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이코노미] ㊦ “시니어, 소비·생산 주체…‘장수 경제’ 나아가야”

[실버이코노미] ㊦ “시니어, 소비·생산 주체…‘장수 경제’ 나아가야”

“실버비즈니스가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되기 위해선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시니어를 돌봄 대상으로만 봤다면,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소비·생산 주체로 인식해야 하죠. 모든 산업에 걸쳐 연령주의(Ageism)에 대한 고정 관념이 해체돼야 합니다." 이충우 숙명여대 사회복지대학원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연령의 개념을 출생연도 기준인 '캘린더 연령'으로 정의해왔고, 모든 정책·사회 복지의 기준점도 출생연도로만 적용해왔다"며 “개인의 기능적 역량에 맞춘 고용·교육·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면, 단순히..

[기자의 눈] ‘코스피 5천·반도체’ 빛에 가려진 소재산업

“지금 뜨고 있는 AI와 반도체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지만, 석유화학 같이 구조 개편이 시급한 산업은 흥미를 끌기 어렵지 않을까요?"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랐던 업계 한 관계자가 소재산업 해설 기사를 써보겠다는 기자의 말에 보인 반응이었다. 호황기에서 침체기로 접어든 석화산업을 바라보는 애정과 함께 아쉬움이 깃든 표현이었다. 몇 달 전 들은 이 말이 올해 설 명절을 보낸 뒤 떠올랐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5000선을 돌파해서인지 많은 집의 명절 밥상에 주식 이야기가 화두 중 하나로 올라왔다. 주식 얘기의 대부분은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돌파한 삼성전자와 최근 6개월간 640조원으로 217% 오른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차지했다. 소재와 에너지산업도 상승세를 보였지만 '불장' 종목에 비할 바가 아니다. 코스피 200 철강/소재와 에너지/화학 지수는 각각 25.37%, 45.25% 올랐다. 주주 배당 같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의 효과가 반영된 결과다. 일부 종목을 제외하고는 공급 과잉과 부진한 수익성으로 개미 투자자들이 넣으면 '물리는(주식 가치가 투자 원금 수준으로 회복할 때까지 기다림)' 종목이 돼버렸다. 주식 투자 목적은 원금 대비 수익을 내는 것이니 성장성이 돋보이는 종목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렇더라도 모든 산업을 주식 시장에서 매기는 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 철강사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제조업을 떠받치고, 석유화학 기업이 생산하는 소재가 장비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구조물과 강관 등 제조 설비의 뼈대는 철강 소재 없이 건립이 불가능하다. 석유화학 소재는 전기자동차용 고효율 타이어부터 고순도 환경을 요구하는 반도체 핵심 공정까지 구현해줬다. 코스피 5000 달성은 분명 한국 기업들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코스피 상승만 바라보다 성장 속도가 조금 더딜지라도 산업의 근간인 소재산업을 잃지 않을지 걱정된다. 지금은 한국 경제가 성장할 기회이자 잠시 한숨을 돌릴 빈틈이다. 마침 지난해 말 K-스틸법과 석화산업 특별법이 제정됐고, 소재기업들의 미국 현지투자로 공급망 재편에 참여할 교두보도 마련됐다. 구조재편이라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딘 뒤 철강사와 석화사들이 고성능 첨단 소재로 글로벌 공급망의 '수퍼 을(乙)'이 될 날을 기다린다. 정승현 기자 jrn72benec@ekn.kr

[이슈&인사이트]대부업 위축 소비절벽, 제도 개선으로 내수 회복 돌파구 찾자

최근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와 대출 규제 강화가 가계부채 급증 억제 측면에서 정책적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 문턱이 높아지며 실수요자·취약계층의 자금 수급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은행과 제2금융권은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신용도·소득 요건을 강화하고, 저신용·소액 대출 대상은 사실상 대출의 '대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해당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가계 여건은 가계지출 축소, 의료·교육 비용 유예, 소비 연기 등으로 나타나며 내수 회복 속도를 둔화시키는 구조적 리스크로 증가하고 있다. 대부업의 경우 정부가 2021년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인하한 이후 전체 대출 잔액과 신용대출 공급 규모가 감소했다. 대부업권의 경우 차주의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반영한 대출금리 인상에 한계가 있어, 담보대출로 전환하면서, 저신용 개인 차주의 금융 접근성이 약화되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고객 수는 2019년 177만 명에서 2025년 상반기에는 71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일본의 대부업에 해당되는 대금업은 1990년대 이후 은행의 대출 문턱을 높이는 상황에서 금융소비자에 대한 무담보 대출 공급을 통해 금융지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금 협회 중심의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과대대출과 고금리 대출 공급을 경계하면서, 은행 대출 공백을 메우는 안정적 소액 무담보 신용공급자로 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대금업은 저신용 차주에게 안정적 소액 신용대출을 제공하며 소비 여력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유럽·미국 등 선진국 일부에서는 법정 최고금리나 고위험 대출에 대해 시장금리 연동제·유연한 금리 상한 구간을 마련해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 차주가 만기 연장을 통해 파산이나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지하는 정책적 시도가 있었다. 즉,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 차주가 만기 연장을 통해 일시 상환 압박을 피할 수 있도록 법정 최고금리나 금리 상한을 시장금리에 연동해 유연하게 조정하였다. 또한, 고위험 대출의 경우 만기 연장, 상환기간 분할, 금리 재조정 등의 조건을 허용해 파산이나 사채 시장으로의 내몰림을 줄이는 정책적 시도가 있었다. 현재 연 20%로 고정된 법정 최고금리제도는 대부업자들이 대출을 줄이거나 저신용 차주를 배제하는 '역설'을 만들었다. 이로써, 금융시장에서의 금융사의 조달금리 변동분을 반영해 최고금리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시장금리 연동형 최고금리' 제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동 제도는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 차주가 제도권 대출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고, 만기 연장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한편, 대부업의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조달 방법을 다원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은행 대출이 대부업의 주요 자금조달 경로지만, 이를 유동화증권(ABS)으로 다양화하면 발행금리를 낮추어 대출금리 인하 여지가 커진다. 최근 금융당국이 서민금융회사·중견·중소기업에 대해 ABS 발행 대상 및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의 자산유동화 관련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즈음해서, 대부업도 은행 또는 여신전문금융업체 수준으로 공모 및 자산유동화 구조 측면에서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 즉, ABS 발행 요건, 기초자산 범위, 금리 구간(저금리 대출 비중 의무) 등에서 규제 완화시 대부업의 조달비용 절감은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금리 연동형 최고금리 도입과 ABS 발행 규제 완화를 통해 대부업의 조달비를 절감할 경우, 저신용·저소득 취약 차주에게도 낮은 금리·합리적 만기 구조를 제공할 수 있다. 이로써, 취약계층의 상환 부담이 줄어들게 되면 취약계층의 가계 소비가 회복되는 등 내수진작 효과가 기대된다. 2024년 발표된 캐나다 중앙은행 보고서는 대출금리 인상 시 중·저소득 가계의 소비가 크게 줄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동 보고서는 한계적 가계일수록 이자 부담 증가에 대해 소비 감소 효과가 크다고 지적한다. 또한, 반대로 대출금리 인하 등 채무부담 완화가 이루어지면, 중·저소득·이자부담 비중이 큰 가계에서 좀 더 소비가 민감하게 회복된다는 미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아티프 미안(Atif Mian) 교수의 연구도 제시된 바 있다. 결론적으로 가계부채 규제 강화와 최고금리 인하로 대부업이 위축되며 취약계층의 자금 공백과 소비 위축이 내수 회복을 저해하고 있다. 시장금리 연동형 최고금리 도입과 ABS 발행 규제 완화를 통해 조달비 절감→낮은 대출금리 제공→취약 차주의 상환 부담 완화→가계 소비 회복의 경로를 열어야 한다. 대부업을 취약계층의 금융 안전판이자 내수진작을 위한 정책 축으로 재정립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bienns@ekn.co.kr

남대문시장 닮아가는 한국 경제

1990년대 말 유통 분야 담당 기자로 남대문시장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 이때만 해도 남대문시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쇼핑객들이 찾았던 곳이었다. 기사 발굴을 위해 아동복과 숙녀복 등 품목별 상인 회장들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관리 회사인 남대문시장주식회사에 친한 취재원을 두기도 했다. 설이나 추석 명절을 앞두고는 의례처럼 남대문시장 르포 기사를 썼다. 이곳이야말로 밑바닥 경기를 가장 잘 알려주는 상징적 장소였기 때문이다. 명절 무렵 남대문시장은 '대목'이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다. 상점들 사이 좁을 통로를 걷다보면 어깨가 부딪치고 주변 사람의 발이 밟힐 정도였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은 쇠락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남대문시장 공실률은 20%에 육박한다. 비인기 상가는 10곳 중 7곳 넘게 비워져있다고 한다. 한때 수억 원에 달했던 권리금은 사라진지 오래고, 보증금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니 격세지감이 든다. 남대문시장은 여러 측면에서 성장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를 떠오르게 한다. 쇠락의 원인이 변화해야 할 때 변화를 거부한 사실에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남대문시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재개발이 절실했다. 2만 개가 넘는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물리적 환경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된 상황에 맞춰 '전통시장'만의 장점을 살리는 전략을 찾아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남대문시장의 변화는 느리기만 했다. 1970년대부터 재개발 논의가 있었으나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화는 거의 없었다. 건물주와 임차인, 상인들이 각자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여기에 더해 노점상들의 생계 문제도 걸려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됐으니 600년의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공사 중에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국보인 숭례문이 인접해 고층 개발이 힘들고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한국 경제도 남대문시장처럼 외통수에 걸려있다.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 세력이 이무기처럼 똬리를 틀고 변화와 개혁을 막고 있다. 정치권만 해도 그렇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주요 정당은 참신한 인재보다는 권력자에 가까운 사람을 공천하려고 한다. 경제 정책도 말로는 중소벤처기업이 중요하다면서도 실제로는 대기업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 혁신과 성장의 원천이 될 모험 자본은 구색용일 뿐이고 대규모 정부 지원은 대기업에 쏠려있다. 노동 시장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정규직 목소리만 크고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대리기사와 프리랜서 같은 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특고) 등 근로 환경과 조건이 개선돼야 할 노동자들의 외침은 잘 들리지 않는다. 변화를 외면한 대가는 처참한 경제 지표로 나타난다. 잠재성장률은 0%대로 수렴 중이며 청년 일자리는 점점 말라간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그냥 쉴 수밖에 없는 청년이 70만 명이 넘는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어 6000으로 향하고 있으나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내수 침체가 길어지며 폐업하는 소상공인이 연간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오르는 것 역시 성장을 견인하기 보다는 부와 소득 양극화를 심화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설 명절을 앞둔 1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제 대한민국을 바꿀 기회가 왔다. 부동산 공화국을 극복하는 것이든,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든, 공정하고 합리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든, 성장·발전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든 두려움을 모두 떨쳐내고 촌음까지 아껴 사력을 다하겠다." 이런 간절함이 결실을 맺으려면 가장 먼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린 기득권 세력의 교묘하면서도 굳건한 벽을 해체해야 한다. 이들을 보호하는 제도와 규제를 혁파하고 '창조적 파괴'에 인재와 자본이 몰리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혁신의 불씨가 살아나고 일할 곳이 없어 절망의 늪에 빠진 청년들을 구할 수 있다. 장박원 편집국장 jangbak@ekn.kr

[신율의 정치 내시경] 제명 정치의 역설: 국민의힘은 왜 약체가 되는가

지난 2월 10일, 국민의힘 장동혁 전 최고위원이 마침내 제명당했다. 한동훈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제명된 인사다. 현재는 친한계로 분류되는 배현진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이다. 상황이 이러니 '정적 제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적인 정당이라면, 다른 의견을 개진하거나 당 대표나 당권파를 비판하더라도 이를 '소수 의견'으로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은, 이런 비판을 '소수 의견'으로 수용하기는커녕,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는 식의 '해석'을 남발하고 있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제명 결정과 관련해 당 윤리위는 “당 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으로 구성된 정당을 대표하는 기관이며, 단순한 자연인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정당 기관에 해당한다"며, “당의 리더십과 동료 구성원, 소속 정당에 대한 과도한 혐오 자극성 발언은 정당한 비판의 임계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이는 당 대표를 하나의 '기관'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논리는 근대 초기에 존재했던 '국가 유기체론'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 유기체론이란, 국가는 살아있는 생명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군주가 국가를 가시화하는 존재라는 사상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가 유기체론이 '정당 유기체론'으로 탈바꿈한 것 같다. 설령 당 대표가 하나의 '정당 기관'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 기관에 대한 비판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논리의 근거가, 당 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이기 때문이라면, 이는 군사 권위주의 시절의 '국가 원수 모독죄'를 연상시킨다. 장 대표가 지금 보여줘야 할 것은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이다. 그러나 그는 징계나 수사라는 비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스스로 정치력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것임과 동시에, 자신의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윤리위나 감사위 등을 활용해 당내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당을 운영하면 결국 국민의힘을 약체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약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거 한나라당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친박계와 친이계가 공존하며 권력 투쟁을 벌였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대 계파를 제명하거나 당 밖으로 축출하는 극단적 방식은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공천 학살'과 같은 정치적 보복은 존재했지만, 징계나 수사 의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적을 제압할 때 정치적 수단을 주로 활용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에 극단적인 징계 수단을 자제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친박과 친이가 번갈아 당권을 장악하고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내 계파가 번갈아 가며 당권을 확보하면서 국민에게 '정치적 신선감'을 제공했고, 이런 '신선함'을 통해 '정권 재창출'을 '정권 교체'라고 국민이 인식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장 대표처럼 상대 계파를 아예 당 밖으로 축출할 경우, 국민의힘은 획일적인 강성 집단으로 전락해, 국민들에게 전혀 신선함을 제공할 수 없는 정당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제명하지 않았는데, 한동훈 전 대표는 제명했다는 이유로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종혁 전 최고위원을 제명하고, 배현진 의원을 징계하려 하니, 중도층은 국민의힘을 더욱 외면할 것임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다가올 선거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그것이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신율

[기고] 고로(高爐)가 꺼진 자리,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던 철강이 녹슬고 있다. 글로벌 관세 장벽은 높아지고 탄소 중립이라는 파고는 거세다.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들은 100년 넘게 태워온 석탄 고로를 끄고,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생존을 위한 혁신이다. 그러나 막상 불을 끄니 더 무서운 적이 나타났다. '전기요금'이다. 전기로는 말 그대로 전기로 쇳물을 녹인다. 에너지가 곧 원가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난 3년간 70% 넘게 급등했다. 제조 원가의 임계점이 넘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계산서를 들이민다. 대(對)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적용 대상 품목의 수출액 중 약 90%가 철강이다. 피할 길은 없다. 철강 기업들은 진퇴양난이다. 탄소를 줄이려 전기로를 도입했더니 비용 폭탄을 맞고, 그 전기마저 '그린'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출길에서 페널티를 받는다. 제조 원가는 치솟는데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다. 이것은 경영 난이도가 아니라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대형 철강사는 그나마 낫다. 진짜 위기는 그 아래 수천 개의 중견·중소 철강 가공 업체들이다. 주조, 금형, 표면처리 등 뿌리 산업 기업들은 대기업보다 전력 의존도가 높다. 이들에게 '비싼 전기료를 내고, 웃돈을 얹어 RE100을 이행하라'는 요구는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같다. 지금의 전력 시장 구조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몇 개 짓는다고 해결될 물량이 아니다. 게다가 송전망 건설 지연으로 전기를 끌어오기도 쉽지 않다. 공급은 부족하고 가격은 비싸다. 이대로면 한국 철강은 탄소세에 짓눌려 고사(枯死)할 것이다.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먼 곳의 대형 발전소만 바라볼 게 아니다. 우리 머리 위를 봐야 한다. 철강 산단, 공장 지붕, 유휴 부지 등 전국에 흩어진 '롱테일(Long-tail)' 자원이 해답이다. 우리는 이 흩어진 자원들을 IT 기술로 묶어 거대한 '가상발전소(VPP)'를 만들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첫째, 규모의 경제다. 수천 개의 지붕 태양광을 하나로 묶으면 대형 발전소 못지않은 공급 능력이 생긴다. 둘째, 가격 경쟁력이다. 복잡한 유통 단계를 줄이고 플랫폼을 통해 직거래하면, 중소 철강사도 감당 가능한 가격에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다. 셋째, 접근성이다. 기업 규모에 맞춰 필요한 만큼만 전력을 '구독'하는 방식이다. 과거의 철강 산업 경쟁력이 '누가 더 뜨거운 불을 지피느냐'였다면, 미래의 경쟁력은 '누가 더 똑똑하게 전기를 쓰느냐'에 달렸다. 전국의 공장 지붕에서 생산된 전기가, 그 아래 공장의 전기로를 돌리는 구조. 지역에서 생산해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시스템만이 송전망 병목과 비용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철강은 여전히 대한민국 제조업의 척추다. 척추가 무너지면 전신이 마비된다. 고로의 불꽃은 꺼져가지만,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에너지는 이미 준비돼 있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받아들일 시장의 결단이다. 데이터로 연결된 햇빛만이 녹슬어가는 철강을 다시 빛나게 할 수 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북한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남한이 참여한다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지 1년이 지난 2014년 1월 1일 육성 신년사에서 “한 와트(W)의 전기도 극력 아껴 쓰도록 하며 나라 살림살이를 깐지게(까다로울 정도로 빈틈없고 아무지게) 해나가자"고 전기 절약 투쟁을 강조했다. 10여년이 지난 현재는 과거보다 전력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그 나마 나아진 전력도 모든 곳이 균등하게 나아진 것이 아니다. 김정은이 허락한 곳, 그의 통치에 꼭 필요한 곳에서만 나아졌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의 소리(VOA0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내각을 통해 평양에는 무조건 전력을 공급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따라서 하루 5시간 정도 전기 공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대부분 60~80W의 낮은 전압이 들어와 전기 사용에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대북 제재가 풀리고 난 후 북한 산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중국에서 중간재와 자본재, 부품 등 상당한 규모의 조달이 돼야 한다. 현재는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과 우호국으로부터 수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남북 관계가 개선돼 경제협력이 추진 된다면 우선적으로 북한의 심각한 전력 해결을 위해 남북 간 협력이 논의 되어야 한다. 2019년 10월 북한이 중국에 태양광발전소 투자를 대가로 희토류 채굴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중국 희토류산업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제안 내용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의 한 고위급 관료는 중국 라오닝성 선양시에서 열린 회의에서 “북한의 전력난 해결을 위해 중국이 태양광발전소 건설에 투자하면 이에 대한 대가로 황해도 철산군 희토류 광산 개발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중국 희토류협회는 평양에 매일 250KW의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광발전소 건설에 약 25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이 같은 내용을 보도 했으며 중국 내 희토류 업계 관계자를 이용해 “북한의 제안을 세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대북 투자는 국제적으로 안전하지 못하지만 상호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좋은 사업성을 평가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재생에너지 개발 및 보급 확대에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북한은 풍부한 석탄을 보유하고 있지만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 북한은 필요한 에너지 자원을 무역으로 확보하지 않고 자체 보유한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자급자족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북한의 에너지 공급량은 남한의 5~10% 정도로 전력 공급의 어려움이 상당하다. 하지만 북한은 외화를 필요로 하는 석유를 최소화하고 석탄을 중심으로 에너지 생산 및 소비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 전력은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석탄과 수력에 의존해 석탄을 이용한 화력과 수력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 결과 북한 전체 에너지 수급 구조를 낙후시킨 중요한 요인이 됐다. 또한 설비의 노후화, 에너지원 공급의 감소, 발전 및 송배전 체계의 불안, 중공업 우선의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로 인해 전력난이 심화됐다. 사회주의 경제권 해체에 따른 대외 지원 감소와 북핵 문제에 따른 국제사회의 원조 축소 등도 북한의 전력난을 가속화 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북한의 발전설비 용량은 2020년 기준 766만㎾(남한: 전력거래소 2024년 말 기준 총 152,768MW)이다. 북한의 수력과 화력발전 비율은 수력 60%, 화력 40%이며, 대형 발전소 60개 등 중소형 발전소 포함해 약 1,190여개가 있다. 특히 화력발전소는 대부분 평양과 그 주변 지역에 건설돼 있다. 이들 발전소는 대부분 30년 넘는 설비가 73% 정도 차지해 약 65%가 개보수 또는 폐지 대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이 북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우선적으로 친환경에너지 차원에서 태양광 발전을 얘기할 수 있다. 지난해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장관은 “호혜적, 다자적. 획기적 협력 구상을 통해 남북 교류 협력을 재기하겠다" 며 그 한 방안으로 북한과의 광물 교역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신평화 교역 시스템 구축을 위해 북한 광물과 희토류를 남한에 수출하면 남한은 그 대금을 에스크로(ESCROW) 자금 중계 계좌에 넣으면 국제사회가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검증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에스크로는 국제 무역 거래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결재 방식 또는 특정 조건이 충족될때까지 자금이나 자산을 보관하는 중립적인 제3자 서비스를 뜻 한다. 북한이 광물을 수출하면 남한은 수입 대금을 에스크로에 지급하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은 그 금액으로 민생 품목 등을 수입하는 방식이다. 북한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코발트, 니켈, 흑연과 희토류, 텡스텐 등 각종 핵심광물이 매장되어 있으며 특히 희토류, 텡스텐, 몰리브덴, 흑연, 마그네사이트 등의 매장량은 세계 10위권 내에 들어갈 정도로 풍부하다. 따라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극심한 전력난 해소를 남한이 지원하고 그 댓가로 남한 산업에 필요한 광물을 반입하는 남북 상호 협력이 가능하다. 북한은 현재의 경제 상황 및 운영 시스템으로는 전력 부족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남북 간 협력이 재기되면 정부 차원에서 우리의 우수한 발전 설비와 관리 노하우를 북한에 전수해 북한 산업과 주민 생활에 도움을 줘야 한다. 이것이 남북 교류의 물꼬를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bienns@ekn@co.kr

[기자의 눈] 부동산 정책, 건전한 비판이 속도 높인다

'1·29 도심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이 발표된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거의 매일 부동산 관련 이슈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지적한 대상에는 언론도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다주택자의 눈물'과 같은 제목의 기사 링크를 인용하면서 언론들이 다주택자 등 부동산 기득권의 편을 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주권정부의 부동산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일부 언론이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판단인 듯 하다. 이 대통령이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배경엔 언론의 책임도 없지 않다. 과거 문재인 정부 당시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 할 때 대부분 부동산 기사는 강남 신축 아파트의 가격 폭등을 주요 이슈로 다루면서 문 정부의 국토부 장관인 김현미 전 장관의 실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대통령의 '부동산 전쟁' 행보엔 문재인 정부처럼 일방적인 언론의 비판보도에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사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망국병'은 시급히 극복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맞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개혁 의지가 아무리 정당성이 높다고 해도 모든 언론과 기자들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의도는 좋았다'는 식으로 '명비어천가' 보도를 할 수는 없다. 이번 1·29 대책도 일선 부동산 현장 기자들이 보기엔 분명히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2020년 문재인정부의 8·4 대책에서 주택공급 후보지로 거론됐다 공급이 좌초된 용산, 과천, 태릉 등등이 다시 주택공급 후보지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 지역들이 다시 공급 후보지로 선정된 이유, 즉 주민·지자체 등과 협의 여부나 노출된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지에 대해 설명은 미흡했다. 당시 브리핑 현장에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과거와 다르다"는 원론적 답변을 하는데 그쳤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린다. 과천 경마장 이전을 둘러싸고 한국마사회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서울시도 용산국제업무지구 주택 공급량 확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부의 주택 공급 일정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청와대 고위 관료가 부동산 대책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 간부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민주 정부를 내세우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시행했던 보도지침의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여론의 건전한 비판은 부동산 정책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오히려 실행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김병헌의 체인지] 정청래 민주당은 정말 원팀인가

최근의 장면부터 보자. 2차 특검 검사 지명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우려와 조율 요청이 있었음에도, 해당 인사의 철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뒤늦은 사과가 있었지만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밀어붙였고,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했다는 전언이다. 봉합국면으로 들어서던 11일. 2차 특검 검사 지명 관련해 더 놀라운 일이 터졌다. 2차례 요청에도 후보를 추천한 이성윤 최고위원이 철회를 거부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이 일부 언론에서 보도됐다. 후보를 추천한 이성윤 최고위원은 극구 부인하면서 진실게임 공방으로 가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에 대한 진정성은 물론이고 후보 선택 과정에 대한 의구심도 다시 커지는 모양새다. 당정간의 조율의 문제, 팀워크의 문제, 방향의 문제 등에 심각한 균열을 방증한다는 반응들이다. 많은 국민들도 묻기 시작했다. 정부와 여당은 정말 원팀인지를?. 민주당은 집권여당이다. 대통령은 부동산과 물가, 외교 현안 등 민생 과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정청래 대표의 최근 행보만 해도 다른 곳을 향한듯 했다. 조국당과의 통합 시도는 요란하게 출발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통합이 전략이었다면 준비가 부족했고, 명분이었다면 설득이 약했다.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갈등과 소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메시지는 희미해졌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만 애기하는게 아니다. 섬뜩한 부분은 반복성이다. 시간을 거슬러 보면, 청와대의 주요 발표가 있을 때마다 민주당 내부 이슈가 동시에 부각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 우연일까. 공교로웠을 뿐일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의심을 사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마치 일부러 갓끈을 고쳐 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쎄한 느낌이 반복되면, 그것은 더 이상 느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야당인 국민의힘의 장동혁 대표 행태와도 닮았다. 장 대표 역시 당 장악과 강경 지지층 결집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여야가 서로 다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집권여당 대표가 정부의 발목을 잡는 듯한 장면은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다. 야당은 공격이 본업이지만, 여당은 책임이 본업이기 때문이다. 세계 정치사를 보면 이런 엇박자는 반복됐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일본의 자유민주당은 파벌 간 권력 경쟁이 격화되면서 총리의 개혁 드라이브가 번번이 좌초됐다. 지도부가 차기 권력을 염두에 둔 세력 다툼에 몰두하는 사이, 정책은 힘을 잃었다. 결국 국민은 “누가 이 나라를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정권은 무너졌다. 이탈리아의 기독민주당 역시 내부 권력투쟁과 대권 욕심이 얽히며 정부와 여당의 균열이 심화됐다. 정책은 표류했고, 국민 신뢰는 붕괴했다. 권력 게임은 잠시 승자를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중대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경제는 불안하고, 외교는 복잡하며, 안보 환경은 빠르게 변한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와 여당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데 당 대표가 차기 권력 구도를 의식한 듯한 행보를 보인다면, 정책 추진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문제에서조차 적극적인 후방 지원이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은 혼란을 느낀다. 대통령은 뛰는데, 당은 다른 방향을 보는 듯한 장면이 반복되면 불신은 커진다. 집권여당의 리더십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정부를 견제하되 흔들지 말아야 하고, 차기를 준비하되 현재를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력 불리기가 아니라 국정 지원의 일관성이다. 인사와 정책에서 사전 조율을 제도화하고, 당·정 협의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전략적 메시지를 하나로 묶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당 대표 스스로 차기 행보와 국정 운영을 분리하겠다는 분명한 선언이 필요하다. 국민은 집권여당에 기대를 걸었다. 원팀을 기대했고, 안정적 국정 운영을 기대했다.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여론은 냉정해진다. 표는 의무가 아니다.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청래 대표와 민주당은 과연 집권여당에 걸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원팀이라는 약속은 구호에 그치지 않는가. 국민은 보고 있다. 그리고 판단할 것이다.

[이슈&인사이트] 비트코인, ‘21세기 로마 금화’가 될 수 있는가

최근 글로벌 자산 시장은 마치 거대한 폭풍을 만난 듯 요동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의장 후보로 '매파적 실용주의자' 케빈 워시를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통적인 안전 자산인 금과 은값은 물론, 기세등등하던 비트코인마저 줄지어 하락 곡선을 그렸다. 시장은 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그 원인은 명확하다. 케빈 워시는 과거부터 '강한 달러'와 '재정 규율'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그가 이끌 연준이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고 달러의 가치를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지자, 인플레이션의 대안이자 '달러의 적수'로 꼽히던 금과 비트코인의 매력이 단기적으로 위축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 변동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달러의 권위가 서슬 퍼런 이 시대에, 비트코인 같은 무형의 자산이 과연 역사적 생존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에서 '돈'은 늘 눈에 보이는 '쓸모'를 담보로 해왔다. 고대 사회에서 금과 은이 화폐로 선택된 이유는 희귀성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장신구가 되거나 권위를 상징하는 실질적 유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이 번영할 수 있었던 기반 중 하나인 '아우레우스' 금화 역시 금이라는 실물 가치에 기반한 강력한 화폐 권위를 가졌다. 하지만 로마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는 지배자가 통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화에 동을 섞어 화폐의 순도를 낮추기 시작했을 때다. '실질적 유용성'이 권력에 의해 오염되자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졌고, 결국 제국의 경제 시스템도 붕괴했다. 오늘날 비트코인에 대한 열광은 어쩌면 무분별한 법정 화폐 발행으로 인한 '현대판 금화 오염'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일지 모른다. 물론 형태도 무게도 없는 디지털 코드에 가치를 투영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여전하다. 손에 잡히는 실체만이 안전하다는 수천 년의 생존 본능이 무형의 자산 앞에서는 의구심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케빈 워시의 지명으로 달러가 일시적 강세를 보인다고 해서 화폐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현대 경제에서 자산의 가치는 이제 '물리적 실체'에서 '신뢰와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이라는 물질이 가치를 보증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수학적 알고리즘과 전 세계가 참여하는 보안 네트워크가 가치를 보증한다. 비트코인은 특정 중앙 권력이 임의로 찍어내어 가치를 희석할 수 없도록 설계된, 인류 최초의 '시스템적 신뢰 자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실체 없는 '밈 코인'들이 난무하는 모습은 170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2000년대 닷컴 버블의 잔해 속에서 구글과 아마존이 살아남았듯, 지금의 혼돈 속에서도 '디지털 금'으로서의 비트코인과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서의 이더리움은 제도권 금융의 핵심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우리는 어떤 판단기준을 가져야 할까? 첫째, 단기적 변동성과 자산의 본질을 구분해야 한다. 케빈 워시의 정책 기조에 따라 가격은 출렁일 수 있지만, '해킹 불가능한 2,100만 개의 희소 자산'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둘째, '물리적 실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되 '시스템의 투명성'을 살펴야 한다. 미국이 규제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달러와 연동되어서가 아니라, 언제든 실물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검증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화폐의 역사는 결국 '인간이 무엇을 믿기로 약속했는가'의 기록이다. 금에서 종이 화폐로, 다시 디지털 코드로 형태는 변해왔지만 '조작 불가능한 희소성'을 향한 인류의 열망은 변하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기 수단으로 치부하기엔, 그것이 담고 있는 '탈중앙화된 신뢰'의 기술이 현대 경제의 거대한 빈틈을 메우고 있다. 단기적인 시세 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화폐가 걸어온 유구한 역사의 궤적을 복기해 볼 때다. 정답은 늘 '물리적 쓸모'를 넘어선 '신뢰의 네트워크' 속에 있었다. bienns@ekn.co.kr

[EE칼럼] 재활용 빙자 시멘트공장으로 몰리는 수도권 쓰레기

올해 본격 시행된 수도권 직매립 금지 이후 수도권 쓰레기의 충청지역 반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뜨겁다. 충청지역 민간 소각장으로 얼마만큼의 수도권 쓰레기가 반입되는지, 어느 수도권 지자체에서 쓰레기를 보내는지 관심이 쏠리고, 발생지 처리 원칙을 무시한 채 민간 소각장의 배만 불려준다는 논란도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당 지자체들은 민간 소각장을 대상으로 과다 소각 여부나 수도권으로부터의 반입량을 수시로 특별 점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와중에도 지나치게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시멘트 벨트로 일컬어지는 강원 강릉․동해․삼척·영월과 충북 제천․단양 등 6개 지자체다. 수도권 쓰레기는 보통 소각장으로 보내 소각 처리하기도 하지만, 중간 재활용업체에 들어가서 파쇄된 후 산업폐기물로 둔갑해 시멘트공장에서 처리되기도 한다. 이들 6개 지역의 9개 시멘트공장으로도 수도권 쓰레기가 반입되고 있지만, 해당 지자체들은 너무도 조용하다.시멘트공장 인근 주민들이 연일 수도권 쓰레기의 시멘트공장 반입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앞 1인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해당 지자체는 시멘트공장에 대한 수시 점검은 고사하고 관련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멘트 환경문제 국민대책위원회가 나섰다. 지난달 초 시멘트벨트 6개 지자체에 “수도권 생활폐기물 시멘트공장 반입에 대한 의견을 내놓으라"고 공개 질의했다. 시멘트공장의 폐기물 사용에 대한 환경오염과 안전성 우려가 계속되는 만큼, 수도권 쓰레기의 지역 반입 시 안정적 처리 방안을 함께 모색해 보려는 취지였다. 6개 지자체 중 충북 단양군과 강원 삼척시 2곳에서만 회신이 왔다. “생활폐기물은 발생지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시멘트공장 반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단양군은 지난달 22일 관내에 있는 한일시멘트·성신양회 두 시멘트공장과 환경적 가치 보호와 주민 우려 해소를 위해 수도권 생활폐기물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업무협약까지 체결했다. 어려운 시기에 대승적 결단을 해준 단양군과 삼척시에는 감사한 마음이다.하지만 여전히 강원 강릉·동해·영월, 충북 제천시는 묵묵부답이다. 그러는 사이 수도권 쓰레기가 이미 시멘트공장으로 반입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의 생활폐기물은 평택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낙찰받아 시멘트공장으로 반입하여 처리하고, 마포구는 원주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생활폐기물을 인근 시멘트공장으로 반입하고 있다. 강북구도 역시 원주에 있는 재활용업체가 충북과 강원도에 있는 시멘트공장을 통해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지난 2024년 8월 법제처는 “재활용업체는 생활폐기물을 재활용 대상 폐기물에 추가할 수 없다"라고 법령 해석한 바 있다. 시멘트 공장은 재활용업 지위를 갖고 있는데, 재활용 대상이 아닌 생활폐기물을 수도권에서 가져와서 처리하는 것은 명백히 법령에 위반이다. 하지만 작금이 상황을 보면, 이런 법제처의 위법 해석이 무색할 정도다. 시멘트업체에서는 생활쓰레기를 대체원료, 보조연료라고 주장하면서 소성로에 넣어 태우고 있고, 기후부는 이런 시멘트업체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의 의도적 침묵과 회피, 방관이 길어질수록 주민들의 피해만 커질 뿐이다. 민간 소각장보다 위험한 곳이 시멘트공장이기 때문이다. 시멘트공장으로 반입되는 폐기물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하고, 환경 기준마저 허술하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은 시멘트공장이 270ppm으로 소각시설의 50ppm에 비해 5배 이상 완화돼 있다. 총탄화수소(THC)는 배출허용기준이 있지만, 굴뚝자동측정기기(TMS)로는 측정이 안 돼 실시간으로 관리가 안 된다. 국민의 안전과 환경은 어떠한 이유로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유입을 제한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대책 마련이 분주한 상황에서 시멘트 벨트지역 지자체만 침묵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강원 강릉·동해·영월, 충북 제천시는 쓰레기 떠넘기기와 환경 차별을 스스로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재활용을 빙자해 시멘트공장으로 수도권 쓰레기가 몰리는 이른바 '수도권 쓰레기받이'로 전락하는 상황을 막는 방법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시멘트공장이 수도권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라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bienns@ekn.co.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