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HD현대삼호, 마스가 박차…美서 ‘K-크레인’ 활동 무대 넓힌다

HMM-HD현대삼호, 마스가 박차…美서 ‘K-크레인’ 활동 무대 넓힌다

HD현대삼호가 HMM의 미국 서안 핵심 물류 거점에 항만 크레인 4기를 공급한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사업 영역을 항만 장비로 넓힌다는 구상이다. 28일 HD현대삼호는 HMM이 운영하는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항의 워싱턴 유나이티드 터미널(WUT)에 항만 크레인 4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HD현대삼호는 노후화된 안벽 크레인 2기를 신규 장비로 교체하고, 야드 크레인 2기는 새로 추가로 공급한다. 안벽 크레인은 항만..

‘800원대 엔저’에도 LCC 무더기 적자…‘강달러’ 덫에 갇힌 항공업계 양극화

국내 항공업계가 거시경제 지표의 극단적 변동성 속에서 심각한 실적 양극화를 겪고 있다. 1년 8개월 만에 100엔당 800원대로 진입한 '슈퍼 엔저' 현상으로 일본 노선 여객이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저비용 항공사(LCC)들은 달러 강세 현상과 고유가의 이중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규모 적자 위기에 처했다. 반면 화물과 장거리 노선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대형 항공사(FSC)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해 항공 산업의 구조적 재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한국항공협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2개 주요 항공사의 2026년 2분기 합산 영업손실 추정치는 7613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글로벌 항공망이 사실상 마비됐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연간 적자 규모에 맞먹는 수치다. 이러한 무더기 '어닝 쇼크'의 핵심 원인은 글로벌 통화 비동조화에 따른 '환율 비대칭성'에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적 금리 정책과 일본은행(BOJ)의 완화 정책이 엇갈리며 달러·엔 환율은 장중 163.69엔을 돌파해 40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반면 SK하이닉스 ADR 상장 등 수급 요인으로 원·달러 환율이 최근 하락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450~1500원대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항공사는 산업 특성상 △항공기 리스료 △엔진 정비비 △항공유 등 핵심 영업 비용의 대부분을 달러로 지불한다. 하지만 단거리 노선에 집중된 LCC들의 수익 원천은 원화와 가치가 사상 최저점으로 하락한 엔화다. 비행기를 만석으로 띄워 원화와 엔화를 벌어들여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달러로 원가를 결제하는 순간 막대한 외화 환산 손실과 환차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 여객 수요 '초양극화'…일본 쏠림 속 LCC 출혈 경쟁 심화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은 여객 수요의 극단적 편중을 야기했다.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전체 국제선 여객은 5048만7371명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초로 50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상반기 여객 증가분 466만 명 중 92.3%가 일본과 중국 두 국가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엔저가 가져온 체류비 절감 효과에 힘입어 상반기 일본 노선 탑승객은 전년 동기 대비 19.1% 폭증한 1592만7816명을 기록했다. 국제선 승객 3명 중 1명이 일본행을 택한 셈이다. 반면 전통적 LCC 수익원이었던 동남아 노선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온라인 사기(스캠) 등 현지 치안 불안이 겹치며 캄보디아(-35.4%), 라오스(-24.4%), 말레이시아(-10.9%), 태국(-9.5%), 베트남(-3.6%) 등 주요 노선이 일제히 역성장했다. 살길이 근거리 노선밖에 남지 않은 LCC들은 앞다투어 하코다테·고베·삿포로 등 일본 지방 소도시까지 한꺼번에 기재를 투입하며 좌석 공급 폭탄을 쏟아냈다. 그 결과 한정된 파이를 둘러싼 '박리다매'식 출혈 경쟁이 벌어지며 운임 단가의 하방이 넓어졌다. ◇ 엇갈린 명암…장거리·화물 '자연 헤지' 내세운 대한항공 사상 최대 실적 단거리 노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LCC들은 거시 경제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업계 1위 제주항공은 2분기 932억 원 규모의 막대한 별도 기준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직전 분기 양호한 실적을 거뒀던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는 481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에어부산은 355억 원 영업손실을 확정했다. 장거리 특화 하이브리드 항공사를 표방했던 에어프레미아는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1100억 원 수준의 유상 증자를 실시한다. 에어로케이와 파라타항공 등 신생 LCC들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고강도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LCC 관계자는 “엔화 약세 덕분에 수요 자체는 늘었지만 달러 지출은 점점 커져 회사 경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업계 맏형인 대한항공은 재무 방어력을 과시하며 실적 양극화의 정점을 찍었다. 대한항공의 2분기 잠정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조340억 원 급증한 5조199억 원으로 역대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유가 상승 압박 속에서도 영업이익 2618억 원의 굳건한 흑자를 수성해 냈다. 생사를 가른 것은 포트폴리오의 질적 차이다. 대한항공은 진입 장벽이 높은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서 글로벌 환승 수요와 비즈니스석 등 프리미엄 상용 수요를 선점하며 강력한 가격 방어력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인 인공 지능(AI) 인프라 투자 광풍과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발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의 초과 물량을 싹쓸이한 화물 사업 부문이 2분기에만 1조5419억 원의 매출을 냈다. 달러로 책정되고 결제되는 화물 운임이 리스료 등으로 빠져나가는 달러 비용을 상쇄해 낸 것이다. ◇ “엔저는 단기 진통제"…메가 LCC 출범 등 고강도 체질 개선 시급 전문가들은 800원대 초엔저 현상이 LCC들의 자금줄이 마르는 것을 당장 막아주는 일시적인 '진통제' 역할에 그칠 뿐, 외화 부채 비중이 높은 재무 구조를 치료할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화되지 않는 한 자력으로 수익성 악화의 깊은 터널을 온전히 벗어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엔화 가치 폭락은 일본인의 한국 방문(인바운드) 수요를 극단적으로 억제시켜 항공사들이 텅 빈 귀국편을 울며 겨자 먹기로 운항해야 하는 역효과까지 낳고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의미한 단가 인하와 소모적인 외형 확장 경쟁을 지양하고 구조적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과 맞물려 추진되는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의 '메가 LCC' 통합 출범이 꼽힌다. 내년 1분기 중 완료를 목표로 3사를 단일 법인으로 묶어 60대 이상의 매머드급 기단을 확보하고, 중복 노선 통폐합·정비 인프라 공동 구매망을 단일화해 달러 지출 고정비 규모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신규 운수권 배분 정책을 바탕으로 중견 LCC들의 장거리 노선 다각화 촉진과 함께 한계 상황에 다다른 부실 LCC들에 대해서는 인위적 연명을 멈추고 자연스러운 시장 퇴출과 인수·합병(M&A)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인터뷰] “국가 전폭지원 中 반도체, 韓 턱밑까지 추격” 前 삼성전자 부사장의 섬뜩한 경고

“내가 볼 때는 거의 낙동강까지 갔다고 봐요." 15년간 삼성그룹 중국본사에서 반도체 투자를 진두지휘했던 이병철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전선에 지금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빗댄 것이다. 최첨단 반도체 일부 분야만 겨우 지키고 있을 뿐, 범용 반도체는 이미 중국이 턱밑까지 따라왔다는 얘기다. AI 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하는 사이, 중국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지난 27일 상하이증시에 상장한 창신메모리(CXMT)는 거래 시작 1시간 만에 거래대금 1000억위안(21조원)을 돌파하며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허페이시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연구개발 인력과 반도체 기업이 집결하면서 허페이는 중국 메모리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연구소에서 10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위원은 이러한 흐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한국 반도체 호황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을 떠난 뒤 연구자의 시선으로 산업을 바라보게 된 그는 중국발 반도체 위기를 미리 경고하는 '늑대가 왔다'는 사람을 자처하고 있었다. - 반도체가 지정학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9년 트럼프 1기 때 미국이 중국 화웨이를 제재하기 시작했어요. 명목상은 '이란 제재 위반' 등 국가안보 또는 외교정책 이익에 반하는 활동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거였죠. 제재 목록에 올려 반도체 기술이나 장비를 못 팔게 한 게 그때부터예요. 그다음 해에는 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기술을 쓰는 제3국 기업도 동참하도록 강제했어요. 그때부터 삼성이나 하이닉스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죠. 원래 정상적인 기업 간 거래에 미국이라는 국가가 들어와 간섭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걸 보면서 느꼈죠. '반도체가 이제 전략의 문제가 됐구나.'"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칩스법)과 AI 시대의 개막이 겹치며 반도체는 산업을 넘어 국가안보의 핵심 품목이 됐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이 흐름 속에서 한국 메모리 업계가 얻은 반사이익도 짚었다. AI 발전 초기에는 GPU의 연산 성능이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AI 모델이 급속히 커지면서 GPU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폭증했고 기존 D램으로는 데이터 공급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병목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HBM이 부상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시장에서 합산 약 80%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AI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 최근 애플이 중국산 D램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이 중국산 반도체를 채택할 경우 실제로 메모리 가격 급락 사태가 일어날 수 있나.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애플 입장에서는 공급업체가 하나 더 늘어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 있어 메모리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국 업체의 기술 향상입니다. 애플이 CXMT 제품을 채택하면 품질과 성능에 대한 까다로운 피드백을 제공하게 되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CXMT의 기술력도 빠르게 발전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 메모리 기업들은 높은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가 대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해 저가 물량 공세에 나서면 이러한 수익구조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중국의 가장 큰 강점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막대한 자본을 장기간 투입하며 단기 손실도 감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격보다 시장점유율 확보를 우선하는 물량 공세가 시작되면 개별 기업은 물론 메모리 산업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EUV 노광장비를 비롯한 최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제한되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확보한 DUV 장비를 활용하고 국산 장비와 공정기술의 수준을 높이면서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 증설분의 약 절반이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2~3년 안에 중국산 반도체 공급 물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중국은 현재 '중국판 맨해튼 프로젝트'로 불리는 EUV 장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UV 장비까지 개발된다면 최첨단 반도체 분야도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반도체에서는 수율이 중요합니다. 10개를 생산해 9개가 정상 제품이면 수율이 90%이고, 3개만 정상이면 30%입니다. 중국 업체들은 아직 수율과 품질 안정성에서 격차가 있지만, 생산 경험이 축적되면서 그 차이를 계속 좁혀가고 있습니다." ◇ 낙동강 전선, 그리고 희토류라는 반격 카드 -왜 '낙동강 전선'이라는 표현을 썼나. “반도체는 AI·국방·자동차·통신 등 모든 첨단산업의 기반입니다.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의 75% 수준까지 커지고 기술 격차도 좁혀지자, 미국은 이를 산업 경쟁이 아니라 안보 문제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첨단 장비·설계도구를 미국과 동맹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이 통제 수단으로 전환한 것이죠. 국제정치에서는 이를 '무기화된 상호의존'이라 부릅니다. 공급망의 핵심 길목을 쥔 나라가 그 지위를 압박 수단으로 쓰는 겁니다. 중국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자립에 나섰고, 이 경쟁이 시작된 지 벌써 7~8년입니다. 문제는 그 결과가 미국보다 우리에게 먼저 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중국은 최첨단 공정에선 여전히 제약을 받지만, 성숙공정과 범용 메모리엔 막대한 투자를 이어왔습니다. 그 결과 생산능력이 빠르게 늘고 있고, 본격 공급이 시작되면 우리가 주도해온 범용 D램·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 확실한 우위를 가진 건 HBM 등 최첨단 메모리뿐입니다. 그런데 범용 메모리 수익이 무너지면 그 돈으로 HBM·차세대 기술에 투자해온 선순환 구조도 약해집니다. 결국 우리 우위가 최첨단 일부만 남을 수 있다는 거죠. 아직 그 단계까지 온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중국 생산능력이 계속 커지는데 우리가 대비하지 못하면 마지막 핵심 경쟁력만 남기고 나머지 시장을 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이 위원은 미국의 카드가 반도체라면 중국의 반격 카드는 희토류라고 짚었다. “희토류는 첨단산업과 무기 생산에 반드시 들어가는 '산업의 비타민'입니다. 쓰이는 양은 적지만 없으면 산업 전체가 마비됩니다. 핵심은 채굴이 아니라 분리·정제인데, 중국이 이 공정의 글로벌 80% 안팎을 장악한 대표적 초크포인트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총리의 대만 유사시 관련 발언 이후 희토류를 비롯한 희귀광물 공급에서 중국의 제재·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미중 갈등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 중국이 지난해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를 발표하자 트럼프는 100% 관세로 맞섰고, 중국도 관세 인상으로 맞불을 놨습니다. 이후 부산 정상회의에서 1년 휴전에 합의했고, 올해 5월 정상회담에서는 희토류를 포함한 통상 현안을 다룰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11월 중순 휴전 종료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휴전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휴전을 연장하면서 양국이 갈등을 관리해 나갈 것이라 보이지만 그 와중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희토류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협상의 교환 카드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이 '반도체 제재를 계속하면 희토류 공급을 제한하겠다'고 압박하면 미국도 일부 수출통제를 조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 확보와 시장 진입이 빨라져 한국 기업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반도체를 단순한 산업이나 통상 문제가 아니라 기술·공급망·외교·안보가 연결된 전략산업으로 봐야 합니다. 미·중 관계의 변화 자체보다 어떤 제재가 완화되고, 그것이 중국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반도체 경쟁은 이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술·인재·자본·외교·통상·안보가 총동원되는 국가 간 총력전입니다."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이 침몰했던 상황과 지금 한국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경고도 있다 “일부 비슷한 점은 있지만 본질은 다릅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을 직접적 경쟁상대로 보고 시장점유율·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통상압박을 가했습니다. 일본 반도체의 경쟁력을 낮추고 미국 산업을 회복시키는 게 정책의 핵심 목적이었죠. 반면 지금은 중국을 상대로 한 기술패권 경쟁입니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 수출상품이 아니라 AI·군사력·경제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습니다. 그래서 미중 모두 국가의 명운을 걸고 경쟁하고 있고, 통제 대상도 가격·점유율을 넘어 첨단장비, AI칩, HBM, EDA, 첨단인력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경쟁의 강도와 범위가 1980년대보다 훨씬 치열하고 장기적입니다. 한국의 위치도 당시 일본과는 다릅니다. 한국은 미국이 경쟁력을 낮춰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핵심 동맹이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입니다. 그래서 일본처럼 한국 산업 자체를 약화시키는 정책이 전면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봅니다. 다만 이것이 한국에 반드시 유리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동맹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역할과 부담을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 확대와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며 한국 기업에 미국 투자 확대, 대중 기술이전 제한, 중국 사업 조정, 공급망 재편 참여 등을 계속 요구하고 있고, 이런 요구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일본이 미국과의 산업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두 시장·두 공급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공급망 관리와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력까지 핵심 경쟁력으로 갖춰야 할 겁니다." -주 52시간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반도체는 AI와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고, 각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연구개발을 일반 사무직과 동일한 근로시간 기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유레카'처럼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 실험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집니다. 연구가 중요한 고비에 이르면 하루 이틀 몰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일률적으로 시간을 제한하면 연구의 흐름이 끊길 수 있습니다. 저는 장시간 노동을 일상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반도체 연구개발과 같이 국가 경쟁력이 걸린 분야만큼은 프로젝트 특성과 연구 단계에 따라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경쟁 환경입니다. 중국은 매년 약 500만 명의 이공계 인력을 배출하는 반면, 우리는 10만 명대 수준입니다. 절대적인 연구개발 인력 규모에서 이미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연구개발의 유연성까지 부족하다면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따라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따라오느냐'의 문제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개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초격차의 본질은 무엇인가. “권오현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초격차』라는 저서에서 초격차를 '상대적 우위가 아니라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절대적 수준의 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오늘날 초격차의 본질은 대체 불가능한 초크포인트(Choke Point)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TSMC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3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에서는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닙니다. 세계 어느 기업도 단기간에 TSMC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고 부르고,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라는 표현도 씁니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이 곧 대만의 외교적·전략적 자산이 된 것입니다. HBM도 같은 사례입니다. AI 반도체에는 HBM이 필수이고, 현재 한국 기업들이 세계 공급망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HBM 공급이 중단되면 AI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크포인트입니다. 결국 초격차는 단순한 점유율 자체 격차가 아니라 '이 기술이나 제품이 없으면 산업 전체가 움직일 수 없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점유율은 그 결과일 뿐입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로봇 전담 조직을 신설한 것도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로봇 산업은 반도체처럼 대량 생산능력만으로 승부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결국 삼성만이 제공할 수 있는 AI, 소프트웨어, 핵심 부품 또는 플랫폼 등 대체 불가능한 초크포인트를 어디에서 만들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 '우아한 도태'를 경계하며 인터뷰 말미, 그는 정책 결정자와 산업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 “이건 국가 총력전입니다. 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반도체는 이제 AI와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고, 각국이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AI 반도체 호황으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지만, 이러한 독점적 이익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도 막대한 자본과 인재를 투입하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기술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좁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논리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기보다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을 우선해야 합니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고, 수많은 협력업체와 지역경제가 함께 연결된 국가 산업 생태계입니다. 정부와 기업, 임직원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힘을 모아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아한 도태'입니다. 저녁이 있는 워라밸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국가 총력전이 벌어지는 산업에서 경쟁국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지금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그 많은 인력이 밤새도록 일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같이 경쟁하면 결국 우아하게 도태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이건희 회장님께서 늘 위기의식을 강조하실 때 '왜 저렇게까지 위기를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업 현장을 떠나 연구자의 입장에서 세계 반도체 경쟁을 지켜보니 그 심정을 이제는 이해하게 됩니다. 밖에서 보면 기술패권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위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프로필〉 이병철 전 부사장은 다른 직장을 거치지 않고 2022년까지 삼성전자 한 곳에서만 근무했고, 그중 절반가량인 15년을 중국 주재원으로 보냈다. 삼성그룹 중국 본사 소속으로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SDI·삼성디스플레이, 삼성물산 등 그룹 전체의 중국 투자·현안을 총괄했으며, 특히 시안 반도체 공장 투자를 초기 단계부터 현지에서 팔로업했다. 퇴임 후 아주대에서 미중 기술패권 속 반도체 기업 생존 전략을 주제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기초로 『K-반도체 초격차 전략』을 펴냈다. 현재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이자 경기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신은서 인턴기자

HD현대일렉, 2분기 매출 1조1418억·영업익 2870억…전년比 26%·37.3%↑

HD현대일렉트릭이 올해 2분기 국내외 전력·배전기기 사업의 견조한 성장세에 힘입어 외형과 내실의 고른 성장을 이끌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 2분기 연결기준 잠정실적으로 매출 1조1418억원과 영업이익 2870억원을 기록했다고 28일 공시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6%·37.3%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25.1%로 집계돼 같은 기간 2.0%포인트(p), 직전 분기 대비 0.2%p 상승했다. 이 같은 호실적은 전력·배전기기 사업의 국내외 매출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데서 비롯됐다. HD현대일렉트렉에 따르면, 회사의 올 2분기 전력기기 사업부문은 지속되는 글로벌 전력망 교체 수요 와 해외 고압차단기 판매 호조로 전년 동기 대비 10.7% 수준의 매출 성장을 나타냈다. 배전기기 사업의 경우, 국내 반도체 프로젝트향(向) 공급이 증가하며 동 사업부문 매출이 같은 기간 20.2% 증가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북미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전력변압기의 수익성이 증가한데 더해, 국내 반도체향 배전반을 중심으로 배전기기 전 제품군의 수익성이 큰 폭으로 향상돼 2분기 호실적을 견인했다. 수주액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2분기 수주액은 총 14억4000만달러(약 2조1000억원)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4.6% 증가했으며, 상반기 누적 수주액은 총 32억3700만달러(4조7000억원)를 달성했다. 아울러 수주 잔고는 총 84억9000만달러(12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9.6% 증가해 안정적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구조적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전력기기 사업에 더해 배전기기 사업의 수익성도 크게 개선되며 견조한 실적을 달성했다"며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전력 수요가 배전·회전기기 수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하반기에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HD현대일렉트릭은 이날 별도 공시를 통해 보통주 1주당 1,300원의 현금 분기 배당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배당금 총액은 468억원 규모로, 배당 기준일은 내달 12일, 지급 예정일은 내달 27일이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외국인 관광객 늘자, 렌터카도 달렸다…렌터카업계 ‘새 먹거리’ 부상

외국인의 국내 관광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렌터카 업계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단기렌터카 시장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매출 비중도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관광공사 관광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476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하며 1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관광객 증가와 함께 일본·대만 등 개별여행(FIT) 수요도 확대되면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외국인이 꾸준히 늘고 있다. 실제 관광지에서도 렌터카는 대중교통을 제외하면 가장 주요한 이동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항공여객 이동특성 조사'에 따르면,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의 이동수단은 택시(47.7%)가 가장 많았고, 버스(20.8%), 렌터카(13.3%) 순으로 나타났다. 렌터카 이용 비중은 버스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롯데렌탈 측은 올해 1분기 외국인 대상 단기렌터카 매출은 6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8억원)보다 73.7% 늘었다고 했다. 단기렌터카 전체 매출에서 외국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9%에서 올해 25%로 확대됐다. 단기렌터카 매출 4분의 1이 외국인에게서 발생하는 구조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2026년 2분기도 이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회사 측은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SK렌터카 역시 올해 상반기 외국인 대상 단기렌터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렌터카 업체들이 외국인 관광객 매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용객이 늘어서만은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은 수익성이 높은 고객층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개별 여행 관광객의 경우 차량을 장기간 대여하는 경우가 많아 반납과 재대여를 반복하는 내국인보다 차량 회전 횟수가 적다. 차량이 반납될 때마다 이뤄지는 세차와 실내 청소, 소모품 점검 등 이른바 '상품화' 작업이 줄어드는 만큼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면세점 할인,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공항·호텔 연계 서비스 등 전용 프로모션도 확대하고 있다. 다만 관갱객 증가가 곧바로 렌터카 시장의 구조적인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단기렌터가 수요가 외국인 관광객 중심으로 늘고 있지만, 전체 실적은 여전히 장기렌터카 사업이 견인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7309억원, 영업이익 836억원을 기록한 롯데렌탈의 단기 렌터카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95.7% 늘었지만, 롯데렌탈 측은 장기렌탈 사업이 실적 성장을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장기렌터카와 중고차 사업이 여전히 실적의 중심축인 만큼 업계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매출을 기존 사업을 보완하는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최대 방한 관광시장인 중국 수요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는 점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올해 1분기 방한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중국인은 145만명(28.9%)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일본 94만명(19.3%), 대만 54만명(11.4%)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중국 본토 운전면허는 국내에서 인정되지 않아 중국인 관광객은 사실상 렌터카 이용이 어렵다. 업계에서도 이러한 한계를 아쉬운 대목으로 꼽는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실제 단기렌터카를 이용하는 외국인 고객은 대만과 일본 관광객 비중이 가장 높다"며 “중국인 관광객이 많긴 하지만 렌터카 이용 수요는 사실상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제주도는 2014년 중국 관광객에게 제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한시적 임시운전증명서를 발급하는 특례를 추진했지만, 교통안전과 보험 체계 미비 등을 이유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무산됐다. 이후에도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최근에도 제주 관광업계와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국 관광객 회복에 맞춰 국제운전면허 인정 범위를 확대하거나 제주 한정 임시운전허가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바운드 회복으로 단기렌터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면서도 “외국인 수요를 안정적인 성장 기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에 편중되지 않는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제도적 보완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서현 기자 shine@ekn.kr

가온전선, 美 빅테크에 발전소 배전케이블 공급

가온전선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미국 빅테크 기업에 발전소용 배전 케이블을 직접 수출한다. 가온전선은 미국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발전소 구축 사업에 500억원 규모의 배전 케이블을 공급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 미국 빅테크 기업이 직접 추진하는 자체 발전소 프로젝트다. 가온전선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직접 계약을 계기로 향후 후속 전력 인프라 프로젝트 참여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넘어 발전소까지 직접 구축하에 나서고 있다. 전력 공급이 AI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전력원 투자도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가온전선은 그간 미국 자회사 LSCUS를 통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5조원 이상 규모의 AI 데이터센터용 버스덕트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며 협력을 확대해 왔다. 이를 넘어 가온전선 본사가 발전소용 케이블 공급까지 맡으며 전력원 구축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가온전선의 미국 수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AI 데이터센터와 발전소용 케이블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규모는 약3000억 원으로, 지난해의 세 배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정현 가온전선 대표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송전뿐 아니라 배전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 배전 케이블 시장 1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케이블과 전력기기를 함께 공급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김한성의 AI시대] 더 큰 AI보다 더 나은 판단

김한성 투비유니콘 최고철학책임자(CPO) 지난 7월 14일, 인공지능 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뉴스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미국의 데이터센터 개발·운영사들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허깅페이스 통계에서는 가중치를 공개한 중국계 AI 모델, 이른바 오픈웨이트 모델이 올봄 다운로드의 41%를 차지했다. 반면 IBM은 이례적인 실적 경고를 내놓은 뒤 주가가 25% 급락했다. 한쪽에서는 AI 인프라를 향한 투자가 이어지고, 다른 쪽에서는 비용이 낮고 통제하기 쉬운 모델이 확산되는 동안 전통적인 기업용 기술의 강자는 시장의 혹독한 질문을 받았다. 세 뉴스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AI 경쟁의 질문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크고 똑똑한 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제는 “어떤 문제에 어떤 모델을 적용해, 얼마의 비용으로 어떤 성과를 낼 것인가"를 묻는다. 최첨단 모델은 고난도 업무에 쓰이는 프리미엄 수단으로 남겠지만, 일상적인 서비스는 더 작고 저렴하며 맞춤화하기 쉬운 모델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선택해야 할 것은 가장 뛰어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와 비용 구조에 가장 적합한 조합이다. 양자컴퓨터 경쟁조차 개별 큐비트 수보다 반도체·광통신·냉각·제어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 더 근본적인 경고도 나왔다. 케임브리지대와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연구진은 특정 동적 시스템에서는 데이터가 무한히 주어져도 어떤 알고리즘도 안정적으로 학습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보였다. AI가 무용하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실패를 데이터 부족이나 모델 규모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풀 수 있는 문제라도 과도한 메모리와 전력, 냉각을 요구한다면 비용과 사회적 부담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실제로 해야 한다는 결론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19세기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의 통찰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퍼스에게 의미는 말 속에 고정된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이 실제 경험과 행동에서 만들어내는 차이를 통해 분명해진다. 탐구는 이미 아는 답에서가 아니라 예상과 현실이 어긋나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그 어긋남을 설명할 가설을 세우고, 예상되는 결과를 추론한 뒤, 현실과 다시 대조해 믿음을 고친다. 이 관점에서 AI의 답은 완성된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 후보'다. 생성형 AI는 그럴듯한 문장과 관계를 풍부하게 만들지만, 현실은 그 문장에 저항한다. 따라서 좋은 AI는 오류가 전혀 없는 AI가 아니다. 출처와 현장 데이터, 실행 결과와 반례에 연결되고, 인간의 비판을 받아 판단을 고칠 수 있는 AI다. 검증할 수 없는 확신보다 수정할 수 있는 추론이 더 높은 지능이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AI 도입 전에 세 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첫째, 이 문제는 AI가 학습하고 풀 수 있는가. 둘째, 기대 성과가 비용과 위험을 넘어서는가. 셋째, 그 결과는 어떤 업무 습관과 제도를 남기는가. 그다음에야 어떤 모델을 쓸지 결정해야 한다. 화려한 성능 시연보다 시간 단축, 오류 감소, 위험 통제와 서비스 품질을 측정해야 한다. 중단 조건과 인간의 판단 권한을 정하고, 검증된 결과를 표준 절차와 정책, 조직의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 성과를 내지 못한 시도도 원인을 기록해야 같은 오류에 다시 비용을 쓰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모델 연결기가 아니라 '판단 체계'다. 사실과 가설을 구분하고, AI가 생성할 것과 도구가 계산할 것, 사람이 결정할 것을 나누는 운영 구조다. 개인의 학습도 마찬가지다. AI가 핵심을 요약해 주면 낯선 분야에 빠르게 들어갈 수 있지만, 요약은 이해의 입구일 뿐이다. 반례를 찾고 실제 문제에 적용하며 자신의 질문을 고칠 때 비로소 지식은 판단 능력이 된다. 한국의 기회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최고 모델 순위와 데이터센터 규모만 좇기보다 오픈웨이트 모델과 최첨단 모델, 현장 데이터와 규칙, 인간의 판단과 감사 기록을 연결하는 '판단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모델이 더 우수한지를 넘어, 어떤 조건에서 누구의 판단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축적하는 국가적 학습 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기술 경쟁에서 물러나는 길이 아니라 기술의 가능성을 실제 가치로 전환하는 길이다. AI 시대의 수준은 얼마나 큰 모델을 가졌는가보다, 그 모델이 틀렸을 때 얼마나 빨리 현실로 돌아와 판단과 제도를 고칠 수 있는가에서 드러날 것이다. AI의 다음 경쟁은 더 많은 답을 생산하는 경쟁이 아니다. 현실의 저항 앞에서 답을 수정하고, 그 경험을 더 나은 습관과 제도로 축적하는 능력의 경쟁이다. bienns@ekn.kr

로봇 ‘눈’ 넘어 ‘피부’까지…LG이노텍, 피지컬AI 정조준

LG이노텍이 로봇의 시각(Vision) 기술에 이어 촉각(Tactile)까지 영역을 넓힌다. 스마트폰용 비전 센서로 쌓은 광학·초정밀 설계 기술을 로봇용 멀티 센싱 모듈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LG이노텍이 일본 전자부품 기업 TDK와 피지컬 AI 분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는 LG이노텍의 광학·초정밀 설계 기술과 TDK의 센서 기술을 결합해 '차세대 비전 센싱 모듈'과 '촉각 센싱 모듈'을 공동 개발한다. 최근 로봇 업계에서 비전 센싱 모듈 안에 다양한 기능을 결합하는 추세가 확산하면서, 기존 비전 센싱 모듈 사업을 하던 LG이노텍도 다른 센서를 추가로 결합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압력·온도·위치 등 광범위한 센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TDK가 파트너로 낙점된 배경이다. LG이노텍 관계자는 “수십여 종의 센서 기술을 보유한 TDK와의 시너지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차세대 비전 센싱 모듈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먼저 비전 센싱 모듈은 로봇의 '눈' 기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존 비전 센싱 모듈이 시각 정보 위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면, 이번 협력으로 개발되는 차세대 모듈은 TDK의 관성·위치 센서와 마이크 등을 결합해 움직임·방향·음향 데이터까지 통합 처리한다. 예컨대 관성 센서(IMU)를 장착하면 로봇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영상 데이터의 흔들림을 보정해 주변을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로봇 제조사 입장에서도 여러 센서를 개별 구매·연결하는 부담 없이 하나의 통합 모듈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관성 센서 탑재 모듈은 내년 개발 완료될 계획이다. 촉각 센싱 모듈은 로봇의 '피부'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손(Hand)뿐 아니라 팔·몸통 등 여러 부위에 장착돼 접촉 여부와 압력을 인식하게 해주며, 초정밀·초박형·유연 구조가 요구돼 개발 난도가 높은 고부가 부품으로 꼽힌다. 양사는 내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LG이노텍의 모듈화 및 디지털 신호 처리 기술과 TDK가 소비재·자동차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쌓아온 초정밀 촉각 센싱 기술을 결합해 로봇 작업환경에 최적화된 고성능 촉각 센싱 모듈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LG이노텍은 이미 글로벌 최고 수준의 카메라·라이다(LiDAR)·레이더(Radar) 등 센싱 부품을 결합해 피지컬 AI 센싱 시장을 적극 공략해왔다. 카메라·라이다·레이더를 모두 자체 기술로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 경쟁력을 발판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들과 활발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향후 양사는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은 LG이노텍의 로봇 사업 확장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비전 센서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온 연장선에서 로봇용 비전 센서 사업을 하다가, 촉각 센서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는 셈이다. 로보틱스 사업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메인 축 중 하나로 꼽히며 그 비중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로보틱스 사업이 거의 메인 축에 있다"며 “점차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고, 앞으로 더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문혁수 LG이노텍 사장은 지난 1월 7일(현지시간) CES 2026 전시장을 찾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LG이노텍은 지금 단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솔루션 제공자로 가고 있다"며 사업 구조 재편 방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HMM-HD현대삼호, 마스가 박차…美서 ‘K-크레인’ 활동 무대 넓힌다

HD현대삼호가 HMM의 미국 서안 핵심 물류 거점에 항만 크레인 4기를 공급한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사업 영역을 항만 장비로 넓힌다는 구상이다. 28일 HD현대삼호는 HMM이 운영하는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항의 워싱턴 유나이티드 터미널(WUT)에 항만 크레인 4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HD현대삼호는 노후화된 안벽 크레인 2기를 신규 장비로 교체하고, 야드 크레인 2기는 새로 추가로 공급한다. 안벽 크레인은 항만에 접안한 선박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장비이고, 야드 크레인은 선박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터미널 내부에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HD현대삼호는 설계부터 제작·운송·설치·시운전까지 전 과정을 턴키 방식으로 수행해 2028년까지 장비를 인도할 예정이다. WUT는 HMM의 미국 서안 물류망을 뒷받침하는 핵심 거점이다. 선박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철도를 통해 미국 내륙으로 곧바로 운송할 수 있는 구조이다. WUT는 현재 안벽 크레인 8대와 야드 크레인 6대를 운영하고 있다. 장비 도입이 완료되면 WUT의 연간 컨테이너 처리 능력은 59만TEU에서 88만TEU로 약 49% 늘어날 전망이다. 대형 선박의 처리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노후 장비 고장에 따른 작업 중단과 터미널 내부 화물 이동 병목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HD현대삼호는 미국 항만 장비 시장에서 현지 공급 실적을 추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HD현대삼호는 1985년 이후 미국 주요 항만에 총 20기의 항만 크레인을 공급했다. 현재 WUT가 운영하는 안벽 크레인 8기 가운데 4기도 1999년 HD현대삼호가 공급한 장비다. 약 27년 간 축적한 현지 장비 운용 실적과 고객 신뢰가 재수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신규 크레인에는 포스코 철강재도 적용된다. 해운·조선·철강 등 국내 기간 산업의 기술 역량이 함께 미국 항만 인프라에 투입되는 형태다. HD현대삼호 관계자는 “친환경·고효율 항만 장비를 개발해 MASGA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은 'MASGA 프로젝트'의 협력 범위를 항만 인프라까지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항만에서 사용되는 안벽 크레인은 약 80%를 중국 국영 기업 ZPMC가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안벽 크레인(STS) 시장은 중국 국영기업인 상하이 진화중공업(ZPMC)이 전 세계 출하량의 65% 이상을 차지하며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 왔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중국산 항만 장비에 대해 높은 의존도와 사이버 보안 위험을 지적하며 공급처 다변화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처럼 미국이 항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산 항만 크레인 대체 공급자로 입지를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요 경쟁사로는 중국 ZPMC와 사니, 스위스계 립헬, 핀란드 코네크레인스와 칼마, 일본 미쓰이 E&S 등이 꼽힌다. 향후 미국의 노후 항만 장비 교체와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이 HD현대삼호의 후속 수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로벌 항만 크레인 시장은 2024년 기준 106억 달러(15조5936억 원)에서 138억 달러(20조3011억 원) 규모로 평가된다. 오는 2030년부터 203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 2.4%에서 7.53%를 기록하며 최대 266억8000만 달러(38조2489억 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안벽 컨테이너 크레인'이 전체 항만 크레인 매출의 54% 이상을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배한비 인턴기자

해진공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 3주 연속 하락…유조선, ‘중동 리스크’에 강세”

글로벌 컨테이너 선박 운임이 미주·유럽 등 주요 원양 항로의 운임 조정 여파로 3주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반면 유조선(탱커) 시장은 호르무즈 해협 등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부각되면서 운임이 강세를 보였다. 28일 한국해양진흥공사(KOBC)가 발표한 '주간 해운시황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해상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전주 대비 17.36포인트(0.6%) 하락한 3062.95를 기록했다. 한국발 운임을 반영하는 한국형 컨테이너운임지수(KCCI) 역시 4123으로 전주 대비 81포인트(1.9%) 내렸다. 최근의 컨테이너 운임 하락세는 5월 이후 가파르게 올랐던 미주·유럽·남미 항로 운임이 조정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름철 성수기를 대비한 화물 조기 선적 물량이 소진된 가운데 시장 내 신규 선복(적재 공간) 공급이 늘어나면서 높은 운임에 대한 화주들의 저항이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체적인 하락세 속에서도 중동 항로는 예외적으로 반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와 긴급 유류 비상할증료 반영 등의 영향으로 2주 연속 운임 상승세를 유지했다. 컨테이너 시장과 달리 유조선 시장은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뚜렷한 강세를 보였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시장은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 등으로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우려가 커지자 화물 운송 차질을 우려한 극동아시아 화주들이 조기 선복 확보에 나서면서 운임을 끌어올렸다. 석유 제품선인 중동-일본 구간(LR2) 운임도 양측 공급 경로가 동시에 불안정해지면서 직전 주 25% 급등한 데 이어 이번 주에도 11% 추가 상승하는 초강세를 보였다. 철광석·석탄·곡물 등을 나르는 건화물선(드라이 벌크) 시장은 선종별로 등락이 엇갈리며 전체적으로 약보합세를 기록했다. 발틱 운임 지수(BDI)는 2743으로 전주 대비 9포인트(0.3%) 하락했다. 가장 규모가 큰 대형선인 케이프사이즈(Cape)는 호주·브라질산 철광석과 기니산 보크사이트 화물 선적이 집중되며 단기 선복 부족으로 운임이 4.6% 올랐다. 반면 중형선인 파나막스(Panamax)와 수프라막스(Supramax)는 주요 곡물·석탄 화물 유입이 둔화하고 공선이 증가하는 등 공급 우위가 심화되며 전주 대비 운임이 각각 10.0%, 2.5% 급락해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선박 매매(S&P) 시장에서는 주요 선종의 신조 발주가 지속되며 신조선가가 강보합세를 유지했다. 중고 선가는 중소형 벌크선 위주의 거래 확대에도 전반적인 보합세를 보였고 노후 선박 해체 시장은 방글라데시를 중심으로 거래가 부진하며 약보합세를 나타냈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정몽규 HDC의 다음 50년 ③] 발전소 하나가 건설사를 앞질렀다

지난해 HDC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계열사가 주력 건설사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냈다. LNG 복합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통영에코파워는 2025년 별도기준 매출 8026억원, 영업이익 263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그룹 주력사인 IPARK현대산업개발(옛 HDC현대산업개발)의 별도기준 매출은 4조893억원, 영업이익은 2460억원이었다. 통영에코파워의 매출은 건설사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지만 영업이익은 171억원 더 많았다. 영업이익률로 환산하면 통영에코파워가 32.8%, IPARK현대산업개발이 6.0%다.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통영에코파워는 HDC가 지분 60.5%를 보유해 연결대상에 포함되지만 지배주주에게 귀속되는 순이익은 지분율과 비지배지분을 따져봐야 한다. 발전업과 건설업의 원가 및 매출 인식 구조도 다르다. 그럼에도 두 회사의 손익 역전은 정몽규 HDC 회장이 수년간 강조한 '건설 중심 탈피'가 구호를 넘어 재무제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통영에코파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IPARK현대산업개발 연결 영업이익 2486억원과 비교해도 더 많다. ◇ 'HDC' 떼어낸 건설사…신사업에는 유지 HDC그룹은 지난 3월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라이프(LIFE)·AI·에너지(ENERGY) 등 3대 부문으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새 슬로건은 '투 더 그레이터 밸류(To the Greater Value)', 새 CI 심볼은 '그레이트 컨티뉴엄(Great Continuum)'이다. 기존 사업을 업종별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사업이 창출하는 가치와 상호 연계 가능성을 중심으로 그룹 구조를 다시 정립한다는 취지다. 주목할 부분은 사명 변경 방식이다. 건설·유통·레저·문화를 아우르는 라이프 부문 계열사는 기존 사명에서 'HDC'를 떼고 주택 브랜드인 '아이파크(IPARK)'를 앞세웠다. HDC현대산업개발은 IPARK현대산업개발로 사명을 바꿨다. HDC아이앤콘스와 HDC아이파크몰, HDC신라면세점, HDC영창, HDC스포츠, HDC리조트, 호텔HDC 등도 각각 IPARK아이앤콘스와 IPARK몰, IPARK신라면세점, IPARK영창, IPARK스포츠, IPARK리조트, 호텔IPARK로 변경됐다. 반면 AI와 에너지 부문 계열사는 기존 HDC 브랜드를 유지했다. 라이프 부문에는 소비자 인지도가 높은 아이파크를 전면 배치하고, AI와 에너지에는 그룹 정체성을 상징하는 HDC를 남긴 것이다. 정 회장은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50년이 도시의 외형을 만들고 주거 문화를 이끈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업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건설사를 넘어 삶의 플랫폼을 설계하고 에너지를 순환시키며 AI를 통해 혁신하는 그룹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HDC그룹은 2018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전 계열사 사명에 HDC를 적용했다. 8년 만에 다시 이뤄진 이번 개편은 건설 중심으로 인식돼온 그룹의 정체성을 라이프·AI·에너지로 확장하겠다는 브랜드 전략으로 풀이된다. ◇ 발전 자산은 아직 통영 한 곳 HDC그룹이 새로 분류한 에너지 부문에는 발전뿐 아니라 도로·교량·항만, 소재 관련 계열사도 포함된다. HDC현대EP와 HDC현대PCE, 서울춘천고속도로, 북항아이브리지, 부산컨테이너터미널 등이 에너지·인프라 부문에 배치됐다. 다만 직접적인 발전사업 실적을 내는 핵심 자산은 통영에코파워다. 통영에코파워는 약 1조3000억원을 투입해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에 건설한 1012MW급 LNG 복합화력발전소다. HDC가 지분 60.5%, 한화에너지가 39.5%를 보유한 합작사로 2024년 10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24년에는 상업운전 기간이 2개월여에 그쳐 매출 2124억원과 영업이익 546억원을 기록했다. 발전소 가동 실적이 온전히 반영된 지난해에는 매출이 8026억원, 영업이익이 2631억원으로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348억원에서 154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수익성은 유지되고 있다. 통영에코파워는 1분기 매출 1950억원, 영업이익 578억원, 당기순이익 35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영업이익 58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상업운전 첫해에 발생한 일회성 이익만으로 건설사를 앞지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통영에코파워의 경쟁력으로는 연료 조달과 저장 구조가 꼽힌다. 국내 복합화력발전소 가운데 처음으로 20만㎘급 자체 LNG 저장설비를 갖추고 인접한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의 일부 설비를 공동 활용할 수 있다. 연료는 한화에너지 계열인 호라이즌에너지싱가포르를 통해 직도입한다. 호라이즌에너지가 해외 공급사와 체결한 장기 조달계약을 기반으로 LNG를 공급하는 구조다. 국제 LNG 가격과 계약 조건에 따른 변동성은 있지만 연료 조달 방식을 다변화하고 비용을 탄력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전설비는 GE의 7HA 가스터빈 2기와 스팀터빈 1기로 구성됐다. 가스터빈은 기술적으로 수소 혼소가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도입 시기나 혼소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향후 탄소 규제 강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장기 선택지를 확보한 수준이다. 재무 부담도 점차 줄고 있다. 통영에코파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6537억원에서 올해 3월 말 5663억원으로 3개월 만에 874억원 감소했다. 순차입금도 2024년 말 947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7781억원으로 줄었다. 차입금 감소는 금융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영에코파워의 이자비용 등 금융원가는 지난해 1분기 169억원에서 올해 1분기 115억원으로 낮아졌다. 회사는 기존 PF 차입금에 대한 리파이낸싱도 준비하고 있다. ◇ 늘어나는 전력수요…LNG에는 기회이자 위험 중장기 전력수요 전망은 발전사업에 우호적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투자, 데이터센터 확대, 산업·수송 부문의 전기화 등을 반영해 2038년 기준수요를 145.6GW로 전망했다. 수요관리 효과를 반영한 목표수요도 129.3GW에 달한다. 현재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의 전력수요가 핵심 변수로 다뤄질 전망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전력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LNG 발전의 역할이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LNG 발전을 둘러싼 정책 불확실성도 있다.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LNG 발전량을 줄이고 무탄소 전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국제 LNG 가격과 원·달러 환율, 전력도매가격(SMP) 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지는 구조도 위험 요인이다. 통영에코파워가 현재와 같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연료 도입가격과 가동률, 전력시장 제도 변화에 달려 있다. 그룹의 확장 전략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HDC그룹은 에너지 부문의 목표로 발전 자산 확대와 에너지사업 투자, 신재생에너지 진출을 제시했지만 현재 실적을 내는 발전 자산은 통영에코파워 한 곳이다. 두 번째 발전 자산이나 신재생에너지 투자 대상,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시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 AI, 기존 사업은 있지만 독립 성장축은 아직 AI 부문의 실무 중심은 HDC랩스다. HDC랩스는 스마트홈과 AIoT, 건물 종합관리, 홈서비스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부동산R114 사업 부문을 인수해 부동산 데이터를 활용한 AI 서비스 확대도 추진 중이다. 따라서 AI가 전혀 새로운 선언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HDC그룹은 계열사 전반에 AI 전환을 적용해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공간과 시스템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HDC랩스에는 정 회장의 장남인 정준선 KAIST 교수가 AI·기술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AI 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 교수는 산학협력과 기술 지원, 교육 및 우수 인재 확보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등기임원이나 상근 경영진으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구조는 아니다. AI가 기존 사업의 효율을 높이는 내부 도구를 넘어 독립적인 외부 매출을 창출하는 성장축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공개된 실적만으로는 HDC랩스의 기존 건물관리·스마트홈 사업과 새롭게 추진하는 AI 사업의 매출 및 손익을 분리해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발전·건설 접점은 데이터센터 에너지와 AI, 건설을 잇는 접점으로는 데이터센터가 거론된다. AI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에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최대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발전 자산과 건설·개발 역량을 함께 보유한 HDC그룹의 사업 구조는 잠재적인 강점이 될 수 있다. IPARK현대산업개발은 2022년 정관에 데이터센터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하고 관련 전담조직을 구성했다. 통영에코파워 발전소 부지를 데이터센터 후보지로 검토하는 등 발전과 건설 역량을 결합하는 방안도 모색해왔다. 그룹은 저탄소 데이터센터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통영에코파워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에너지 플랜트 경험을 데이터센터 개발에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투자 규모와 최종 입지, 착공 시기, 전력공급 방식, 데이터센터 운영 주체가 확정된 프로젝트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발전소를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의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규모 선투자와 전력계통 연계, 고객사 확보, 서버 운영 역량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이름은 바뀌었고 숫자도 한 차례 역전됐다. 통영에코파워는 건설 중심이던 HDC그룹이 에너지사업에서 실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만 그 역전을 만든 발전 자산은 아직 한 곳뿐이다. AI와 데이터센터 역시 기존 사업과 준비 조직은 갖췄지만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외부 수익모델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다음 50년의 포트폴리오라고 부르려면 선언을 뒷받침할 후속 투자가 필요하다. 두 번째 발전 자산이나 신재생에너지 사업, 실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가운데 무엇을 내놓느냐가 HDC그룹의 '탈건설'이 구조적 변화인지 통영 발전소 한 곳이 만든 일시적 역전인지를 가를 전망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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