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풍력발전을 둘러싸고 다시 논쟁이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풍력 터빈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이 인근 주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예상과는 다른 연구 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번 대규모 장기 연구 결과는 일반적인 이격거리에서는 풍력 터빈이 주민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연구진은 초근접 거주자에 대한 표본 한계를 인정하면서,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에는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다. ◇12년간 추적…소비 기록까지 분석한 '정밀 검증'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학교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피츠버그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같은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2년 동안 미국 전역 12만 가구 이상의 건강 패널 데이터를 추적했다. 여기에 미국 지질조사국이 보유한 약 7만5000기의 풍력 터빈 위치 정보와 설치 시점을 결합해, 터빈 설치 전후 주민 건강 상태 변화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불면증·수면장애·우울증·불안·두통 등 정신적·신체적 건강지표였다. 특히 이번 연구는 기존 논문들과 달리 설문 응답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실제 소비 행태까지 추적해 수면제·진통제·커피·약품 구매량 변화를 분석했다. 또, 미국 시간사용 조사 자료를 활용해 수면시간과 야외활동, 운동시간 변화 여부까지 함께 살폈다. 풍력 터빈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런 생활 패턴과 소비 데이터에서도 변화가 포착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유의미한 건강 악영향 없었다"…주요 지표 변화 없어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풍력 터빈 설치 이후 불면증·우울·불안·두통 등 주요 건강지표에서 유의미한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수면제와 진통제 구매량 역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 주민들의 실제 수면시간과 운동량, 야외활동 시간도 달라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풍력 터빈 노출이 중간 규모 이상의 건강 악영향을 유발할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풍력 터빈이 인근 주민 건강을 광범위하게 해친다는 일부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과도하게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한계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거주하는 주민 표본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석 대상 지역에서 터빈과 인구 중심지 간 중앙값 거리는 약 6㎞였고, 절반 이상이 3~10㎞ 범위에 분포했다. 5㎞ 이내 거주 가구는 전체의 42%였지만, 3㎞ 이내처럼 극히 가까운 거주자는 적어 작은 건강 영향이 있더라도 통계적으로 검출하기 어려웠다. 즉 이번 연구는 “미국의 일반적인 풍력 입지 조건에서는 건강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터빈 바로 옆 주민도 절대 영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건강과 삶의 질은 다른 문제…'성가심'은 여전히 현실 논문은 건강 문제와 삶의 질 저하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적인 질병 발생이 없더라도 풍력 터빈은 주민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주목한 '성가심(annoyance)'은 단순히 “시끄럽다"는 수준의 불편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특정 환경 요인이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해 주민이 느끼는 지속적 불쾌감과 생활 통제감 상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대표적인 원인은 그림자 깜빡임(섀도 플리커)이다. 터빈 날개가 햇빛을 주기적으로 가리면서 집 안 벽이나 창문에 규칙적인 깜빡임을 만드는 현상으로, 일부 주민에게는 집중력 저하와 시각적 피로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해가 낮게 뜨는 계절 아침과 저녁에 민감하게 체감된다. 또 다른 요인은 시각적 위압감과 경관 침해다. 높이 150m를 넘는 대형 터빈이 산 능선이나 마을 인근에 들어설 경우, 주민들은 “늘 거대한 기계가 자신을 내려다본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 미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익숙하게 누려온 생활환경이 낯선 산업시설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박탈감과 연결된다. 저주파 특유의 웅웅거림과 진동감도 문제로 꼽힌다. 의학적 위해가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주민은 실내 창틀이나 문짝의 미세 진동과 함께 느껴지는 반복적 저주파를 “귀가 아닌 몸으로 듣는 소리"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감각은 특히 야간의 정숙한 환경에서 더 크게 인지돼 잠들기 전 예민함과 불안감을 높일 수 있다. ◇풍력 확대의 핵심은 '건강 논란'보다 '공정한 수용성' 이 연구 결과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주목된다. 미국은 국토가 넓고 인구 밀도가 낮아 풍력 터빈과 주거지 사이 충분한 이격거리를 확보하기 쉽다. 반면 한국은 산지가 많고 가용부지가 제한적이어서 육상 풍력단지가 마을과 더 가까운 거리에서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저주파 소음이나 특정 주파수대의 가청 저주파, 그림자 깜빡임이 주민에게 더 크게 체감될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 역시 “인구 밀집 지역과 더 가까운 국가에서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풍력 터빈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다. 재산가치 하락 우려와 절차적 불신이 더해지면 심리적 반발은 증폭된다. 사업 설명회가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느낄 경우, 같은 소음이라도 훨씬 더 강한 스트레스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다수 선행연구의 공통된 결론이다. 실제로 해외 연구들은 풍력 반대가 건강 피해 자체보다 “왜 우리 동네만 희생해야 하느냐"는 공정성 문제와 더 밀접하다고 보고해왔다. 결국 풍력 확대의 성패는 건강 위해성 논쟁을 넘어, 과학적 이격거리 기준 마련과 실시간 소음 모니터링, 그림자 깜빡임 저감 기술, 주민참여형 수익공유, 투명한 입지선정 절차 같은 사회적 설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