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건축 기준 바꿨다’… 개포주공3단지 장영수 조합장의 성공 조건은?

[인터뷰] ‘재건축 기준 바꿨다’… 개포주공3단지 장영수 조합장의 성공 조건은?

“그냥 새 아파트를 짓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건축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아파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 기존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 해 2019년에 개발 사업을 완료했다. 이제 입주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여전히 국내 대표 하이엔드 아파트로 꼽히는 단지다. 이 사업을 이끈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의 장영수 조합장이자 현 대표 청산인은 성공적인 재건축의 핵심으로 원칙과 전문성, 디테일을 꼽았다. 최근 디에이치 아너힐즈에서 만난 장 조합장은 재건축 사업의 성패는 결..

[이슈&인사이트] 올림픽공원 시위로 돈 버는 사람과 피해만 보는 사람

부정선거 의혹을 퍼뜨려 돈 벌어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개표소 봉쇄와 관련하여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유튜버들이다. 경남의 한 40대 남성은 6월 중순에 “경찰이 송파구 개표소에 갇힌 선관위 직원을 경찰 제복을 입혀 빠져나가게 하려다 걸렸다"라는 동영상 2개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순식간에 조회수는 2백만 회를 넘었고 댓글은 7천여 개에 달했다. 경찰은 온라인에서 해당 동영상을 발견한 뒤 10일도 안 돼 용의자를 검거했다. 수사 결과 동영상은 올림픽공원 개표소 안으로 들어가는 실제 제복 경찰의 모습을 선관위 직원이라고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용의자는 가짜 정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동영상을 재편집해 자신의 채널에 게시했다. 그 채널에는 수백 개 영상이 있었고 그 영상마다 수익이 있었을 뿐 아니라 후원 계좌로 모금까지 했다. 이 남성은 결국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반성한다고 말했다지만 돈벌이 중인 유튜버는 아직 넘쳐난다. 한 언론사가 유튜브 통계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를 통해 6.3 지방선거가 끝난 뒤 3주간 국내 유튜버의 슈퍼챗 수익을 분석한 결과는 놀랍다.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유튜버는 3주 동안 무려 4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올림픽공원에서 실시간 현장 방송도 했고 “봉쇄된 경기장 내에서 인신공양이 이뤄지고 있다"라는 말도 했다. 또 다른 유튜버는 같은 기간 동안 2천2백만 원 이상을 벌었는데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부정선거에 대해 공조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천6백만 원 이상의 슈퍼챗 수익을 올린 제3의 유튜버는 “재선거 요구에만 집중하자"라고 문제를 제기한 2030에게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이냐고 몰아붙이면서 후원금을 끌어모았다. 덕분에 올림픽공원은 순수한 2030이 떠나고 부정선거론자들의 텃밭으로 변질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슈퍼챗 최상위로 분류되는 김어준의 수익이 2천4백만 원이라는 것을 비교하면 부정선거 의혹 유튜버의 돈벌이는 실로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입주 9개 체육단체와 3개 사단법인이 추정한 경제적 피해는 1백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선수들의 경기력이나 사기 저하까지 치면 산정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종목 대표 선수와 지도자, 직원, 실업팀 구성원들만 9개 단체 2000여명에 유망주들과 가족, 직간접 영향권의 동호인, 생활체육 인구까지 더하면 최소 20만명“이 피해자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6월 중순에 열렸던 아시아 펜싱 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오상욱 등 펜싱 국가대표팀은 개인 장비 없이 남의 장비를 빌려 출국했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 펜싱 선수권대회는 다행히 오상욱 선수가 2관왕에 올라서 문제없이 끝났으나 9월에 일본에서 시작되는 아시안게임 준비는 차질이 뻔해 보인다. 아직 출전 준비나 행정 처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이나 행사도 7건씩이나 취소됐고 이에 따른 시설 운영 손실은 2억 8천5백만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지난주 현장에서 열린 선관위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도 선관위가 개표를 위해 부담하기로 한 “7월 10일까지 핸드볼경기장 임차 비용이 2억원에 달한다고 한다"라고 했다. 다 국민의 세금이다. 헌법에는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집회의 자유도 타인의 자유나 권한을 침해하는 것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공원 시위가 부정선거 의혹만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까지 무력화시키는 거 아닌지 의문이 든다. bienns@ekn.co.kr

[EE칼럼] 석탄화력 부지의 미래 – 주민이 결정해야

석탄화력발전은 우리나라 전력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는 아직은 가장 비중이 높은 발전 방식이다. 하지만 발전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로 기후위기를 부축일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유연탄의 수입과 용수 확보를 위해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서해안에 집중해 있으며 편서풍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내륙 분지인 충북 지역의 미세먼지가 수도권 다음으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전 세계가 석탄화력발전의 축소에 나서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노후 발전기부터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2040년까지는 완전히 퇴출한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가장 피해가 큰 인근 지역 주민들을 위해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5km 이내 지역의 주민 복리 증진 및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발전소 부지 확보가 쉽지 않은 정부로서는 석탄화력발전을 폐쇄해도 이 부지를 발전소 부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문제는 어떤 발전기를 설치한 것인가 혹은 어떤 전력산업 부지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 2일 인천의 영흥면민간협의체 등 79개 시민단체들은 인천시청 앞에서 '영흥화력의 원전 전환 반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현대건설과 한국남동발전이 맺은 '석탄화력발전소 연계 SMR 연구 및 사업화 공동 추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이 주민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양사는 업무협약에서 기존 발전소 부지와 설비를 유지한 채 핵심 장비를 교체하는 '리트로핏(Retrofit)' 방식의 타당성을 검토해 무탄소 전원 기반의 종합 에너지 플랜트 모델을 구체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고 밝혔다. 즉 석탄 보일러를 소형모듈원자로(SMR)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SMR은 발전용량 300MW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말한다. 1400MW인 신한울1·2호기에 비해 소형이라는 말이지 엄연히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로이다. 핵분열 시 발생하는 열과 방사능 물질이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기본 과제는 여전하다. 현재 SMR 운영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뿐이다. 러시아는 바지선에 35MW급 2기의 원자로를 설치하여 극동지역 페베트 항구에서 2020년부터 상업운전을 하고 있다. 중국은 산동성 스다오만의 원전 내에 2기의 가스냉각식 원자로로 210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파일럿 수준의 원전으로 아직 보급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SMR이라는 용어가 일반화한 것은 197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다. 원전은 그 동안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여 1400MW급까지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발전용량을 10분의 1로 줄인다고 하여 원전의 규모나 설치비용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원자로 크기만 해도 아직 절반 수준밖에 줄이지 못했다. 부수되는 안전 설비를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원천 기술을 가지지 못한 원전 후발국으로서 세계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원전산업계의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특정 지역에 SMR을 설치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 간의 협력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주민들에게는 안전한 삶과 생활 터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사전 모집 과정을 거쳐 지난달 17일 부산 기장군을 SMR 부지로 결정한 바 있다. 그 동안 한국남동발전은 석탄발전소 폐쇄 이후의 방향을 신재생에너지 전환과 주민상생으로 홍보해왔기에 주민들은 약속을 어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30년 전 주민을 희생시켜 석탄발전소를 세웠던 것처럼 이제 다시 핵발전소로 영흥주민을 희생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영흥면민간협의체장의 말은 향후 양사가 이 계획을 밀어부칠 경우 발생할 상황을 예상케 한다. 주민들의 오해를 막고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피하는 길은 투명한 행정과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에 달려 있다. 원전이건 SMR이건 주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은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bienns@ekn.kr

[기자의 눈] AI 산업, 전력시장 개방 가장 강력한 도전자

한국전력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코스피 시가총액 1위를 지킨 기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증시를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전력이다. 막대한 전기를 얼마나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확보하느냐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최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언급한 원전 전력구매계약(PPA)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전 전기를 직접 끌어다 쓰겠다는 뜻은 아니다. 원전 발전단가를 기준으로 장기간 가격과 물량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허용해 달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계약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지금까지 공고히 유지된 한국전력 중심의 전력시장 근간을 흔드는 요구다. 현재 한전은 전국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하나의 시장에서 통합 구매해 기업과 가정에 공급한다. 기업들은 발전원과 관계없이 동일한 체계에서 전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AI 산업이 커지면서 데이터센터의 LNG 발전 PPA 요구에 이어 원전 PPA까지 거론되고 있다. PPA가 허용되면 이들 발전원이 한전이 운영하는 전력시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원전의 지난해 평균 정산단가는 킬로와트시(kWh)당 약 79원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170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절반 수준의 가격으로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물론 지금 재생에너지 PPA는 이미 허용돼 있다. 하지만 이는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이행을 위한 제도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전력도매가격(SMP)보다 높고 개별 사업은 소규모라 한전의 시장 지위를 근본적으로 흔들지는 못한다. 원전과 LNG는 다르다. 두 발전원은 발전기 개당 규모가 크며 SMP 이하에서 정산되는 핵심 전원이다. 이들까지 개별 PPA가 허용되면 일반 기업이나 국민을 위한 전력시장에는 석탄 발전이나 비싼 재생에너지 전기만 남게 될 수 있다. AI 산업에 저렴한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하면 다른 기업들도 같은 혜택을 요구할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해 더 싼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새로운 PPA 사업이 등장할 수 있다. 전력시장 개방 요구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기업 총수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도 고개를 숙인 마당에 한전이 AI 산업으로부터 전력시장 독점을 방어해낼 수 있을까. 변수는 두 가지다. 국민이 AI 산업 육성을 위해 전기요금 부담 증가를 감수할 것이지, AI 산업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로 성장할 수 있을지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이슈&인사이트] 유가가 진정됐는데도 원화가 무너지는 이유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1,500원을 넘긴 원화 환율을 “에너지와 지정학의 위험"을 반영한 가격이라 언급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단층선으로 남는 한, 코스피가 아무리 높아도 원화의 발목은 풀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시장은 얼마가지 않아 곧바로 그 진단을 시험대에 올렸다. 6월 17일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했고, 호르무즈 통항 재개 소식에 국제 유가는 4% 가까이 빠졌다. 필자의 논리대로라면 에너지 부담이 걷히며 원화도 숨통이 트였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원/달러 환율은 6월 5일 야간시장에서 1,562원까지 치솟았고, 7월 1일에도 장중 1,559원을 찍었다. 원-유로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800원을 넘어섰다. 유가는 진정됐는데 원화는 오히려 무너진 것이다. 이러한 환율의 움직임은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전해준다. 에너지는 이번 원화 약세의 방아쇠였을 뿐, 약한 원화라는 병의 본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병의 본질는 무엇인가. 첫째는 금리와 자본이라는 구조다. 한·미 금리 역전은 2022년 중반 이후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케빈 워시 연준의장은 물가에 단호한 고금리, 금융에는 관대한 규제완화라는 '강달러 설계'를 밀어붙이고, 미국은 AI 인프라 투자와 기술주로 세계 자본을 빨아들이며 달러는 스스로 수요를 만들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첫 금융통화위원회는 “인플레이션 대응에 걸림돌이 적다"는 매파적 동결이었다. 성장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1,560원 환율과 수입물가가 한은과 금통위의 손발을 묶고 있다. 결국 원화는 금리 측면이나, 성장 기대로도 방어막을 갖지 못한 채 홀로 강달러의 바람을 맞고 있는 셈이다. 유가가 오르내리든 말든,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환율의 중력은 위쪽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정책적 불확실성이다. AI 고점론이 번지자 외국인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20조 원 넘게 순매도했고, 그 위에 '국민배당금' 논쟁이 기름을 부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AI 산업에서 나온 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하자는 구상을 던지자, 블룸버그는 한국이 'AI 수익 국민배당금' 구상을 띄우며 시장을 흔들었다고 제목을 뽑았다. 취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외국인 투자자에게 이 신호는 “한국이 반도체·AI 호황의 과실을 어떻게 다룰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으로 읽혔을 수 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면 자본은 먼저 떠나고, 떠나는 자본은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들인다. 증시의 정책 충격이 곧바로 외환시장의 매도 압력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지금의 환율은 유가의 잔향이라기보다, 국내 정책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조용한 채점표에 가깝다. 셋째는 시장의 골격 자체가 얇다는 점이다. 개인 신용융자, 이른바 '빚투'는 62조 원 시대에 들어섰고, 증권사는 그 이자만으로 1조 4천억 원을 벌었다. 상승장의 상당 부분이 빚으로 지어졌다는 뜻이다. 외국인이 팔고 환율이 오르면 레버리지에 묶인 국내 자금은 강제로 청산되며 낙폭을 키운다. 여기에 지난 반년간 코스피가 두 배 뛰는 동안 코스닥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정부가 뒤늦게 코스닥 활성화와 규정 강화로 체질 개선에 나선 것 자체가, 우리 증시가 사실상 두세 개 반도체 종목의 시장이었음을 자인하는 대목일 수 있다. 통화가치는 결국 경제 전체의 폭과 건강을 비춘다. 소수 챔피언의 시가총액이 아니라, 시장의 넓이와 가계·기업의 체력이 환율의 진짜 기초체력이다. 이 세 가지를 겹쳐 보면, “호르무즈만 열리면 유가가 내리고 원화 가치가 회복된다"던 스스로의 위안은 이미 틀린셈이다. 유가 안정이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자본수지의 출혈을 막지는 못했다. 우리가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한, 국제 유가가 안정되어도 환율 상승애 따라 원화 기준 수입 에너지 가격은 상승한다. 즉 약한 원화는 우리가 벗어났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현재에도 여전히 물가압력 요인으로 남게 된다. 1,560원이라는 환율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남은 여진이 아니라, 한국 거시·금융 구조에 대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환율에 대한 처방은 분명하지만 쉽지 않다. 2025년 외환보유고와 국민연금 스와프로 버티다 결국 방어선이 뚫린 경험이 말해주듯, 곳간만으로 환율을 잡을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해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금리 격차를 줄이는 것인데, 성장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험난한 길이며, 현재와 같이 경제의 기초체력이 저한된 현재 고금리가 국민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다른 하나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시장의 폭을 되살리는 것이다. 국민배당금 논쟁은 방향의 정당성과 별개로 시장에 던지는 신호를 정교하게 관리해야 하고, 62조 빚투의 과열은 식혀야 하며, 코스닥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가 정독해야 할 성적표는 지수 전광판이 아니라 환율 전광판이다. 유가가 잠잠해진 지금에도 심화되는 원화약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지정학적 위험과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의 내부적이고 구조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bienns@ekn.kr

[EE칼럼] 대도약, 그리고 맨 나중에 불려온 지역 사람들

지난달 정부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발표한 '대도약' 계획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반도체에 800조 원, AI 데이터센터에 550조 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지금의 3배로 늘리고, 전국에 새 송전선로를 깐다고 했다. 숫자가 워낙 커서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만 그 내용 어딘가에, 앞으로 몇 년 동안 내가 만나게 될 얼굴들이 숨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늘 그렇듯, 맨 나중에야 불려 나올 지역 사람들이었다. 지난 13년 동안 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지역을 수백 곳을 다녔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지역이 등을 돌리는 이유는 기술이 무서워서도, 보상금이 적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순서였다. 사업자가 어디에 얼마만큼 지을지 다 정해놓고, 인허가까지 받아둔 다음, 맨 마지막에야 형식적으로 주민을 부른다. 그렇게 불려 나온 사람은 이미 정해진 일을 통보받는 사람이 된다. 자기 마을 일인데 맨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 그 서운함이 반대가 되고, 반대가 싸움이 된다. 내가 조사한 사업의 열에 아홉이 그렇게 멈추거나 엎어졌다. 지난 3월 용인의 송전선로에 반대하며 광화문에 모인 5천 명도 다르지 않았다. 이득은 도시가 챙기고, 견디는 일은 늘 지방의 몫이었다. 고치는 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순서를 뒤집으면 된다. 주민을 맨 뒤가 아니라 맨 앞에 세우는 것이다. 어디에 얼마나 지을지 그 첫 단추를 함께 끼우면, 설명회는 통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된다. 전기와 물을 어디서 끌어올지, 감춰둔 정보를 먼저 알려주면 된다. 그리고 주민을 돈 받고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 그 발전소의 투자자 중 하나로 초대하면 된다. 반대할 이유가 참여할 이유로 바뀌는 데는, 그 자리 하나면 충분했다. 먼저 함께하고, 그 다음에 짓는다. 현장을 오래 돌다 저절로 몸에 밴 순서다. 신기하게도 지구 반대편에 나와 똑같은 결론에 이른 사람이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로 유명한 환경운동의 대가 '에린 브로코비치'다. 그는 요즘 미국에서 데이터센터를 상대로 싸우는데, 그 방식이 내가 걸어온 길과 놀랍도록 닮았다. 그는 높은 사람을 찾아가 제도를 바꿔달라 조르지 않는다. 대신 지역사회부터 찾아간다. 지방정부에 가서 환경영향평가 서류를 내놓으라 하고, 필요한 전기와 물을 대체 어디서 가져올 거냐고, 안 그래도 모자란 우리 동네 것을 빼다 쓸 셈이냐고 따져 묻는다. 그렇게 공식 정보를 어렵게 손에 쥔 뒤에야 주민들을 불러 모아 함께 의견을 낸다. 사업 계획이 다 끝난 뒤 얼마를 보상할지 흥정하는 게 아니라, 사업 계획이 시작될 때 주민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그가 흘리듯 남긴 말이 오래 마음에 걸린다. 예전 힝클리 사건 때는 3억 달러 남짓으로 합의가 되었지만, 이제는 수십억 달러는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순서를 어기고 미뤄둔 값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난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이 그 계산서를 받아 들고 있다. 이번 정부 계획도 꼭 그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서남권 반도체 단지는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그 발전소와 전선은 결국 누군가의 마당 앞에 선다. 18GW까지 확대된다는 데이터센터는 어마어마한 전기와 냉각수를 필요로한다. 브로코비치가 지금 미국에서 던지는 그 질문이, 머지않아 우리 앞에 그대로 놓일 것이다. 물과 전기를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정부도 이대로면 첫 삽 뜨기까지 십 년이 넘게 걸린다고 인정했다. 그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은, 주민을 건너뛰고 서두르는 순간 오히려 갈등의 불씨가 된다. 순서를 바꾸면 정말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 현장이 먼저 보여주었다. 강원도 태백에서는 주민을 먼저 모셨더니 2년 넘게 걸리던 인허가가 넉 달로 줄었다. 내 집 앞은 안 된다던 목소리가, 제발 우리 마을에 지어달라는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을 나는 두 눈으로 보았다. 정부의 계획서에는 전기와 물과 땅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지역 사람들이 어느 대목에서 참여하는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비워둔 채로 밀고 나가면, 몇 해 뒤 우리는 한국의 브로코비치가 지역 관공서 문을 두드리며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장면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지역 사람이 먼저 그 땅에 뿌리를 내려야, 그 위에 줄기가 서고 비로소 전기가 흐른다. 대도약이 끝내 도약으로 남느냐, 아니면 또 한 번의 갈등으로 주저앉느냐는, 결국 누구를 맨 앞에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ekn@ekn.kr

[기자의 눈] ‘첨단 AI 자랑’ 공군의 유감스러운 언론관

지난 3일 열린 공군 인공지능 전환(AX) 거점 개소 행사는 공군이 야심 차게 준비한 데이터 안심존과 AI 도입 계획을 최초로 민간에 공개하는 자리였다. 발표 자료는 이미 공군 자체 보안성 검토를 마친 상태였고, 현장에서는 공군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고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손 들고 말씀해달라"라며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까지 가졌다. 투명한 소통의 멍석을 공군 스스로 깐 것이다. 이에 기자는 ▲민간 AI 모델의 데이터 안심존 반입에 따른 보안 규정 허용 여부 ▲검증된 기술의 전력화 패스트 트랙 보장 여부 ▲공동 개발 기술 지식 재산권(IP) 소유 구조 등 민간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군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지극히 현실적인 비즈니스 룰에 관해 물었다. 쏟아진 화려한 수식어에 비해 공군의 답변은 다소 빈약했다. “아직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후속 사업 소요가 확정된 바 없다", “IP 소유 등은 세부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어떤 제도적 밑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음을 시인했다. 거창하게 판은 벌렸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행정적·제도적 토대는 백지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AI 도입 초기인 만큼 제도가 미비할 수는 있다. 비판을 수용하고 앞으로 채워나가면 될 일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 직후에 벌어졌다. 수십 명 앞에서 당당하게 공개 답변을 해놓고선 돌연 보안 등을 운운하며 말을 바꾼 것이다. 주관 기관 담당자는 “애초에 공군 측은 기자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돼 있었다"는 황당한 핑계와 함께 “공군의 답변 내용은 기사에 포함하지 말고 민간 전문가인 서울대 교수의 답변 부분만 실어달라"고 요구해 왔다. 심지어 기자의 질문 사항에 대해서도 기사에 반영하려면 공군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조건까지 달았는데, 이는 사실상 언론을 통제하려는 명백한 '사전 검열'에 해당한다. 겉으로는 민·관·군 원팀 생태계를 조성하자며 화려한 청사진을 띄워놓고 뒤로는 텅 빈 밑그림이 드러나자 억지 논리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였다. 기자 역시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으로서 국방과 안보를 다루는 군 조직의 특수성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존중한다. 현장 취재 중 작전 계획이나 무기 체계 제원 등 진짜 민감한 군사 기밀이 실수로 흘러나왔다면 굳이 뒤늦게 통제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엠바고에 협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던진 질문이나 공군이 내놓은 답변 그 어디에도 '보안 규정'에 저촉될 만한 내용은 단 한 글자도 없었다. 그저 민·관·군 협력을 위한 기초적인 행정 절차를 물었을 뿐이다. 군 스스로 대대적으로 홍보해놓고 이제 와서 도대체 무엇이 켕겨 대국민 공개가 꺼려졌단 말인가. 결국 이는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아 엉성한 행정력이 활자화돼 윗선에 보고될 때 깎일 조직의 '위신'과 '체면'만을 우려한 옹졸한 과잉 방어로 밖에 볼 수 없다. 보안 사항이 전혀 아님에도 생생한 취재 내용을 임의로 빼달라며 사전에 입맛대로 조율된 보도자료 내용대로만 기사를 써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낡아빠진 권위주의 시절의 '입틀막' 행태다. 그래 놓고선 자신들의 뼈아픈 치부는 가리고 서울대 교수의 입만 빌려 환각 현상 방지·무결성 보장·설명 가능한 AI 등 화려한 기술적 찬사만 콕 집어 실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노골적인 대국민 기만이요, 언론을 단지 띄워주기용 홍보 나팔수나 기관지쯤으로 취급하는 군 당국의 비민주적이고 삐뚤어진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토록 조직의 알량한 위신이 중요하고 아쉬운 소리를 한 게 기사화 될까봐서 두려웠다면 애초에 외부 언론과 민간을 초청하지 말고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채 자기들끼리 철저히 비공개 밀실 행사로 진행했어야 마땅하다. 만천하에 혁신 청사진을 자랑하려 복수의 매체 기자들을 현장에 병풍처럼 불러세워놓고 정작 한계가 노출되니 펜대를 꺾으려 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날 질의응답에서 오간 기술적 논의는 주로 AI가 가짜 표적을 진짜로 오인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교차 검증으로 걸러내고, 지휘관이 납득할 수 있도록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의 도입이었다. 그러나 지금 공군에게 진정으로 시급한 것은 AI의 환각을 잡는 알고리즘이 아니다. 번지르르한 행사 한 번 열면 대단한 혁신을 이룬 양 착각하고, 기밀도 아닌 사안을 입맛에 맞는 보도자료로 덮어버리면 언제든 치부를 가리고 위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군 수뇌부의 심각한 '환각'이니만큼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정당한 취재마저 통제하려는 촌극부터 국민 앞에 '설명 가능'하게 고치는 것, 비공개 행사로 도망치지 않고 비판을 당당히 마주하는 것. 그것이 공군 AX 혁신의 진정한 첫걸음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벤처업계 롤모델’ 쏘카에게 필요한 것

얼마 전 차량공유서비스 '쏘카'를 이용하다가 난처한 일을 겪었다. 당일치기로 서울 근교를 다녀올 일이 있어 공유 전기차를 빌렸는데, 탁송받은 차에 타이어 공기압을 점검하라는 노란색 불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쏘카 앱 내 고객센터를 찾아보니 “주행은 가능하지만, 안전을 위해 점검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있었다. 불안했지만 육안상 타이어에 별 이상이 없었고, 일단 주행은 가능하다는 말을 믿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이다. 첫째로는 찜찜한 마음에도 운전대를 잡은 나를 탓했고, 둘째로는 차를 탁송해주는 과정에서 분명히 확인을 했을텐데도 왜 점검이 필요한 차량을 가져다 뒀는지 쏘카가 원망스러웠다. 차량 인수시 차량 외관 이상은 사진으로 보고하게 되어있으나, 공기압 이상에 대한 확인 절차는 없다.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다음이었다. 고객센터는 차만 정비소에 입고하고 사람은 택시비 5만원과 함께 가까운 고속도로 요금소(톨게이트)에 내려준다고 했다. 심지어 점검 후 과실 비율을 따져 비용을 청구하겠다고도 했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차를 가져다주고는 고객에게 수리 비용을 떠넘기는 건가 의심할 겨를도 없이, 집으로 돌아갈 길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차라리 가까운 쏘카존에 내려주면 안되냐고 되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안 된다'였다. 이튿날 사고 후처리 과정에서 쏘카는 별도의 비용은 청구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전날의 아찔한 기억이 선연했던 만큼 ①공기압 확인 절차 누락 ②'주행이 가능하다'고 모호하게 설명한 안내 문구의 문제 ③사고차 탑승 고객을 인근 요금소에 팽개쳐버리는 대응 등을 지적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5만원 택시비 지급 규정도 올해 들어서 처음 생겼다고 한다. 쏘카는 대기업 계열 없이 설립된 카셰어링 업계 유일의 모범 벤처 대표 사례다. 이제는 어엿한 상장 법인이지만, 여전히 벤처 DNA에 기반한 혁신과 성장을 강조한다. 지금 쏘카의 당면 과제는 데이터에 기반해 유휴 차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혹시 쏘카가 놓치고 있는 데이터는 없을까. 효율화만 강화된 벤처 정신은 무책임한 성장 논리로 남을 수 있다. 효율화와 고객의 신뢰를 모두 얻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쏘카에게 필요한 벤처 정신의 재정의일 것이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이슈&인사이트] 호남 반도체 성공 투자에는 타당성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주재했다. 이번 보고회에서는 한국형 AI 산업혁명 완성을 위해 기업들의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계획과 정부 지원 방안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이다. 내용은 서남권(광주·전남)을 제2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총 895조 원의 기업 투자를 통해서 메모리 팹 4기를 짓는다. 정부 목표는 5년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을 배가하고 이를 통해서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전력망과 용수, 부지, 인력 확보 등 기반 시설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만큼, 향후 정부 지원책과 기업 투자계획의 구체화, 그리고 스피드 여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성공의 분수령이 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여유가 없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 주도형 투자다. 첫 구상은 SK가 2019년, 삼성이 2023년이었다. 삼성전자 클러스터는 시스템 반도체 팹 6기를 짓는 프로젝트로, 부지는 710만 m2로 300조 원이 소요되어 2042년 완공 목표다. SK하이닉스 클러스터는 메모리 반도체 팹 4기를 짓는 프로젝트로, 414만 m2의 부지에 120조 원을 투자하여 2027년 완공을 목표하고 있다. 그런데 먼저 출발한 SK도 2025년, 6년 만에 겨우 공사를 위한 첫 삽을 떴다. 산단 조성에 필수적인 환경영향평가, 토지 수용, 주민 보상 절차의 장기화가 원인이었다. 호남 반도체 투자 성공에는 속도가 절대적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이 첫 삽을 뜨는 데만 6년이 걸린다면 성공은 없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왜냐하면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5년 이후까지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은 기업 주도형보다는 관제 성격을 갖고 있다. 호남판 국책 사업이 정권에 따라 어떻게 표류하는지 새만금 사례가 입증한다. 새만금 사업은 1991년 사업이 개시되어 20년 만인 2010년 방조제가 완공되었지만, 35년이 지난 지금도 표류하고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속도전 사례로 일본 TSMC 구마모토 공장을 제시한다.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원스톱' 지원으로 2년여 만에 완공되었다. 2021년 10월 투자 발표 이후 2024년 2월 준공식을 거쳐 연말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효율적인 정부 지원, 표준화된 공장설계, 협력사 생태계, 신속한 행정이 결합하면 2년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또 다른 사례로 대만 남부 가오슝시에 있는 TSMC 반도체 클러스터가 있다. 가오슝의 공장용지는 정유공장 자리로 토양오염이 심각했다. 오염제거만 30년이 소요된다고 할 정도로 최악의 조건이었다. 전력원은 노후화된 화력발전소였다. 그런데 4년여 만에 TSMC의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가 가동할 수 있었던 것은 가오슝시 정부가 '예산 폭탄'을 퍼붓고,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속도전을 벌인 결과다. 환경영향평가에 걸린 기간은 불과 한 달 반, 애초 30년이 걸린다던 오염 정화는 1년 만에 끝냈다. 가뭄으로 공업용수가 부족해지자, 농업용수를 끊고 전국적인 휴경을 단행한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후보지인 광주의 '첨단 3지구'나 해남의 '솔라시도'가 모두 주거·산업·연구 생태계가 연계되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기업·정부의 발상 전환이 있다면 호남클러스터가 용인보다 빠르게 5년 이내에 가시화될 수 있다. 발상 전환을 위해서 반도체 클러스터가 호남을 구조적 낙후에서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실함이 요구된다. 절실함으로 '민주화의 성지'에 덧씌워진 '강성 노조'의 이미지를 제거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일이 타당성 플러스알파 과제다. bienns@ekn.kr

[EE칼럼] ‘반도체 클러스터’, 대한민국호의 시험대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에 반도체, 피지컬 AI, 그리고 데이터센터가 포함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선두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규모 국내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혔으며, 특히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각각 400여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또한 충청권은 첨단 패키징 산업 육성을 통해 수도권과 호남을 연결하리란 전망이다. 요컨대 수도권에서 충청권을 거쳐 서남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반도체 산업축이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거대한 계획이 발표되면서 기대가 커지는 만큼, 전력과 용수, 그리고 인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셋 다 만만치 않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생각한다면 개별적인 사안에 함몰되기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연 대한민국호(號)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인프라 금융 전문가인 마이클 베넌(Michael Bennon) 연구원은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제도, 그리고 거버넌스의 문제로 바라본다. 그의 연구는 발전소, 철도, 항만, 송전망과 같은 대규모 사업은 기술 자체보다 인허가 절차, 금융 조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 환경 규제, 주민 수용성 등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AI 시대를 맞이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도체 공장은 그저 첨단제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 설비로만 이해할 수 없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대규모 용수, 초고압 송전망, 데이터센터, 교통망, 연구개발 및 생산 인력, 대학과 기업의 협력 체계까지 함께 구축되어야 하는 국가 단위의 초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다. 실제로 AI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이러한 국가적 실행 역량, 즉 국가책략(statecraft)이 경쟁의 승부를 가르는 변수일 것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 벨리라고 불리는 거대한 지식공동체이자 혁신 산업의 클러스터가 AI 혁명을 주도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건설, 송전망 확충과 같은 실질적인 집행 단계에서 수많은 법적 분쟁 등에 봉착하며 속도를 내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편 중국은 첨단 반도체 공급에 있어 여러 제약을 맞닥뜨리고 있으면서도, 전력망과 산업단지, AI 인프라, 인재 육성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속도감 있게 통합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AI 시대의 경쟁은 이미 개별 기술의 우위를 넘어 복합적인 국가 프로젝트를 얼마나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지의 경쟁으로 변화하였는데, 두 초강대국의 치열한 경쟁이 향후 어떤 결말로 귀결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에너지 정책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필자는 지난 5월, 이 지면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AI 시대 전력의 중요성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전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국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핵심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전력원을 충분히 확보하더라도 송전망이 부족하면 전력은 공급되지 못한다. 용수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런 거대 사업들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금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허가 역시 중요하다. 지연되면 될수록 첨단 산업 전략은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중요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역시 인력이다. 전문적인 인력이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의 경쟁력은 이러한 국가적 비전을 얼마나 속도감 있게, 그리고 얼마나 착실하게 실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일은 산업 정책에만 머물 수 없으며, 에너지 정책, 국토 정책, 교육 정책, 금융 정책, 규제 정책이 하나로 연결되는 국가 프로젝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충돌하는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한국 역시 반도체 제조 설비를 짓는 것을 넘어, 미래 산업을 뒷받침할 국가 인프라를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와 함께 국가적 비전을 위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대한민국호가 이번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지는 기술력 자체보다 국가적 실행 역량에 달려 있다. bienns@ekn.kr

[데스크 칼럼] 정부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 부동산 대책

지난달 30일 정부가 기습적으로 경기 화성시 동탄구, 용인시 기흥구, 구리시를 이른바 '토허제'로 대표되는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 등 '3중 규제'로 묶었다. 이번 조치는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는 기자단 내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격적인 조치였다. 보통 부동산 정책은 정부의 공식 발표 전에 그 규제 내용과 발표 일시 등이 사전에 국토부 출입기자단 내에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 조치)를 걸고 공유된다. 이는 부동산 정책이 대중에 발표되기 전에 사전 유출되면 주택시장에 미칠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보안 강화를 위해 비공개를 전제로 하면서도, 국토부 출입기자들이 미리 관련 내용 등을 충분히 사전에 취재하고, 정책에 문제점이나 미비점이 없는지 여론이 앞장서 살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번 6·30 조치는 출입기자단에도 이런 대책이 나온다는 사전 공유조차 전혀 없이 당일 오전 8시에 관련 내용이 기습 발표됐다. 국토부를 드나드는 담당 기자들 입장에선 전혀 준비되지도 않은채로, 국민 실생활에 미칠 영향이 큰 토허제 지정 대책에 대해 부랴부랴 후속 취재에 들어가야 했다. 국토부는 이번 대책이 출입기자단에도 해당 내용이 전혀 공지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일부 언론사들이 엠바고를 깨고 대책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원론적인 설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부 일탈 사례가 있다고 해서 중요한 부동산 정책을 사전에 국토부 출입기자단에도 '쉬쉬'하고 정부가 기습발표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겪에 불과하다. 그리고 국토부가 부동산 정책을 출입기자단에도 비밀로 하고 기습 발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표면상의 '보안 강화' 사유보다 더 근본적인 뒷배경이 존재한다. 그것은 토허제 추가 지정 자체가 정부 입장에서 떳떳하지 못한 '땜질식 처방'이기 때문이다. 당초 강남 3구로 한정됐던 토허제는 풍선효과로 마포구와 성동구 등 한강 인접 지역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서울 한강벨트 지역으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이후 풍선효과로 인해 한강벨트 인접 지역 아파트 값이 오르자 아예 정부는 지난해 가을 서울 전역을 토허제로 묶어버렸다. 하지만 서울 집값은 올해 5월 양도세 중과세 유에를 앞두고 급매물이 잠시 소화된 시기를 제외하고, 6월 선거가 끝나고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다시 급등하고 있다. 사실상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토허제 규제는 실패한 셈이다. 이번에 토허제 구역에 새롭게 편입된 동탄, 용인 기흥, 구리 역시 지난해 10월 경기도에서 토허제를 피한 지역으로 풍선효과로 인해 집값이 오르자 토허제 규제를 받았다. 그러자 이젠 그 반대급부로 용인에서 토허제 규제가 아직 미치지 않은 처인구와 구리시와 인접한 별내 신도시 아파트 값이 들썩거린다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특정 지역을 규제로 묶고, 규제를 피한 인접지역 집값이 오르자 또 다시 그 해당 지역을 추가로 규제하는 지금과 같은 땜질성 처방이 계속되면 전 국토가 토허제 구역으로 지정되는 것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가 될 수 있다. 국토부가 출입기자단에도 사전에 관련 대책을 공유하지 못할 정도로 토허제 추가 지정 규제는 실패한 부동산 처방이다. 정부의 다음 부동산 정책이 '용인 처인구와 별내 신도시의 토허제 기습 지정'이라는 뻔한 레파토리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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