 상승으로 이어졌는지, 기획전 참여가 상시 입점으로 이어졌는지, 초기 노출이 브랜드 인지도와 객단가 상승으로 연결됐는지, 지원받은 업체가 다음에는 스스로 광고를 집행하고 데이터를 읽으며 채널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성과의 단위가 '지원 건수'가 아니라 '성장 전환'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한유원은 소상공인 판로정책의 운영기관이 아니라 성장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소상공인을 단순히 행사에 참여시키는 데서 끝낼 것이 아니라, 성장 가능성에 따라 선별하고, 채널별 특성에 맞게 맞춤형으로 연결하고, 판매 이후 데이터를 축적해 다음 단계까지 밀어 올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에게는 라이브커머스가 맞고, 누구에게는 홈쇼핑이 맞고, 누구에게는 공공구매나 해외채널이 더 적합하다. 중요한 것은 지원사업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업자를 어떤 성장트랙에 태울 것인지 설계하는 일이다. 한유원이 해야 할 혁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되면 한유원의 위상도 달라진다. 지금의 한유원이 '채널을 연결해주는 기관'이라면, 앞으로의 한유원은 '성장을 예측하고 설계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지원기업을 모집하고 행사에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사업자가 어느 단계에서 성장 정체를 겪는지, 어떤 지원이 실제 매출 상승과 반복구매, 브랜드 정착으로 이어지는지, 어떤 채널 조합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축적하고 학습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소상공인 지원정책에 데이터와 전략이 결합되는 순간, 한유원은 단순 집행기관이 아니라 시장을 읽고 성장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이 변화는 소상공인에게도 결정적이다. 지금 많은 사업자들이 지원사업에 참여하고도 “한 번 해봤다"는 경험만 남긴 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진짜 필요한 것은 참여 경험이 아니라 성장 경로다. 어떤 상품은 지역 상권에서 검증된 뒤 온라인으로 넘어가야 하고, 어떤 브랜드는 온라인에서 반응을 확인한 뒤 홈쇼핑이나 오프라인 기획전으로 확장해야 한다. 어떤 업체는 공공조달과 상생몰이 더 맞을 수도 있다. 이런 성장 사다리를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연결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소상공인 정책은 비로소 예산집행을 넘어 산업정책이 된다. 결국 한유원의 미래는 행사 규모가 아니라 구조의 깊이에서 갈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벤트가 아니다. 더 정교한 성장설계다. 한유원이 소상공인 판로지원을 넘어 성장경로를 설계하고, 채널별 진입과 확장을 데이터로 관리하며, 반복구매와 상시매출, 브랜드 자산까지 남기는 기관으로 도약한다면 소상공인 정책의 수준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때 한유원은 더 이상 판촉기관이 아니다. 대한민국 소상공인 성장의 플랫폼이 된다. bienns@ekn.kr

[EE칼럼] 산업용 전기요금은 소비자의 부담

정부가 2분기의 전기요금을 동결한다. 지난 2월 말 중동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연료비 조정단가에 적지 않은 인하 요인이 발생했지만, 그동안 누적된 미(未)조정액을 고려해서 전기요금에는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200조 원이 넘는 무거운 부채를 떠안고 있는 한전의 재무 상황과 중동발 에너지·공급망 위기에 의한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도 고려했을 것이다. 전기요금이 12개 분기 연속해서 동결되는 주택용과 일반용(업무용) 소비자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에 떨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마냥 반가워할 수는 없다. 중동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비 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의 냉방용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으면 여름철 전력 대란을 피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전력 소비의 55%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를 사용하는 산업계의 입장도 난처하다. 지난 정부에서 무려 73%나 올려놓은 산업용 전기요금 때문에 고사(枯死)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 기업의 현실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79.23원으로 급전(給電)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고, 소비량도 적은 주택용 155.52원보다 15%나 더 비싸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해괴망측한 비정상이고, 심각한 불공정이다. 지난 정부의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끔찍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겨놓은 탈원전 비용을 몽땅 산업용 전기요금에 떠넘겨 버렸다.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반발을 피하겠다는 꼼수가 뒤늦게 제조업과 인공지능을 위협하는 폭탄을 만들어낸 것이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비싼 전기요금 탓에 철강 공장은 조업 시간을 줄이고 있고, 염색 공장은 상당한 물량을 중국에 빼앗기고 있다. 중국과 중동의 과잉 투자로 발생한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산업계의 현실이 가장 절박하다. 작년 8월부터 시작했던 '자율 구조조정'도 이번 중동 위기로 길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미래 산업도 흔들린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위해 100조 원을 투자하고 반도체 2대 강국을 위해 70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단군 이래 최대의 국정과제도 위험한 상황이다. 네이버·카카오·KT 등 빅3 IT기업이 데이터센터 가동에 사용한 전력은 지난 5년 사이에 75%가 증가했는데 전기요금은 2배가 넘는 156%나 폭등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앞으로 들어서게 될 데이터센터가 과연 살인적인 전기요금을 견뎌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4월부터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부과 체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1977년 이후 49년 만의 대규모 개편이다. 가장 비싼 요금을 부과하는 '최대부하' 시간대를 낮에서 저녁·밤으로 옮긴다. 태양광·풍력 전기가 남아도는 낮 시간대 전력 소비를 유도하고, 전기요금을 깎아주던 심야 요금은 오히려 인상한다. 산업용 전력의 수요를 분산해서 전력망의 부하를 낮추고, 산업 현장의 전력 소비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4만여 곳의 산업용(을) 사업장 중 97%인 3만8000여 곳에 요금 인하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개편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심야의 작업을 주간으로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 년 365일 연속 가동이 필요한 정유·석유화학·철강·반도체 업체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이번 개편으로 한전은 연간 5000억 원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태양광·풍력의 전기가 남아도는 것은 짧은 봄·가을에 한정된 일이다. 결국 태양의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이나 장마가 길어지는 여름에는 가격이 불안정한 LNG 발전을 더 많이 동원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재생에너지를 늘이자는 주장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태양광·풍력 설비가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LNG 발전량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산업용 전기요금은 기업주가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전기요금은 고스란히 제품의 원가에 반영되어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 먹게 만든다. 기업이 전기를 물 쓰듯 펑펑 낭비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도 억지일 수밖에 없다. 제품 원가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를 함부로 낭비하는 기업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위기가 아니라도 주택용·일반용 전기의 낭비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덕환 외부기고자

[기자의 눈] ‘비공개’ 고수하는 삼천당제약, 상장사 본분 다해야

지난 보름간 삼천당제약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120만원을 두드리던 코스닥 황제주는 이 기간 50만원짜리 의혹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논란은 어느 하나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시장의 따가운 눈총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핵심 기술에 대한 '대만 특허'라도 확보했다는 점이다. 대만 특허청(TIPO)의 두 차례 거절 통지에도 수정 보완을 거쳐 결국 특허 등록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이 기술(PCT 'WO2025/255759 A1')은 국제출원(PCT) 단계에서도 '신규성·진보성 없음' 지적을 6번이나 받았지만, 대만에서와 같이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 특허청의 심사를 뚫어낼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문제는 삼천당제약의 '전략적 비공개' 태도다. 지난달 4일 통지된 TIPO의 특허 등록 결정을 지난 8일에야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한차례 어긋난 시장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개최한 간담회에서조차 주요 사안들에 대해 비공개 입장을 고수했으니 시장의 의구심만 증폭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주 주가급락 사태의 근본적 원인인 '미국 계약규모 15조원' 논란 역시 정보 비공개에서 비롯됐다. 당장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독점 구조로 폐쇄적인 미국 의약품 시장에서 10년간 15조원이라는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는 현지 유통파트너사의 경우만 봐도 '구속력 있는' 바인딩 조약에 따라 계약이 해지될 경우 파트너사에 위약금이 발생하는지 여부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 밖에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 주성분) 제네릭과 인슐린의 실질적 약효를 파악할 수 있는 약동학(PK) 역시 비공개돼 시장의 의심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자사 핵심 기술이 글로벌 경쟁사에 조기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삼천당제약의 해명처럼 비공개 전략은 분명한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의심으로 단기간 폭락 수준의 주가 변동을 겪고 있는 기업이 취하기 적절한 전략인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삼천당제약이 전략을 이유로 비공개 입장을 고수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다름아닌 주주들이기 때문이다. 온갖 의혹으로 주주·기업 가치가 훼손된 상황에서 구체적인 근거 없이 “성과를 통해 기업 가치를 재평가받겠다"는 것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가깝다. 코스닥 상장사로서 투명하고 책임감있는 소통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데스크 칼럼] 한은 새수장 신현송, 위기 겹친 경제 속 역할 무겁다

국회가 오는 15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연다. 이미 1800건이 넘는 자료 요구가 쏟아지면서 검증 강도는 예사롭지 않다. 가족의 국적 관련 문제와 신 후보자의 해외 자산 비중 등도 주요 쟁점으로 거론된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당연한 절차다. 다만 지금의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청문회가 본질을 벗어난 '신상 공방'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의 연속성과 시장 신뢰가 중요한 시점일수록, 검증의 초점 역시 정책 역량과 판단 능력에 맞춰져야 한다. 대외 환경은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다. 중동발 지정학적 긴장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주요국 통화정책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되는 흐름이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출렁일 때마다 물가와 성장 전망이 함께 흔들리는 취약한 경제 기반 역시 재확인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장마저 전쟁 여파가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성장 둔화를 압박할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상황은 기존 경기 사이클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위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국면에서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신 후보자의 개인사가 아닌 통화정책을 운용할 실질적 역량이다. 신 후보자는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지낸 거시경제·국제금융 분야의 학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사전에 경고한 이력도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과의 네트워크와 글로벌 자금 흐름에 대한 이해 역시 강점으로 거론된다. 관건은 이러한 경력이 실제 정책 판단과 위기 대응 능력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다. 향후 통화정책 환경은 쉽게 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전쟁과 원자재 가격 상승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지만, 금리를 인상할 경우 경기 둔화와 금융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가계부채 규모를 감안하면 금리 변화는 소비 위축과 금융 안정 문제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금리를 낮추면 성장 방어에는 도움이 되지만 물가와 환율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 자본 유출입 변동성이 커질 경우 외환시장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어느 선택도 비용을 수반하는 구조다. 이럴수록 중앙은행 수장의 '메시지 관리'는 정책 수단만큼 중요해진다. 시장은 정책 방향뿐 아니라 발언의 뉘앙스, 타이밍, 맥락까지 읽어내며 선제적으로 반응한다.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는 등 외환시장의 긴장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신 후보자가 환율 수준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취지로 한 발언은 잘못된 신호로 읽힐 가능성을 키운다. 달러 유동성이 과거보다 양호하다는 인식 역시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전달 방식에 따라 시장에는 경계심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특히 외환시장은 기대와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어서 표현 하나가 방향성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통화당국 수장의 한마디가 금리 경로, 환율 전망, 자금 흐름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인 만큼,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정교함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의미다. 향후에는 메시지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보다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임 이창용 총재가 구조개혁 의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확장해온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구조개혁은 통화정책의 효과를 높이고 금리 정책의 부담을 분산시키는 핵심 장치다. 노동·산업 구조 개선과 생산성 제고 없이는 금리 정책만으로 물가와 성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중앙은행이 직접 정책을 집행하지 않더라도, 중장기 리스크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은 중요하다. 이번 신 후보자 청문회가 가려야 할 것은 명확하다. 물가와 성장, 환율 변수가 얽힌 여건에서 균형 잡힌 통화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시장과 신뢰를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다. 검증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향후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신상 논란에 매몰될 여유는 지금 우리 경제에 없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EE칼럼] 부존자원 없는 나라의 필수전략, 에너지절약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해 본 전문가들은 에너지절약 정책이 국내 에너지정책 입안 과정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름 수십 년간 전해져 왔던 에너지정책 수립 과정에서 에너지절약 정책은 가장 앞서 적용되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이란 사태로 갑자기, 그리고 허겁지겁 에너지절약 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에너지정책 수립 과정의 첫 순서는 먼저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예측하는 것이다. 미래 에너지 수요 예측치에 대한 나름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다음은 이제 여러 정책과 방안을 적용해 보는 순서인데, 전통적으로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효율 증대나 에너지절약을 위한 정부 계획, 현행법으로는 '에너지이용합리화기본계획'을 가장 먼저 적용하였다. 이를 통해 절약과 이용합리화를 수행하여 줄일 수 있는 수요량을 빼고 남게 되는 수요 예측치를 목표로 하여 에너지 공급 정책과 방안을 도출하는 순서를 거쳐 정책을 완성하여 왔다. 우리나라가 이와 같이 에너지이용합리화 정책과 방안을 에너지 공급 정책과 방안에 앞서 적용하여 온 이유는, 당연히 한반도에 부존된 에너지원이 그 수요에 비하여 양과 종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과, 1970~80년대 1, 2차 석유 위기를 겪은 이후부터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이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데 나름 전 국민이 동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고유가와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정책 수립의 이행 순서에 변화가 생겼다. 공급 정책이 수요예측 바로 다음으로 순서를 당겨 나타났다. 에너지전환정책, 해외자원개발정책, 재생에너지공급정책, 원자력공급정책 등이 그들이다. 사실 정책의 우선순위는 정부의 정책 목표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에너지절약 정책의 순서가 아주 뒤로 밀려버린 것이다. 에너지 효율 지표를 주요 국가들과 비교하여 보면 그 영향이 확실히 드러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에너지 효율의 대표적인 지표로 사용하는 에너지집약도(에너지사용량을 GDP로 나눈 수치)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는 1980년 이래 지난 40여 년 내내 일본 등 주요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 우리의 에너지집약도는 1980년 0.27에서 2022년 0.16으로 개선되었으나 같은 기간 동안 일본은 1980년 0.15에서 2022년 0.08로, 독일은 0.19에서 0.08로, 영국은 0.15에서 0.05로 더 크게 개선되었다. (아래 표 참조) 더 큰 문제는 미국에도 추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에 0.26으로 우리와 비슷하던 미국은 지난 40년 동안 우리를 앞질러서 2022년에는 0.10을 달성하였다. 미국이 이제 우리나라가 아니고 일본과 유럽 국가들에 가까운 효율을 보이는 것이다. 에너지집약도 지표를 구성하는 두 변수 중 분모인 GDP가 지난 40년 동안 엄청나게 커졌는데도 효율 지표가 좋아지지 않은 것은 정책 우선순위 변화의 영향이 없다고 반박하기 어렵다. 에너지효율화 정책 우수국가인 독일의 정책을 살펴보면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산업부문 에너지절약 정책은 LEEN (learning energy efficiency network)이다. 21세기 들어서 시작하였으며 이미 독일 내 2천여 개의 중견, 중소기업이 해당 정책의 혜택을 받고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 지역별로 연합체를 만들어 대학, 정부, 연구소가 도움을 주고 서로 절약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일본, 영국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나라는 모두 진짜로 에너지를 적게 쓰는 쪽으로 산업을 발전시키는 에너지 효율화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해 왔다. 에너지 가격을 요금으로 묶어 두는 정책이나 단기적인 캠페인형 정책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기에 독일은 제조업의 비중이 높아도 한국의 두 배 이상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고 있다. 이는 일본, 영국 등도 마찬가지이다. 에너지사용량이 줄어들면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도 따라올 것이며 재생에너지 보급 역시 늘어남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무역수지가 좋아지고 경제가 에너지 위기에 강해지는 효과는 덤으로 얻고 말이다. 이번 이란 사태는 에너지절약 정책이 다시 한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돌려놓을 기회이다. 국민들이 모두 에너지 효율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산업현장의 에너지 효율화 향상 방안을 추진하고 또한 효율화 투자를 지원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과 기업이 실제로 절약과 효율화에 나서게 하는 인센티브를 강화하여 동참을 유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허은녕

[기자의 눈] 유통가 AI전환, 대체자 아닌 조력자 만들어야

유통업계가 운영 효율 개선의 해법을 기술 혁신에서 찾고 있다. 인공지능 전환(AX)·자동화 로봇을 통해 전통 방식에서 벗어난 커머스 체계·물류 솔루션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대화형 인터페이스 기반의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초개인화된 고객 경험을 구현하는 목표 달성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전통 유통업체부터 네이버·11번가 등 온라인 플랫폼까지 AI커머스를 혁신 생태계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AI 비서에게 구매 단계를 외주화해 발견형 쇼핑 경험을 극대화한다는 취지지만, 소비 과정에서 오는 우연한 발견을 추구하는 고객에게 호응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AI가 상품 탐색·가격 비교 과정을 압축해 '선택하는 고생'을 줄여줄 수 있지만, 동시에 '선택의 폭'까지 축소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데이터의 함정이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대다수 유통업체들은 고객의 과거 구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취향 큐레이션'이라며 전문화된 콘텐츠로 선보이고 있지만, 핵심 경쟁력은 틈새·비주류 브랜드 등 얼마나 다양한 상품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여부에 갈릴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에서 기본값이 된 또 다른 전략 키워드는 물류 자동화다. 컬리·쿠팡 등 자체 물류센터를 갖춘 주요 이커머스들은 이미 AI 자동화 기술 기반의 물류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롯데쇼핑도 연내 가동 목표로 영국 리테일 테크 기업 '오카도'의 물류 자동화 시스템을 이식한 스마트 물류 인프라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비용 절감 등 자동화 장비의 장점은 뚜렷하나 현실적으로 완전 자동화까지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거운 상품을 대량 적재하는 데 용이하지만 상품 피킹·검수 등 세밀함을 요구하는 작업에서 사람 손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 전환은 경기 침체 등 성장판이 닫힌 유통업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유통 공룡들이 기존 유통업의 한계를 깨고 수요 예측·재고 관리·물류·고객 관리(CS) 등 전 영역에 걸쳐 새롭게 사업 구조를 짜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 과정에서 급격한 기술 변화가 불가피해보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고, 직원과 협력할 수 있는 조력자로서의 혁신 방향성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 석유공급 위기가 몰고 올 에너지전환 정책의 방향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닫혀버린 호르무즈 해협으로 인해 세계 석유 공급망이 한달이 넘게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석유제품 가격은 치솟고 있고 산업의 쌀인 석유 나프타의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즉, 석유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 부족으로 에틸렌 생산 차질, 플라스틱·섬유·가전·자동차 등 연관 산업 전반의 제품 생산 중단 및 가격 폭등을 초래하여 다른 산업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은 국내 정유공장에서 하루 280만 배럴의 원유를 소비하고 있고 연간 약 10억 배럴 소비하고 있으며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 70% 이상을 중동 지역의 중질유를 수입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양은 전 세계 하루 원유 생산량의 15% 정도인 1500만 배럴 규모인 점을 고려하면 비산유국인 한국이 받는 충격은 구조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공급망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대책에는 무엇이 있을까? 석유가스의 안정적 공급을 늘려야 할까?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전환을 가속화하여 탈석유 시대를 앞당겨야 할까? 과연 정답은 있을까? 이에 대한 정답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에너지원 구성과 미래 에너지전환에 대한 합리적인 전망을 이해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위주의 에너지전환은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지? 에너지전환이 이루어지면 정말 화석연료는 필요가 없는 것인지? 즉, 에너지전환의 시기와 규모에 대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전망에 기반한 미래 에너지원 수요공급 구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최종 소비 에너지원을 살펴보면 24년 말 기준으로 석유 47%, 전기 22%, 석탄 14%, 가스 12%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국내 전력 생산의 60%는 석탄과 천연가스로부터 생산되고 있다. 만약, 신재생에너지로부터 모든 전력을 생산하더라도 에너지 소비의 20%를 담당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에 신재생에너지가 모든 에너지원을 대체하려면 100% 전기화 되어야 한다. 동시에 에너지사용의 전기화 비율을 높여야 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있다. 2050년 한국의 탄소중립 계획에 따르면 전기화 목표는 45%로 설정되어 있고 현 수준의 2배로 늘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60%인 화석연료의 전력 생산량도 줄여야 하고 동시에 신재생으로부터의 전력생산은 획기적으로 늘려야 에너지 소비의 45%를 전기로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석유는 전력 생산에 미미한 수준을 담담하고 있다는 점도 신재생에너지가 석유공급 위기를 전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탈석탄도 버거운 형편인데 탈석유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문제는 석유가스가 언제까지 필요하게 될까 이다. 2050년엔 석유가스가 사용되지 않을까? 참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각국이 제시한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에 기반하는 에너지원 구성 예측은 전망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희망에 가깝다. 너무나 많은 가정과 대규모 투자가 따라와야 하고 전 세계 합의해서 일사분란하게 추진해도 될까말까한 계획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석유는 연료와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탄소배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미국, 인도가 탄소배출 감축이 어렵다는 점, 에너지 생산설비의 수명이 길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전환이 지금의 희망보다는 어렵고 훨씬 천천히 다가올 것이라 점은 분명해 보인다. 석유가스시대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일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의 에너지원 공급망 안정화는 어떻게 해야할까? 기존의 자원안보 특별법을 좀 더 실행력 있게 다듬어서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가격의 정상화를 통해 국내 수요를 관리하고 국내 비축과 해외 도입선 다변화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해외자원개발 추진을 통해 10%인 자원개발률을 40% 수준으로 높여야 하고 또한 자원안보의 최선책인 국내 자원개발을 정권의 교체에 무관하게 중단없이 지속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보인다. ekn@ekn.kr

[이슈&인사이트] 새로운 중앙아시아가 온다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중앙아시아의 현대 지정학적 구조는 단순한 강대국 경쟁의 장에 머물지 않고 점차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러시아의 전통적 안보 영향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다양한 협력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진출은 군사력이나 부채 기반 개발이 아니라 '소프트 거버넌스'의 수출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신북방정책'과 'K-실크로드 전략' 등은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도시 및 산업 전환을 위한 기술 협력 파트너십 구축을 의미한다. 한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단순한 하드웨어 제공자가 아니라, 모델을 제안하며 새로운 발전 경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한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은 기존의 자원외교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기술 플러스(Technology-Plus)' 프레임워크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자원 확보와 디지털 인프라를 결합하는 미래 지향적 전략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6년 약 24억 6천만 달러 규모의 ODA 예산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는 재정적 기반이다.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와 같은 준정부 기관은 정부 정책과 민간 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부 간 협력(G2G)으로 스마트시티 설계 단계부터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형 기술 표준을 대상국에 심는다. 카자흐스탄은 이러한 한국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알마티 인근의 알라타우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약 8만 8천 헥타르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시 개발이 아니라 '중앙회랑(Middle Corridor)' 물류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설계되었다. 한국은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 구축과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여 카자흐스탄이 내륙국에서 '연결국(land-linked state)'으로 전환하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2026년 고위급 물류 통합 논의로 더욱 깊어졌고, 스마트시티는 유라시아 공급망의 핵심 노드로 발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협력은 물류 중심의 카자흐스탄과 달리 인간 중심적 도시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 타슈켄트(New Tashkent)' 프로젝트는 보건의료,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포괄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이며, 한국은 의료 스마트시티 구축과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 도입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약 50억 달러 규모의 의료 스마트시티 투자와 현대로템의 고속철 사업은 산업과 기술 협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사례이다. 녹색 수소와 친환경 난방 시스템 도입은 탈탄소 도시 전환을 촉진하며, 이는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더욱 특화된 형태의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아르카닥 스마트시티는 국제 전시회 수상을 통해 한국 기술의 상징적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으며, 폐쇄적인 시장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스마트 빌리지' 모델을 통해서 농촌과 산악 지역에 적합한 기술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약 5억 달러 규모의 경제개발협력기금(EDCF)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한국 기술이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향한 한국의 이러한 전략에는 여러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와의 경쟁으로, 비교적 저렴한 중국 기술이 이미 해당 지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미비함도 스마트시티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데이터 관리,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규제 등 법·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 스마트시티는 고립된 기술적 성과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단순한 기술 제공을 넘어, 관련 법제도 구축과 인력 양성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접근으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올해 9월에는 서울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이 모여 협력과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핵심 광물 공급망, 에너지,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K-실크로드' 협력 모델을 강화할 계획이다. 따라서 이번 가을은 한국이 새로운 모습의 중앙아시아를 맞이하고, 그들에게 기술·제도·가치가 결합한 한국형 모델에 기반한 미래 협력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비록 지정학적 경쟁과 제도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최근 한국이 주도하는 디지털 협력 기반은 이미 구축되고 있으며, 이는 중앙아시아가 21세기 글로벌 경제에서 자율적인 위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중앙아시아가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봉철

[기자의 눈] 민형배 의원의 발자취

광주=에너지경제신문 문승용 기자 정치인의 말은 쉽게 소비되지만, 기록은 오래 남는다. 민형배 의원의 정치 이력은 그 기록이 어떻게 쌓이고, 또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준다. '공정'과 '원칙'을 강조해 왔지만, 실제 국면마다 구호와 달랐다. 2020년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경선부터 보자. 당시 민 의원은 상대 후보 측의 권리당원 명부 과다 조회를 문제 삼아 재경선을 요구했다. 중앙당이 허용한 범위 내 행위였음에도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결국 상대 후보는 감점을 받고 경선은 뒤집혔다. 정치권에서는 “초유의 재경선"이라는 평가와 함께 '멀리건'이라는 조롱이 따라붙었다. 공정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정치적 반전이었다. 그러나 4년 뒤, 같은 '명부'는 전혀 다른 위치에 놓였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민 의원 측이 지역위원장 시절 교부받은 권리당원 명부를 보유한 채 선거 과정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당시 캠프 관계자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당원 명부는 선거 활용이 금지된 사항이다. 과거 상대의 '과다 조회'는 불법이었고, 자신의 캠프에서 '보유와 활용'은 관행으로 설명했다. 공천 과정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반복됐다. 경선 대진표 구성과 컷오프 과정에서 특정 후보 배제 의혹이 불거졌다. 여론조사 상위권이 아닌 하위권 후보가 결선에 오르면서 “차라리 단수공천하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일부 후보들은 삭발과 단식으로 반발하며 공정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여기에 선출직 공직자들의 문자 발송, SNS 홍보, 응답 인증 요구 등 '줄 세우기' 방식이 더해지며 경선 중립 원칙 훼손 논란으로 번졌다. 공정 경쟁은 구호에 그쳤고 현장에서는 구태정치가 되살아났다. 녹취로 공개된 '전화기 털어라' 발언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단순한 표현을 넘어 연락처 확보와 조직 동원을 전제로 한 선거 전략으로 읽혔고, 일부 발언은 향후 공적 사업과 연계될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낳았다. 선거와 권한이 뒤섞였다는 의심이 제기된 이유다. 특히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대통령 팔이' 논란도 빼놓기 어렵다. 특정 대통령과의 관계를 강조하거나, 출마 및 정치 행보를 대통령과 연결 짓는 발언이 이어지며 정치적 권위를 차용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관련 발언은 공천 개입설로 번졌다. 메시지 관리에서도 일관성 문제는 드러난다. 가짜뉴스 척결을 강조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캠프 홍보물에서는 특정 지역 수치만 부각해 전체 판세를 왜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불리한 정보는 줄이고, 유리한 정보는 키우는 방식은 낯설지 않지만, '공정'을 내세운 정치인에게는 더 큰 모순으로 기억됐고, 이기면 장땡이라는 삼류 정치의 표본을 실천했다. 측근 인사 문제도 비슷하다. 비위 전력이 있는 인사를 재기용한 것을 두고 인사 책임 논란이 이어졌지만, 해명은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결국 민형배 정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원칙의 부재'가 아니라 '선택적 적용'이다. 같은 사안도 시기와 위치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됐고, 그 방향은 대부분 정치적 이익과 맞닿아 있었다. 정치는 누구나 유리함을 추구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내세운 기준이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가다. 과거 상대에게 들이댄 잣대가 지금도 유효한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공정'은 구호로, '원칙'은 전략으로 남는다. 유권자는 점점 말을 믿지 않는다. 대신 반복된 흠결을 기억한다. 결국에는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승리해왔는가를 평가한다. 문승용 기자 symnew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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