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이코노미] ㊦ “시니어, 소비·생산 주체…‘장수 경제’ 나아가야”

[실버이코노미] ㊦ “시니어, 소비·생산 주체…‘장수 경제’ 나아가야”

“실버비즈니스가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되기 위해선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시니어를 돌봄 대상으로만 봤다면,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소비·생산 주체로 인식해야 하죠. 모든 산업에 걸쳐 연령주의(Ageism)에 대한 고정 관념이 해체돼야 합니다." 이충우 숙명여대 사회복지대학원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연령의 개념을 출생연도 기준인 '캘린더 연령'으로 정의해왔고, 모든 정책·사회 복지의 기준점도 출생연도로만 적용해왔다"며 “개인의 기능적 역량에 맞춘 고용·교육·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면, 단순히..

[이슈&인사이트] 비트코인, ‘21세기 로마 금화’가 될 수 있는가

최근 글로벌 자산 시장은 마치 거대한 폭풍을 만난 듯 요동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의장 후보로 '매파적 실용주의자' 케빈 워시를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통적인 안전 자산인 금과 은값은 물론, 기세등등하던 비트코인마저 줄지어 하락 곡선을 그렸다. 시장은 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그 원인은 명확하다. 케빈 워시는 과거부터 '강한 달러'와 '재정 규율'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그가 이끌 연준이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고 달러의 가치를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지자, 인플레이션의 대안이자 '달러의 적수'로 꼽히던 금과 비트코인의 매력이 단기적으로 위축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 변동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달러의 권위가 서슬 퍼런 이 시대에, 비트코인 같은 무형의 자산이 과연 역사적 생존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에서 '돈'은 늘 눈에 보이는 '쓸모'를 담보로 해왔다. 고대 사회에서 금과 은이 화폐로 선택된 이유는 희귀성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장신구가 되거나 권위를 상징하는 실질적 유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이 번영할 수 있었던 기반 중 하나인 '아우레우스' 금화 역시 금이라는 실물 가치에 기반한 강력한 화폐 권위를 가졌다. 하지만 로마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는 지배자가 통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화에 동을 섞어 화폐의 순도를 낮추기 시작했을 때다. '실질적 유용성'이 권력에 의해 오염되자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졌고, 결국 제국의 경제 시스템도 붕괴했다. 오늘날 비트코인에 대한 열광은 어쩌면 무분별한 법정 화폐 발행으로 인한 '현대판 금화 오염'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일지 모른다. 물론 형태도 무게도 없는 디지털 코드에 가치를 투영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여전하다. 손에 잡히는 실체만이 안전하다는 수천 년의 생존 본능이 무형의 자산 앞에서는 의구심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케빈 워시의 지명으로 달러가 일시적 강세를 보인다고 해서 화폐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현대 경제에서 자산의 가치는 이제 '물리적 실체'에서 '신뢰와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이라는 물질이 가치를 보증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수학적 알고리즘과 전 세계가 참여하는 보안 네트워크가 가치를 보증한다. 비트코인은 특정 중앙 권력이 임의로 찍어내어 가치를 희석할 수 없도록 설계된, 인류 최초의 '시스템적 신뢰 자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실체 없는 '밈 코인'들이 난무하는 모습은 170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2000년대 닷컴 버블의 잔해 속에서 구글과 아마존이 살아남았듯, 지금의 혼돈 속에서도 '디지털 금'으로서의 비트코인과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서의 이더리움은 제도권 금융의 핵심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우리는 어떤 판단기준을 가져야 할까? 첫째, 단기적 변동성과 자산의 본질을 구분해야 한다. 케빈 워시의 정책 기조에 따라 가격은 출렁일 수 있지만, '해킹 불가능한 2,100만 개의 희소 자산'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둘째, '물리적 실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되 '시스템의 투명성'을 살펴야 한다. 미국이 규제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달러와 연동되어서가 아니라, 언제든 실물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검증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화폐의 역사는 결국 '인간이 무엇을 믿기로 약속했는가'의 기록이다. 금에서 종이 화폐로, 다시 디지털 코드로 형태는 변해왔지만 '조작 불가능한 희소성'을 향한 인류의 열망은 변하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기 수단으로 치부하기엔, 그것이 담고 있는 '탈중앙화된 신뢰'의 기술이 현대 경제의 거대한 빈틈을 메우고 있다. 단기적인 시세 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화폐가 걸어온 유구한 역사의 궤적을 복기해 볼 때다. 정답은 늘 '물리적 쓸모'를 넘어선 '신뢰의 네트워크' 속에 있었다. bienns@ekn.co.kr

[EE칼럼] 재활용 빙자 시멘트공장으로 몰리는 수도권 쓰레기

올해 본격 시행된 수도권 직매립 금지 이후 수도권 쓰레기의 충청지역 반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뜨겁다. 충청지역 민간 소각장으로 얼마만큼의 수도권 쓰레기가 반입되는지, 어느 수도권 지자체에서 쓰레기를 보내는지 관심이 쏠리고, 발생지 처리 원칙을 무시한 채 민간 소각장의 배만 불려준다는 논란도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당 지자체들은 민간 소각장을 대상으로 과다 소각 여부나 수도권으로부터의 반입량을 수시로 특별 점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와중에도 지나치게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시멘트 벨트로 일컬어지는 강원 강릉․동해․삼척·영월과 충북 제천․단양 등 6개 지자체다. 수도권 쓰레기는 보통 소각장으로 보내 소각 처리하기도 하지만, 중간 재활용업체에 들어가서 파쇄된 후 산업폐기물로 둔갑해 시멘트공장에서 처리되기도 한다. 이들 6개 지역의 9개 시멘트공장으로도 수도권 쓰레기가 반입되고 있지만, 해당 지자체들은 너무도 조용하다.시멘트공장 인근 주민들이 연일 수도권 쓰레기의 시멘트공장 반입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앞 1인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해당 지자체는 시멘트공장에 대한 수시 점검은 고사하고 관련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멘트 환경문제 국민대책위원회가 나섰다. 지난달 초 시멘트벨트 6개 지자체에 “수도권 생활폐기물 시멘트공장 반입에 대한 의견을 내놓으라"고 공개 질의했다. 시멘트공장의 폐기물 사용에 대한 환경오염과 안전성 우려가 계속되는 만큼, 수도권 쓰레기의 지역 반입 시 안정적 처리 방안을 함께 모색해 보려는 취지였다. 6개 지자체 중 충북 단양군과 강원 삼척시 2곳에서만 회신이 왔다. “생활폐기물은 발생지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시멘트공장 반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단양군은 지난달 22일 관내에 있는 한일시멘트·성신양회 두 시멘트공장과 환경적 가치 보호와 주민 우려 해소를 위해 수도권 생활폐기물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업무협약까지 체결했다. 어려운 시기에 대승적 결단을 해준 단양군과 삼척시에는 감사한 마음이다.하지만 여전히 강원 강릉·동해·영월, 충북 제천시는 묵묵부답이다. 그러는 사이 수도권 쓰레기가 이미 시멘트공장으로 반입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의 생활폐기물은 평택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낙찰받아 시멘트공장으로 반입하여 처리하고, 마포구는 원주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생활폐기물을 인근 시멘트공장으로 반입하고 있다. 강북구도 역시 원주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충북과 강원도에 있는 시멘트공장을 통해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지난 2024년 8월 법제처는 “재활용업체는 생활폐기물을 재활용 대상 폐기물에 추가할 수 없다"라고 법령 해석한 바 있다. 시멘트 공장은 재활용업 지위를 갖고 있는데, 재활용 대상이 아닌 생활폐기물을 수도권에서 가져와서 처리하는 것은 명백히 법령에 위반이다. 하지만 작금이 상황을 보면, 이런 법제처의 위법 해석이 무색할 정도다. 시멘트업체에서는 생활쓰레기를 대체원료, 보조연료라고 주장하면서 소성로에 넣어 태우고 있고, 기후부는 이런 시멘트업체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의 의도적 침묵과 회피, 방관이 길어질수록 주민들의 피해만 커질 뿐이다. 민간 소각장보다 위험한 곳이 시멘트공장이기 때문이다. 시멘트공장으로 반입되는 폐기물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하고, 환경 기준마저 허술하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은 시멘트공장이 270ppm으로 소각시설의 50ppm에 비해 5배 이상 완화돼 있다. 총탄화수소(THC)는 배출허용기준이 있지만, 굴뚝자동측정기기(TMS)로는 측정이 안 돼 실시간으로 관리가 안 된다. 국민의 안전과 환경은 어떠한 이유로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유입을 제한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대책 마련이 분주한 상황에서 시멘트 벨트지역 지자체만 침묵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강원 강릉·동해·영월, 충북 제천시는 쓰레기 떠넘기기와 환경 차별을 스스로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재활용을 빙자해 시멘트공장으로 수도권 쓰레기가 몰리는 이른바 '수도권 쓰레기받이'로 전락하는 상황을 막는 방법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시멘트공장이 수도권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라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bienns@ekn.co.kr

[기자의 눈] 주식 거래시간 연장, ‘속도’보다 ‘정교함’이 먼저다

“직장인 입장에선 좋죠.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장중에 투자 판단을 못 해 아쉬울 때가 많은데, 퇴근하고 저녁에 거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거래시간 연장을 바라보는 한 개인투자자의 말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거래시간 확대는 선택지를 넓히는 변화다. 낮 시간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야 하는 직장인에게는 시장 접근성을 높여주는 제도이기도 하다. 투자자의 편의를 기준으로 보면, 거래시간 연장은 분명한 순기능을 가진다. 글로벌 흐름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자본시장은 이미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통해 정규장 전후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환경에서, 한국 시장 역시 거래 가능 시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유는 방식이다. 거래시간 연장은 단순한 편의 개선이 아니라 시장 운영 전반을 건드리는 변화다. 주문 체계와 시스템 안정성, 정산·결제 구조, 리스크 관리까지 함께 바뀐다. 이 변화는 곧바로 현업 종사자들의 근무 형태와 업무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 현장에서는 준비 기간이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시스템 개편과 테스트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정은 촉박하다. 변화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검증과 조율이 생략된 채 속도만 앞서는 것은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의 편의를 위한 변화가 현업에는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전달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간극을 조정하려는 과정이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자의 요구는 명확하지만, 그 요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담이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되, 추진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확산되는 이유다. 자본시장은 투자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거래를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과 이를 운영하는 인력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투자자의 편의를 높이겠다는 목표가 옳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단순화될 수는 없다. 변화의 크기만큼 준비의 깊이도 요구된다. 거래시간 연장은 결국 투자자를 위한 제도다. 그 점은 분명하다. 다만 투자자를 위한다는 이유로 불도저식 추진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편의를 위한 변화일수록 과정은 더 정교해야 한다. 지금의 거래시간 연장 논의가 준비된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대통령의 말폭탄이 불안한 이유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다주택자들을 향해 “집을 팔라"고 압박하고 있다. “돈이 마귀" “망국적 부동산 투기" 같은 강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자랑하는 성과들을 끌어와 “부동산 정상화는 5000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다"고도 했다. 몇 년이나 미뤘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재개하는 것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의 하나다. 국민 삶에 필수적인 집을 투기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도 옳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런 압박이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호소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선거를 앞두고 뾰족한 대책은 없고, 말로 기선 제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8.98%로,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높았다. 지난주까지 52주 연속 상승했으니 사실상 1년 내내 쉬임없이 오른 셈이다. 매매가뿐 아니라 전월세금까지 치솟아 서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재명 정부 들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부동산 대책을 4번이나 내놨다. 작년에는 서울과 경기도의 거의 모든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을 거래허가 대상으로 묶고 금융 대출까지 막는, '사상 최강의 규제'라 불리는 10·15대책을 내놨다. 새해 들어서는 수도권 핵심지역에 6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1·29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아직은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전쟁에 나선 것인데, 그래서 더 불안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상승→부동산 대책 →효과 없음→ 더 강한 대책 → 집값 더 상승으로 이어졌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까지 나서서 요란하게 부동산 전쟁을 벌인 결과는 처참했다. 주택 소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하고, 서울 아파트는 점점 더 안전자산이 되어갔다. 사실은 다양한 요인으로 집값이 올랐지만, 국민의 인식 속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으로 각인되었다. 언론을 탓하는 것도 닮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땅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 언론들의 여론몰이'를 탓했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어깃장을 놓는 일부 언론도 문제지만, 옳은 비판도 많다. 정부가 수도권 주택을 실거주 아니면 구매할 수 없도록 규제했기 때문에, 다주택자가 집을 팔려 해도 팔 수 없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고 정책을 보완해 주는 문제 제기였다. 다주택자가 현재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인지도 의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주택자는 2019년 15.9%에서 2024년 14.9%로 되레 줄었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00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들의 평균 매입가는 1억 6000만 원 수준이다.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은 서울 아파트가 아니라 대부분 임대 목적의 빌라나 다세대주택이라는 얘기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나 금융대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매한 사람은 30대 생애 최초 구입자와 더 좋은 지역으로 옮기려는 40대 구매자로 보인다. 이들을 '마귀'이고 '악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집값 상승을 다주택자들의 투기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실무자들이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1·29 공급 정책은 졸속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용산은 국제업무지구 기능 훼손, 교통과 교육 여건 악화, 사업 지연 등을 이유로 서울시가 반대하고 있다. 과천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마사회 이전에 대해 전혀 상의가 없었다며 마사회 노조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태릉CC는 문재인 정부 때도 추진했다가 세계문화유산과 그린벨트 훼손 우려, 주민 반대 등으로 좌초됐던 곳이다. 1·29대책이 실현 가능성 점검이나 지자체와의 조율 없이 숫자 위주로 급조됐다는 반증이다. 때로는 투기 심리와의 기싸움도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집값 상승의 원인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정책을 보완해야 할 때다. 부동산은 주식시장보다 복잡한 시장이다. 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일자리, 교통, 교육, 문화 등 삶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집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쾌도난마식 해법에 조급하기보다 실용적이고 꾸준한 정책으로 집값을 안정시킨 최초의 민주당 정부가 되길 바란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기자의 눈] 공항공사 사장자리는 ‘낙하산’ 착륙지점 아니다

한국공항공사 사장실의 불이 꺼진 지 오래다. 수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이정기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아 1년 7개월 가량 이끌었으나 지난해 12월 1일자로 퇴임했다. 현재는 박재희 전략기획본부장이 '사장대행의 대행'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청와대나 국토교통부가 지침을 내리지 않으니 사장 채용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 일정 논의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한국공항공사의 경영 차질 우려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사장직은 전문경영인의 자리가 아니라 사실상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전리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우려는 확신으로 바뀐다. 경찰청장·국가정보원·시장 등 항공 안전보다는 치안이나 정보 수집에 특화된 사정·정보 기관이나 군·행정가 등 낙하산 인사들이 줄지어 자리를 꿰찼는데 역대 사장들 중 92%가 이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관련 기관들이 공항의 보안업무를 핑계로 한국공항공사 사장직을 꿰차는 걸 당연시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쯤 되면 경찰서나 군, 정보 기관이 공항을 출장소 정도로 여기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대한민국 하늘길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공사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부 관료 출신이거나 선거 캠프 출신 정치인이 내려오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뼛속까지 '공항맨'인 수장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문제는 이러한 '보은성 낙하산 인사'가 공정성의 차원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항은 수만 명의 이용객이 오가는 거대한 시스템이자 단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국가 중요 보안시설이다. 테러 방지·보안 검색·활주로 운영·항공기 이착륙 유도 등 고도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필수이다. 항공 분야 문외한이 수장이 됐을 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위기 대응능력'이다. 공항에서 발생하는 비상 상황은 즉각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현장용어조차 낯설어 하는 비전문가가 과연 위기상황에서 골든 타임을 지키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범인을 잡거나 정보를 캐는 능력과 항공 시스템의 안전을 지키는 능력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전문성이 결여된 리더십은 사고 발생 시 오판을 부르고, 이는 곧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리더십 리스크는 대외신인도 하락으로도 직결된다. 글로벌 공항산업은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장의 취임은 해외 파트너들에게 '한국의 공항은 정치 논리로 운영된다'는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 이는 공사의 대외 신뢰도 하락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국가항공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조직을 병들게 하는 것은 내부 구성원들이 느끼는 깊은 박탈감이다. 평생을 공항 현장에서 헌신하며 전문성을 쌓아온 직원들에게 사장직은 '아무리 노력해도 오를 수 없는 나무'가 돼버렸다. '열심히 일해 봤자 사장은 어차피 낙하산'이라는 패배주의가 팽배한 조직에서 주인 의식과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승진의 사다리가 끊긴 조직의 사기 저하는 결국 서비스의 질적 하락과 '안전 구멍'으로 돌아오게 된다. 국민의 안전이 이착륙하는 곳이니만큼 공항공사 사장직은 정권의 논공행상을 위한 자리가 아니어야 한다. 이제는 '관피아', '정피아'가 아닌 진짜 전문가에게 공항 경영의 관제탑을 맡겨야 한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는 한 공항 안전을 둘러싼 위협은 해소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E칼럼] 미국 철강산업 귀환과 신뢰성 위기

미국 상무부는 최근 X(트위터)에 1999년 이후 미국 철강생산이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해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다면서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공으로 돌렸다. 또한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수입 철강에 최대 50%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철강 가격이 30% 이상 상승했지만, 미국 내 철강 출하량이 5% 상승한 이유로 AI 붐을 들었다. 평상시라면 관세부과로 수입 철강은 물론이고 공급망 비용 증가로 철강을 사용하는 모든 산업의 비용이 올라가면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실제 지난해 엑손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헤스 등 미국 석유 대기업들은 비공개 석상에서 트럼프의 철강 수입 관세 25% 정책으로 공급망 비용상승과 석유와 가스 판매에 부정적 영향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일까. 관세로 인해 철강 가격은 급등했으나 AI 붐으로 데이터센터와 발전시설용 철강 수요가 급증해 수요자들이 흔쾌히 지갑을 열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민간 부문 데이터센터 건설 지출은 2025년 1월까지 2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철강 소비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의도치 않은 관세효과는 트럼프의 성과와 리스크를 만들어냈다. 우선 관세정책으로 미국 철강산업이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면서 자본유입이 시작되었다. 관세에도 수요증가로 자국 철강사들이 적극적인 생산과 투자가 가능해진 것도 성과다. 반면 건설경기 침체와 관세부과로 수요 침체를 맞은 중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대만은 시장 양극화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 닛케이 아시아는 경고했다. 리스크는 다름 아닌 전력 부족이다. 사실 미국 내 데이터센터 붐은 가뜩이나 취약한 미국 내 전력 인프라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핵심요인이다.미국 연방 에너지 규제위원회(FERC)는 1월 29일 '2025년 장기 신뢰도 평가(Long-Term Reliability Assessment, LTRA)'를 발표했는데 MISO, PJM, ERCOT, WECC-Basin, WECC-Northwest, 뉴잉글랜드, 뉴욕, 퀘벡까지 상당수의 지역에서 동일한 경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급증하는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발전소 건설 속도가 폐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FERC 위원장 마크 크리스티는 신뢰성 위기가 코앞에 닥쳐왔으며 기상조건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dispatchable할 수 있는 전력원을 날씨에 의존하는 전력원이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 전력공급은 머니게임이 펼쳐지고 있는데 메가와트아워당 100달러를 흔쾌히 지불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에 40달러 이상 지불이 어려운 철강, 알루미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구조다. 말 그대로 미국은 백척간두의 전력공급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우선 미국은 재생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에너지원'의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다음으로 기존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석유, 가스, 석탄 발전소의 폐지를 금지하거나 연기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미국 한파 이후 천연가스와 석탄, 원전의 전력공급이 미국 안정을 지켰다고 말했고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은 바이든의 석탄 전쟁을 종결시켰다며 석탄이 모든 기상조건에서 작동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기존 발전소의 연료와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수요급증의 최전선에 이들을 내보낼 것이다. 여기엔 데이터센터의 백업 가능한 35기가의 유휴 디젤발전과 전력생산량은 3%에 불과하나 발전용량은 19%에 달하는 피크 발전소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사례가 한국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수요급증에 공급부족을 가중시키는 탈원전, 탈석탄 정책은 신뢰성 위기를 불러오며, 새로운 성장동력인 데이터센터 붐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자국 제조업과 데이터센터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경제성(affordability)이다. 현재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은 MWh당 180원으로 미국 120원, 중국 100원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데이터센터 붐과 제조업이 모두 위험하다.

[신연수 칼럼] 대통령의 말폭탄이 불안한 이유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다주택자들을 향해 “집을 팔라"고 압박하고 있다. “돈이 마귀" “망국적 부동산 투기" 같은 강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자랑하는 성과들을 끌어와 “부동산 정상화는 5000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다"고도 했다. 몇 년이나 미뤘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재개하는 것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의 하나다. 국민 삶에 필수적인 집을 투기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도 옳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런 압박이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호소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선거를 앞두고 뾰족한 대책은 없고, 말로 기선 제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8.98%로,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높았다. 지난주까지 52주 연속 상승했으니 사실상 1년 내내 쉬임없이 오른 셈이다. 매매가뿐 아니라 전월세금까지 치솟아 서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재명 정부 들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부동산 대책을 4번이나 내놨다. 작년에는 서울과 경기도의 거의 모든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을 거래허가 대상으로 묶고 금융 대출까지 막는, '사상 최강의 규제'라 불리는 10·15대책을 내놨다. 새해 들어서는 수도권 핵심지역에 6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1·29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아직은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전쟁에 나선 것인데, 그래서 더 불안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상승→부동산 대책 →효과 없음→ 더 강한 대책 → 집값 더 상승으로 이어졌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까지 나서서 요란하게 부동산 전쟁을 벌인 결과는 처참했다. 주택 소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하고, 서울 아파트는 점점 더 안전자산이 되어갔다. 사실은 다양한 요인으로 집값이 올랐지만, 국민의 인식 속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으로 각인되었다. 언론을 탓하는 것도 닮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땅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 언론들의 여론몰이'를 탓했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어깃장을 놓는 일부 언론도 문제지만, 옳은 비판도 많다. 정부가 수도권 주택을 실거주 아니면 구매할 수 없도록 규제했기 때문에, 다주택자가 집을 팔려 해도 팔 수 없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고 정책을 보완해 주는 문제 제기였다. 다주택자가 현재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인지도 의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주택자는 2019년 15.9%에서 2024년 14.9%로 되레 줄었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00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들의 평균 매입가는 1억 6000만 원 수준이다.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은 서울 아파트가 아니라 대부분 임대 목적의 빌라나 다세대주택이라는 얘기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나 금융대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매한 사람은 30대 생애 최초 구입자와 더 좋은 지역으로 옮기려는 40대 구매자로 보인다. 이들을 '마귀'이고 '악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집값 상승을 다주택자들의 투기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실무자들이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1·29 공급 정책은 졸속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용산은 국제업무지구 기능 훼손, 교통과 교육 여건 악화, 사업 지연 등을 이유로 서울시가 반대하고 있다. 과천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마사회 이전에 대해 전혀 상의가 없었다며 마사회 노조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태릉CC는 문재인 정부 때도 추진했다가 세계문화유산과 그린벨트 훼손 우려, 주민 반대 등으로 좌초됐던 곳이다. 1·29대책이 실현 가능성 점검이나 지자체와의 조율 없이 숫자 위주로 급조됐다는 반증이다. 때로는 투기 심리와의 기싸움도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집값 상승의 원인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정책을 보완해야 할 때다. 부동산은 주식시장보다 복잡한 시장이다. 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일자리, 교통, 교육, 문화 등 삶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집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쾌도난마식 해법에 조급하기보다 실용적이고 꾸준한 정책으로 집값을 안정시킨 최초의 민주당 정부가 되길 바란다. 신연수 주필 ysshin@ekn.kr

[기자의 눈] ‘제약산업 혁신생태계’ 외치는 정부, 소통 위한 거버넌스부터

국내 제약산업 '운명의 날'이 약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제네릭(복제약) 약가산정률 인하를 골자로 한 정부 약가개편안이 이달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12년 이후 약 14년만의 전면적 약가개편 조치로, 좋든 나쁘든 국내 제약산업 구조 전반을 뒤흔들 것이라는 전망에는 정부와 업계 모두 이견이 없다. 정부 약가개편의 핵심 아젠다는 '혁신 생태계 전환'이다. 풀이하면 제네릭 사업에 의존해 혁신하지 않는 산업계에 '최대 13.55%포인트(p) 약가인하'라는 충격요법을 가해 생태계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계는 졸지에 '위태로운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적폐세력'으로 지정돼버린 형국이다. 물론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며, 일부 제네릭에 의존하는 제약사에 한해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문제는 정부의 칼 끝이 제약산업계 전반을 겨누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혁신형 기업을 대상으로 약가인하 충격을 방지하는 등의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선정 기준과 보상 구조에 대한 실효성 논란으로 정책 효과가 정부 의도대로 발생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부작용 우려는 점차 선명해지는 모양새다. 업계 통틀어 최대 3조6000억원 규모의 매출 감소는 물론, 제약산업 종사자 1만5000명의 고용불안정이 유발될 것이라는 구체적 수치가 제시되면서다. 이례적으로 산업계와 노동계의 단일대오가 형성된 이유다. 건보 재정 부담 경감이라는 '빈대'를 잡으려다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약가개편 보상책과는 별개로 정부가 혁신생태계 전환을 겨냥해 추진 중인 '임상3상 특화펀드' 역시 정책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하다. 산업계의 혁신신약 창출을 지원·가속한다는 목표지만, 정작 정부 지원이 절실한 초기 임상단계는 빗겨나갔다는 지적이다. “산업구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한계"라는 업계 내외의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한 가지 근본적 원인에서 유발됐음을 시사한다. 정부-산업계간 의사소통 구조가 사실상 단절된 탓이라는 설명이다. 혁신 생태계라느니, 바이오 5대 강국이라느니 하는 정책 목표에 도달하려면, 정부는 산업계를 아우르는 행정 거버넌스부터 구축해야 한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이슈&인사이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한국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지난 1월20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아시아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한국, 일본과 합의를 타결하면서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참가하지 않을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반대 뜻을 밝혔음에도 미국은 일방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발표했다. 다만 한국은 미국과 관세 협정에 따라 3천5백억 $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조선업에 배정하기로 한 1천5백 $를 제외한 2천억$는 사용처를 정하지 않았는데 이를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쓰겠다는 일방적 선언이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반대할 경우, 한미 정상이 합의한 관세율 인하를 환원할 수도 있어서 한국 정부 입장이 난감하다. 트럼프의 요구를 “황당한 요구", “막무가내", “강도질", “미친 요구" “타코"(TACO,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는 뜻의 신조어) 라고 치부하기에는 한국의 어려움이 예측된다. 트럼프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 공감과 분노의 동원에 능숙하다. 갈등을 조성하고 그 중심에 서는 전략을 쓴다. 예를 들면 주한미군의 철수 등 한국을 투자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한국을 희생양으로 쓸 가능성이 있다. 이에 국익을 유지하면서 트럼프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왜 트럼프가 알래스카주의 LNG 사업에 정치적 생명을 거는 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는 면적은 154만 ㎢로 남한의 15배나, 인구는 75만 명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주민은 백인이며, 원주민은 10% 정도다. 트럼프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집착하는 것은 75만 명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다. 알래스카가 트럼프의 정치적 생명줄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는 인구가 적어서 하원은 1명, 상원은 2명이 배정된다. 하원은 전체 439명이라서 영향력이 미미하나, 상원은 100중에 2명이기에 영향력이 크다. 특히 공화와 민주가 50대 50으로 양분된 상태에서는 절대적 변수다. 알래스카는 지금까지 남부 해안의 쿡인랫 지역의 가스생산에 의지해 왔는데, 가스전이 고갈되어 대체공급원이 필요한 상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북부 가스전에서 남부 니키스키까지 1,300km의 가스관을 건설하고 액화 처리시설 등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총사업비는 약 4백40억 $로 예상된다. 배증 된다 해도 한·미 간에 약속한 2천억 $ 범위 안에서 해결하면 되기에 문제가 없다. 영구동토층을 지나는 파이프라인 건설은 환경 파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극지방의 혹독한 기후로 공사 기간 연장 등이 예측되나, 이미 건설된 송유관을 따라 가면 되기에 기술적 문제는 없다. 다만, LNG 공급 과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체 소비가 연간 3백만 톤에 불과해서, 생산량 2천만 톤의 판매처가 난제다. 판매처만 해결되면, 글렌파른, AGDC, 베이커휴즈 등 참여하고자 하는 미국 기업은 많다. 트럼프가 이 프로젝트에 동북아 3국인 한국, 일본, 대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이유는 지정학적 이점 때문이다. 3국은 모두 LNG 대량 수입국인데 알래스카와 가깝다. 대만은 기본 의향서를 통해 연간 6백만 톤의 LNG 구매와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일본은 1969년부터 알래스카 산 LNG를 수입해 왔으며, 5천5백억$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은 연간 5천만 톤의 LNG를 수입하기 때문에 알래스카산 LNG 구매에 문제가 없다. 다만, 한국이 알래스카산 LNG 사업에 참여한다면 인프라 건설을 포함해서 판로를 보장하는 그랜드 바겐을 예상한 시나리오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산 LNG는 생산원가 면에서 불리하다. 그러나 물류비와 장기 확보 차원에서는 절대 유리하다. 철강·조선업계 입장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분명 기회 요소다. 트럼프의 타코 전술에 휘둘리지 않고 한국민의 국익을 최대한 살리는 묘책을 마련한다면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결코 한국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윤덕균

[EE칼럼] 동계올림픽의 불편한 진실

지금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밀라노는 알프스 산맥을 배후로 둔 이탈리아의 대표 도시이고, 코르티나담페초는 알프스 산악 지역에 위치한 전통적인 겨울 스포츠 도시이다. 코르티나담페초는 1956년에도 올림픽이 열렸던 곳으로 현재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기후 분석기관인 Climate Central에 따르면 코르티나담페초의 2월 평균기온은 1956년 대회 직후와 비교해 최근 10년 평균이 약 3-4도 상승하였다. 그 결과 1956년에 열린 코르티나담페초의 겨울 올림픽은 자연이 제공하는 환경 속에서 열렸던 반면, 지금은 인공 눈과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스포츠로 탈바꿈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코르티나담페초만의 일은 아니다. 겨울 스포츠 장소로 유명한 알프스 산맥은 한때 안정적인 겨울 기후를 자랑하던 지역이었지만 오늘날 알프스는 세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겨울철 평균 기온은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상승했고, 자연 강설량은 줄어들거나 변동성이 커졌다. 눈이 쌓여야 할 시기에 비가 내리고, 영하의 기온이 유지되어야 할 기간이 짧아지는 현상은 더 이상 이례적이지 않게 됐다. 이러다 보니 과거와 달리 동계 스포츠는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스포츠'에서 '에너지에 의존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로 변해가고 있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이번 대회를 두고 지속가능성을 표방한 올림픽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모순을 갖고 있음을 지적했다. 내린 눈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공 눈과 이를 보조하기 위한 인프라는 단기적 대응일 뿐,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인공 눈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물과 에너지를 요구하게 되어 결국 악순환이 계속될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자연설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인공저수지를 만들고 수백 대의 제설기를 설치하여 인공 눈을 공급하였다. 이를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고, 이 비용들은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용들이 더욱 커질 것이고 재정 여력과 적응 능력이 충분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에 기후 피해와 경제적 손실로 인한 소득 격차가 생기며 그로 인해 지역 간 혹은 개인 간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국제 사회에도 적용된다. 지구온난화의 책임 여부와 상관없이 기후변화 적응 역량과 재원이 부족한 국가들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고, 결국 이것은 기후불평등과 기후정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언뜻 논점이 너무 확대된 듯 보이지만, 겨울 스포츠의 작은 변화는 나비효과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영향과 피해가 얼마나 빠르게 우리 삶 속에 파고들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기후위기 속에 치러지는 동계 올림픽의 불편한 진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후변화를 단순히 환경 이슈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 지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사회가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과 지속가능한 전환을 통해 자연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겨울 스포츠는 여전히 소중하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동계 올림픽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변화한 기후 속에서 비용을 감수하며 겨울을 인공적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삶의 방식을 전환할 것인지. 모든 것은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bienns@ek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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