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박준홍 교수 “반도체 공장, 물보다 중요한 건 인프라”

[기획 인터뷰] 박준홍 교수 “반도체 공장, 물보다 중요한 건 인프라”

정부가 광주·전남권을 차세대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육성하는 '호남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구상을 추진하면서 산업용수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공장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생산 과정에서는 웨이퍼 세척과 초순수 생산을 위해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용수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장 건설과 기업 투자, 지역경제 활성화 모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이 단순한 물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산업용수와 전력, 송전망, 도로, 철도, 물류, 하천 관리,..

[데스크칼럼] 공중탕의 바보들

부산에 공중목욕탕에서 겪은 일이다. 60대가 “와 이래 물이 차노(정치적 표현이 아니다)"라며 온수를 튼다. 탕 안에 있던 나(40대)는 잠자코 앉아있다. 10대는 “에잇"하며 탕 밖으로 나가 버린다. 목욕탕에 70대가 들어오니 60대는 “행님, 지가 물 데파놨습니더"라며 모신다. 70대가 “쪼매 덥네"라니 60대는 냉큼 냉수를 튼다. 80대가 들어온다. 70대가 “아재, 마차놨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한다. 탕에 발가락만 넣은 80대가 “오야, 어?"라고 한다. 60대가 광속으로 냉수를 잠그고 온수를 튼다. 40대는 탕 밖으로 나갔다. 한국 경제는 구조적 모순에 시달렸다. 불로소득의 원천이 되는 부동산에 자금이 집중돼 있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기업에 돈줄이 말랐다. 한국 주식과 원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늘 저평가 대상이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은 여전히 '70년 넘도록 아직 전쟁 중인 나라'였다.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부터 손봤다. 대출을 죄고 각종 관련 세율을 높였다. 시세 차익을 노린 아파트를 빨리 팔아라고 압박했다. 동시에 2000에 머물던 코스피 지수를 500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증시 신뢰를 키우고 연이어 상법을 개정했다. 은행에 생산적 금융을 하라고 압박했고, 증권사에 모험자본 투자를 독려했다. 시장에 돈이 풀리니 주가는 올랐다. 대통령은 '주식해라'고 말한 적 없다. 그러나 부동산을 죄고 주식시장을 부양하면 사람들은 '아, 부동산을 팔고 그걸로 주식을 하라는 의미구나'라고 짐작한다. 그렇게 증시로 자금이 모이자 코스피는 목표로 제시한 5000을 훌쩍 넘겼다. 투자자들은 대통령을 믿으며 지방선거에서 호응하는 한편, 돈을 들고 주식시장으로 향했다. 7천을 넘겼다. 코인을 팔아치우고, 전세 보증금을 빼서 '비싸지만 더 오를 주식'이라며 영혼까지 긁어모아 삼전닉스를 사들였다. AI 특수까지 이어졌다. 8천을 넘겼다. 삼전닉스 수익률에 눈이 높아진 시장통 김씨 아주머니도 오를 만큼 오른 삼전닉스 주식만으론 수익률이 탐탁찮다. 이럴 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나왔다. 이제는 마이너스통장은 물론, 신용대출에 보험대출까지 내고, 오르지 않던 다른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똘똘한 삼전닉스 레버리지에 투자할 여력이 생길 지경이다. 삼전닉스와 반도체주 시총이 코스피 전체의 70%에 육박한다. 이런 기이한 경제는 반드시 망한다. 이 나라 경제 최고 전문가라는 'F4'는 이제서야 우려를 표한다. 주가 변동성을 키운다느니, 드러누워서라도 말렸어야 한다느니, 상장폐지를 해야 한다느니, 증거금을 몇 배로 올려 거래를 줄여야 한다는 등 뒤늦게 레버리지를 잡을 변명만 해대고 있다. 아, 참! 서울 아파트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삼전닉스로 현금을 쥔 20대가 증시에 재투자할리 만무하다. 강남, 마포, 용산에서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려 하겠다. 그럼 부동산 정책도 결과가 좋을 것 같진 않다.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라는 말이 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제시한 경제학 개념이다. 정부의 어설픈 경제 정책과 무능을 비판하기 위한 비유다. 혼자 쓰는 샤워실과 공중탕은 다르다. 소수 마음대로 온냉을 거듭하면 다수는 탕에서 나가버린다. 공중탕에 노인만 남는 이유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EE칼럼] 우라늄 광산 개발, 개미와 베짱이

한국은 원자력 발전량 기준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다. 우라늄 소비량 역시 세계 5위이다. 우라늄 수요는 중국, 인도의 급속한 성장과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미국, 유렵, 동남아 국가들의 재건설로 급증하고 있다. 원자력은 희석 우라늄 순도 90% 이상인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연료용(3~5%)으로 희석한 것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는 2032년 이후부터는 공급 부족이 시작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여기에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청정에너지인 우라늄 공급망 경쟁은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8개 국가에서 15개 이상의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냉전의 소유물로 전 세계 농축 우라늄의 40% 이상을 소유하고 있지만 몽골 등지에서 우라늄 채굴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자국 내 필요한 수요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우라늄 자주 개발 실적이 없다. 해외에서 우라늄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량을 단순히 수입하고 있다. 한때는 공기업 중심으로 해외 우라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전이 캐나다 우라늄 프로젝트(워터베리 레이크, 크리이스트) 투자 및 장기 공급권 확보를 추진했고,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테기다 우라늄 광산에 참여했으나 최근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했다. 광업공단은 5월 공시를 통해 지난해 12월 10일 아프리카 니제르의 우라늄 사업인 “테기다" 투자 법인 지분 80%를 전량 매각했다고 밝혔다. 인수 주체는 중국 업체 트랜드필드(THL)로 매각 금액은 1000 달러(약 147만원)이다. 2010년 1480만 달러(약 200억원)를 투자해 지분 5%를 확보하고 연간 700톤의 우라늄 생산을 계획 했으나 결국 성과없이 철수했다. 광업공단의 설명은 예상보다 큰 비용이 소요됐고 수익성 마져 낮았다. 하지만 최근 우라늄 가격 급등세를 고려할 때 좀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광업공단에서 운영하는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러시아산 우라늄 퇴출과 원전 수요 확대로 지난해 1분기 파운드당 67.91 달러였던 우라늄 현물 가격은 올 1분기 88.96 달러로 30% 이상 급등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26기의 상업용 원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 전력의 약 30% 이상을 원자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는 작지만 원전 밀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원전 26기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우라늄은 대략 연간 4700톤(우라늄 금속 기준, tU)정도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4700톤은 약 470만kg으로 연 기준 원전 1기당 평균 약 180톤이 사용된다. 하루 기준으로는 약 13톤 정도 소비하는 셈인데 가격은 최근 우라늄 원광 현물 가격이 파운드당 약 80~90달러 수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수요 4700tU는 약 9억~11억 달러(약 1조 6000억원) 정도다. 하지만 실제 원전 연료비는 원광석->정련->전환->농축->핵 연료봉 제작 과정이 추가 비용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실제 원전 사업자가 부담하는 핵 연료 전체 비용은 연간 약 3조원 안팎이다. 흥미로운 점은 원전의 발전 단가에서 우라늄 가격 비중은 생각보다 작다. 천연가스 발전은 연료 가격이 발전 단가에 크게 영향을 주지만 원전은 연료비보다 건설비, 안전설비, 운영비 등의 영향이 더 크다. 그래서 우라늄 가격이 두 배가 되어도 전기요금 영향은 석탄이나 가스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26기를 가동하는데 4700tU(평균 10억 달러)의 우라늄을 수입하고 있으니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 해도 어럼 잡아도 1년에 5000~6000억원의 돈을 써야 한다. 큰 틀에서 생각해 보면 매년 1조 5000억원을 수입 비용으로 쓰는 것 보다 그 비용으로 해외 광산을 미리 확보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왜 우라늄 개발 투자에 부진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요 기업 입장에서는 광산을 개발하는 것보다 단순 구매하는 편이 쉽고 리스크도 적다. 또 우라늄은 폐쇄적 유통 구조로 되어 있어 다른 기업들은 개발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안보 측면에서라도 우라늄의 단순 수입 방식을 개선해 해외 광산 개발에 나서야 한다. 과거 우라늄을 비롯한 자원 대부분은 돈만 주면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괜찮았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그날 그날 먹고 살수 있던 여름이 지나고 우리 앞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진영의 전선에 선 아이들

아이돌 그룹 리센느의 한 멤버가 유튜브 영상에서 내뱉은 “무섭노" 한마디가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경남 거제 출신인 멤버 원이가 방송에서 사투리 표현을 사용하자 일부에서는 이를 일베(일간베스트) 용어라고 문제 삼았다. 논란은 곧바로 정치권으로 옮겨갔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차원에서 일베가 문장 끝에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을 옹호하며 부산·영남에서도 그렇게 쓴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경상도 사투리를 향한 공격"이라고 맞받았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사투리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검열 사회"라고 가세했다. 정작 필요한 것은 해당 표현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됐는지, 지역어와 혐오 표현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차분한 논의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사실관계보다 지지층이 반응할 만한 프레임을 앞세웠다. 비슷한 모습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에서도 반복됐다. 배재고 야구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물론 역사적 상처를 조롱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논란이 곧바로 진영 대결로 번지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관계 확인과 교육적 접근, 당사자의 의도와 책임을 따지는 과정이 먼저여야 한다. 무엇보다 두 논란의 중심에 선 이들이 대부분 10·20세대라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정 표현 하나만으로 정치적 낙인을 찍거나, 곧바로 '일베', '극우'라는 딱지를 붙이는 방식은 건강한 비판이라기보다 진영 논리의 연장선에 가깝다. 배재고 논란 이후 학교 정문에는 수십 개의 근조화환이 세워졌다. 야구부를 향한 항의였겠지만, 그 화환을 매일 마주한 것은 운동과 무관한 평범한 학생들이기도 했다. 정치적 논란과 아무 관련 없는 학생들까지 갈등의 한복판에 놓인 셈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젊은 세대가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표현 하나가 곧바로 정치적 프레임으로 소비되고, 모든 논란이 진영 대결의 재료가 되는 모습을 보며 누가 정치에 신뢰를 갖겠는가. 정치는 갈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권은 논란을 수습하기보다 새로운 전선을 만드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상처받는 것은 아직 정치보다 일상에 더 가까운 아이들과 청년들이다. 잠시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다음 세대의 신뢰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시대에 맞지 않는 적통 논쟁, 필요한 것은 실용 리더십

우리나라 정당들은 당원 수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당원 수가 많다는 사실만큼은 은근히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듯하다. 또한 거대 양당 모두 '당원이 주인'이라거나 '당원들의 선택'을 강조하는 언행을 자주 한다. 이런 모습은 1990년대 이후 유럽 정당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 유럽 정당들은 대부분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대중 정당은 이념 지향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데 비해, 포괄 정당은 이념 지향성이 매우 약하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일부 극우 정당을 제외하면, 정당 간 이념적 차이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당들은 대중 정당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이념 지향성이 여전히 상당히 강한 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념적 정통성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주자들은 이른바 '적통 논쟁'에 몰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누구가 어떤 행동을 했다고 주장한다든지, 스스로를 '노무현 키즈' 혹은 'DJ 키즈'로 규정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적통 논쟁이 지금 우리 사회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시절의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은 지금과 확연히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가받는 것은 그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을 지금의 정치판으로 소환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이념 지향성이 아니라 이념적 유연성, 그리고 이에 기반한 실용적 리더십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본격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실용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컨대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과 이에 호응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은 검찰의 보완 수사권마저 완전히 박탈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이재명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정부는 보완 수사권까지 박탈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이는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 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현재 모든 면에서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최소한 과거와는 다른 리더십을 보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현재 일부 당권 주자들이 자신의 적통을 주장하며 끌어들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코 이념 지향적인 인물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미 FTA를 성사시켰고, 반대 여론이 거셌던 강정마을 해군 기지 건설도 강행했다. 또한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우리 군을 파병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념적 경직성에 매몰된 인물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그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이념적 충실함을 강조하려는 시도는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념보다 국익과 실용에 충실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민주당의 당권 경쟁도 이념적 선명성을 과시하는 경쟁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지금 시대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안경으로 지금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bienns@ekn.kr

[EE칼럼] 이란 종전협상 배경이 된 미국의 셰일혁명과 달러 패권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 그리고 백악관에서 들리는 소식은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파키스탄에서 있었던 종전협상 MOU 체결 때에도 양측은 몇 차례 옥신각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협상장에 다시 마주 앉았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작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피시맨의 Chokepoints라는 책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맥락을 짚어 준다. 비핵화와 금융제재 해제를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협상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01년 9·11 사건으로 미국은 테러조직과 적성국가에 대한 금융제재를 강화하였다. 재무부 산하에 TFI(Terrorism and Financial Intelligence Division)를 새로 설립하였고 금융제재를 담당하였던 OFAC(Office of Foreign Asset Control)를 이에 편입시켰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하면서 통합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된 정보를 통하여 TFI는 이후 탄탄한 금융제재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었다. 한편, 미 의회는 이스라엘 로비단체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의 강력한 로비로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대상에 포함하는 법을 만들어서 금융제재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본래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제재에 따른 이란의 원유 수출 감소로 국제유가가 200달러 이상 급등할 것을 우려하여 이란 중앙은행은 금융제재에 포함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마침 진행된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급증한 미국의 원유 생산이 이란의 석유공급 감소를 상쇄하여 국제유가는 안정세를 유지하였다. 이란은 2005년 강경파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또 2009년에 재선되면서 핵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강력한 금융제재 수단으로 전 세계 주요 은행들을 설득하여 이란과의 거래를 대부분 차단하게 되었다. 결국 2013년 협상파 루하니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이란의 민심은 금융제재 완화와 경제문제 해결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2015년 P5+1(미·중·러·불·영+EU)과 이란의 포괄적인 협상(JCPOA)이 타결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오바마 정권 말이어서 그 힘을 잃고 말았다. “다음 대통령이 트럼프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막상 금융제재를 완화한다고 하여도 각국 은행들은 여전히 이란과의 거래를 기피하였다. 그 결과 협정의 효력이 지속될 수 없었다. 이란과의 종전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느냐는 여러 조건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반발, 이란 강경파의 보이콧 그리고 올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나타날 수 있는 트럼프 정부의 조기 레임덕 현상 등은 부정적 요인이다. 반면 이란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정권의 안정을 위해 이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아직 반 이상 남은 트럼프의 임기 그리고 이란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 등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란과의 종전협상 MOU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최소 3천억 달러를 이란의 재건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정도 큰 금액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여러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먼저 미국의 은행과 기업이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미국이 나서지 않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란에 대한 투자에 다른 국가가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과 은행이 참여하는 것을 전 세계 금융기관들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금융제재를 조금씩이나마 해제하기 시작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금융제재 해제를 통해 제공할 수 있는 돈이다. 이란이 보유하고 있는 천연가스와 원유는 외국인 투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셰일혁명으로 에너지와 달러패권을 동시에 장악한 미국의 힘이 이란 종전협상의 가장 큰 배경이다. 조성봉

[이슈&인사이트] 올림픽공원 시위로 돈 버는 사람과 피해만 보는 사람

부정선거 의혹을 퍼뜨려 돈 벌어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개표소 봉쇄와 관련하여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유튜버들이다. 경남의 한 40대 남성은 6월 중순에 “경찰이 송파구 개표소에 갇힌 선관위 직원을 경찰 제복을 입혀 빠져나가게 하려다 걸렸다"라는 동영상 2개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순식간에 조회수는 2백만 회를 넘었고 댓글은 7천여 개에 달했다. 경찰은 온라인에서 해당 동영상을 발견한 뒤 10일도 안 돼 용의자를 검거했다. 수사 결과 동영상은 올림픽공원 개표소 안으로 들어가는 실제 제복 경찰의 모습을 선관위 직원이라고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용의자는 가짜 정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동영상을 재편집해 자신의 채널에 게시했다. 그 채널에는 수백 개 영상이 있었고 그 영상마다 수익이 있었을 뿐 아니라 후원 계좌로 모금까지 했다. 이 남성은 결국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반성한다고 말했다지만 돈벌이 중인 유튜버는 아직 넘쳐난다. 한 언론사가 유튜브 통계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를 통해 6.3 지방선거가 끝난 뒤 3주간 국내 유튜버의 슈퍼챗 수익을 분석한 결과는 놀랍다.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유튜버는 3주 동안 무려 4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올림픽공원에서 실시간 현장 방송도 했고 “봉쇄된 경기장 내에서 인신공양이 이뤄지고 있다"라는 말도 했다. 또 다른 유튜버는 같은 기간 동안 2천2백만 원 이상을 벌었는데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부정선거에 대해 공조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천6백만 원 이상의 슈퍼챗 수익을 올린 제3의 유튜버는 “재선거 요구에만 집중하자"라고 문제를 제기한 2030에게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이냐고 몰아붙이면서 후원금을 끌어모았다. 덕분에 올림픽공원은 순수한 2030이 떠나고 부정선거론자들의 텃밭으로 변질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슈퍼챗 최상위로 분류되는 김어준의 수익이 2천4백만 원이라는 것을 비교하면 부정선거 의혹 유튜버의 돈벌이는 실로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입주 9개 체육단체와 3개 사단법인이 추정한 경제적 피해는 1백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사기 저하까지 치면 산정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종목 대표 선수와 지도자, 직원, 실업팀 구성원들만 9개 단체 2000여명에 유망주들과 가족, 직간접 영향권의 동호인, 생활체육 인구까지 더하면 최소 20만명“이 피해자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6월 중순에 열렸던 아시아 펜싱 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오상욱 등 펜싱 국가대표팀은 개인 장비 없이 남의 장비를 빌려 출국했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 펜싱 선수권대회는 다행히 오상욱 선수가 2관왕에 올라서 문제없이 끝났으나 9월에 일본에서 시작되는 아시안게임 준비는 차질이 뻔해 보인다. 아직 출전 준비나 행정 처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이나 행사도 7건씩이나 취소됐고 이에 따른 시설 운영 손실은 2억 8천5백만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지난주 현장에서 열린 선관위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도 선관위가 개표를 위해 부담하기로 한 “7월 10일까지 핸드볼경기장 임차 비용이 2억원에 달한다고 한다"라고 했다. 다 국민의 세금이다. 헌법에는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집회의 자유도 타인의 자유나 권한을 침해하는 것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공원 시위가 부정선거 의혹만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까지 무력화시키는 거 아닌지 의문이 든다. bienns@ekn.co.kr

[EE칼럼] 석탄화력 부지의 미래 – 주민이 결정해야

석탄화력발전은 우리나라 전력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는 아직은 가장 비중이 높은 발전 방식이다. 하지만 발전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로 기후위기를 부축일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유연탄의 수입과 용수 확보를 위해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서해안에 집중해 있으며 편서풍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내륙 분지인 충북 지역의 미세먼지가 수도권 다음으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전 세계가 석탄화력발전의 축소에 나서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노후 발전기부터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2040년까지는 완전히 퇴출한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가장 피해가 큰 인근 지역 주민들을 위해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5km 이내 지역의 주민 복리 증진 및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발전소 부지 확보가 쉽지 않은 정부로서는 석탄화력발전을 폐쇄해도 이 부지를 발전소 부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문제는 어떤 발전기를 설치한 것인가 혹은 어떤 전력산업 부지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 2일 인천의 영흥면민간협의체 등 79개 시민단체들은 인천시청 앞에서 '영흥화력의 원전 전환 반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현대건설과 한국남동발전이 맺은 '석탄화력발전소 연계 SMR 연구 및 사업화 공동 추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이 주민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양사는 업무협약에서 기존 발전소 부지와 설비를 유지한 채 핵심 장비를 교체하는 '리트로핏(Retrofit)' 방식의 타당성을 검토해 무탄소 전원 기반의 종합 에너지 플랜트 모델을 구체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고 밝혔다. 즉 석탄 보일러를 소형모듈원자로(SMR)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SMR은 발전용량 300MW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말한다. 1400MW인 신한울1·2호기에 비해 소형이라는 말이지 엄연히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로이다. 핵분열 시 발생하는 열과 방사능 물질이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기본 과제는 여전하다. 현재 SMR 운영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뿐이다. 러시아는 바지선에 35MW급 2기의 원자로를 설치하여 극동지역 페베트 항구에서 2020년부터 상업운전을 하고 있다. 중국은 산동성 스다오만의 원전 내에 2기의 가스냉각식 원자로로 210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파일럿 수준의 원전으로 아직 보급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SMR이라는 용어가 일반화한 것은 197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다. 원전은 그 동안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여 1400MW급까지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발전용량을 10분의 1로 줄인다고 하여 원전의 규모나 설치비용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원자로 크기만 해도 아직 절반 수준밖에 줄이지 못했다. 부수되는 안전 설비를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원천 기술을 가지지 못한 원전 후발국으로서 세계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원전산업계의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특정 지역에 SMR을 설치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 간의 협력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주민들에게는 안전한 삶과 생활 터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사전 모집 과정을 거쳐 지난달 17일 부산 기장군을 SMR 부지로 결정한 바 있다. 그 동안 한국남동발전은 석탄발전소 폐쇄 이후의 방향을 신재생에너지 전환과 주민상생으로 홍보해왔기에 주민들은 약속을 어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30년 전 주민을 희생시켜 석탄발전소를 세웠던 것처럼 이제 다시 핵발전소로 영흥주민을 희생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영흥면민간협의체장의 말은 향후 양사가 이 계획을 밀어부칠 경우 발생할 상황을 예상케 한다. 주민들의 오해를 막고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피하는 길은 투명한 행정과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에 달려 있다. 원전이건 SMR이건 주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은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AI 기업이라고 전기 싸게 쓰겠다는 건 억지

한 때 한국전력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코스피 시가총액 1위를 지킨 기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증시를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전력이다. 막대한 전기를 얼마나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확보하느냐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최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언급한 원전 전력구매계약(PPA)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전 전기를 직접 끌어다 쓰겠다는 뜻은 아니다. 원전 발전단가를 기준으로 장기간 가격과 물량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허용해 달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계약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지금까지 공고히 유지된 한국전력 중심의 전력시장 공정성을 흔드는 요구다. 현재 한전은 전국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하나의 시장에서 통합 구매해 기업과 가정에 공급한다. 기업들은 발전원과 관계없이 동일한 체계에서 전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AI 산업이 커지면서 데이터센터의 LNG 발전 PPA 요구에 이어 원전 PPA까지 거론되고 있다. PPA가 허용되면 이들 발전원이 한전이 운영하는 전력시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원전의 지난해 평균 정산단가는 킬로와트시(kWh)당 약 79원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170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절반 수준의 가격으로 전력을 쓰게 해달라는 혜택을 달라는 의미다. 물론 지금 재생에너지 PPA는 이미 허용돼 있다. 하지만 이는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이행을 위한 제도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전력도매가격(SMP)보다 높고 개별 사업은 소규모라 한전의 시장 지위를 근본적으로 흔들지는 못한다. 원전과 LNG는 다르다. 두 발전원은 발전기 개당 규모가 크며 SMP 이하에서 정산되는 핵심 전원이다. 이들까지 개별 PPA가 허용되면 일반 기업이나 국민을 위한 전력시장에는 석탄 발전이나 비싼 재생에너지 전기만 남게 될 수 있다. 이는 AI 분야 외에 다른 산업이나 국민을 전력시장에서 차별하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기업 총수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도 고개를 숙인 마당에 한전이 AI 산업으로부터 전력시장의 공정성을 방어해낼 수 있을까. AI 산업 육성은 중요하나 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까지 가면 안 된다. 반도체 산업이 전력을 필요로 한다면 외부 PPA를 쉽게 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산단 부지 인근에 발전소를 건설하고 자체 조달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유가가 진정됐는데도 원화가 무너지는 이유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1,500원을 넘긴 원화 환율을 “에너지와 지정학의 위험"을 반영한 가격이라 언급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단층선으로 남는 한, 코스피가 아무리 높아도 원화의 발목은 풀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시장은 얼마가지 않아 곧바로 그 진단을 시험대에 올렸다. 6월 17일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했고, 호르무즈 통항 재개 소식에 국제 유가는 4% 가까이 빠졌다. 필자의 논리대로라면 에너지 부담이 걷히며 원화도 숨통이 트였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원/달러 환율은 6월 5일 야간시장에서 1,562원까지 치솟았고, 7월 1일에도 장중 1,559원을 찍었다. 원-유로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800원을 넘어섰다. 유가는 진정됐는데 원화는 오히려 무너진 것이다. 이러한 환율의 움직임은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전해준다. 에너지는 이번 원화 약세의 방아쇠였을 뿐, 약한 원화라는 병의 본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병의 본질는 무엇인가. 첫째는 금리와 자본이라는 구조다. 한·미 금리 역전은 2022년 중반 이후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케빈 워시 연준의장은 물가에 단호한 고금리, 금융에는 관대한 규제완화라는 '강달러 설계'를 밀어붙이고, 미국은 AI 인프라 투자와 기술주로 세계 자본을 빨아들이며 달러는 스스로 수요를 만들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첫 금융통화위원회는 “인플레이션 대응에 걸림돌이 적다"는 매파적 동결이었다. 성장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1,560원 환율과 수입물가가 한은과 금통위의 손발을 묶고 있다. 결국 원화는 금리 측면이나, 성장 기대로도 방어막을 갖지 못한 채 홀로 강달러의 바람을 맞고 있는 셈이다. 유가가 오르내리든 말든,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환율의 중력은 위쪽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정책적 불확실성이다. AI 고점론이 번지자 외국인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20조 원 넘게 순매도했고, 그 위에 '국민배당금' 논쟁이 기름을 부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AI 산업에서 나온 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하자는 구상을 던지자, 블룸버그는 한국이 'AI 수익 국민배당금' 구상을 띄우며 시장을 흔들었다고 제목을 뽑았다. 취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외국인 투자자에게 이 신호는 “한국이 반도체·AI 호황의 과실을 어떻게 다룰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으로 읽혔을 수 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면 자본은 먼저 떠나고, 떠나는 자본은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들인다. 증시의 정책 충격이 곧바로 외환시장의 매도 압력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지금의 환율은 유가의 잔향이라기보다, 국내 정책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조용한 채점표에 가깝다. 셋째는 시장의 골격 자체가 얇다는 점이다. 개인 신용융자, 이른바 '빚투'는 62조 원 시대에 들어섰고, 증권사는 그 이자만으로 1조 4천억 원을 벌었다. 상승장의 상당 부분이 빚으로 지어졌다는 뜻이다. 외국인이 팔고 환율이 오르면 레버리지에 묶인 국내 자금은 강제로 청산되며 낙폭을 키운다. 여기에 지난 반년간 코스피가 두 배 뛰는 동안 코스닥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정부가 뒤늦게 코스닥 활성화와 규정 강화로 체질 개선에 나선 것 자체가, 우리 증시가 사실상 두세 개 반도체 종목의 시장이었음을 자인하는 대목일 수 있다. 통화가치는 결국 경제 전체의 폭과 건강을 비춘다. 소수 챔피언의 시가총액이 아니라, 시장의 넓이와 가계·기업의 체력이 환율의 진짜 기초체력이다. 이 세 가지를 겹쳐 보면, “호르무즈만 열리면 유가가 내리고 원화 가치가 회복된다"던 스스로의 위안은 이미 틀린셈이다. 유가 안정이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자본수지의 출혈을 막지는 못했다. 우리가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한, 국제 유가가 안정되어도 환율 상승애 따라 원화 기준 수입 에너지 가격은 상승한다. 즉 약한 원화는 우리가 벗어났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현재에도 여전히 물가압력 요인으로 남게 된다. 1,560원이라는 환율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남은 여진이 아니라, 한국 거시·금융 구조에 대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환율에 대한 처방은 분명하지만 쉽지 않다. 2025년 외환보유고와 국민연금 스와프로 버티다 결국 방어선이 뚫린 경험이 말해주듯, 곳간만으로 환율을 잡을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해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금리 격차를 줄이는 것인데, 성장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험난한 길이며, 현재와 같이 경제의 기초체력이 저한된 현재 고금리가 국민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다른 하나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시장의 폭을 되살리는 것이다. 국민배당금 논쟁은 방향의 정당성과 별개로 시장에 던지는 신호를 정교하게 관리해야 하고, 62조 빚투의 과열은 식혀야 하며, 코스닥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가 정독해야 할 성적표는 지수 전광판이 아니라 환율 전광판이다. 유가가 잠잠해진 지금에도 심화되는 원화약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지정학적 위험과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의 내부적이고 구조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bienns@ekn.kr

[EE칼럼] 대도약, 그리고 맨 나중에 불려온 지역 사람들

지난달 정부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발표한 '대도약' 계획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반도체에 800조 원, AI 데이터센터에 550조 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지금의 3배로 늘리고, 전국에 새 송전선로를 깐다고 했다. 숫자가 워낙 커서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만 그 내용 어딘가에, 앞으로 몇 년 동안 내가 만나게 될 얼굴들이 숨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늘 그렇듯, 맨 나중에야 불려 나올 지역 사람들이었다. 지난 13년 동안 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지역을 수백 곳을 다녔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지역이 등을 돌리는 이유는 기술이 무서워서도, 보상금이 적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순서였다. 사업자가 어디에 얼마만큼 지을지 다 정해놓고, 인허가까지 받아둔 다음, 맨 마지막에야 형식적으로 주민을 부른다. 그렇게 불려 나온 사람은 이미 정해진 일을 통보받는 사람이 된다. 자기 마을 일인데 맨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 그 서운함이 반대가 되고, 반대가 싸움이 된다. 내가 조사한 사업의 열에 아홉이 그렇게 멈추거나 엎어졌다. 지난 3월 용인의 송전선로에 반대하며 광화문에 모인 5천 명도 다르지 않았다. 이득은 도시가 챙기고, 견디는 일은 늘 지방의 몫이었다. 고치는 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순서를 뒤집으면 된다. 주민을 맨 뒤가 아니라 맨 앞에 세우는 것이다. 어디에 얼마나 지을지 그 첫 단추를 함께 끼우면, 설명회는 통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된다. 전기와 물을 어디서 끌어올지, 감춰둔 정보를 먼저 알려주면 된다. 그리고 주민을 돈 받고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 그 발전소의 투자자 중 하나로 초대하면 된다. 반대할 이유가 참여할 이유로 바뀌는 데는, 그 자리 하나면 충분했다. 먼저 함께하고, 그 다음에 짓는다. 현장을 오래 돌다 저절로 몸에 밴 순서다. 신기하게도 지구 반대편에 나와 똑같은 결론에 이른 사람이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로 유명한 환경운동의 대가 '에린 브로코비치'다. 그는 요즘 미국에서 데이터센터를 상대로 싸우는데, 그 방식이 내가 걸어온 길과 놀랍도록 닮았다. 그는 높은 사람을 찾아가 제도를 바꿔달라 조르지 않는다. 대신 지역사회부터 찾아간다. 지방정부에 가서 환경영향평가 서류를 내놓으라 하고, 필요한 전기와 물을 대체 어디서 가져올 거냐고, 안 그래도 모자란 우리 동네 것을 빼다 쓸 셈이냐고 따져 묻는다. 그렇게 공식 정보를 어렵게 손에 쥔 뒤에야 주민들을 불러 모아 함께 의견을 낸다. 사업 계획이 다 끝난 뒤 얼마를 보상할지 흥정하는 게 아니라, 사업 계획이 시작될 때 주민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그가 흘리듯 남긴 말이 오래 마음에 걸린다. 예전 힝클리 사건 때는 3억 달러 남짓으로 합의가 되었지만, 이제는 수십억 달러는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순서를 어기고 미뤄둔 값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난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이 그 계산서를 받아 들고 있다. 이번 정부 계획도 꼭 그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서남권 반도체 단지는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그 발전소와 전선은 결국 누군가의 마당 앞에 선다. 18GW까지 확대된다는 데이터센터는 어마어마한 전기와 냉각수를 필요로한다. 브로코비치가 지금 미국에서 던지는 그 질문이, 머지않아 우리 앞에 그대로 놓일 것이다. 물과 전기를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정부도 이대로면 첫 삽 뜨기까지 십 년이 넘게 걸린다고 인정했다. 그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은, 주민을 건너뛰고 서두르는 순간 오히려 갈등의 불씨가 된다. 순서를 바꾸면 정말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 현장이 먼저 보여주었다. 강원도 태백에서는 주민을 먼저 모셨더니 2년 넘게 걸리던 인허가가 넉 달로 줄었다. 내 집 앞은 안 된다던 목소리가, 제발 우리 마을에 지어달라는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을 나는 두 눈으로 보았다. 정부의 계획서에는 전기와 물과 땅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지역 사람들이 어느 대목에서 참여하는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비워둔 채로 밀고 나가면, 몇 해 뒤 우리는 한국의 브로코비치가 지역 관공서 문을 두드리며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장면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지역 사람이 먼저 그 땅에 뿌리를 내려야, 그 위에 줄기가 서고 비로소 전기가 흐른다. 대도약이 끝내 도약으로 남느냐, 아니면 또 한 번의 갈등으로 주저앉느냐는, 결국 누구를 맨 앞에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ekn@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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