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경쟁을 벌여온 4대 시중은행장들이 연말 인사를 앞두고 보안 책임까지 검증받게 됐다. 12월 임기가 끝나는 이들은 오는 19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고객정보 유출 경위와 사고 예방을 위한 투자, 경영진의 내부통제 관리 책임 등을 추궁받을 전망이다. 내부통제와 정보보호 역량까지 은행장 평가의 주요 잣대로 떠오르면서 국감 대응과 후속 조치가 연말 인사의 새 변수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16일 금융권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9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등 4대 은행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증인 채택 사유는 '금융권 해킹 사고 문제 점검'이다. 당초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를 증인으로 부르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최종적으로 은행장들이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개별 전산시스템의 보안 취약점을 넘어 정보보호 투자와 사고 예방 체계, 사고 발생 이후 경영진의 대응 등 최고경영자(CEO)의 관리·감독 책임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은행별로는 개인정보 유출 규모와 사고가 발생한 시스템의 성격에 따라 책임론의 무게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에서는 고객 개인정보 2만5727건이 유출됐고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도 각각 153건과 89건의 고객정보 유출이 확인됐다. 유출 건수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어느 은행도 보안 관리 책임을 피해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출 규모가 가장 큰 신한은행은 정상혁 행장을 향한 책임론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2023년 취임한 정 행장은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해 세 번째 임기 도전을 앞두고 있다. 앞서 정무위 국감에서도 은행장의 내부통제 책임과 성과급 환수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이번에는 사고 경위뿐 아니라 사전 위험 탐지 체계와 사고 이후 대응의 적절성까지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연임을 앞둔 시점에 보안 관리 체계의 허점이 재차 부각될 경우 경영 성과와 별개로 내부통제 역량에 대한 검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역시 유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책임론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외부 공격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 원인뿐 아니라 기존 보안 점검 과정에서 취약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사고 이후 재발 방지 대책이 적절했는지 등이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연말 인사와 맞물린 그룹 내부 사정도 은행장들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KB금융지주는 오는 11월 이재근 차기 회장 체제로 전환하며, 연말까지 지주와 주요 계열사 대표 인사도 앞두고 있다. 새 회장 체제의 조직 개편과 계열사 인선이 맞물리면서 국민은행장 거취 역시 그룹 차원의 인사 구도와 맞물려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은행은 과거 함영주 전 행장 이후 '2년 단임' 기조가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이호성 행장의 연임 여부가 주목된다. 반면 고객정보 유출이 확인되지 않은 우리은행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할 수 있다. 다만 공격 시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보안 체계의 실효성과 사고 예방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우리은행은 최근 금융사기 예방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제적 차단 체계 구축 계획을 밝히는 등 예방 역량 강화에 나섰다. 이번 국감에서는 해킹 사고뿐 아니라 금융사고 전반에 대한 내부통제 책임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인 지난해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금융회사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203건으로 사고 금액은 6237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은행권 사고는 177건, 5009억원으로 전체 사고 건수의 87.2%, 금액의 80.3%를 차지했다.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임원별 책임을 사전에 규정하는 책무구조도가 도입됐지만 해당 기간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된 사례와 관리조치 의무 위반을 이유로 제재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도입에도 사고가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책임 규명과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안 예산이 실제 투자로 이어졌는지도 관건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3곳의 지난해 정보보호 예산은 3978억원이었지만 실제 집행액은 2744억원으로 집행률이 69.0%에 그쳤다. 집행률은 2023년 74.5%, 2024년 70.8%에 이어 3년 연속 하락했다. 은행장들은 실적뿐 아니라 정보보호 투자와 내부통제 체계가 실제로 작동했는지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과 임원 책임 강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감에서 드러난 관리상 미비점은 연말 인사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적이 양호하더라도 대규모 정보 유출이나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며 “국감에서 경영진의 관리 책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연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captain@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