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여전히 원픽, 바벨 전략으로 변동성 방어”…신한운용 김정현 그룹장[ETF 딥다이버]

“반도체는 여전히 원픽, 바벨 전략으로 변동성 방어”…신한운용 김정현 그룹장[ETF 딥다이버]

코스피 지수가 6000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6월 말부터 이어진 조정 국면이 길어지는 모양새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그룹장은 지금 국면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변수로 미국 국채 금리를 꼽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는 굳건하지만, 최근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빅테크 기업은 자기자본이 아닌 회사채를 발행해 데이터센터를 짓고 반도체를 사들이는 만큼, 금리가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 투자 속도가 예상보다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7월 말~8월 초 실적..

[이슈&인사이트] 포용금융의 빈틈, 사라지는 은행 점포를 우체국 금융으로 메워야

정부와 금융당국은 포용금융을 핵심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축소는 해당 기조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고령자·저소득층·농어촌 주민·이주노동자처럼 대면 금융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계층까지 일률적으로 비대면 채널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금융 접근성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가계의 위기 대응력과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최근 1년간 4대 시중은행의 영업지점은 51개나 줄어들었다. 점포 통폐합은 은행 입장에서 비용 절감과 디지털 전환에 부합할 수 있다. 모바일뱅킹 이용이 보편화되고 단순 입출금 업무가 줄어든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령자는 인증·앱 설치·비밀번호 관리·비대면 본인확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장애인과 저소득층은 스마트기기·통신환경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언어 장벽, 체류자격 확인, 금융 이력 부족 등으로 대면 설명과 상담의 필요성이 더 크다. 특히, 대출, 채무조정, 보이스피싱 피해 대응, 정책 서민금융 신청은 단순 앱 거래와 다르다. 소득과 부채, 신용상태를 설명하고 적합한 상품을 비교·선택해야 하며, 취약계층일수록 대면 상담의 가치가 커진다. 지점 폐쇄가 금융비용을 줄이는 대신 취약계층에게 이동시간·교통비·정보탐색비용이라는 추가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금융 접근성 약화는 취약차주 가계의 부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실직, 질병, 임대료 상승, 교육비, 영세사업 손실 같은 충격이 발생했을 때, 가계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적시에 상담받고 적정한 신용대출·정책금융·채무조정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선택지는 제한된다.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하거나, 연체가 누적된 뒤에야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 가계는 식료품·외식·의류·문화·교육·내구재 등 재량적 소비부터 줄인다. 취약가계의 소비 감소는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지고, 다시 고용과 소득을 압박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가계부채가 높은 경제일수록 금융 접근성은 신용 공급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부실을 예방하고 상환 가능성을 높이는 금융안전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포용금융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대출을 공급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금융 소외지역에서 필요한 사람이 적시에 금융상담을 받았는지, 정책 서민금융과 채무조정으로 실제 연결됐는지, 대면 지원이 필요한 계층의 접근권이 유지됐는지를 함께 측정해야 한다. 금융선진국인 영국은 은행 지점 폐쇄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훼손될 경우 금융회사가 대체수단을 평가하고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대체수단으로는 무료 ATM, 우체국 네트워크 등이 활용된다. 특히, 지역 주민이나 지역단체도 접근성 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은행의 영업망 조정을 단순한 민간기업의 경영 판단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사회 금융 인프라의 유지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우체국 지점을 통해 현금 입출금, 잔액조회, 공과금 납부, 수표 현금화 등 일상 금융서비스를 보완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은행이 점포를 폐쇄하기 전에 해당 지역의 고령 인구 비중, 대중교통 여건, 인근 대체점포까지의 이동 거리, 외국인 주민 비율, 디지털 취약성, ATM 및 우체국 접근성, 대면 대출상담 수요를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우체국은 전국적 네트워크와 높은 지역 접근성,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갖춘 생활밀착형 인프라이다. 특히, 은행 점포가 사라진 군 단위 지역과 농어촌에서 우체국은 단순한 우편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지역 금융접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2026년 7월부터 전국 20개 총괄우체국에서 은행대리업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우체국에서는 4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과 정책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 등 총 8개 상품을 상담·신청할 수 있다. 향후 시범사업을 20개소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은행이 없는 군 지역, 고령화가 심한 읍·면, 농어촌과 도서산간 지역부터 우체국 은행대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인신용대출뿐 아니라 새희망홀씨, 햇살론 등 정책 서민금융의 상담·신청·사후관리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다국어 안내, 통역 연계, 체류·소득 증빙 서류 안내도 제공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디지털화가 곧 포용금융은 아니다. 4대 은행의 지속적인 지점 축소는 고령자·취약차주·농어촌 주민·외국인 노동자에게 금융 접근의 장벽을 높일 수 있으며, 이는 가계부실과 소비위축을 거쳐 지역경제와 국민경제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점포 축소의 경제적 효율성과 금융 접근성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체국 금융망을 은행대리업, 정책 서민금융, 채무조정 연계, 다국어 금융상담의 거점으로 확장한다면, 지역 금융 공백을 현실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bienns@ekn.kr

[EE칼럼] 글로벌 에너지 투자, 청정에너지 중심으로 재편

넷제로 목표를 모든 나라가 달성하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8도에 이를 전망이라는 UNEP 보고서가 발표된 가운데, 글로벌 에너지 투자 시장의 중심축이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World Energy Investment 2026」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에너지 투자는 총 3조 4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가운데 청정에너지 투자는 2조 2천억 달러로 전체의 약 65%를 차지하며, 화석연료 투자(1조 2천억 달러)의 1.8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에너지 투자는 2015년 2조 7천억 달러에서 2020년 2조 2천억 달러까지 감소했으나,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과 에너지 안보 강화,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맞물리며 다시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서 2024년 3조 2천억 달러를 거쳐 2026년 사상 최대인 3조 4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청정에너지 투자는 2015년 1조 2천억 달러에서 2020년까지 정체되다가 이후 급격히 성장해 2024년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에는 2조 2천억 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화석연료 투자는 2015년 1조 4천억 달러에서 2020년 9천억 달러까지 줄었다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일부 반등했지만, 2026년에도 1조 2천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청정에너지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이는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관련 분야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에너지 투자의 핵심 경쟁이 단순한 발전설비 확대를 넘어 전력망과 저장장치, 에너지 효율,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변동성 전원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전력망과 ESS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력시장도 대세 전환의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다. 2025년 신규 발전설비의 85.6%가 재생에너지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추가 발전원의 거의 대부분이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설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적 발전설비 중 재생 용량 비중은 49.4%에 도달해 2026년 말에는 50%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재생발전량 점유율도 2024년 31.8%에서 2025년 33.8%로 늘었으며, 태양광은 단일 발전원 중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로 2025년 발전량 기준 8.8%를 기록했다. Ember에 따르면 2026년 7월까지 재생 점유율은 35.7%(태양광 10.1%, 풍력 9.3%)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생에너지 정책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2025년 6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이 국정 과제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여 관련 정책 추진 체계를 강화했다. 2026년 3월에는 재생에너지법 개정을 통해 신재생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하고, 이격거리 규제를 법제화하여 합리화했다. 2026년 5월에는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조기 달성과 2035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 이상 확보를 목표로 제시했다. 2026년 8월에는 RPS(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를 폐지하고 장기 고정가격 계약시장 중심으로 전환해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 안정성을 높이기로 했으며, 기후에너지환경부의 2027년도 예산은 전년 대비 18.3%(3조 9,737억 원) 증가한 25조 7,319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했다. 하지만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로 대기업과 데이터센터 개발사업자들이 축포를 쏘아 올릴 때, 어렵게 명맥을 이어온 국내 중소·중견 재생에너지기업들은 역대 최악의 경영난으로 도산 위기에 몰려 있고,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은 그나마 있던 지원제도인 RPS 폐지로 수익성이 악화될까 걱정하고 있다. 태양광 관련 협동조합들은 4~5년이 지나도 자립 기반을 잡지 못하거나 배당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이며, 한전 접속용량 부족으로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야심찬 계획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2026년 8월까지 신규 태양광 설치량은 2.38GW로 전년 동기(2.47GW)보다 오히려 줄었다. 중국 역시 2025년 6월 재생에너지 가격 시장화 개혁(136호 문건) 시행 이후 신규 태양광 설비가 1~7월 기준 61.3% 급감(2025 223GW, 2026년 86GW)했다. 신규 프로젝트는 경쟁입찰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도록 함에 따라 수익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개발업체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결과로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관건은 정책의 방향이 아니라 그 방향이 현장 어디까지 미치느냐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재생에너지 정책이 진짜 성과로 이어지려면, 대형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현장의 중소·중견 기업과 태양광발전협동조합 등이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 기반과 계통 접속 여건부터 함께 챙기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 보임 ▲ 고윤석 전략본부장 ▲ 남미정 해외사업본부장 ▲ 최수진 홍보실장 ▲ 심규헌 경영관리처장 ▲ 이태형 해외사업기획처장 ▲ 손재익 안전총괄실장 ▲ 오권택 가스연구원장 ▲ 황규범 신성장사업처장 ▲ 김차환 생산운영처장 ▲ 주노철 인천기지본부장 ▲ 임성탁 통영기지본부장 ▲ 이동진 삼척기지본부장 ▲ 최선환 제주LNG본부장 ▲ 남석우 공급운영처장 ▲ 송학린 인천지역본부장 ▲ 김상기 경기지역본부장 ▲ 안중길 대구경북지역본부장 ▲ 이재훈 부산경남지역본부장 ▲ 신관철 감사실 기술감사부장 ▲ 최승 법무실 국내법무부장 ▲ 채익근 경영지원처 인사부장 ▲ 최혜경 상생협력처 상생기획부장 ▲ 신재욱 상생협력처 자재계약부장 ▲ 강민규 건설사업단 전남안전건설사무소장 ▲ 이과형 당진기지안전건설단 관리부장 ▲ 방상훈 생산운영처 당진기지시운전부장 ▲ 성기찬 제주LNG본부 관로시설부장 ▲ 신상민 공급운영처 공급진단부장 ▲ 강택수 서울지역본부 양주보전부장 ▲ 한동욱 인천지역본부 설비운영부장 ▲ 김태중 전북지역본부 설비보전부장 ▲ 조시균 전북지역본부 관로보전부장 ▲ 정인호 광주전남지역본부 순천지사장 ▲ 김진철 대구경북지역본부 설비운영부장 ▲ 윤성욱 대구경북지역본부 설비보전부장 ▲ 윤성식 대구경북지역본부 안동지사장 이상 36명. 2026년 9월 14일자.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기자의 눈] 기업에만 ‘초과이익’ 배분? 고위공직자 부동산 차익은?

정부가 기업의 초과이익을 사회적으로 나누자는 화두를 던졌고 이로 인한 기업들의 노사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AI)·반도체 호황으로 일부 대기업에 막대한 이익이 집중되는 만큼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성과를 함께 누릴 방안을 찾자는 취지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다만 정부가 기업에 '초과이익'의 사회적 배분을 요구하려면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그 원칙은 기업에만 적용되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부인 김혜경 여사와 공동 보유해온 분당 아파트를 약 29억원에 매각했다. 1998년 약 3억6000만원에 매입한 주택으로, 단순 매입·매각가격만 비교하면 25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이를 부당한 이익이라고 할 이유는 없다. 20년 넘게 보유하고 실제 거주한 집의 가격이 오른 것이고, 매각에 따른 세금도 법에 따라 내면 된다. 그렇다면 기업은 다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오랜 연구개발과 천문학적인 설비투자를 거쳐 반도체 호황기에 큰 이익을 낸다. 법인세를 내고 남은 이익을 다시 공장과 기술에 투자한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익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초과이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회적 배분을 논의하자고 한다. 최근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과천 아파트를 17년간 보유하면서 실제 거주 기간이 짧았다는 '비거주 1주택' 논란에 휩싸였다. 이 후보자는 “거주 중심 주택시장 정착은 확고한 원칙"이라면서 현재 해당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멸실 중이며 자세한 경위는 청문회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10억500만원에 사면서 주택담보대출 3억6700만원과 장모에게 빌린 1억7000만원을 활용했다. 해당 평형의 최근 거래가격은 14억원대로 올랐다. 홍 후보자는 현 정부 출범 전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했고 실제 거주하고 있다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역시 위법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다. 개인이 주택을 사고 가격이 올라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 잘못이 아니듯, 기업이 투자하고 경쟁해 많은 돈을 버는 것 역시 그 자체로 문제일 수 없다. 물론 기업 영업이익과 개인의 부동산 차익은 경제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 조세제도를 넘어 '많이 얻은 이익은 사회적으로 더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업의 이익은 노동자와 협력업체, 사회 인프라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배분론의 논거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 상승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도로와 지하철, 학교 등 공공 인프라와 정부 정책, 시중 유동성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더구나 반도체 기업의 이익은 미래 경쟁력의 재원이기도 하다. 오늘 번 돈으로 연구개발과 신규 팹에 투자하지 않으면 다음 반도체 사이클에서 뒤처질 수 있다. 무엇보다 '초과'의 기준부터 불분명하다. 어느 정도까지 정상 이익이고 어디서부터 초과인가. 반도체 불황기에 기업이 수조원대 적자를 내면 그 손실도 사회가 나눠 부담할 것인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의 정상적인 이익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불공정한 납품단가와 기술 탈취를 바로잡고 원·하청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조세와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면 된다. 대통령도, 고위공직자도 시장에서 형성된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기업 역시 시장에서 경쟁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초과이익의 사회적 활용을 논의할 수는 있다. 다만 기업에만 '초과'라는 이름표를 붙인다면 정책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가 아니라, 같은 원칙을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느냐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이슈&인사이트] 소상공인 AI, ‘몇 명이 쓴다’보다 ‘어떻게 쓰는가’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500곳에 물었다. “지금 디지털·AI 기술을 쓰고 있습니까." 열에 여덟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무엇을 쓰고 있는지 뜯어보면 사정이 다르다. 응답자의 83.3%는 키오스크나 SNS 홍보처럼 이미 익숙해진 도구를 쓰는 입문·기초 단계에 머물렀다. AI가 재고를 알아서 채워 주는 자동발주는 3.3%, AI가 가격을 최적화해 주는 경우는 2.2%에 그쳤다. 활용률 80%는 숫자이고, 실제 역량은 그 숫자가 가린 그림자에 가깝다. 이 착시는 낯설지 않다. 중기중앙회가 별도로 실시한 키오스크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드러났다. 키오스크를 도입한 소상공인의 90% 이상이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지만, 정작 정부 지원을 활용한 경우는 소수였다. 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도구는 보급됐지만, 그 도구까지 닿는 길은 여전히 좁았던 셈이다. 도입과 활용은 처음부터 다른 과제였다. 올여름 정부는 이 문제를 풀겠다며 다시 움직이고 있다. 금융거래 이력이 없어도 매출·업종·상권 정보로 성장성을 평가해 주는 AI 신용평가체계(SCB)가 8월 말부터 16개 은행에서 순차 시범 도입됐고, 정책과 경영, 상권 정보를 대화로 안내하는 AI 도우미 서비스가 9월 문을 연다. 방향은 맞다. 다만 이번에도 '몇 명이 접속했는가'로 성과를 잰다면, 3년 뒤 우리는 또 다른 활용률 80%짜리 착시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더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같은 조사에서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사업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곳은 3.2%뿐이었다.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76.2%는 그런 사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반면 참여해 본 이들의 87.5%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써 본 사람은 만족하는데, 대부분은 써 볼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다. 도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 도구까지 닿는 길이 좁아서 생기는 격차다. 정작 소상공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물으면 대답은 다르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운영비 지원(59.0%)이었고, 맞춤형 교육을 꼽은 비율은 16.6%에 그쳤다. 당장의 현금이 급한 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응답을 그대로 정책에 옮기면, 우리는 다시 돈을 쥐어 주고 활용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는 익숙한 길로 돌아가게 된다. 소상공인이 원하는 것과 진짜 필요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정책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업종별로 들여다보면 격차는 더 뚜렷하다. 교육·여가업의 활용률은 98%에 달했지만 소매업은 46%로 최하위였다. 활용 분야도 회계·문서 작성 같은 경영지원(54.5%)에 몰려 있고, 정작 매출과 직결되는 판매·유통(22.3%)이나 마케팅·홍보(21.3%)는 뒤로 밀려 있었다. 소상공인이 AI를 안 쓰는 게 아니라, 매출에 힘이 되는 곳까지는 아직 손이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근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본다. 결과물을 AI에게 그대로 받아 쓴 학습자는 과제는 빨리 끝내지만 정작 그 내용을 설명하지 못한다. 반대로 AI의 답을 검토하고 고쳐 보고 반박해 본 학습자는 시간이 더 걸려도 실력으로 남는다. 도구를 얼마나 자주 켰는가가 아니라, 그 결과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는가가 진짜 실력을 가른다. 소상공인의 AI 활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성과 지표를 활용률에서 활용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몇 명이 로그인했는지가 아니라, 몇 명이 재고관리나 가격 결정처럼 실제 경영 판단에 AI를 쓰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둘째, 지원사업의 존재를 알리는 일 자체를 별도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열 중 여덟이 모르는 사업은 없는 사업과 같다. 셋째, 맞춤형 교육을 예산의 뒷전이 아니라 설계의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 사장님이 원하는 것이 당장의 현금이라 해도, 정책이 함께 챙겨야 할 것은 그 현금을 내년에도 벌어들일 수 있는 역량이다. AI 신용평가와 AI 도우미가 문을 여는 지금이 이 질문을 던지기 좋은 시점이다. 80%라는 숫자에 안심하기 전에, 그 뒤에 숨은 83%의 '입문 단계'를 먼저 봐야 한다. 도구를 나눠 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지금 정책이 답해야 할 진짜 질문이다. bienns@ekn.kr

[EE칼럼] 목소리를 내는 유럽 기업, 침묵하는 한국 기업

지난달 아우디, BMW, ZF,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독일 연립정부에 구조 개혁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바이에른 금속·전기 산업 노조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노조가 동참했다는 점이다. 노사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메르츠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인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을 발표했고 독일기업들은 2028년까지 6,310억 유로를 투자하는 'made for germany' 이니셔티브를 출범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은 메르츠 정부에 구조개혁의 빠른 실행이 아니면 독일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할까. 2021년 9월 북해의 풍력이 멈추면서 시작된 유럽발 에너지 위기는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부족으로 모든 것의 비용을 빠르게 올리면서 기업을 압박했다. 그해 12월 철강, 비료, 시멘트 등 11개 유럽 에너지 집약기업 협회는 5배나 급등한 에너지 비용과 3배 이상 오른 탄소 가격으로 경쟁력과 수익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공장 폐쇄와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속한 대처를 요구했다. 그러나 유럽 정치권은 뚜렷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줄이지 못한 채 2022년 러우 전쟁으로 인한 최악의 에너지 위기로 이어졌다. MWh당 평균 20~40유로 수준이던 도매전력가격은 최대 500배가 넘는 1만 1천 유로를 돌파했고 독일 경제성장률은 0%를 기록했다. 2024년 유럽기업들은 '앤트워프 선언'을 통해 높은 에너지 비용 해결과 탈산업화를 통한 탈탄소화는 유럽에 솔루션이 될 수 없다며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치권은 자신들이 만든 기후의제를 포기하지 못하며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자 유권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와 극우 정당에 표를 몰아주며 기존 정당을 심판했다. 2026년 이란 전쟁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6,350억 유로 매출과 120만 명을 고용하던 유럽 석유화학 기업은 2022년 이후 9%의 생산시설이 폐쇄되었고 2만 명의 직접고용이 사라졌으며, 바스프는 에너지비용이 저렴한 중국 잔장 등으로 비즈니스 거점을 옮겼다. 1,300만 명을 고용하는 유럽 자동차산업 생산은 20%나 감소했고 초기 3천 명이던 폭스바겐 예상 구조조정 인력은 최대 15만 명으로 늘어났다. 니더작센 주지사는 일자리 보존을 위해 중국 자동차 조립이 필요하다 주장했으며, 스텔란티스 렌 공장은 중국 둥펑 자동차를 조립할 예정이다. 2008년 이후 1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독일 철강산업도 높은 에너지비용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발루렉 뒤셀도르프 공장은 브라질로 이전했다. 유럽의 기간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며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뒤늦게 반응했다. 2035년 전기차 100% 목표를 포기했으며, 기업공급망 실사지침과 가장 강력한 기후의제 수단인 배출권 거래제(ETS)를 약화시켰다. 폴리티코는 그린딜에서 벗어나 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이후 유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했다. 반면 한국기업은 조용하다. 유럽기업처럼 앤트워프 선언같은 산업경쟁력 향상을 위한 성명 발표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기후의제와 글로벌 에너지위기에 아무 데미지가 없는가. 이미 중국의 2배, 미국의 1.5배나 높은 전기요금을 내고 있고 철강산업은 높은 전기요금으로 공장 가동중단과 폐쇄가 이어지고 있으며, 석유화학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전환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서 기업은 침묵과 조용한 탈출이 더 나은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은 제조업 인프라가 에너지 부족과 위기 탈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현 정부도 에너지정책에 실용주의를 견지하는 분위기다. 한 번 떠나간 공장과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럽은 이미 늦었지만, 한국은 아니다.

[기자의 눈] 집단대출 완화가 남긴 혼란

최근 금융당국의 집단대출 완화는 시장에 질문을 남겼다. 수분양자의 입주 차질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실수요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히려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잔금대출 규제가 완화된 계기는 지난 7월 23일 열린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였다. 수원 '매교역 팰루시드'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잔금대출 규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은행권에 대책 마련을 주문하며 잔금대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예외적인 구제 정책은 형평성 논란을 키웠다. 같은 시기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다른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청약에 당첨돼 잔금을 치르는 사람들은 한숨 돌린 것과 달리 기존 주택을 거래하려는 차주들은 여전히 높은 대출 문턱을 마주해야 했다. 둘 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이 필요하지만, 주택 마련 방식에 따라 다른 한 쪽은 예외를 인정받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으면서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존 주택을 매수하려는 차주 부담은 늘어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서울 구축 아파트 평균 거래가격은 10억5167만원이다. 단순히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를 적용할 경우 대출 가능액은 약 4억2000만원 수준이다. 6억원 이상의 현금이 있어야 서울에서 구축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할 경우 대출 한도는 더 감소할 수 있다. 반면 선호도가 높고 가격 상승 기대가 큰 신축 단지는 잔금대출 공급이 확대되며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들은 자금 부담은 한층 완화됐다. 정책은 현실에 맞춰 조정될 수 있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가계대출 관리를 강조하며 규제를 강하게 조이다가 특정 상황에서 예외를 두면 시장은 정책 방향을 신뢰하기보다 다음 완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은행들도 혼란스럽다. 총량 규제에 맞춰 가계대출을 조였다가 집단대출에 예외가 생겼고 총량 목표치도 2배로 늘어나며 대출 기준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마저도 당국의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은행권에서도 난처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은행이 대출 방향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소비자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지금 정책은 정부가 실수요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부터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또 일관되지 않은 정부 정책에 시장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내 집 마련은 하루아침에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자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는 인생의 큰 선택 중 하나다. 내 집 마련 계획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이슈&인사이트] 놀란의 <오디세이>에서 트럼프를 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였다. 놀란 감독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랬다. 트로이 성벽이 무너지고 불길이 도시를 삼키는 장면에서 나는 3천 년 전의 그리스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떠올렸다. 특히 아가멤논에게서 현대의 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았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익히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함께 떠나자, 형 아가멤논은 동생의 치욕과 그리스의 명예를 내세워 여러 도시국가를 전쟁에 끌어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10년을 끌었고, 마침내 트로이는 불탔다. 한 여인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의 끝은 한 문명의 파괴였다. 전쟁에는 늘 명분이 있다. 국가의 명예, 안보, 정의, 평화…. 그러나 그 명분이 언제나 전쟁의 진짜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힘을 가진 자의 욕망은 종종 그럴듯한 명분 뒤에 몸을 숨긴다.영화를 보면서 트럼프가 떠오른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스스로를 '평화의 대통령'이라 부르지만 세계는 좀처럼 평화로워지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죽음이 이어지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북한군까지 끌어들이며 장기화됐다. 이란과의 전쟁 역시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고, 이제는 동맹국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마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위해 가져야 할 땅처럼 말한다. 전쟁을 끝내겠다던 대통령 아래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고, 세계의 불안은 오히려 다른 곳으로 번져간다. 물론 3천 년 전 아가멤논과 오늘의 트럼프를 그대로 겹쳐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의 욕망을 공동체의 명분으로 바꾸는 방식이다.아가멤논에게는 '그리스의 명예'가 있었다. 그는 그 명분 아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왕과 전사들을 한 줄로 세웠다. 오늘의 명분은 '미국의 이익'과 '안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는 관세를 부과하고, 제재를 가하며, 필요하면 군사력까지 동원한다. 적대국만이 아니다. 오랜 동맹국에도 더 많은 비용과 복종을 요구한다. 다른 나라의 영토와 자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까지 거대한 거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현대판 아가멤논의 능구렁이 같은 탐욕을 본다. 그러나 의 진짜 이야기는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 시작된다. 그리스는 전쟁에서 이겼다. 난공불락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트로이를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오랫 동안 바다를 떠돈다. 동료들은 하나둘 죽고, 자신도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대가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는 승전가라기보다 승리의 대가를 묻는 이야기로 읽힌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인간도 승리한 것인가. 트로이를 없애버린 뒤 그리스는 더 행복해졌는가. 가자를 폐허로 만들면 이스라엘은 더 안전해지는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계속 전장으로 보내면 유럽에는 평화가 찾아오는가. 이란을 폭격하고 베네수엘라를 힘으로 굴복시키면 미국은 더 위대한 나라가 되는가.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쩌면 여기에서 갈린다. 문명은 얼마나 강한 군대를 가졌는가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영토와 자원을 차지할 수 있는가에도 있지 않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지 않으며, 힘이 있어도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문명이란 힘을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아가멤논에게는 트로이를 파괴할 힘이 있었다. 그는 그 힘을 사용했고 한 문명은 사라졌다. 하지만 승리한 그리스인들에게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아가멤논은 고향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20년을 떠돌았다. 호메로스는 어쩌면 그 긴 세월을 통해 전쟁의 오래된 진실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파괴하는 것보다 돌아가는 일이 더 어렵다고. 놀란이 오늘의 트럼프를 염두에 두었을 리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좋은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넘어 관객이 사는 시대와 만난다. 나는 스크린에서 3천 년 전 아가멤논을 보고 있었는데, 자꾸 트럼프가 어른거렸다.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늘 도발하고, 질서를 말하면서 세계를 불안하게 하며, 동맹을 말하면서 동맹국을 줄 세우는 권력자.영화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3천 년 전 사람들은 트로이를 불태우고 그것을 승리라고 불렀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신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 세계에서 얼마나 멀리 온 것일까. 성일권

[윤석헌 시평] 레버리지 ETF 사태의 교훈

작년 6월 하순 3000선 수준의 코스피가 1년 2개월 반 만인 지난 9월 4일 종가 기준 6687을 찍어 당초 목표 5000 달성은 물론이고, 두 배 이상 성장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방선거 직전인 지난 5월 27일 도입한 '단일종목 레버리지(leverage) 상장지수펀드(ETF)'(레버리지 ETF)가 문제를 일으켰다. 도입 후 코스피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9000선을 넘더니 6월 하순 하락하기 시작하여 7월말 5000대 중반까지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일반투자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거졌다. 정부는 코스피 목표 5000 달성에 성공했으나 추진 비용을 일반투자자에게 떠넘긴 셈이 되었다. 결국 레버리지 ETF가 변동성 확대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물러났다. 한국증시의 특징으로 박스권과 변동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변동성은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편 박스권은 변동성 기조 위에 재벌과 규제가 각각 상방향 및 하방향을 제약하여 형성한다. 상방향 제약은 재벌과 대기업의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등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간 괴리를 초래하여 발생하는데,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주요 부분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하방향 제약은 규제, 감독과 보호가 제공한다. 주가가 급락하면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작동하고, 기업 형편이 악화되더라도 거래정지와 상장폐지 등의 적용은 유연하다. 이제 주가부양과 변동성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지수 8000을 가정하자. 한달 기준 변동성을 15%로 가정하면, 지수는 6800~9200 구간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변동성을 30%로 키우면, 지수는 5600~10400 구간에서 움직일 것이다. 결국 지수 10000 달성이 가능해졌는데, 변동성 확대가 주가부양 수단임을 알려준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서 한국증시는 레버리지 ETF의 레버리지(지렛대) 특성이 주가 변동성을 확대하는 것을 경험했다. 레버리지 목표 배수 2배를 전제로, 운용사는 매일매일 기초자산 가격이 오르면 100%를 추가 매수하고 내리면 50%를 매도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을 시행함으로써 변동성 확대에 기여한다. 변동성은 긍정적 영향이 크지만 부정적 영향도 많다. 긍정적 영향은 가격의 움직임이 정보를 전달하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이끄는 부분이다. 부정적 영향은 우선, 위험을 키워 주식의 투자 상품 매력도를 낮춘다. 다음,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상품이나 제도의 레버리지 특성으로 변동성이 내생적으로 확대되어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을 촉발하는 문제가 있다. 즉, 주가 하락시엔 경기침체를 그리고 주가 상승시엔 경기과열을 초래하여 경기순환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증시 시총에서 삼전닉스가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감안할 때 이들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효과가 클 것이고 따라서 시스템리스크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도입을 서두른 책임이 가볍지 않은 이유다. 레버리지 ETF 사태 이후 지난 7월 말 정부는 기본 예탁금을 3000만원으로 인상하고 기본 매매수량을 20주로 늘렸다. 그 결과 거래대금이 크게 감소했으나 이러한 수요억제 방안은 단기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에 한국증시 위험관리 역량 강화를 위해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정부는 주가 부양이나 변동성 조정 등 직접 개입을 지양하고 금융사 스스로 위험관리 강화에 나서도록 이끌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여 공정한 주주환원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발행시장 활성화로 생산적 금융의 생태계 지원에 나서야 한다. 둘째,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과정에서 생성되는 경기순응성 완화를 위해, 리밸런싱 물량의 관리, 장 마감 주문 구조 개선, 알고리즘 거래 감시 등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추진으로 예상되는 한국증시의 삼전닉스 의존도 심화에 사전 대비하는 의미도 있다. 마지막으로, 레버리지 ETF 도입 당시 코스피가 8000을 넘었다. 감독당국이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는데 가속페달을 밟았다. 금융의 산업정책이 감독정책을 압도한 것으로, 금융정책의 실패 사례다. 이 정부 출범시 시작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 마무리가 필요하다. bienns@ekn.kr

[데스크 칼럼] 시장에 미리 정해진 답은 없다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정부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앞서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고금리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연체와 경매 물건 증가 등을 거론하며, 주택가격이 폭락할 경우에 대비해 일정 기준 이하의 주택을 대량 매입하는 시스템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금리와 가계부채가 주택시장에 미칠 충격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판단이다. 정책은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지금 시장에서 확인되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재 주택시장에서는 규제강화가 수요의 방향을 바꾸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출과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고가주택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자 수요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강남·서초의 거래가 둔화하는 사이 성북·중랑 등 서울 외곽 중저가 지역에서는 오히려 집값이 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규제가 주택 수요의 편중을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물론 추가 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은 분명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까지 올린 상황에서 대출을 많이 보유한 가계일수록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금리 상승이 장기화하면 상환 능력이 취약한 차주를 중심으로 연체가 늘고, 경매와 급매물도 증가할 수 있다. 특히 담보가치 변동에 민감한 다세대 주택은 금리 부담이 커질수록 대출 부실 위험도 빠르게 높아진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대목 역시 주택가격 전망과는 별개로 금융안정 차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금융 리스크를 주택시장 전체의 방향과 어떻게 연결해서 볼 것인가다. 금리 상승으로 일부 차주의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주택가격의 급락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주택가격은 공급 여건과 소득, 집값에 대한 기대, 인구와 일자리의 이동, 전월세 가격, 대출 규제의 강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금리가 올라도 공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매수세가 버틸 수 있고, 반대로 금리가 낮더라도 경기와 고용이 급격히 악화되면 거래가 얼어붙을 수 있다. 금리의 수준과 주택가격 사이에는 여러 변수가 놓여 있다는 의미다. 공공의 주택 매입 확대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도 따져봐야 한다.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저가 주택을 확보해 공공임대로 활용한다면 주거 안전망을 확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관건은 이 정책을 실제로 작동시킬 구체적인 기준이다. 어떤 주택을, 어느 가격에, 얼마나 매입할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정부가 시장의 가격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하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잡으면 정작 필요한 시점에 매입할 주택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만큼, 어떤 가격에 어디까지 사들일지부터 명확히 정해둬야 한다. 이런 원칙은 주택 매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금과 대출 규제 역시 예측 가능한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규제를 강화하고 시장이 위축되면 다시 완화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시장 참여자들은 현재의 정책보다 다음 조치를 먼저 계산하기 마련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쌓이면 정책의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는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 늘 존재한다. 시장의 방향을 바꾸려는 정책은 그만큼의 반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흐름을 대신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정부를 믿고 판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정책의 힘은 경고의 강도에 있지 않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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