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광재 “정치인 평가할 ‘성적표’ 만들어 고성방가 정치 끝내야”

[인터뷰] 이광재 “정치인 평가할 ‘성적표’ 만들어 고성방가 정치 끝내야”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7일 국회 본관 예결위원장실에서 진행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기술혁명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세계 질서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플랫폼을 새로운 '디지털 경제 영토'"로 규정한 그는 “여의도가 아직 충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보기술(IT) 혁명 당시 빌 게이츠와 앨빈 토플러 등을 직접 만나며 변화에 대응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지금은 젠슨 황(엔비디아 CE..

[이슈&인사이트] 언론의 확신이 만든 거짓의 시대

“신문에 나왔으니 진실인가? 여러분이 보도했다고 진실은 아니다." 매체의 본질·실체의 정곡을 찔렀다. 늘 그들을 상대하는 고위 관료가. 최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물었다: “국무부는 외국 정부들에게 마차도(노벨평화상 수상)의 베네수엘라 귀국을 돕지 말라고 계속 요청할 건가?" “누가 그러던가? “널리 보도됐다" “누가 널리 보도했나?" “'월스트리트저널'이다". 루비오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거짓 기사들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누가 흘려준 것 그대로 쓰고는, 진실을 입증한 것처럼 질문한다. 거짓을 가지고 묻는데 어떻게 답변하나. 질문 전제가 틀렸다." '진짜 보수주의자' 루비오는 좌파 매체의 목표가 오로지 보수우파 증오·타도임을 잘 안다. 진실보도를 하지 않는 그들과 상원의원 때부터 싸우는데 이골 났다. 이제 유력 대통령 후보라 눈치보고 몸 사릴 법도 하다. 그러나 그들을 믿지 않으니 거침없이 면박했다. 한국의 '가짜 보수주의자'들은 루비오 정공법을 흉내도 못 낼 듯. 혀끝에 칼만 단, 내용 없는 독설에 앞서 그들은 좌파의 본질·실체를 정면 공박하는 용기부터 배워야 한다. 일론 머스크는 “미국 매체 97%가 좌파"라 했다. 허투루 그러지 않았다. 선거 숫자가 증명. 1964년 대선. 매체 종사자 94%가 민주당 존슨 투표. 공화당 골드워터 6%. 2016년 대선. 이들의 기부금은 힐러리 96%. 트럼프 4%.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머스크는 좌파의 매체 장악을 그냥 두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했다. 평가액보다 38% 더 비싼 44억 달러에 '트위터'를 인수, 'X'로 바꾼 이유. '보수주의 혁명 선봉장'이었다. 객관·공정·정확 보도. 희망일 뿐이다. 매체는 자신들 이념만을 따른다. 중립성·신뢰성·책임감을 스스로 던져버렸다. 신문 발상지 영국과 미국 등 세계 모든 매체가 그렇다. 매체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 혁명전사'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급진 좌파 목표를 완벽하게 따르는 '문화혁명 선전원·집행자.' 마르크스주의를 “진보"란 말로 위장한 채, 이견을 이단으로 취급하는 그들 보도는 좌파 교리교육이다. 좌편향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행태는 왜곡·조작·날조. 러-우 전쟁 ·이란전쟁·미국정치 등의 가짜보도 실상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그래서 '뉴욕Times'-'뉴욕Slimes(쓰레기),' '월스트리트Journal'-'월스트리트Urinal(소변기), 'NBC'-'Nothing But Crap(오직 엉터리)'라 비판받는다. 그들은 소련 옹호에 이어 늘 중국도 두둔한다. 뉴욕타임스는 모택동을 “낭만의 민중 운동가"로 미화. “코로나 우한 봉쇄 방역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극찬. CNN도 중국 통계만 인용, 중국식 통제를 칭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은 적이 아니다"고 했다. 친 공산주의 전통 탓에,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와 지역 강 이름을 따 타임즈-'허드슨 프라우다,' 포스트-'포토맥 프라우다'라 불린다. AP는 'American 프라우다,' CNN은 'Xi-NN,' 'Communist News Network.' 그들은 가짜보도도 반복하면 결국 다들 믿게 된다고 확신한다. 한국은 미국 등의 좌파 매체를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좌편향 정보·지식에 지배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깊게 물들어 있다. “무지는 최적의 사회주의 온상." 좌파 매체를 분별하지 못하고, 가짜 보수주의자를 솎아내지 못하면 한국은 사회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

[EE칼럼] 기후위기 시대의 ESG - 그 방향을 묻다

폭염과 집중호우의 여름이 물러나고 청명한 하늘이 반가운 가을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은 재난이 닥쳤을 때의 다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온한 지금이야말로 선택한 대응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냉정하게 점검할 때이며, 그 점검이 국가 경쟁력을 가른다. 재난의 긴장에서 벗어난 이 계절에 ESG의 진행 상황과 방향을 다시 정비하자고 꺼내는 이유다. 환경(E)·사회(S)·지배구조(G)를 뜻하는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경영의 틀이다. 기후위기가 생산과 공급망, 자산과 수익을 위협하며 무게중심은 E로 옮겨갔지만, 사회와 지배구조를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다. 기후위기라는 큰 우산 아래 세 영역을 함께 살피되, 오늘은 그 우산이 실제로 우산 구실을 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먼저 실효성이다. 적지 않은 인력과 비용을 들이는 ESG가 실제 배출과 재난 위험을 줄이고 있는가. 보고서가 두꺼워지고 등급이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성과를 입증할 수는 없다. 감축량과 피해 감소, 경영 개선으로 답해야 한다. 성과의 잣대가 그 자리에 서는 순간, ESG는 비용 항목에서 경쟁력 항목으로 옮겨 간다. 실효성을 가르는 잣대는 도입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상황에 기반한 금융중심 기준을 받아들이면서, 제조업·수출 중심인 우리 산업구조와 전력 공급 여건, 중소기업의 역량을 고려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국제적 호환성이 필요함을 인정하더라도 우리 실정을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 요구는 자료 수집과 검증 비용을 늘려 정작 현장 개선에 쓸 자원을 잠식할 수 있다. 이 비용은 특히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더 무겁게 얹힌다. ESG에 대응하지 못하면 금융거래는 물론 수출입 등 기업활동 전반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까 걱정이 앞섰고, 어려운 경영 속에서도 ESG 조직을 만들고 유지해 왔는데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이 많다. 정부와 수많은 관련 기관·단체는 필요성 강조에서 나아가, 업종과 규모별로 당장 해야 할 일과 뒤로 미뤄도 되는 일을 쉽고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기업에 불안을 안긴 채 해법은 스스로 찾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국제표준 ISO의 경험은 이 대목에서 참고할 만하다. 품질·환경경영 표준은 업무의 체계화와 운영 개선에 기여해 왔다. 다만 인증 유지와 심사 통과가 목적이 되면 비용은 반복되지만 개선 효과는 약해질 수 있다. ISO의 효용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형식과 실질이 어긋나는 지점을 살펴야 한다. ESG도 기존 관리 체계와 연계해 확보한 자료를 활용하고 중복 업무를 줄여야 같은 함정을 피할 수 있다. 제도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이 관점은 통상 현장에서 더 절실하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와 배출권거래제 대응의 핵심은 정확한 배출 자료와 실제 감축이며, 기후재난에 대비한 입지·설비·공급망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EGS 보고서는 이런 결정을 도울 때 가치가 있다. 유럽조차 기업 부담을 고려해 공시·실사 제도를 간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규제 대응은 한 번의 보고가 아니라 데이터가 쌓일수록 유리해지는 관리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면 방향은 명확하다. 현실성·실효성·합리성이라는 세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을 이루는 것이다. 공시 일정에 맞춘 최소한의 준비로 비용을 통제하되, 체력이 약해 부담이 큰 중소기업일수록 신중하게, 대신 S·G의 좋은 경영과 관리 체계를 우선 갖추어야 한다. 정부는 업종과 규모에 맞게 요구를 차등화하고 공통 데이터와 검증을 지원하며, 기업은 검증된 사례를 도입하는 영리한 추종으로 비용을 줄이되 경쟁우위를 만들 분야는 선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신중함이 준비의 중단이어서는 안 된다. 한숨 살필 시간을 갖는 관망은 방치가 아니라, 준비된 대응의 다른 이름이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대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손실을 무릅쓴 맹목적 투자가 아니라, 공시 일정과 정부의 지원안에 맞춰 최소한의 대비를 단단히 갖추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게 준비하면 다른 나라들이 기후 규제 속에 머뭇거릴 때 생기는 공백을 우리의 실리적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 청명한 가을날의 상쾌함 뒤에 숨은 기후위기의 엄중함을 인지하되, ESG를 향한 무조건적인 조급함은 내려놓자. 냉정한 현실 진단과 속도 조절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기업과 사회를 동시에 살리는 가장 합리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다. ESG의 성적표는 보고서의 두께가 아니라 줄어든 탄소와 피해, 높아진 안전과 경쟁력으로 매겨질 것이다.

[데스크 칼럼] AI 금융, 경영의 마지막 빈칸은 보안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따질 때 빠지지 않는 숫자가 있다. 순이익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디지털 투자 규모다. 여기에 정보보호 예산과 각종 보안 인증도 경영 성과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고객정보가 무더기로 유출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투입한 예산이 실제 보안 취약점을 해소하고 고객정보 유출을 막는 데 쓰였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벌어진 해킹 사태는 보안 투자의 양과 실제 방어 능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금융회사 16곳에서 약 1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은행에서 시작된 피해가 저축은행과 캐피털사 등으로 번졌고, 여러 금융회사를 겨냥한 동시다발적 공격 정황도 확인됐다. 공격자들은 인터넷, 모바일뱅킹 같은 핵심 거래 시스템 보다 대출 조회 서비스와 영업지원 시스템 등 외부와 연결된 업무 환경을 노렸다. 금융회사가 방어벽을 여러 겹 쌓아 올린 핵심 시스템을 비켜가,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했던 연결 지점이 공격의 통로가 된 셈이다. 이 대목에서 금융 보안의 오래된 관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안은 흔히 예산을 늘리고 규정을 정비하며 점검을 통과하면 개선되는 영역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런 접근의 한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공격자가 취약점을 찾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이 자동화되면, 금융회사가 과거의 사고 유형과 점검 항목에 맞춰 방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심 전산망이 안전하다는 사실도 전체 시스템이 안전하다는 보증이 되지 못한다. 외부업체와 연결된 서비스, 직원이 사용하는 업무망, 영업 현장의 조회 시스템까지 하나의 보안 체계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의 심각성을 키우는 것은 공격 수법이 고도화되는 속도를 금융회사의 방어 체계가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개인정보 유출로 드러났지만, AI 해킹 공격이 송금과 결제 등 핵심 기능으로 향하면 피해는 차원이 달라진다. 금융서비스가 중단되면 해당 회사의 고객 불편은 물론 기업의 자금 흐름과 결제, 가계의 경제활동 전반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금융 보안은 개별 금융회사의 전산 관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라는 의미다. 대응 방식이 근본부터 달라져야 한다. 금융회사는 보안 예산의 증액 자체에 안주하지 말고 실제 취약 지점을 얼마나 정확히 찾아내고 통제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내부 전산망은 물론 외부업체 연계 시스템과 직원 업무망, 영업지원 서비스까지 촘촘한 점검이 필요하다. AI 기반 공격을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감시 체계와 침해 사고 발생 시 피해 확산을 최소화할 대응 훈련도 금융회사의 상시적인 보안 역량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금융당국의 감독방향은 실질적인 보안 역량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예산과 규정을 갖췄다는 사실만으로 고객정보를 지킬 준비가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공격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피해 확산을 차단하는 대응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무엇보다 보안 사고를 전산 부서의 책임으로만 여겨온 인식부터 바꿀 때다. 보안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위험을 감수할 범위를 결정하는 주체는 경영진이다. 사고가 발생한 뒤 실무자의 책임만 따진다면 보안은 경영의 핵심 의제가 될 수 없다. 금융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지만 고객이 금융회사에 기대하는 것은 변함없다. 맡긴 돈과 정보를 안전하게 지켜달라는 믿음이다. AI 시대에도 금융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신뢰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특별기고] 지역별 전기요금제, 구조적 결함부터 바로잡아야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취지는 분명하다. 전력수요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발전설비는 비수도권에 편중된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전력을 먼 거리까지 보내려면 송전망 확충과 유지, 송전혼잡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해 산업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겠다는 방향은 경제적 합리성이 있다. 문제는 취지가 아니라 이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역별 요금 인하에 따른 연간 약 2조 8,000억원의 부담 경감 재원 상당 부분을, 지역별 도매가격제(LMP) 도입에 따른 전력구입비 절감으로 충당할 구상이다. 송전혼잡이 발생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도매가격을 달리 산정해 비수도권 발전사업자의 판매 수입이 줄어드는 구조다. 계통 제약을 가격에 반영하는 것 자체는 효율적 시장 운영의 원칙이지만, 송전망 확충의 책임과 송전제약에 따른 부담을 누구에게 귀속시킬지는 별개의 문제다. 먼저 한전의 역할을 따져야 한다. 한전은 전력구매자이면서 송전망 건설과 운영을 담당한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망이 부족해 혼잡이 생긴다면 해소할 책임도 한전에 있다. 그런데 현재 방식에서는 송전혼잡으로 비수도권 도매가격이 낮아질수록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줄어들 수 있다. 망 확충을 책임지는 기관이 망 부족으로 생긴 가격 차이에서 이익을 얻는 구조로, 확충의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 형평성과 권역 구분도 문제다. 일부 발전공기업은 정산조정계수 등 별도의 정산체계가 적용되는 반면, 민간발전사는 도매가격 변화에 직접 노출된다. 같은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해도 재무적 영향이 다를 수 있다. 또 정부는 소매요금을 11개 지역으로 차등화하면서 도매가격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2개 권역으로만 나눈다. 같은 비수도권이라도 발전설비 분포와 송전제약의 양상은 서로 달라, 실제 혼잡의 지점과 원인을 반영하지 못하면 지역별 가격은 정확한 입지 신호가 아니라 또 다른 왜곡 요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기존 발전설비에 미칠 영향이다. 발전사업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수십 년에 걸쳐 회수하는 장기 사업이고, 이미 건설된 발전소는 입지를 옮길 수 없다. 수익성이 악화되면 설비 유지와 신규투자가 위축되고 조기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안정적 전력공급의 중요성이 커진 지금, 전기요금 인하라는 단기 성과를 위해 중장기 공급 기반을 약화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제도 시행에 앞서 보완책부터 제시해야 한다. 기존 설비에 대한 합리적인 경과조치와 단계적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발전원별·사업자별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도매가격 차이에서 생기는 재원의 귀속과 활용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가격 신호는 미래의 합리적 투자와 입지를 유도하는 수단이지, 과거의 제도를 믿고 투자한 사업자에게 사후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성공은 도입 속도가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정교한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

[기자의 눈] 모순에 갇힌 온누리상품권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명목으로 도입된 온누리상품권이 '대형 약국 쏠림' 현상으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유통·의료 플랫폼 업계에 씁쓸한 전례가 남았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인 닥터나우가 소비자들이 유용하게 쓰던 '온누리상품권 사용 가능 약국 찾기' 기능을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이다. 닥터나우는 정부 및 국회와 소통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적 허점과 플랫폼의 눈치 보기 속에서, 그 피해는 온전히 발품을 팔아 가계 경제를 아끼려던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물론 닥터나우의 결정을 행정기관의 직접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기업으로서는 정책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린 현실적인 판단이었을 수 있다. 정책 변화 하나에 명운이 오가는 스타트업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통탄할 일이다. 이번 일로 민간 기업의 자율성과 혁신이 정치적 외풍에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국 플랫폼이 기능을 중단하면서 소비자의 탐색 비용만 급증하게 됐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의문은 간단하다. 정부가 허용한 가맹점에서 상품권을 사용하는데, 그 사용처를 알려주는 서비스는 왜 사라져야 할까. 약국의 온누리상품권 가맹 자격을 유지하면서 소비자가 약국을 찾아가는 과정만 어렵게 만드는 것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제도의 취지를 살리겠다며 소비자의 알 권리와 편익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약국의 상품권 사용 가능 여부를 안내하는 기능은 위법이나 편법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허용된 합법적 사용처를 소비자가 손쉽게 찾도록 돕는 '편의 서비스'일 뿐이다. 쏠림 현상의 근본 원인은 헐거운 가맹·결제 구조와 정책 설계의 실패에 있음에도, 정부·국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해 플랫폼이 정보 제공 기능부터 지워버린 것은 전형적인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정부가 지켜야 할 것은 정책의 명분만이 아니다. 그 정책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부작용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누구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전통시장 활성화와 소비자 편익, 소상공인 보호와 기업의 혁신은 반드시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어느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정책 설계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플랫폼의 검색 기능을 탓하거나 정보를 차단하는 미봉책으로는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없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EE칼럼] 기후부 출범 1년, 통합의 시너지는 어디에?

지난해 10월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업무와 환경부를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했다. 당시 찬반 논쟁이 많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하나의 부처에서 추진한다는 취지는 납득할만 했다. 필자 역시 출범 직후 칼럼에서 기대와 걱정을 밝히며 전력시장 개방과 배출권거래제 정상화를 성공의 필요조건으로 제시했다. 1년이 지났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난 1일 기후부는 출범 1년 보도자료에서 '통합으로 인한 상승효과'를 증명했다고 자평했다.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확정,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조기 달성 계획, 전력망 접속제도 개선,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 수립 등을 성과로 제시했다. 전기차 100만대 돌파와 히트펌프 보급 확대도 포함됐다. 모두 필요한 정책이고 일부 개선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후부 출범 전에도 산업부와 환경부가 각각 추진하던 일이다. 김성환 장관은 지난해 출범식에서 '시장 메커니즘과 민간의 창의를 활용'한 실효적인 탈탄소 전략 추진을 약속했다. 주목할 대목이다. 탄소중립은 정부가 목표를 정하고 기업에 감축을 요구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투자할 이유가 있어야 움직이고 소비자는 저탄소 제품을 구매할 요인이 생겨야 산다. 시장에서 인센티브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탈탄소에 앞장설 곳은 거의 없다. 전력시장과 배출권시장은 별개가 아니다. 전력시장에서 수급과 계통 상황을 반영한 가격이 형성되면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수요관리 등에 민간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 정부도 낮 시간대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등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소매요금을 결정하고 한전이 판매를 사실상 독점하는 기본구조는 그대로다. 시장의 가격발견 기능과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본격적인 개혁은 보이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 공급의 변동성을 정부와 한전만 해결하려 한다면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가격을 통해 소비자가 전력 사용시간을 조정하고 민간사업자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배출권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발전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2030년 50%까지 확대하기로 했고, 배출권가격이 지난해 11월 1만원 수준에서 올해 9월 말 3만원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가격 상승 자체가 시장 정상화의 증거는 아니다. 기업이 탄소가격을 신뢰하고 장기 감축투자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할당량과 시장안정화 물량을 조절해 가격을 관리하는 데 머문다면 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은 제한된다. 여기에 저탄소 제품시장이 연결돼야 한다. 철강을 예로 들어보자. 수소환원제철에 막대한 투자를 해도 비싼 저탄소 철강을 구매할 고객이 없다면 사업은 지속되기 어렵다. 이번 K-GX 전략에 '저탄소 철강을 사용한 자동차 구매 시 인센티브'라는 구상이 포함된 것은 주목할 변화다. 생산자 설비 지원에서 최종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넓혔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일회성 구매 보조에 그치지 않고, 감축량 인증과 단계적 지원 조정을 전제로 지속 가능한 시장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수요가 늘면 생산이 확대되고, 규모의 경제로 원가를 낮출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감축투자와 배출권 수급 변화가 기업의 수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7일 발표한 K-GX 전략은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의 동시 실현을 내세웠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정부 재정 투입과 민간투자 계획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시장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전력가격, 탄소가격, 저탄소 제품가격이 연결돼 민간이 스스로 투자하고 소비할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 부처 통합의 성적표는 두 조직이 각각 하던 일의 합계가 아니라 통합하지 않았다면 만들지 못했을 새로운 가치에 있다. 기후부 통합을 성공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전력시장 개방과 배출권거래제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두 조직을 합친 것은 각자 하던 일들보다 더 큰 일을 해내려고 한 것이 아닌가. 소비자가 직접 전력 공급자와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배출권 가격이 기업의 실질적인 투자 판단 기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통합 기후부의 목표가 돼야 한다. 그래야 저탄소 제품도 민간의 혁신도 지속될 수 있다. 전력과 배출권이라는 두 축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기후부 통합은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앤 것이 아닌 칸막이를 한 건물 안으로 옮긴 데에 불과하다. 통합으로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답변이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시 분리하자는 주장이 나중에 나오더라도 기후부 역시 딱히 할 말이 없을 테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병역특례 폐지, 더는 미룰 명분이 없다

정부가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를 도입한 게 1973년이다. 대한민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도 많지 않았다. 세계 무대에서 태극기를 올리는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일은 나름의 시대적 명분이 있었다. 국가의 위상을 높인 공적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 명분을 되묻게 한 장면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입대다. 세계 음악시장을 뒤흔든 일곱 멤버는 모두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다. 한국어 노래로 세계 정상에 오른 이들의 국위선양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다. 반면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들은 '전역모'를 썼다. 공적의 크기를 재단할 수는 없다지만, 국가가 그어 놓은 경계의 정당성은 흔들렸다 최근 논란은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일부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병역 혜택 받은 것을 자축하는 언행으로 비판받았다. 야구대표팀의 인터뷰 내용도 공분을 샀다. 개인의 경솔함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병역을 경기 성적에 대한 포상으로 삼아 온 제도가 논란의 뿌리다. 민심도 엄중하다. 에너지경제신문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조사에서 병역특례 축소 응답은 41.1%, 전면 폐지는 32.6%였다. 현행 제도 유지는 21.5%에 그쳤다. 이번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부터 즉시 폐지하는 방안에도 52.4%가 찬성했다. 국회에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따른 일률적인 특례를 없애는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국방부 장관도 단계적 축소와 궁극적인 폐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특별한 국위선양 공적에 대한 예외를 남겼다. 기준만 바꾼 특례가 형평성 논란까지 끝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가대표의 노력과 성취는 존중받아야 한다. 포상금과 선수 육성 지원 등 보상할 방법도 있다. 병역은 성격이 다르다. 청년들은 학업과 생업을 멈추고 복무한다. 병역자원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예외의 근거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제도를 정리하는 과정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이미 정해진 기준을 신뢰한 선수들에게는 합리적인 경과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권을 없애는 일이 또 다른 불공정을 낳아서는 안 된다. 병역제도의 근간은 형평성과 신뢰다. 국가가 예외를 남발하면서 청년들에게 국가에 대한 의무의 신성함을 강조할 수는 없다. 국위선양은 포상할 수 있다. 국방의 의무는 거래할 수 없다. 반세기 전의 명분으로 오늘의 불공정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이슈&인사이트] “사과를 바라시니까…”

이강윤 정치평론가 추미애 경기지사의 “('소방은 재정 빨대'라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바라시니까 사과드린다"에 이어, 같은 민주당 부승찬 의원이 “소방이 재정을 쭉쭉 빨아먹는 건 사실 아니냐"고 추 지사를 거들다 포화를 맞고 있다. 다름 아닌 순직 소방관 영결식이 열린 날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말은 의식의 반영이다. 사과가 적선이나 기부인가. 추 지사의 “바라시니까…"는 '사과할 생각 별로 없고 이유도 잘 모르겠는데 원하니 사과한다'는 걸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실언? 불쑥 나온 실언에도 정도가 있는 법. 추 지사나 부 의원이나 인식체계에 문제가 크다. 두 사람의 개별적 문제도 있지만, 선거분위기에 휩쓸려 저런 인식체계 소유자가 당선된 것 자체가 선거제도의 헛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보루나 합리적인 민의 반영이 아닐 때가 훨씬 많다. 당선자들 면면이 이를 입증한다. 최근 30여년 간 치러진 큰 선거에서 부끄럽지 않은 당선자나 인정할 수 있는 당선자는 매우 드물었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평균 인식수준에도 미달하는 후보들이 선거제도의 허술함과 '빠'를 이용해 득표하고, 당선 후 대표랍시고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잦다. 그런 당선자들때문에 선거는 설탕 입혀진 불량식품으로 전락했다. 다른 큰 당은 말 할 필요조차 없고, 개혁을 지향하며 국정을 담임한다는 청와대/민주당도 신뢰를 잃었다. 인사 문제와 부동산정책, 공소취소 논란, 정직과 도덕성 등에서 문제가 계속 쌓여서다. 집권세력의 본판이자 민낯이다. 통탄스러운 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역사는 그 자체를 반복한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특별할 것 없는 명제를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 우리 사회와 정치는 너무 많은 자원과 시간을 허비해왔고, 집단적 이성 마비를 반복해왔다. 선거라는 열차의 배차시간표에 맞춰서. 반도체로 한두 해 돈 좀 만진다고 공동체가 갑자기 격상되는 거 아니다. 자본은 인간성회복이나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자가증식만을 위해 작동하는 게 자본의 운동논리이자 양식이다. 국정 홍보에 코스피지수를 동원하고 선거 때 업적으로 내세운 건 조미료 입혀 튀긴 불량 식자재를 손님 상에 낸 격이다. 코스피지수가 8000에 이르렀을 때 청와대는 기고만장하며 “국내 증시, 아직도 저평가"라고 기염을 토했다. 주가란 오르내리기 마련임을 모를 리 없건만 위험천만한 무모함이었다. 증시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생산활동이 아니라 머니게임 요소가 강한 금융상품이다. 보험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극해 만들어진 상품이듯, 증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에 인간의 욕심을 믹스해 만든 일종의 '카지노 칩'이다. 마지막 입장자(매수자)가 폭탄을 덤터기쓸 수 있다는 점에서 펀지 사기와 닯은 점도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된 금융위기나 공황, 폭등락에 따른 시장붕괴 등이 그 반증 목록이다. 투자자들은 '내가 갖고있는 동안만은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폭탄돌리기 게임에 참여한다. 증시는 국가가 개설했으니 사설 카지노라는 생각은 덜 하게 되는 '마취효과'도 있을 것이다. 정치와 양극화, 공교육이 지금 상태인 한 미래는 없다. 가장 중요한 정의와 공정, 공평이 무너져 있는데, 그래서 최소한의 신뢰조차 깨진지 오랜데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이 상태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전리품 배분같은 자리다툼, △소명이라고 포장한 사적 권력욕, △의전 중독과 권위주의, △봉건적 제왕과 충성경쟁-권력투쟁만 반복될 뿐이다. 차 탈 때 차비 내듯, 수업 끝나면 수업료 낸다. 그 차나 그 수업이 그 돈 가치가 있었는지는 곧 알게 된다. 그러나 깨달음은 대개 늦기 일쑤다. 각성과 전면적 리셋, 개혁이 절실하다. bienns@ekn.co.kr

반도체 호황 이후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이익은 지속될 수 없다." “AI 기술 발전으로 4년 내 미국 경제가 50% 성장할 것이다." 주요국 증시가 급락하며 AI 거품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한쪽은 AI 투자 기업들이 수익을 내기도 전에 과도한 빚에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른 한쪽은 AI 기술로 모든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며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상반된 주장은 최근에도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니스트 제임스 매킨토시는 'AI 증시의 흔들림이 일깨워주는 사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AI 관련 기업들의 막대한 이익이 몇 년 안에 꺾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이 끝나면 반도체를 비롯한 관련 부품과 설비 수요가 급격히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AI 수혜를 입은 빅테크 기업 수장들은 여전히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잭 클라크 앤트로픽 공동 창업자는 한 행사에 참석해 AI 발전이 현재 30조 달러대인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2030년 44조 달러까지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AI가 모든 산업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며 상상을 초월한 미래가 펼칠 것이라고 역설했다. 투자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낙관론이 힘을 얻을 때는 주가가 급등했다가 비관론이 고개를 들면 급락하는 흐름을 반복한다. 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인 한국 증시의 변동성은 특히 심하다. 시장이 방향성을 잃고 헷갈리게 할 때는 과거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드 챈슬러의 저서 '금융 투기의 역사'에 소개된 역대 거품 붕괴 사건에 비춰 현재 상황을 유추해 보면 '위험 구간'에 들어온 듯하다. 자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직전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약한 고리에서 파열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다가 AI 데이터센터로 주력 사업을 바꾼 '코어위브'의 최근 주가 폭락은 더 큰 거품 붕괴의 트리거를 예고하는 경고음일 수 있다. 이 회사는 엔비디아에서 만든 AI 칩을 구매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에 데이터센터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업한다.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천문학적 자금을 빌렸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거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전에 위기를 알리는 신호가 적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발 빠르게 대처한 투자자는 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AI 거품도 언젠가는 꺼지게 돼 있다. 빠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늦어도 2~3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까지 끌어올린 반도체 호황도 막을 내릴 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 경제의 민낯이 드러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니어재단과 공동으로 '한국경제: 지금 서 있는 곳, 가야 할 길'을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반도체를 제외하면 우리 경제는 이미 정체 또는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굳이 수치로 분석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올해 상반기 1인당 국민총소득(GNI) 증가분의 약 80%는 기업의 자본소득인 것으로 추정했다. 근로소득 증가분은 16.5%에 그쳤다. 반도체 호황으로 기업 이익이 늘어난 데 반해 내수 침체로 실질 임금은 정체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반도체 호황이 끝난 뒤 대책을 지금 세워야 한다. 일부 대기업에 쏠린 반도체 호황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그렇다고 초과 세수를 현금으로 나눠주는 손쉬운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문제와 청년 일자리 부족 등 시급한 현안을 풀 열쇠도 내수 경기 활성화에 있다.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유도하려면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투자를 막는 규제를 푸는 수준을 넘어 투자를 촉진할 파격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각 부처 장관들은 창의적인 정책 발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발상의 전환 없이 구태의연한 기존 방식으로는 반도체 호황 이후 직면할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기자의 눈] 대한항공의 ‘고삐 풀린 표값’은 어디에 있나

국정감사는 정부 정책과 기업 활동을 검증하는 자리다. 기업에 추가 제재를 요구하는 국회의 주장도 검증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항공권 가격이 문제라면 어떤 노선에서, 언제부터, 얼마나 올랐는지부터 제시해야 한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12일 배포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 관련 보도자료는 이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제목에는 '고삐 풀린 항공권 가격'을 내걸었지만 공개한 통계는 여객 수와 시장 점유율이었다. 구조적 조치 완료 이후의 평균 운임과 인상률, 경쟁 항공사와의 가격 비교는 없었다. 가격을 문제 삼으면서 가격을 보여주지 않은 셈이다. 의원실의 문제 의식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대형 항공사 간 기업 결합으로 경쟁이 약해지고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러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실제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판단 사이에는 입증의 과정이 필요하다. 높은 점유율만으로 그 간격을 메울 수는 없다. 항공권은 예약 시점과 좌석 등급, 할인·환불 조건에 따라 판매 가격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비교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좌석 등급별·분기별 평균 운임을 기준으로 2019년 대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인상 한도를 적용해 왔다. 위반을 적발해 제재한 사례도 있다. 공정위는 작년 아시아나항공의 4개 노선 평균 운임 인상 한도 초과에 대해 이행 강제금을 부과했다. 대한항공 측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이 사실을 지울 수는 없다. 동시에 의무 적용 기간에 발생한 과거 위반을 규제 종료 이후의 가격 상승을 입증하는 자료로 대신할 수도 없다. 이번에 문제 삼은 기간의 운임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규제가 왜 종료됐는지도 짚어야 한다. 공정위는 운수권과 슬롯 이전 등 구조적 조치를 이행하면 해당 노선의 운임·공급 제한을 해제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구조적 조치가 완료되지 않은 노선에는 행태적 조치를 계속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쟁사의 진입이 없다는 이유로 운임과 공급에 관한 의무까지 사라지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 만큼 구조적 조치를 마친 노선의 제한 종료를 기업이 규제의 빈틈을 이용한 결과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당국이 정한 조건을 이행한 데 따른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 조건이 충분한 경쟁을 만들지 못했다면 제도의 실효성을 따져야 한다. 기업의 조건 위반과 정책 설계의 한계는 다른 문제다. 의원실이 붙인 통계에도 설명이 필요한 변화가 있다. 인천-LA의 대한항공·아시아나 합산 점유율은 2019년 100%에서 올해 상반기 79%로 낮아졌다. 바르셀로나는 100%에서 62%, 로마는 80%에서 59%, 프랑크푸르트는 67%에서 42%로 내려갔다. 합병 전 독립적으로 경쟁하던 두 회사의 점유율을 더한 값과 합병 이후 수치를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하락만으로 경쟁 문제가 해소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로 신규 사업자가 확보한 고객과 경쟁 구도의 변화를 평가에서 빼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추가 제재를 요구하려면 기존 조치가 무엇을 바꿨고, 무엇을 바꾸지 못했는지부터 분석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높은 점유율에는 시장의 선택도 작용한다. 의원실이 인용한 익명 항공업계 임원도 대한항공의 노선망·운항편 수·환승 수요·브랜드 충성도를 경쟁 우위의 배경으로 꼽았다. 소비자가 운항 시간·연결 편의·서비스에 대한 신뢰 등을 비교해 대한항공을 선택했다면 그 결과로 확보한 점유율은 기업 경쟁력의 성과다. 기업이 경쟁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며 그 선택이 시장 점유율로 나타나는 것이 시장 경제의 작동 방식이다. 경쟁 정책이 보장해야 할 것은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이지 사업자 간 점유율의 균등 배분이 아니다. 운수권과 슬롯 이전 등 정해진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추가 제재를 요구하려면, 소비자의 선택과 별개로 어떤 경쟁 제한 문제가 남아 있는지 밝혀야 한다. 물론 항공은 규제 산업이기에 높은 점유율 전부를 소비자 선호의 결과로 단정할 수 없다. 그런 것처럼 소비자가 선택해 쌓인 경쟁력까지 규제 실패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프랑크푸르트 노선도 마찬가지다. 의원실은 트리니티항공의 운항 중단과 철수 가능성을 들어 대한항공 계열의 재독과점을 우려했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 기재된 외항사의 올해 상반기 여객 비중은 약 40.1%다. 트리니티항공이 빠지면 경쟁이 약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외항사의 공급 능력과 증편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은 채 시장의 향방을 단정할 수는 없다. 반납 운수권을 대한항공을 위시한 한진그룹 계열이 재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재배분 기준과 국내외 시정 조치상 조건을 제시해야 검증이 가능하다. 신규 항공사가 들어오지 않는 이유도 조사 대상이다. 의원실 스스로 항공기 확보·운항 비용과 불확실한 수익성을 원인으로 들었다. 기재와 자금, 사업 전략의 문제인지, 이전받을 슬롯의 조건 때문인지, 기존 사업자의 경쟁 제한 행위 때문인지에 따라 해법은 달라진다. 항공사마다 환승 수요와 화물 수입, 고객 구성, 비용 구조가 다르다. 따라서 진입 부진을 지적하는 데서 멈춰 대한항공에 추가 부담을 요구하면 원인과 처방이 어긋날 수 있다. 공정거래법도 높은 시장 점유율과 지위 남용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된다는 사실이 곧 부당한 가격 인상의 증거는 아니다. 시장 지배력은 검증의 출발점이지 모든 결론을 대신하는 숫자가 아니다. 추가 제재도 구호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 기존 승인 조건을 바꾸자는 것인지, 새로운 위법 행위를 제재하자는 것인지부터 명확해야 한다. 조건 이행에 따라 제한을 종료한 뒤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려면 그 근거와 절차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예측 가능성과 소비자 보호를 함께 논의할 수 있다. 규제는 내용에 따라 경쟁을 촉진할 수도, 공급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 추가 조치가 운임과 좌석 공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체 항공사는 그 공급을 감당할 수 있는지 검토하지 않고서는 소비자에게 이로운 처방인지 알 수 없다. 규제를 더한다는 사실만으로 소비자 보호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박상혁 의원실의 보도자료에는 그런 판단에 필요한 핵심 자료가 빠져 있다. 운임 비교 수치도, 진입 부진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 분석도, 추가 제재의 대상과 방식도 제시되지 않았다. 공개 자료의 범위에서 보면 검증보다 제재 요구가 앞섰다. 국감 준비의 충실도는 보도자료 제목의 강도로 입증되지 않는다. '고삐 풀린 항공권 가격'을 문제 삼았다면 규제 종료 뒤 가격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줘야 한다. 대한항공에 설명 책임을 요구하는 국회라면 자신의 주장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박 의원실이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은 더 강한 제재 요구가 아니라 그 요구를 뒷받침할 운임 자료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