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21일(토)
에너지경제 포토

전지성

jjs@ekn.kr

전지성기자 기사모음




한전發 금융시장 충격 오나…채권 한도 임박에 전환사채 발행 만지작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22 10:44

채권한도 막히면 은행대출 검토…요금 인상 막으려다 금융시장·기업·가계에 충격



중동사태 등으로 국제유가, 천연가스 폭등하면 겨울철 난방비대란 재연 가능성



한전·업계 "4분기 kWh당 20∼30원 올려야"…당정, 총선 의식 인상 난색

clip20231022094224

▲한국전력.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공사의 자금난이 1년 사이 해소는 커녕 더욱 심화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가까스로 한전채 발행한도를 늘려 전력시장 붕괴 위기를 넘겼으나 여전히 누적 적자 폭과 부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내년에는 한전의 회사채 발행한도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중동사태 등으로 국제유가, 천연가스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겨울철 난방비대란 재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4분기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20∼30원 정도 인상하지 않으면 전력시장을 넘어 금융시장에도 큰 충격을 안겨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clip20231022093408

▲한전 연도별 부채 구성. 자료= 한국전력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라 한전은 전년 실적을 기준으로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올해 발행할 수 있는 한전채는 약 102조원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한전채 발행 잔액은 68조 4500억원이다. 여유가 있어보이지만 올해도 약 10조원의 영업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년 1분기에는 적립금이 자본금과의 합계 약 15조원대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한전채 발행한도가 약 75조원대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요금인상이 없다면 내년에는 기존 회사채 대신 다른 대출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전환사채(CB), 은행대출 등 다른 자금조달 방법도 많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전이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지난해 국채와 다름 없는 한전채가 높은 금리로 발행되자 시중 자금은 모두 한전채로 쏠렸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대두된 가운데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다른 기업들은 차환할 자금조자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clip20231022092255

▲방문규 산업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방문규 장관 "전환사채로 자금 조달 가능"…업계 "한전 일부 민영화 될 수도"


그럼에도 전력당국은 한전채가 여의치 않을 경우 요금인상 대신 전환사채 등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방문규 산업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정감사에서 ‘내년 3월 주주총회가 지나서 적립금이 줄어 채권 발행을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자금조달 방법은 다양하다. 한전채 발행은 회사채에 한정된 거고 은행에서 차입하는 방법 등이 있다"며 "지주은행에서 차입하면 통계에 포함되지 않고 전환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전환사채는 사채로 발행되었으나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사채권자의 청구가 있을 때 미리 결정된 조건대로 발행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특약을 지닌 사채를 말한다. 한 마디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을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채권이다. 채권자를 통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권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 채권자가 주식전환권을 청구하면 채권이 주식으로 바뀌어 그에 따른 주가상승에 의한 차익을 취하는 구조다. 다만 전환사채를 발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기업에 돈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당연히 해당 주식에 투자하는 주주들에게는 악재다.


clip20231022095553


또한 전환사채를 발행하려면 정관 또는 정관 변경의 특별결의서로서 전환의 조건, 전환으로 인해 발행할 주식의 내용, 전환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 등을 정해야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금리를 높게 발행해야 하는데 초우량 기업인 한전이 대량의 전환사채를 발행하면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며 "또한 민간기업도 아니고 공기업이라 정부 지분도 많은데 정관을 변경해서 발행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어 "한전은 사실상 정부 소유인 만큼 꾸준한 상환 및 소각을 통해 주식전환 물량을 관리해 주주ㆍ기업가치 훼손을 최소화 할 것으로 보이지만 무분별하게 찍어내다 상환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일부 주식이 민간에 매도 일부 민영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산업부 "전력시장 지키는 게 우선"…금융권 "높은 대출 금리, 다른 기업에 부담 고려해야"

산업부는 전기요금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전환사채 외에 은행대출까지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술적으로는 개별 은행들이 동일 차주에게 자본의 20%를 대출해 줄 수 있는 만큼 사실상 정부 소유인 한전이 정부지급보증 등을 내세워 강력하게 요청할 경우 실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금융시장에 다소 충격을 주더라도 전력시장 붕괴를 막겠다는 논리지만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국기업평가 관계자는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공급 능력과 설비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법 및 전기사업법 등에 의해 한전의 사업성을 보장하고 있다"며 "또한 한국전력공사법에 의해 한전이 발행하는 사채 원리금의 상환을 정부가 보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 개정 등으로 공사의 법적, 사업적 지위가 현격히 약화하거나 민영화로 정부지원이 저하되지 않는 한 신용등급은 계속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전은 사실상 정부인 만큼 강원도가 2000억원 가량 상환을 포기하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됐던 레고랜드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급하면 재정을 투입하지 않겠느냐"며 "다만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 ‘관치금융’ 논란 등과 함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음에도 이미 시중에 대출이 많이 풀려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이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미 한전의 금융부채 비중이 수년째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무작정 대출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개별 은행이 한도까지 빌려줄 경우 아직 여유가 있지만 향후 전기요금 인상 등 상환능력, 기존 채권 발행량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무작정 다 빌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또한 은행입장에서는 대출이 많아지면 위험도가 올라가니 가산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다. 가산금리가 올라가면 당연히 이자부담이 늘어난다. 그러면 한전 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이나 가계는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jjs@ekn.kr

배너